“안녕하세요.”
조형사는 문신이 있는 남자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예,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남자는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무심한 듯 답했다.
“저기 뭐 좀 알아보려고요.”
“예, 말씀하세요. 차 수리하시려고요?”
“그건 아니고… 여기.”
조형사는 그 남자에게 지갑에 있는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저랑 같이 잠깐 서에 가셔서 얘기 좀 할까요?”
“지금이요? 무슨 일이시죠?”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조사를 좀 할 게 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못 찾아오신 거 같아요.”
“그러니까 가서 얘기해요.”
“음… 혹시 영장 가져오셨나요? 제가 알기로 혐의도 없는 일반 시민을 이렇게 막 잡아가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바쁘거든요.”
조형사는 살짝 짜증이 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그 때 선우가 휠체어를 끌고 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예, 누구시죠? 무슨 일이세요?”
그 남자는 선우를 내려다보며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 친구도 같이 일하는 수사관이에요.”
조형사가 대답했다.
“다름 아니라 아까 일 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
대화상대는 다시 선우로 바뀌었다.
“보면 몰라요? 차 수리하는 거죠.”
“그래요? 그럼 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거네요?”
“……” 남자는 대답없이 선우를 계속 내려 보았다.
“그럼 혹시 세무 신고는 하셨나요? 저희가 듣기로는 여기가 현금으로 할인을 많이 해준다는 얘기가 들어와서 오늘 조사차 나온 거거든요.”
선우는 당당하게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그건 사장님께 물어보세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 남자는 처음으로 살짝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사장님은 혐의가 파악되면 나중에 조사를 할 거 에요. 그 전에 우선 먼저 조사를 하고자 오늘 말씀드리러 온 거 에요. 여기서 말을 안 하면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사장님 때문에 괜히 피해입을 필요 없잖아요.”
“음… 그럼 일단 지금은 하던 일이 있어서, 이것만 끝내고 제가 갈게요. 그래도 되죠? 아니면 내일 쉬는 날이니까 내일 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이 연락처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둘은 그 남자에게 조형사의 연락처를 알려준 후, 자신들의 차로 돌아왔다.
“역시 만만한 놈이 아니야.”
“맞아요. 왠지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서 제가 가봤어요.”
“응, 잘했다. 그 세금 얘기는 뭐야?”
“아무래도 본인 혐의라고 하면 출석하지 않을 것 같아서 머리를 좀 썼죠. 저런 부류가 자신이 살기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하거든요.”
“이야… 넌 가끔 사람을 감탄시킨단 말이야.”
“하하, 이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합니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에요.”
선우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 조형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날이 저물자 두 남자가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 아까 전화에서 했던 말 진짜야?”
“그렇다니까. 내가 그런 거짓말을 뭐 하러 해.”
“정말이야?”
“아오, 진짜라니까!”
“그럼, 어떻게 해? 바로 경찰서 가서 넌 직원이라 모른다고 사장님이 탈세했다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음… 좀 고민중이야.”
“응? 무슨 고민? 그러다 너가 뒤집어쓰면 어떡하려고?”
“혹시나 함정일까 봐…”
“응? 무슨 함정? 경찰이라며?”
“그러긴 한데… 뭔가 좀 수상하단 말이야…”
“혹시… 그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음… 그건 아닐 거야. 그렇지만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떻게?”
“일단은 저쪽의 의도에 따라주는 척하면서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그럼 자진해서 경찰서를 간다고?”
“응, 둘 다 경찰이 맞는지 확인도 해봐야겠어. 아니라면 뭔가 냄새가 난다는 거겠지.”
“역시 너는 참 대단한 놈이야. 나라면 그냥 도망갔을 텐데.”
“도망을 왜 가? 무능한 경찰 놈들이 뭘 안다고.”
“하하 자신감 보소. 맞아. 아무튼 난 너만 믿어!”
“그래, 걱정 말고 어디 가서 입 조심만 해.”
“응, 알겠어.”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카센터에서 일하던 그 남자는 자신의 검정색 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가야 진짜 경찰들만 출근하여 두 경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빠른 속도로 조형사가 알려준 경찰서로 들이닥쳤다. 지방이라 그리 크진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한 눈에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남자가 정문으로 들어오자 마자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일찍 오셨네요?”
“아… 안녕하세요. 어제 뵌 분이네요?” 남자는 살짝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예,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여기 있을 거라고.”
“아… 그렇죠. 전 혹시나…”
“혹시나…?”
“아, 아니에요. 안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같이 들어가시나요?”
“저는 차 타고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조형사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는 잠시만 있다가 들어 갈게요.”
“예, 그러죠 뭐.”
남자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듯 살짝 미소를 보이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선 조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조형사와 그 남성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조형사 자리에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형사는 먼저 간단한 인적사항 등을 물었고 남성은 천천히 신중하게 대답에 응했다. 그리곤 몇 가지 질문들이 이어졌다.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언제부터 그 카센터에서 일 했는지, 손님은 얼마나 있었고 한 달 매출은 어느정도 인지, 주요 고객은 누구인지, 현금 결제가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그는 속이는 것 없이 대답했다. 조형사는 겉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 남성의 답변을 자판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사는 어느덧 중반을 넘어선 듯했다.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조형사가 남자에게 물었다.
“예? 지금 계속 질문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긴 한데, 조금 다른 질문이라…”
“예, 하세요.”
“여기 토박이시죠?”
“음… 완전 토박이는 아닌데,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럼, 혹시 최근에 공사장에서 사고 난 건 알아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작은 마을이라 소문이 금방 다 퍼졌던데, 차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얘기 안 해요?”
“글쎄요… 제가 과묵한 편이라 주변에 별로 신경을 안 써서…”
“아, 그래요? 동네에 친구는 많아요?”
“그냥 뭐… 근데 이게 수사에 관련이 된 건가요?”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묻는 거예요.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돼서.”
“친한 친구 한 둘은 있죠. 친구들 대다수가 직업 때문에 다른 데로 이사 가서 없어요.”
“지방도시는 어디나 다 비슷하네요.”
“그렇죠 뭐.”
“호진씨는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뭐… 일단 지금은 여기가 제일 좋다고만 말씀드릴게요. 때가 되면 나갈 수도 있겠죠.”
“여기서 돈벌이는 잘 돼요? 사장님이 돈을 잘 주시나 봐요?”
“하하… 형사님 질문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거 보니까, 하실 건 다 하셨나 보네요.”
“질문이 너무 개인적이었나? 하하. 호진씨는 참고인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요.”
“예,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 게요. 아 참! 밖에 있던 형사님은 바쁘신 가봐요? 안에도 안 들어와 보시고.”
“아, 김형사는 지금 좀 바빠요.”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예, 뭔데요?”
“김형사라는 분 정말 형사 맞아요? 나이도 되게 어려 보이고, 몸도… 좀 불편해 보이는데 경찰을 할 수가 있어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컴퓨터로 안되는게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요. 신체 건강한 건달보다 저 친구같이 건강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이 더 경찰에 적합하죠. 경찰은 그런 친구들한테 언제나 열려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저 친구 굉장한 브레인이에요. 몸 쓰는 일은 나같이 무식한 경찰이 하면 되는 거지 뭐, 하하.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진정한 파트너쉽 아니겠어요?”
선우에 대한 질문에 조형사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서 길게 대답했다. 평소 자신의 속마음이 무심코 튀어나온 듯 보였다.
“아… 그래요? 브레인이라… 하하 멋지네요. 저도 그런 꿈을 꿀 때가 있었는데.”
“응? 무슨 꿈?”
“아니에요. 그럼 전 일이 또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괜찮죠?”
“으음, 그래요. 오늘 방문해줘서 고마웠어요.”
그 남성은 일어나서 경찰서를 한 번 훑어본 후, 들어온 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밖에선 여전히 선우가 차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선우에게 묘한 웃음을 지으며 눈인사와 목례를 하고선 돌아갔다. 그 남자가 떠난 후, 조형사는 선우의 차 조수석에 앉았다.
“잘 들렸어?”
“예, 아주 잘 들렸어요.”
“어때? 괜찮았어? 내가 뭐 실수한 건 없지?”
“예, 아주 잘 하셨어요. 확실히 저 사람 만만치 않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봤자 저한텐 안되지만.”
“오, 선우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예? 무슨?”
“아니, 묘하게 둘이 불꽃이 튀는 거 같아서. 저 친구도 그렇고… 그냥 기분 탓인가 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 알겠어. 그럼 이제 우리 잠깐만 쉬었다가, 저녁 스케쥴 준비를 해볼까?”
“예, 좋아요. 아 맞다. 형사님 아까 마지막에 한 말 진짜에요?”
“응? 무슨 말?”
“그 왜… 아까 마지막에 대답하신 말이요.”
“음… 뭘 또 남자끼리 새삼스레 그런 걸 또 되물어봐. 그 친구가 의심하는 거 같으니까 횡설수설 한 거지.”
“에이… 거짓말, 형사님도 제가 브레인이라는 걸 인정하시고 계셨네요. 하하.”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아! 그 전에 네 말 대로 저 친구가 아침부터 올 수 있다고 예측한 게 들어 맞았네?”
“그렇죠. 저 친구는 분명 우리를 의심했을 거에요. 뜬금없이 사장을 탈세혐의로 조사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특히 저는 경찰로 보이기엔 좀 부족하니까. 그래서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을 거 에요. 특히 진짜 직장이 아니면 아침 일찍 왔을 때 없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행동한 거죠.”
“음… 선우 너는 그걸 예측해서 대응을 한 거고? 대단하네. 그건 네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가는데, 그럼 왜 도망가지 않고 나왔을까? 의심이 가면 도망가던가 핑계를 대고 안 나오면 되잖아.”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으면 벌써 잡혔을 거예요. 그만큼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자기 확신도 강하고. 우리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거예요. 그래서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야 다음 수를 내놓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오늘 그 친구는 어떤 걸 얻어 갔을까?”
“음… 글쎄요. 우선 지금 자신을 부른 것이 사장의 탈세 때문이 아니란 건 눈치 챘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형사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반신반의하지만 아니라고 확신하지는 못할 거에요.”
“선우, 너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나중에 프로파일러 이런 거 해도 괜찮겠는데?”
“하하… 저번엔 카운셀러 하라고 하시더니… 이 일 끝나면 저는 다시 공부하러 가야죠. 일단 저 친구는 제 손바닥 안에 있어요.”
“그래, 불붙은 선우 믿고 또 가보자!”
“형사님, 불붙고 이런 거 아니라니까요!”
“하하, 그래 그래. 농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