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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늑대의 방문
작성일 : 17-07-15 14:26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8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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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카라스성을 향해 2일째.

 

 

 이야기에 심취해 그녀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간 듯했다. 차가운 밤기운에 정신이 들어 팔을 감싸고 문질러 열을 내었다.

 

 잘 못 본 것일까? 자나하고 힐끗 기사를 보니 감고 있는 눈가가 촉촉한 듯 젖어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자세히 보려하니 때맞춰 그가 팔등으로 눈을 덮어버렸다.

 

 기가 막혀. 감성 풍부한 나쁜 쒜끼도 있네. 아닐 수도 있고. 하품한 걸 거야.

 

 

 “오늘은 이 정도로 목숨 값 안 될까요? 목도 아프고……피곤한데.”

 

 “……너는, 네 할아버지 말을 믿어?”

 

 

 갑작스런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아이를 구해줬다는 그 말!”

 

 “……그렇게 믿고 싶어요.”

 

 “……자.”

 

 

 거친 소리가 구슬프게 갈라져 나왔다. 착각인가?

 

 진짜든 착각이든 그녀는 지금 땅으로 꺼져 들어 갈 것 같은 바위덩이를 달고 있는 기분이라 속히 누워야 했다. 자자! 일단 자고 내일 또 살아보자.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의식이 사라졌다.

 

 

 

 *

 

 

 

 

 들려오는 말소리가 점점 그녀의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이봐 애송이.]

 

 “누가 애송이야.”

 

 [내 눈엔 여전히 애송이 짓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지도.”

 

 [네 냄새를 맡고서 안 올 수가 없더군. 그때보다 훨씬 지독해졌어.]

 

 

 늑대가 기사의 손에든 손가락만한 검은 약병을 응시했다.

 

 

 [네 몸에 끔찍한 짓을 하고 있군.]

 

 “……올 줄 알았어.”

 

 [안 그래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왜?”

 

 [글쎄. 그때 너무 위태해 보여서랄까. 잘 컸나 확인하고 싶었나보지.]

 

 “그러니까 네가 왜? 무슨 상관이라고.”

 

 [늑대의 본질을 품은 인간은 처음 보니까.]

 

 “그걸, 인간들은 미쳤다고 표현하지.”

 

  [반려 괴롭히지 말고 잘 해줘. 후회하지 말고.]

 

 “후회 같은 거 안하니까 상관 마.”

 

 [죽을 때가 되고 보니, 목숨을 걸고 잘해줬어도 후회가 남아.]

 

 “죽을 자리나 잘 찾아. 막판에 사람들한테 잡히지 말고.”

 

 [내 걱정하는 거야?]

 

 “그만 꺼져.”

 

 [그러는 게 좋겠어. 네 반려가 기절하기 직전 같군.]

 

 

 검은 늑대가 몸을 일으키더니 기사를 잠시 응시하고는 유유히 수풀사이로 사라졌다.

 

 

 *

 

 

 세라는 말소리에 눈을 떠보니 장정만한 시커먼 늑대가 눈에 들어왔다.

 

 하악! 그녀는 얼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기겁을 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다행히 기사가 그녀와 늑대 사이에 앉아 있어 그나마 진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도 저런 큰 늑대를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가만히 지켜보니, 세상에! 둘이 대화하는 거야?

 

 아니아니, 기사 혼자 말하고 늑대는 듣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 대체 뭐야?

 

 여자들이나 좋아 할 비운의 로맨스 들으며 눈가나 적시고,

 

 집채만 한 늑대하고도 중얼거릴 정도면. 감성 만땅 나쁜……미친 쒜끼?

 

 엄마야! 눈 마주쳤어. 늑대가 날 보고 있어. 보지마 보지마 보지마.

 

 달려들면 어째. 어?!

 

 기사의 꺼져 라는 말에 늑대가 사라졌다.

 

 등 뒤에서 얼어있는 그녀를 어깨너머로 그가 힐끗 보고는 안주머니에 감추듯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모닥불에 흙을 덮었다.

 

 그녀는 진정을 시키기 위해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자신이 기사의 망토를 둘둘 감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쩐지……그래서 밤새 그런 악몽을 꾼 거였군.

 

 엉겅퀴 수프, 쑥 빵, 쓰디쓴 온갖 잡풀 셀러드에 씀바귀 파이 등등 풀떼기를 끝도 없이 먹어야하는 꿈속의 만찬자리.

 

 모든 사람들이 그 음식들을 코로 먹고 있었다.

 

 그녀가 절대 코로 먹을 수 없다고 발버둥치자 사람들이 그녀를 붙잡고 억지로 풀떼기들을 쑤셔 넣었다.

 

 그녀의 콧구멍 속으로.

 

 

 *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데 길 위에 핏자국이 여기저기 길게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피 흘리는 시체들을 끌고 수풀 속으로 들어간 것 마냥.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네요?”

 

 “…….”

 

 “저거 봐요. 검이에요. 용병들 거 같은데. 추격자들이 왔었나 봐요.”

 

 

 기사는 개의치 않고 길을 재촉했다. 모든 정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나 자는 동안…… 당신이……그런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쿨쿨 자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민망하고.

 

 

 “아니.”

 

 “그럼…… 누가?”

 

 “녀석이 돌아가는 길에 힘 좀 썼군.”

 

 

 누가 말도 없이 그들을 도와주고 돌아…… 갑작스레 머릿속에 커다란 검은 늑대가 들어찼다.

 

 

 “저, 저기. 당신은 늑대하고도 대화하세요?”

 

 “시끄러워!”

 

 

 읍. 입을 꼭 채웠다. 어린 노무 쉐끼가…… 카리스마는 쩔어가지고.

 

 답하기 싫은 모양이네. 그러고 보니 검은 늑대 얘기도 있었어.

 

 이야기보따리 풀라 하면 그 얘기도 해줘야겠다. 많이 식겁했던 예전의 그 경험.

 

 

 “참, 우리 할아버지 알아요? 만난 적 있어요?”

 

 “…….”

 

 “ 어젯밤에 내게 할아버지 말을 믿냐고 물었잖아요. 뭔가 사연이 있는 듯 해서…….”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세라는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기사도 그들 중 하나일까?

 

 그가 말을 멈추고 세라를 응시했다.

 

 

 “세라 파갈, 네 할애비 얘기 어디 또 씨부렁대봐! 콧구멍으로 푸짐한 식사를 하게 해주지.”

 

 

 얼른 코를 막는 세라,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네 할아버지는 그 아이를 구해준 게 아니야!

 

 검은 기사의 움켜 쥔 주먹이 분노로 흔들렸다.

 

 

 

 

 

 

 *  * * * 

 

 

 

 

 

 18년 전.

 

 

 파갈 공작은 집무실에 있었다. 기사단장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옆머리가 희끗해진 짧은 갈색 머리는 세라의 붉은 머리와 달랐지만 살짝 올라간 눈꼬리와 차가운 입매가 한 혈육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회복속도가 아주 빨라 천천히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있는데 그렇단 말이지?”

 

 “네, 혼자 있을 때는 먹으려 들지 않다가도 그 여자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조금씩 먹곤 합니다.”

 

 “남매 사이가 아닌 것은 확실해?”

 

 “여자아이 생김새로 봐선 극동국 난민 출신 같습니다. 떠돌다가 노예상인한테 잡혔을 테니 남매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황제만 구워삶으면 우리 파갈가문도 최고의 병기를 갖게 되는 건데……황제가 허락할 수밖에 없는 뭔가 필요하단 말이지.”

 

 “공작님, 제가 흥미로운 얘길 들었는데 그것이 해결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단장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이 공작의 마음에 들었다.

 

 

 

 

 **

 

 

 

 

 “말도 안돼!”

 

 

 라시스 황제는 손에 들었던 보고서를 쫘악 찢고서도 성에 차지 않아 마구 구겨 던져 버렸다.

 

 그의 단정하게 넘긴 짧은 흑발이 이마 위에서 흐트러졌다. 회색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거친 호흡을 쏟아내고는 의자에 풀썩 앉았다.

 

 옆에 시립해 있던 긴 은발과 푸른 눈을 한 경호원은 한결같이 정면을 응시한 채였다.

 

 

 “카라스영주에게 보내는 이번 달 군수품이 모두 강에 수장되어 버렸다는 보고서야.”

 

 

 조금 후 마음을 진정시킨 라시스 황제는 중얼 거렸다.

 

 카라스 영주는 말코족으로부터 북쪽 국경를 지키는 자였다.

 

 2만 자루의 검과 방패, 만개의 석궁, 5톤에 달하는 아라늄(빛을 내는 광석), 비상약품, 각종 섬유, 가축과 곡식 등이 제국에서 가장 깊은 강, 자르모 강바닥에 가라앉아버렸다.

 

 신하들이 오래 걸려도 안전한 육로를 권했지만 황제는 새로 개발한 배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까지 붙였던 제국 최고의 군함이었다.

 

 그의 스물 한 살 생일축제에 맞춰, 의기양양하게 첫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선장과 함께 대신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줄 생각에 설레이기까지 했던 그였다.

 

 여러 차례 시험출항도 마쳤던 검증 된 라시스호가 몇 안 되는 부품 때문에 이리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라시스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이 대신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췄던가?

 

 황제의 권력이 점차 약해지고 영주들과 의기투합한 대신들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현재로서 라시스호를 다시 건선하자는 말을 어찌 꺼낼 것인가?

 

 황제의 얼굴에 어둠이 짙게 깔려버렸다.

 

 황제의 위상은 커녕 더 비굴해져야 할 자신의 미래가 뚜렷이 보여 왔기 때문이다.

 

 

 

 

 *

 

 

 

 “폐하, 어찌 이런 일이, 완벽 그 자체였던 라시스호가 침몰하다니요. 누가 믿겠습니까?”

 

 

 파갈의 과장된 톤이 황제는 거슬렸다. 누구보다 신나서 춤을 추었을 사람은 파갈공작이었텐데.

 

 하지만 참아야 했다.

 

 

 ‘마음껏 비웃어라. 조롱해라. 내 숨은 힘은 오래 견디고 견뎌, 때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너와 네 가문을 모조리 짓밟아주겠다.’

 

 

 파갈공작은 황제 옆에 서 있는 은발 경호원의 눈치를 보며, 새어 나오려는 폭소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꺼져가는 황권을 가지고서도 황제의 위엄을 잃지 않던 자가 지금 자신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파갈공작, 그대의 충언을 듣지 않았던 내 잘못이오. 왜 그런 쓸모없는 배에 집착했었는지 지금은 이해도 가지 않는다오.”

 

 

 라시스호는 황제의 권력 부활의 핵심이었다.

 

 자모르 운하를 통해 황군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영주들을 견제하고, 각종 세금을 영주들과 대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거둬들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

 

 황금색의 겉모습만큼 황제의 힘을 만방에 보여 줄 그의 분신이었다.

 

 

 “이리 급히 공작을 부른 이유를 알 것이오. 카라스…….”

 

 

 “카라스영주에게 보낼 군수품이 시급하게 되었죠. 척박한 얼음과 눈으로 덮힌 그 땅에선 식량도 무기도 자체 조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 속히 군수품을 재준비시켜야 국경이 안전해 질 테니.”

 

 

 공작이 감히 황제의 말을 잘랐다. 황제는 턱을 꽉 물었다.

 

 

 “그렇소. 아스란제국의 최고 골칫거리지.”

 

 “그래도 ……미쳤긴 해도 카라스영주가 꿋꿋하게 잘 막아내고 있으니 그나마 아스란제국이 이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황제가 잘 다스리는 덕이 아닌 미치광이 영주의 덕을 치하고 있는 파갈공작의 의도를 모를리 없었다.

 

 

 “그렇군. 공작, 무기를 다시 준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라늄이 문제군.”

 

 “저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작이 도와주시오. 아스란제국에서 가장 큰 아라늄광산을 그대가 가지고 있으니.”

 

 “폐하, 그래서 가장 많은 양의 공물을 매달 받치고 있지 않습니까. 저로써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채석량은 매번 들쑥날쑥하고, 게다가 지난달엔 굉도를 확보하는 와중에 사고도 있어서 지정된 양을 맞추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소. 허나 다른 광산들을 재촉해 봤자 턱없이 부족한 양이 아닌가.”

 

 

 황제는 파갈공작이 엄살을 떨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최대 규모의 아라늄광산을 소유한 그가 고작 매달 지정된 공물량에 전전긍긍할리 없었다.

 

 공작이 침묵했다. 고심하고 있는 척하지만 이미 모든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을 터이다. 황제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고 협상하려 들것이다.

 

 황제가 실수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공작이 아니던가?

 

 그가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제국을 위해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제가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 그런 저를 위해 황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해 주시겠습니까?”

 

 “……늘 그렇듯 들어보고 결정해야겠지. 그대를 위해 나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뭔가? 황제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가진 그대를 위해.”

 

 “……광산 근처에서 죽어가는 화족소년을 발견했습니다.”

 

 

 한 번도 움직이지 않던 은발 경호원의 시선이 처음으로 공작에게 옮겨졌다.

 

 

 “가까스로 그 아이를 살려냈고 폐하께 보고를 올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도 일찍 여의고 무남독녀인 제 손녀가 그새 정이 들어 그 아이를 무척 따릅니다.”

 

 

 공작은 잠시 멈추고 황제의 심기를 살폈다. 그는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작이 들고 온 거래조건을 파악한 황제는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어린 손녀를 핑계로 내세워 오직 황제만이 소유하는 전투노예를 허락받으려는 것이었다.

 

 

 “그 화족소년도 손녀를 어찌나 예뻐하는지, 할애비 된 저로서 손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그 소년을 손녀에게 하사하여 주옵소서. 폐하.”

 

 “몇 살인가? 그 화족소년.”

 

 “10살쯤 되어 보입니다. 기억을 잃어 정보가 없습니다.”

 

 

 10살쯤 되었다면 5년 후부터는 그가 가진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혼자서 수백 명을 상대로 싸워도 이길 것이다.

 

 10년 후면 체력의 증강과 더불어 전투경험의 누적으로 수천 명이 달려 들어도 그를 뚫고 지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황제의 권력이 이토록 바닥에 떨어졌어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없는 것은 황제만이 가지고 있는 전투노예의 힘이었다.

 

 감히 황제를 시해할 수도 없으며, 위험에 빠트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없었다.

 

 황제에겐 리딕이란 이름의 전투노예가 있었으니까. 바로 그 옆에서 자신을 경호하고 있는 긴 은발의 남자.

 

 10년…….

 

 감히 황제만이 소유하는 것을 원하는 공작의 의도를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황제의 마지막 힘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10년 후면 소년이 리딕과 겨룰 테고 리딕이 지면 황제도 끝이었다. 하지만 당장 말코족을 막지 못하면 몇 달 안에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제국의 안정을 지켜내지 못해서 백성과 신하로부터 버림받은 황제는 전투노예도 구해 줄 수 없었다.

 

 반려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는 화족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있는 것이 본능이었다.

 

 황제의 큰 누나를 사랑하게 된 리딕은 20년 전부터 황제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 마흔이 넘은 그의 모습은 고작 스무살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족들은 성장이 완료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수명은 짧으나 신체적으로 더디게 노화가 이루어졌다.

 

 리딕과 황제의 누나를 함께 보면 마치 이모와 조카 사이쯤 보였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아직도 뜨거웠고 둘 사이에 자녀들이 넷이 있지만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없었다. 리딕과 그의 부인은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황족에서는 그 부분이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었다.

 

 화족의 유전인자가 열성이어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은발에 푸른 눈이 아니었다.

 

 이토록 귀한 화족소년을 발견했으니 탐욕스런 파갈공작이 순순이 내어 놓을 리가 없었다.

 

 라시스호의 침몰도 그가 꾸민 계략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스쳐갔다. 황제는 분했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10년…….

 

 이번 판은 진 게임이라 해도 지킬 수 있는 게 더 있다면 몸부림쳐봐야 할 것이다.

 

 

 “그토록 큰 요구일은 줄 몰랐네. 고작 아라늄 조금 얻는 대신에.”

 

 “…….”

 

 “당당한 자네도 그리 조심스레 꺼내 놓는 걸 보면 이것이 얼마나 말. 도. 안. 되. 는 협상인지 스스로 알 테지.”

 

 “폐하…….”

 

 “광산의 삼분의 1일을 주게. 맘 같아서는 다 달라 하고 싶지만 공작이 받아들일 리 없잖은가?

 

 

 쉽게 꺾일 꽃처럼 보기 좋게만 생긴 줄 알았는데 한 번도 그냥 꺽이는 법이 없는 젊은 황제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라시스호를 끝까지 완선해 강에 띄운 사람이 아니던가?

 

 광산의 삼분의 일이라니?

 

 

 “어차피 삼분의 일을 가진다 해도 대부분 국경을 지키는데 다 소모 될 것이네. 적어도 그 문제로 영주와 신하들에게 앓는 소리 좀 안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안하는 것이지.”

 

 

 그 부분은 납득이 갔다. 공물로 전국 각지에서 받쳐지는 아라늄은 대부분 군수품으로 국경지역으로 보내졌다. 나라를 지키는 문제인데 매번 힘없는 황제는 영주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큰 곤욕이었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 공작에게 황제의 말이 날 선 단도처럼 정곡을 찔렀다.

 

 

 “고작 광산의 삼분의 일로 내 자리를 사는 거나 다름없는데 뭘 망설이나?”

 

 “폐하, 무슨 말씀을 그리…….”

 

 “화족소년을 소유하겠다는 뜻이 뭘 의미 하는 줄 세상이 다 아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빵과 황금을 그냥 바꿀 자는 없지. 당장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금덩이를 들고 시장으로 갈 힘 정도는 쥐어 짜내야 하지 않겠소.”

 

 “…….”

 

 “삼분의 2를 소유한 공작은 여전히 최고의 갑부이고, 나는 적어도 적에게 나라를 빼앗긴 왕으로 역사에 남지는 않을 테지. 10년 후 그 화족소년이 훌륭한 전사가 되면 당신의 야망도 빛을 볼 수도 있겠지.”

 

 “폐하, 오해시옵니다.”

 

 “단, 그 화족소년이 당신 명에 철저히 복종할 이유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공작은 머리를 숙여 드러나는 당황스런 표정을 감췄다.

 

 

 “그러나 화족소년을 소유하지 못하면, 10년 후에도 공작은 최고의 돈과 권력을 지닌 공작일 뿐이지, 황제가 아닌.”

 

 “…….”

 

 “어때? 이래도 내가 금덩이를 빵 한조각과 바꿔야겠나? 빵공장이면 몰라도.”

 

 

 어리석은 선황과는 다르게, 뱀처럼 요란하지 않게 소리 없이, 분노와 냉정 사이를 스스륵 지나다니는 황제는 분명히 아버지보다 훌륭한 제왕감이었다.

 

 

 “황제의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마치 10년 후의 선전포고 같은 대답이었다.

 

 공작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 동안 시간이 정지한 듯 둘은 멈춰 있었다.

 

 전장에서 적과 대치할 때처럼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팽팽했다.

 

 한쪽은 탐욕으로 달궈진 뜨거움,

 

 다른 한쪽은 모든 걸 내려다 볼 수 있는 자의 차가움.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아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그 접점.

 

 먼저, 황제가 긴장 된 기류에서 빠져나왔다.

 

 

 “공작이 친애 해 맞이 않는, 단짝 친구인 호라노 대신과 나머지 절차를 논하도록 하시오.”

 

 

 공작은 크게 인사하고 황제의 집무실을 나갔다.

 

 팔걸이를 움켜쥐어 하얗게 된 황제의 손아귀가 마구 흔들렸다.

 

 

 “선황께선 어찌, 주인을 물어뜯으려는 개들의 목줄을 놔줬단 말인가? 반드시 제가 먼저 놈들의 목을 뜯어버릴 겁니다. 그들의 새끼들까지도 모조리!”

 

 

 꽉 다문 턱 때문에 황제의 얼굴이 흔들렸다.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되지요. 한꺼번에 죽여 버리면 누가 대문을 지킵니까?”

 

 

 회색 빛 눈동자는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잔잔한 살기가 물결처럼 흘러나왔다.

 

 하얀 대리석 기둥 위, 빛을 발산하고 있는 독수리상을 바라보았다. 아라늄을 가공하여 만든 황족를 상징하는 조각상이었다.

 

 아라늄…… 빛을 머금고 주변을 밝혀주는 광석.

 

 그것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황제의 전투노예 리딕은 그저 전방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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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녀는 첩자가 확실합니다. 2017 / 7 / 18 17 0 7070   
19 영주님은 60대 노인? 2017 / 7 / 18 17 0 7228   
18 영주의 퇴폐미 2017 / 7 / 18 18 0 5118   
17 카라스 영주의 귀환 2017 / 7 / 18 18 0 5104   
16 세탁방 하녀가 된 세라 파갈 2017 / 7 / 18 21 0 7059   
15 초식동물에겐 버거운 임무 2017 / 7 / 17 23 0 6450   
14 회상 - 때려주고 싶은 여자 2017 / 7 / 17 16 0 6891   
13 회상 - 진창이 되어버린 머릿속. 2017 / 7 / 17 22 0 6445   
12 회상 - 축제, 감정…질풍노도의 시작 2017 / 7 / 17 17 0 7865   
11 회상 - 결혼할 나이 2017 / 7 / 17 18 0 8341   
10 죽음을 울리는 연주자 2017 / 7 / 15 26 0 7264   
9 세라 vs 금속이빨용병 2017 / 7 / 15 27 0 8469   
8 추격자들. 2017 / 7 / 15 22 0 6837   
7 늑대의 방문 2017 / 7 / 15 25 0 8469   
6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2017 / 7 / 15 27 0 7133   
5 회상-고통을 삼키는 조우 2017 / 7 / 15 23 0 8816   
4 회상-폭주의 시작 2017 / 7 / 15 25 0 7905   
3 카라스의 검은 기사 2017 / 7 / 15 26 0 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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