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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키스 라이벌
작성일 : 17-07-21 16:51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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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영주의 키스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여자라니.

 

 빨래통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노파의 발이 멈췄다.

 

 네명은 대체 누구일까 잔뜩 숨죽이고 문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세탁방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우왁스런 걸음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노파가 혀를 차며 점성가에게 눈을 부라렸다.

 

 세라는 하던 빨래를 계속했다.

 

 샤르트가 들고 있던 빨래를 점성가의 얼굴에 던졌다.

 

 

 “네 입에서 나오는 게 다 그렇지. 또 속은 우리가 멍충이다.”

 

 “퉤퉤! 진짜 보였다니까.”

 

 “네가 뭘 보든 주둥이 밖으로 내뱉지마!”

 

 “웬 소란이야!”

 

 

 할리부인이 소리쳤다. 세탁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특별 하사품, 넌 영주님 방에 있지 않고 왜 자꾸 여기 기어들어 오는 거야?”

 

 “……그 방에 하루 종일 있다간 첩자로 낙인 찍혀 죽기 전에, 미쳐서 죽을 것 같아요.”

 

 

 세라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세라라고 불러주세요.”

 

 

 그녀의 무거운 분위기에 할리를 비롯해 세탁방 3인방은 토를 달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아무튼, 지금처럼, 쓸데없이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일 끝나면 바로 영주님 방으로 곧장 가도록. 앞으로는 샤르트와 아델이 같이 움직여.”

 

 “에?…… 우리가 왜?”

 

 

 샤르트가 반박했다.

 

 

 “오늘 오후부터 바로 실시한다.”

 

 “영주의 명이야 아님 할리 당신 뜻이야?”

 

 “샤르트, 영주님 명이면 따르고 내 말이면 무시할 작정이냐?”

 

 “누구 생각인지는 알고 따라야지.”

 

 

 모두 대답을 기다렸다.

 

 

 “오후에 트리스톤 성주 하람님의 딸, 이사벨라가 도착할 거다.”

 

 “그럼 그렇지. 내가 본 게 맞다니까. 이사벨라가 신참을 잡으러 오는 거라고.”

 

 

 점성가 아델이 무릎을 쳤다.

 

 

 “신참, 너 큰일났다. 이사벨라 고것이 여간내기가 아닌데.”

 

 “알아들었으면, 행동 잘 해!”

 

 

 할리부인은 경고의 눈빛을 남기고 나가버렸다.

 

 

 “별 말똥 같은……우리가 쟤 경호원이야? 검도 쓸 줄 모르는데 우리가 무슨 소용이라고.”

 

 “샤르트, 이참에 숭고한 죽음으로 우리 생을 마감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빨래만 하다 죽거나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는 것 보다 낳지 않겠어?”

 

 

 아델이 사뭇 진지해졌다.

 

 

 “숭고한 죽음? 그게 무슨 숭고한 죽음이야 개죽음이지?”

 

 “영주한테 보답한다 생각해. 죽어도 벌써 죽었을 우리인데. 안 그래 노파?”

 

 

 노파는 묵묵히 빨래를 밟을 뿐이었다.

 

 

 “영주가 쟤 좋다잖아. 그러니까…….”

 

 “무슨 소리야, 누가 그래?”

 

 “영주가 본성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것 봤어? 돌아다니느라 바빴지. 쟤 지키려는 거잖아.”

 

 “시끄러! 말똥을 채워 넣기 전에 입 다물어!”

 

 

 샤르트가 씩씩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

 

 툭, 그녀의 품속에서 검은 뭔가가 떨어졌다. 그것도 모른 채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아델이 혀를 차다가 떨어진 그것을 보며,

 

 

 “칠칠맞게 빨래나 흘리고 다니고. 직업정신이 부족하다니까.”

 

 

 아델이 움직여 그것을 주워 들었다.

 

 

 “검은색 속옷은 또 처음 보네.”

 

 

 자신의 빨래통에 그것을 던져 넣는 그 때,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

 

 

 허겁지겁 돌아온 샤르트가 몸을 날렸다.

 

 그녀의 손끝이 달랑말랑. 결국 검은 속옷이 허연 비눗물 속에 떨어지고 금새 세제물을 빨아들였다.

 

 

 “안 돼!”

 

 

 물에서 건져 올린 것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다 아델을 노려봤다.

 

 

 “왜 네 멋대로!”

 

 “야! 니가 흘린 빨래, 내가 해 줄라고 그런 거지.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샤르트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울상을 지을 뿐, 속옷을 들고 자기 자리로 가, 깨끗한 물에 조심스레 헹궈 꼭 짜더니 들고 나갔다.

 

 

 “여기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니까.”

 

 

 노파가 혼자 중얼거렸다.

 

 세라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금껏 들은 것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귀에 남는 것은.

 

 영주가 날 좋아한다고?

 

 좋아한다면서 왜 그 따위로 살벌하게 말하는 거지?

 

 

 ‘증거가 나오면, 널 죽일 거야.’

 

 ‘네가 걱정 할 일은 아니잖아. 넌 결백하지 않으니까.’

 

 ‘결국, 네 스스로 라시스황제의 충견임을 인정하고 말테니까. 그렇게 네 입으로 인정하고 말아서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널 죽이게 만들 테니까.’

 

 

 좋아한다면서 죽이겠다니, 모순이야. 이해불가야.

 

 영주는 정말 나까지 미치게 만들 작정인가 봐.

 

 

 

 

 **

 

 

 

 

 아델이 영주의 방 앞까지 함께 와줬다.

 

 

 “신참, 인생 별거 있나? 지금처럼 진리가 감춰진 어둠의 세상일수록 양심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내 입에서 양심 얘기가 나오는 게 우습긴 하네. 헤헤.”

 

 

 세라도 그저 따라 웃었다. 바네사 말로는 아델의 사기에 넘어간 자들이 무수히 많다고 들었다.

 

 

 “따라가야 할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우리의 양심이 그것을 대신 해주지.”

 

 

 아델이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라도 같은 하늘을 보았다.

 

 아델도 나를 첩자로 보고 있구나.

 

 아델이 조용히 등을 돌리고 멀어져갔다.

 

 

 “점점 늦는군.”

 

 

 영주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들린 목소리였다.

 

 검은 스웨터차림으로 쇼파에 앉아 있는 그를 보자 심장이 조여들었다.

 

 숨막힐 정도로 수려한 목선과 쇄골이 도드라지게 보여, 시선을 그녀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네 본연의 일은 내 개인시중 아니던가?”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서……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직 식사 전인데 같이 먹지.”

 

 

 그제야 테이블에 놓인 접시 두 개와 잔이 보였다.

 

 고기완자 샐러드와 혼합과일음료.

 

 그녀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다 못해 환장한 메뉴였다.

 

 그가 어떻게 알고? 우연인가? 아니면 나에 대한 조사결과인가?

 

 먹을 걸로 사람을 유혹하다니. 정말 원시적이고 초보적이고 유치한 발상이었다.

 

 자존심하면 세라 파갈! 그런 그녀가 이런 유혹에 약하다는 걸 세상이 알면 안 되는데.

 

 

 “그렇게 서있기만 할 거야? 앉아.”

 

 

 세라는 머뭇거리다 맞은편에 앉았다.

 

 저리도 차가운 모습으로 이렇게 별거 아닌 듯 다정하다니.

 

 이럴 때마다 그녀는 그라는 늪으로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가 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녀도 포크를 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즐기던 맛과 다소 달랐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아론의 선생이 되게 만든 고기 완자.

 

 그와 함께 먹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지만, 먹을 때마다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던 요리.

 

 목이 메이기 시작해 잔을 들어 과일주스를 마셨다. 입안에 퍼지는 향이 상큼하면서도 슬펐다.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눈 안에 담아두고 흘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영주 앞에서 설레다가 지나간 옛사랑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스스로가 파렴치하게 느껴졌다.

 

 

 “뭐지? 너무 맛있어서 우는 것 같진 않군.”

 

 

 음료만 마시던 그가 그녀를 응시했다.

 

 

 “또 그 남자 생각한 건가?”

 

 

 그의 턱이 단단히 다물어졌다.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크소리가 계속 울렸지만 누구냐고 물어볼 생각도, 문을 열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아카드? 저에요. 이사벨라.”

 

 

 아델이 말한 이사벨라? 어디 성주의 딸이라고 했던, 세라를 잡으러 왔다는.

 

 눈물을 훔치고 세라는 아카드를 바라봤다. 그는 세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가서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밤중에 영주의 방에 찾아오다니. 당돌한 여자네.

 

 아카드는 들고 있던 잔을 비우더니, 일어섰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세라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야 했다. 그 바람에 문 뒤에 숨어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어머, 아카드. 내가 깨운 건 아니죠. 잠자리에 들긴 아직 이르잖아요.”

 

 

 아카드? 이름을 부르는 사이란 말이지.

 

 잔뜩 교태를 부리는 목소리였다. 세라는 입을 삐죽거렸다.

 

 

 “무슨 일이야?”

 

 “으응, 이렇게 차가운 게 매력적이라니까?”

 

 “…….”

 

 “잠깐 들어갈 게요”

 

 

 세상에! 귀족 여자가 저렇게 자존심도 없이 남자방에 들어오겠다고 하다니!

 

 세라는 입이 벌어졌다.

 

 아카드가 물러서지 않고 문을 막고 서 있자,

 

 

 “먼 길을 당신 보러 달려왔는데, 그렇게 잠깐 비춰주고 가버리니 더 애가 타잖아.

 

 “급한 일 아니면…….”

 

 

 아카드의 말이 잘렸다. 세라는 눈을 치켜떴다.

 

 왜 말이 없어?

 

 왜 조용한 거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녀의 시야를 막고 있는 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상상해야 했다.

 

 서서히 그녀의 상체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심장도 덩달아 기울어져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점점 눈에 들어오는 낯선이의 신체 일부.

 

 그의 목를 부여잡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여자의 손!!

 

 세라는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우고 입을 틀어막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세게 가격한 것만 같았다.

 

 대체 저 여자는 무슨 배짱으로……?

 

 영주는 왜 거부하지 않고.

 

 농염한 소리가 세라의 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심장을 헤집고 장기들을 망가트리는 것만 같았다.

 

 세라 파갈, 이대로 쥐새끼마냥 숨어서 계속 이 질척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을 거야?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내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발소리를 죽여 옷방이든 목욕실이든 다른 방으로 가야 했다.

 

 내 앞에서 이러다니.

 

 좋아한다면서 이럴 수는 없었다.

 

 그저 노예로 생각할 뿐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거지.

 

 세라는 먹었던 고기완자와 과일음료가 도로 역류할 것만 같았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두 발.

 

 번개처럼 그녀의 손목이 잡아채지고.

 

 깜짝 놀란 세라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해, 다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대체 왜 이래, 당신!

 

 아카드는 문 뒤로 세라의 손목을 잡은 채, 다른 손은 이사벨라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잡힌 손목을 비틀어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제 정신이야?

 

 아카드는 이사벨라의 몸을 틀어 그녀의 등을 문에 밀어 붙였다. 그가 세라를 문 뒤쪽에서 잡아당겨 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세라는 고개를 돌렸다.

 

 나보고 이걸 보라고? 다른 여자랑 저러고 있는 것을 보라니!

 

 당신은 정말 미친 나쁜 놈이야!

 

 머리카락이 당기는 고통이 느껴지고, 끌어당겨졌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세라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검은 눈은 아무런 동요 없이 그저 세라를 응시하며 농락하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이사벨라의 신음소리가 진저리나게 소름 끼쳤다.

 

 세라는 눈을 꾹 감고 귀를 틀어 막았다.

 

 듣기 싫은 저 소리!!!!!!!!!

 

 그 여자의 붉은 머리채를 움켜잡고 그에게서 떼어내고 싶었다.

 

 세라는 그 때 알았다.

 

 그가 뭘 보게 하려고 했던 것인지.

 

 붉은 머리.

 

 붉은 머리.

 

 붉은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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