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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 - 미하루, 할 말 있어.
작성일 : 17-07-21 16:52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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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2년 전. 아론 16세. 파갈성

 

 

 

 “얌전히 당신 곁에 있겠다고 하잖아요. 당신의 관심 따위 애걸할 생각 추호도 없어. 그게 뭐가 어렵다고 자꾸!”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르게 쉽사리 높아졌고 감정에 사로 잡혀 버리곤 했다.

 

 

 “억제제를 먹지 않은지 한참이 지났는데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 할아버지는 전쟁을 시작하려 들 거야. 황제도 또 다른 술책을 꾸밀 거고. 그러니 지금 떠나야 해.”

 

 “당신이 같이 가주면요.”

 

 “나는……할아버지를 버릴 수 없어. 할아버지한텐 나뿐이야.”

 

 

  최근 둘 사이에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반복되는 말들이었다.

 

 

 “할아버지뿐이라면서 왜 그랬어요?”

 

 

 아론이 지친 듯 결국, 그 말을 뱉어 버리고 말았다.

 

 

 “당신은 납치당한 게 아냐. 제발로 황제한테 간 거지.”

 

 

 세라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바라보는 주홍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묵하는 그녀를 보며 아론은 주먹을 말아 쥐고 자신의 입술을 짓이겼다.

 

 끝까지 입 밖으로 뱉지 않으려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뚝 던져내고 말았다.

 

 요즘 그의 상태는 한 마디로 질풍노도,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이란 뜻이다.

 

 차분했던 성격은 느닷없이 불같이 동요되다가 어느 순간 얼음처럼 냉정해지곤 했다.

 

 특히 세라에 대한 감정이 가장 기복이 심했고 스스로 제어가 안 되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치가 떨리게 싫어 부인하고 싶어질 땐 세라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그녀라는 존재가 그가 만든 허상일까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황궁에서 당한 독침의 부작용인 환각과 고열이 점차 사그라 들기는 했지만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 이 감정이란 녀석 때문에 아론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세라가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면서 홧김에 뱉어내고 말았으니.

 

 

 “미안해요. 말이 잘 못 나왔…….”

 

 “시간 다 됐어. 그만 가봐.”

 

 

 자신을 밀어내기에 급급한 세라 때문에 아론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괴성이라도 지르면 또 꽁꽁 숨어버릴까 싶어 속이 탈 뿐이었다.

 

 

 “내일 올게요.”

 

 “오지 마. 나는 안 와.”

 

 

 아론은 세라를 노려보다 거칠게 일어서 나가버렸다. 밖으로 나온 아론은 답답한 마음을 풀길이 없어 절벽위로 축성된 그 난공불락의 성벽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를 리딕이 올랐다고? 흥! 어림없는 소리.

 

 리딕을 보기 전엔, 이 성벽을 직접 올라보기 전엔 그런 생각에 얼마든지 동의해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리딕의 큰 키로, 그 무게로……백프로 실패다. 세라가 줄을 내려줬다면 모를까.

 

 게다가 이층 창문으로 빠져나올 때도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세라는 2층 절벽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벽을 혼자서 내려 올 수 없다. 그렇다고 리딕이 세라를 데리고 매끄러운 절벽을 탄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이었다.

 

 줄을 사용했다면 무게 때문에 창턱이나 벽에 마모된 흔적이 미세하게나마 있을 텐데 아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천하무적이라 해도 불가능한 것들이 지천이었다.

 

 리딕은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의 신체조건과 능력으로 이곳을 오르는 것도, 세라를 데리고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여기 온 적도 없는 것이다.

 

 아론의 머릿속에 세라가 보였다.

 

 아론에게 춤을 거절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 온 너.

 

 밤이 깊어가길 조용히 기다렸겠지.

 

 황제의 인장이 박힌 서한을 침대에 두고, 공작이 그 서한을 보고 네가 납치당했다고 믿게 만들려고.

 

 무도회가 끝나고 새벽이 오기 전에, 준비해둔 하녀 복장을 걸치고 잠금장치를 열어둔 채 방을 나왔어. 절벽 쪽의 2층 창문 하나를 열어 두고 조용히 몸을 숨기고 기다렸지.

 

 새벽일을 시작하는 하녀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그 무리에 조심스레 섞여들어 현관을 나왔을 테고.

 

 너는 성내에 있는 비밀 통로들을 알고 있겠지.

 

 그 중 하나로 숨어들어 성문을 빠져나가 황제를 만나러 간 거야!

 

 하아- 하아-.

 

 세라의 발코니에 다다른 아론은 아찔한 절벽아래를 내려 보았다.

 

 

 “나도 조만간 올라오지 못 하겠지.”

 

 

 날렵하고 가볍기에 가능했다.

 

 발코니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잠겨 있었다.

 

 잠시 주저앉아 땀을 식히며 펼쳐진 시야를 응시했다.

 

 이렇게 사방이 탁 트였는데 나는 왜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가?

 

 그렇게 자문했지만 답을 이미 알고 있어 웃음이 나왔다.

 

 그 뻔한 답을 완곡히 부정하고 싶다가도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아론은 주머니에서 가는 밧줄을 꺼내, 발코니 한쪽 구석의 철창에 묶었다.

 

 

 “어쩔 수 없잖아. 네 방에 잘 있나 이따금 확인하려면. 매번 여기를 맨 손으로 오르는 거 나도 무섭거든.”

 

 

 

 **

 

 

 

 “미하루, 할 말 있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말은 나중에 하고, 안아줘. 꼭.”

 

 “미하루, 제발. 내말 좀 들어 줘!”

 

 

 아론은 미하루의 숙소로 찾아 갔다.

 

 품에 파고들기부터 하는 그녀는 대화보다 아론의 단단한 품과 그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 더 급했다.

 

 다소 화를 내는 듯한 아론의 말투에 그녀가 놀랐고 아론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앞에 세웠다.

 

 

 “왜 그래? 평소 아론답지 않게.”

 

 “미하루.”

 

 “왜? 공작님께 결혼 허락받았다는 말 하려고? 그거야 당연…….”

 

 “아냐, 난 요청하지 않았어.”

 

 “뭐? 왜? 또 미루려고?”

 

 “미하루.”

 

 “내 이름 그만 부르고, 이번엔 이유가 뭔데? 또 미루려는 이유가 뭐냐고?”

 

 “너랑 결혼 할 수 없어.”

 

 

 미하루가 조용해졌다. 몇 초간은 그 말의 뜻이 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 말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알 수가 없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아론은 그녀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난…… 널 여자로서가 아닌 친구로서 좋아해.”

 

 

 아론은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침묵했다. 미하루는 입을 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뱉어 낼 수 없었다.

 

 

 “거짓말. 믿을 수 없어. 그동안 아론이 내게 했던 행동들은 뭐야? 키스하고 안고, 다정한 말들, 눈빛……친구와는 그럴 수 없어.”

 

 “……미안해. 네가 행복하길 바랬어.”

 

 

 항상 달려든 건 그녀였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 없었다.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아론이 돌바닥에 천천히 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미하루는 심장이 두 동강으로 쪼개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무거운 바윗덩이에 눌린 것 마냥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미안…….”

 

 “그만 말해! 그 미안하단 말. 내일 다시 얘기 하자. 피곤해서 머리가 이상해 진거야. 그러니까 쉬면 괜찮아져. 그만 일어나. 일어나 빨리!!”

 

 

 아론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는 미하루의 노력에도 아론은 일어서지 않았다.

 

 어둑어둑 해졌을 때 찾아 온 아론은 밤이 깊도록 미하루의 방에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그는 꿈쩍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미하루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잘 알고 있는 아론은 그 말을 던져 놓고 방을 나올 수 없었다.

 

 적어도 오늘 밤 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의 방에서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미하루는 미친 듯이 소리치고 흐느끼고 아론을 때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침대에 지쳐 누워 버렸다.

 

 아침이 가까워져서야 잠이 들었다.

 

 아론은 미하루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천천히 일어났다. 관절과 근육에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잠시 눈을 감았다.

 

 침대로 다가가 미하루의 지친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고,

 

 아론은 미하루의 방을 나왔다.

 

 

 

 

 **

 

 

 

 

 

 휴강 일주일 째.

 

 

 파갈의 지도부는 성내의 어수선한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세라의 납치사건 때문에 치루지 못한 대대적인 사냥대회를 열었다.

 

 사냥터로 떠나는 여자들을 위한 마차행렬이 앞마당에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현관 앞에서 대기 중인 아론을 만났다.

 

 

 “경호 임무를 지명 받았습니다.”

 

 

 그는 세라보다 더 사무적인 태도와 말투를 보였다.

 

 미묘한 차이의 차가움이 덧칠되어 있었다.

 

 세라는 그것이 신경 쓰여 무심결에 그의 말을 반복했다.

 

 

 “경호 임무…….”

 

 

 좀 더 구체적인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설명이 없었다.

 

 

 “그래? 그럼 수고해.”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한 대화였다. 예기치 않은 그의 싸늘함에 애써 쌓아 올린 벽이 흔들렸다.

 

 아론은 결심이라도 한 듯, 세라처럼 벽을 쌓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의도된 차가움은 그에게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세라가 바라던 바였지만 막상 피부로 느껴지는 냉기가 다소 섭섭했다.

 

 등을 돌려 맨 앞의 마차로 향했다. 뒤에 따라오는 기척에 세라는 멈춰 뒤돌아봤다.

 

 

 “더 할 말 있어? 왜 따라오지?”

 

 “아가씨 경호입니다. 제 임무.”

 

 “누구? 나? 왜?”

 

 

 사냥에 따라가는 가문의 여자들은 기사단들이 일괄 경호를 맡았다. 이렇게 개별 경호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넓은 천막을 쳐 놓고 그저 차를 마시며 수다나 떨고 있을 텐데.

 

 

 “제가 받은 임무지명은 분명 세라 아가씨였습니다.”

 

 

 세라는 머뭇거리다 마차에 올랐다. 아론이 문을 닫기를 기다렸다.

 

 

 “개인경호는 밀착경호이기에 저도 마차에 오르겠습니다.”

 

 

 세라가 놀라 입이 벌어지는 사이 그가 마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세라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맞은편에 자리 잡은 아론을 쳐다봤다.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려했다. 세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들이 분주하게 지정 된 마차로 향하는 모습들이 들어왔다.

 

 부기사단장이 최종 확인을 한 후 세라에게 보고했다.

 

 

 “출발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세라 아가씨.”

 

 “네. ……부단장님, 제가 개인경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건, 공작님의 특별지시가 있으셨습니다. 사냥터에서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미리 보고 받은 적 없는데, 언제 결정 된 거죠?”

 

 “저희도 직전에 받은 지시라 아가씨께 미리 보고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알았어요. 출발하죠.”

 

 

 부기사단장은 절도 있게 주먹을 심장에 갖다 대는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할아버지,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신가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라도 아론도 말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마차 안은 세라의 한 숨 소리만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아론은 정면을 향한 채 있었지만 시선은 세라를 비켜서 두고 있었다.

 

 세라에게서 또 긴 한 숨이 새어 나왔다.

 

 

 “제가…… 불편하세요?”

 

 “어?”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자꾸 한 숨을 쉬셔서.”

 

 “……그랬어?”

 

 “아가씨가 늘 하던 대로……그냥 날 신경 쓰지 마세요.”

 

 

 아론의 말투는 차갑다 못해 냉정했다.

 

 오래 전에 들었던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라, 결국 세라는 미간을 구겼다.

 

 

 

 ‘너도 파갈가문을 위해 네 몫을 해! 너는 영민한 아이니 할애비의 뜻을 잘 헤아리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뿐인 손녀딸마저도 할아버지의 야욕의 밑거름으로 쓰셔야겠어요?

 

 개인교습, 밀착경호…… 그 다음은 결혼이겠군요.

 

 수업을 중단 한 세라에게 공작의 검은 속내가 보이는 요구였다.

 

 세라는 아직은 고운 소년의 선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삼년만 지나도 완연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리라. 그리고 가문을 위해 수없이 피를 흘릴 것이다.

 

 너의 운명이 그리 될 줄 모두가 아는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사람을 해한 적 있니?”

 

 

 사적인 질문은 처음이었다.

 

 

 “……몇 번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순간, 가슴에 송곳이 찔리듯 아팠다.

 

 성을 떠나 있을 때마다 그랬겠지. 이제 겨우16세인 그의 손에 피를 묻히다니.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시국에 남자 나이 14세부터 적잖게 전쟁터에 보내지곤 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전쟁에 잔뼈가 굵은 자들의 칼받이로 죽어 나갔다.

 

 세라의 아빠도 오빠들도 삼촌들도 사촌들도 그렇게 전쟁으로 사라졌다.

 

 

 “기분이 어땠어?”

 

 “죄책감 같은 거 묻는 겁니까?”

 

 “그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라를 직시하고 있던 파란 눈동자가 깊어졌다.

 

 

 “내 손에 피가 묻는 것이 싫으세요?”

 

 “……그래.”

 

 

 그녀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런 대화를 통해 스며드는 저릿함이었다.

 

 가족들을 하나 둘씩 잃어 갈 때 마다 잔인하게 휩쓸고 몰아치는 상실의 고통은 오래토록 지속되는 고통임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아픔들은 차고 넘치도록 그녀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더 이상의 추가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거절한 겁니까?”

 

 

 춤 신청에 대한 거절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제가 죽는 게 두려 우세요?”

 

 

 세라는 답하지 않고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봤다. 말로써 확인해버리고 나면 더 집착하게 되는 심리를 알기 때문에.

 

 

 

 

 **

 

 

 

 거대한 하얀 천막이 세워졌다. 넓은 그늘 아래 화려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남자들은 대충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트인 그늘 속에서 여자들은 연신 한 존재를 의식하며 차를 홀짝 거리고 있었다.

 

 

 “세라 덕에 우리 모두가 눈 호강을 하게 되었네. 호호호.”

 

 “가까이서 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저런, 그런 말을 서슴없이……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군. 호호”

 

 “완전한 남자가 되면 지금의 아름다움이 퇴색 될까 우려되네요.”

 

 “저는 오히려 더 기대 되는데요. 몇 년 후가.”

 

 

 미하루는 모퉁이에 서 있는 아론을 보았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 잡은 세라를 보았다.

 

 아직 사람들은 아론이 미하루에게 결별을 선언한 것을 몰랐다.

 

 어떻게 그녀 입으로 그것을 알릴 수 있을까? 못한다.

 

 여기 온 다양한 연령대의 30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아론을 의식하고 있었다.

 

 단 한명 세라만 빼고.

 

 미하루는 아직도 모르겠다. 세라가 정말 아론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건지.

 

 다른 여자들은 미하루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는 경계해야 했다.

 

 

 “느닷없이 개인 경호라니,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러게요. 여태껏 세라가 위험에 처한 적은 없었는데.”

 

 “공작님의 유일한 직계 혈육이니 조심하는 것이겠지요.”

 

 

 지도부의 수장들을 제외하고는 세라의 납치 사건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공작님께서 둘을…….”

 

 

 늘 여과 없이 생각을 내뱉는 부인이었다. 아론과 세라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자 모두들 바로 그 뜻을 알아 차렸다.

 

 세라의 표정이 굳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세라가 천막 밖으로 나서자 아론이 뒤를 따랐다.

 

 모두들 조용히 그 둘의 움직임을 지켜보다 적당히 멀어질 때, 일제히 소곤대던 목소리들이 숨통이 트인 듯 커졌다.

 

 

 “설마요, 아무리 외모와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노예인데.”

 

 “왜, 황제 누나도 황제의 전투노예랑 결혼했잖아. 공작님도 그걸 노리는 거라고요.”

 

 “황제의 전투 노예도 아론처럼 은발에 푸른 눈이던데. 같은 혈통인가?”

 

 “그렇다고 들었어요. 비슷한 분위기잖아요. 투명한 흰 피부에 은발, 푸른 눈 그리고 불세출의 전투능력. 그 종족만의 특징인 게 분명해요.”

 

 “그런 종족이 왜 이리 희귀하게 돼버린 거지? 좀처럼 보기 드므니.”

 

 “척박한 사막이나 광야에서 야만인처럼 산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수가 점점 줄었겠죠.”

 

 “머리도 좋고 뛰어난 체력이 있는데 어쩌다 노예로 사는 거지?”

 

 “……어, 그러게요.”

 

 “묶어 키운 새끼 코끼리는 커서 족쇄를 풀어 줘도 도망치지 않는다는군요. 속박에 길들어져 버린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인간들은 그것을 탐욕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언제나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언급하는 이 여자가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입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이 여자는 어떤 주제였든 상관없이 거침없이 흐르던 대화를 뚝 끊는 재주가 있었다.

 

 겉치레에만 관심 있는 그녀들이 뇌는 있지만 생각해 낼 수 없는 당연한 말을 하기 때문일까?

 

 미하루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미하루, 너의 아론이 세라랑 붙어 다니게 생겼는데 기분이 좀 그렇겠다?”

 

 

 미하루는 함께 자리 잡은 젊은 아가씨들의 시선을 느끼자 바로 화사하게 표정을 바꿨다.

 

 

 “임무잖아요. 세라가 좀 따뜻하게 대해 주면 좋으련만.”

 

 

 미하루는 절박함을 숨기기 위해 화장과 옷차림에 더 신경 썼다.

 

 아론의 마음이 떠난 사실이 알려질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부귀영화의 끝이 코앞에 있었다.

 

 

 “아무튼 마음도 넓어! 나 같으면 안달이 날 텐데.”

 

 “다행인 게, 세라가 꼬리치는 타입은 아니잖아. 저번에도 춤 거절한 거 보면. 너무 걱정 마, 미하루.”

 

 “혼자 쓸쓸히 있는 세라를 위해 공작님이 명령하신 거래요.”

 

 

 미하루는 명령이었다고 짧게 대답한 아론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하긴, 세라한테 춤 신청하려면 보통 배짱 가지고는 힘들지. 춤추는 거 몇 번 못 봤어.”

 

 “그랬었구나. 난 또 혹시 아론이 세라한테 관심이 생겼나 했었네.”

 

 “아론이요? 호호호……세라의 ‘세’자만 꺼내도 인상을 구기는데 관심이라뇨.”

 

 

 미하루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는 여전히 어린 소년이었다. 자신을 바로 보는 눈빛을 보면 그랬다. 사병들이나 기사들 심지어 하인들에게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욕망을 담은 눈빛이 그에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가 세라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 여자의 예리한 촉이 감지했다는 것이다.

 

 그의 세라에 대한 질문들, 세라를 쫓는 그의 시선들, 세라가 담긴 그의 그림들.

 

 예감이 아닌 확실한 증거임을 강력히 부인하고 싶었지만, 눈 감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깊이 네 마음속에 들여 놓기 전에 막을 거야!

 

 미하루는 자신에게는 공작의 유일한 혈육, 철옹성 같은 세라를 파멸시킬 만한 힘도 계략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론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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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탁방 하녀가 된 세라 파갈 2017 / 7 / 18 21 0 7059   
15 초식동물에겐 버거운 임무 2017 / 7 / 17 23 0 6450   
14 회상 - 때려주고 싶은 여자 2017 / 7 / 17 16 0 6891   
13 회상 - 진창이 되어버린 머릿속. 2017 / 7 / 17 22 0 6445   
12 회상 - 축제, 감정…질풍노도의 시작 2017 / 7 / 17 18 0 7865   
11 회상 - 결혼할 나이 2017 / 7 / 17 18 0 8341   
10 죽음을 울리는 연주자 2017 / 7 / 15 26 0 7264   
9 세라 vs 금속이빨용병 2017 / 7 / 15 27 0 8469   
8 추격자들. 2017 / 7 / 15 22 0 6837   
7 늑대의 방문 2017 / 7 / 15 25 0 8469   
6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2017 / 7 / 15 27 0 7133   
5 회상-고통을 삼키는 조우 2017 / 7 / 15 23 0 8816   
4 회상-폭주의 시작 2017 / 7 / 15 25 0 7905   
3 카라스의 검은 기사 2017 / 7 / 15 27 0 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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