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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Impairment
작가 : 쿤호
작품등록일 : 2019.11.9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완벽한 고등학생 선우.
그는 어느 날 참석한 봉사활동에서 삶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25화
작성일 : 19-11-09 03:19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6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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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 날 아침, 이사장은 김선생을 급히 불렀다.

  “김선생, 김선생! 잠깐 이리로 와봐요.”

  “예 이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이거, 이게 뭐에요?”

  “예? 무슨…”

  “이것 좀 봐 봐요. 이거 누가 놓고 간 거에요?”

  김 선생은 이사장이 건네 준 하얀 종이를 펼쳐 봤다. 종이를 보는 눈동자는 위에서 아래로 왼 쪽에서 오른쪽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붙어있던 입술을 땠다.

  “이… 이게 뭐 죠? 이사장님?”

  “지금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거에요. 이게 뭐에요? 이거 누가 놓고 간 거에요?”

  “글쎄요… 오늘 수상한 사람은 못 봤는데… 혹시…?”

  “혹시…?”

  “애들이 장난친 거 아닐까요?”

  “애들이? 누가요? 누가 이런 짓궂은 장난을 쳐요? 우리 애들 중엔 이런 애들 없어요.”

  “그렇긴 한데… 그럼 도대체 누가…”

  “일단 선생님들 이랑 관리인 분들에게 수상한 사람 목격한 적 있나 확인해봐요. 아이 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김 선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사장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소파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오른 손을 이마와 눈의 중간정도에 가져갔다. 아픈 이마를 집으려는 것인지 본인의 눈을 가리려는 지, 손을 한참 그 곳에 두곤 생각에 잠겼다.

  얼굴엔 큰 근심이 서려 있었다. 가끔 과거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 쉬고는 편지를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고 열쇠로 서랍을 잠갔다. 그리곤 이사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날은 어둡고 흐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사장과 김선생이 이사장실로 다시 들어왔다. 이사장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김 선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사장은 그 표정으로 말미암아 편지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사장의 담담한듯 보였던 표정도 이내 조금 일그러졌다. 아무리 본인의 감정을 숨기는 데 능하다 해도 본심을 완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듯했다.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앉아 김선생을 바라보며 문 쪽으로 손짓을 했다. 김선생은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이사장은 책상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서랍을 열었다. 그리곤 흰 봉투에서 아까 그 편지를 다시 꺼내 펼쳐보았다. 편지를 한 참 쳐다본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천천히 읽었다.

  『나는 당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알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용서를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한 영웅이 나타나 당신을 단죄하리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글을 곱씹던 그녀는 이내 몸서리치며 편지를 책상에 내동댕이 쳤다.

  ‘누가 이런 시덥잖은 장난을 치는거야! 정말 웃기지도 않아…’

  그녀는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습관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임실장이 오면…’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책상 위에 던져진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 서랍에 넣은 후 열쇠로 잠그고 이사장실을 나갔다. 텅 빈 방에는 어둡고 무거운 공기만이 남아 있었다.

 

  한 동안 학교가 조용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편지에 대한 얘기가 비밀스럽게 퍼지긴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다들 모른 척했다. 특히 이사장 앞에서는 더욱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났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어느덧 그 일에 대해 조금씩 잊어갔다. 분위기도 조금씩 회복됐다. 며칠 새 굳어져 있던 이사장의 표정도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던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시간, 이사장은 평소 이 시간에 주로 퇴근했다. 주로 저녁약속이 많았다. 오늘도 똑같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퇴근 준비를 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혼자라는 점. 평소라면 임실장이 차를 문 앞에 대고 이사장실로 올라가 퇴근 준비를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사장 스스로 준비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갔다. 직접 운전하는 모습도 어색했다. 다른 사람을 쓸 만도 한데 이상하리 만치 임실장 외에는 본인 비서로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직접 운전을 하여 학교 밖으로 나섰다.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학교 구조는 특이했다. 교문 밖에서 도로로 나가는 길까지 꽤 긴 오솔길이 이어져 있어 꼭 숲 속 깊이 숨어있는 요새 같았다. 그 길을 이사장은 홀로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길 옆의 숲에서 검은 물체가 뛰어나왔다. 길의 특성상 속도를 빠르게 낼 수 없기에 그 물체는 쉽게 그녀의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검은 물체는 그녀가 있는 운전석의 문을 열려는 듯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강하게 흔들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밖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는 고민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엑셀을 다시 밟았다. 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갔다. 그 괴한은 손잡이를 놓친 후 다시 그녀의 차를 뒤따라왔다. 그녀는 속도를 조금 더 냈다. 괴한도 빠르게 뛰었다. 그러나 차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백미러로 살짝 뒤를 흘겨봤다. 노숙자 같은 행색에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그녀의 차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손이 떨렸다. 도로 밖까지 나가는 짧은 길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도로로 빠져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달린 후, 그녀는 차를 세웠다. 문이 잠겼나 다시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주변에 누가 없나 확인한 후,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패턴을 풀고 연락처 어플을 켜 검색을 했다. 조ㅎ… 조형사 번호가 떴다. 그녀의 엄지 손가락이 통화버튼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 버튼에 손가락이 닿기 바로 직전 그녀는 손가락을 멈췄다. 그리곤 무언가를 고민했다. 그렇게 한 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그녀는 연락처 검색에 입력한 조형사의 이름을 지운 후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차가 고급 주택가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달리니, 어떤 저택 앞에 다다랐다. 그녀의 차가 주차장 문 앞에 가까워지자 셔터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주차장 안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커다란 집이 아무도 없는 듯이 고요했다.

  그녀는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와 현관 문을 잠갔다. 그리곤 가방과 겉 옷을 바닥에 던져 두고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이 그녀의 얼굴과 몸 전체를 감쌌다. 그제야 모든 긴장감이 풀리는 듯 떨리던 몸이 진정됐다. 그러자 그녀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그녀의 베갯잇을 적셨다. 고급스러운 베개와 이불이 눈물로 얼룩졌다. 강한 척하지만 아니 실제로도 강한 여성이지만, 그녀도 물리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약한 여자였던 것이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고자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대로 주저 앉아만 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끔 혼잣말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접신하여 혼잣말을 하는 무당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잠시동안 특이한 행동을 지속하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 유리컵에 얼음을 넣고 독한 위스키를 꺼내 잔에 가득 따랐다. 그리곤 바로 입으로 가져가 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또 한 잔을 가득 채웠다. 이번엔 얼음을 빙빙 돌려 위스키를 좀 희석시킨 후, 살짝 목만 축였다. 그리고 다시 혼잣말을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르는지 이번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난 잘 못 없어! 이건 순전히 너희들 잘 못이야! 나도 피해자라고!”

  그 후에 계속 말들이 이어졌지만 점점 알아듣지 못할 괴성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악에 받치는 소리를 지르던 그녀는 나머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 흐흐흐… 흐흐흑흑히히…”

  흐느끼는 그 울음 소리가 처음에는 구슬프게 들렸으나, 마지막엔 울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녀는 울다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고, 이내 아침이 밝았다.

  날이 밝자마자 이사장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어제보다 편안해진 평상시와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는 문 밖을 나가 차에 올라탔다. 차에 시동을 건 순간, 누군가 갑자기 차로 다가왔다. 그녀는 어제와는 다르게 놀란 기색 없이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남자는 이사장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예,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녀는 차에 탄 채 창문을 내리고 그 남자의 인사에 대답을 했다.

  “별 일 없으세요?”

  “예 그런데요? 꼭 무슨 일이 있기를 바라시는 것 같네요?”

  “아, 그건 아니 구요. 제가 여기 온 건 다름 아니라 어제 신고가 들어와서요.”

  “신고요?”

  “예, 이사장님 차에 누군가 뛰어 드는 걸 봤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형사님한테요? 누가 신고를 했죠?”

  “음… 선우요.”

  “선우 군이요?”

  “예, 선우군이 지나가다 우연히 목격하고 혹시나 해서 저한테 전화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사장님 반응을 보니 선우가 오해한 건가 봐요”

  “음… 아니에요. 선우 군이 제대로 봤어요.”

  “그래요? 그럼 이사장님은 어째서 신고 안 하셨어요?”

  “위험한 사람으로는 안 보여서 그냥 피해만 가자고 생각했어요. 신고하면 그 사람이 괜히 피해볼까봐… 뭔가 가엾어 보였거든요.”

  “그래요…? 이사장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타적이시군요. 역시 큰 일 하시는 분이라 비범하 시네요. 하핫, 저 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아무튼 그럼 괜히 헛걸음했군요.”

  “예, 다른 용무는 없으신 거죠? 그럼 전 약속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게요.”

  이사장은 쏜살같이 차를 몰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조형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탈한 표정으로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사장은 어디론 가 계속 달렸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그녀가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경찰서였다. 그녀는 이 곳에 왜 온 것일까?

  그녀는 차를 주차하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그녀는 다시 나와 차에 올라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예,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이요?”

  “예, 혹시 시간 안 되시나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XX동 OO카페에서 기다리죠.”

  “근처네요. 20분 안에 갈게요.”

  “예, 먼저 가서 기다릴 게요.”

  이사장은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과연 그녀는 누구를 만나려는 것일까?

 

  그녀는 카페에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후 누군가 문으로 헐레벌떡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성큼성큼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이사장님, 다시 뵙네요. 무슨 일이시죠?”

  “어서 오세요. 조형사님. 금방 오셨네요.”

  “예, 근무지 근처라…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저번에 학교에 왔을 때, 신고 받고 오셨다고 하셨죠?”

  “예, 그렇죠.”

  “그래요? 확실하죠?”

  “그럼요. 혹시 무슨 일 있으셨나요?”

  “음… 이상하네요. 제가 지금 경찰서장님 만나 뵙고 왔는데, 그런 신고는 접수된 적이 없다는 데요?”

  “예? 그게 무슨…”

  “혹시나 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 경찰서장님한테 신고 접수 확인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그런 신고접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신고 받고 오신 거 맞아요?”

  “예… 맞… 맞아요.”

  “그래요? 그럼 확인 좀 해주세요. 접수 내용 좀 보여주세요.”

  “아 그건 좀… 곤란합니다.”

  “왜 곤란하죠?”

  “신고 접수 내용 같은 것은 보여 드리기가 좀 그래요…”

  “당사자인데도요?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서장님께 다시 한 번 확인해볼까요?”

  “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날 학교에 간 것은 신고가 아니라 첩보였어요…”

  “첩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한 테 개인 첩보로 연락이 왔어요.”

  “개인 첩보요? 누가 형사님께 연락을 했죠?”

  “이거야말로 정말 말씀 드릴 수 없어요. 개인 정보기 때문에…”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어쨌든 공식적으로 신고가 들어오고 한 건 아니네요. 그러면 앞으로 개인적인 판단으로 학교에 오고 이러는 건 안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예? 저는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개인적으로 행동하진 말아주세요. 진짜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 때 신고할게요. 그 때도 다른 분이 오셨으면 한다고 서장님께도 말씀드려 놨어요.”

  “그게…”

  “제 말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학교로 오시면 서장님께 말씀드리겠어요. 그럼 용건은 다 말씀드렸으니,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이사장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형사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조형사는 당황한 얼굴로 멍하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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