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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영주님은 60대 노인?
작성일 : 17-07-18 15:40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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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유, 유유유유……유령이닷-!”

 

 

 누군가 외쳤다.

 

 시체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쾡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그녀는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 숨어 있던 바네사가 가장 먼저 이성을 찾기 시작했다.

 

 유령이든 좀비든 어떤 몹쓸 존재든 아침 댓바람부터 인간이 우글거리는 곳에 떡하니 혼자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었다.

 

 바네사가 다가서려 나서자 옆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것을 뿌리치고 시체쪽으로 다가갔다.

 

 평소 배짱이 있는 그녀였지만 꺼림찍함에 바짝 다가서진 못했다. 그래도 거리를 좁힐수록, 그것을 살펴볼수록 확신이 들어섰다.

 

 

 “특별 하사품, 너 살아 있는 거지?”

 

 

 세라가 입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어느새 바네사가 바짝 다가와 세라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귀를 가까이 대었다.

 

 바네사의 무사함을 확인하니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공포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조용한 웅성거림이 그 증거였다.

 

 잠시 후, 세라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바네사가 세라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

 

 

 

 세탁방에서 쓰러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영주의 방이었다.

 

 세라는 그 다음부터 영주의 방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갈증은 목욕탕 수도를 이용해 해결했지만 탁자 위에 있는 마른 과일과 육포는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지 않아, 곤욕을 치룬 후 재시도를 미뤘다.

 

 영주의 방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세라의 상태를 확인하려 문을 열어 보는 자들도 없었다.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게 더 편할 정도였다.

 

 단지 정체 모를 카라스 영주가 언제 들이닥칠지 조마조마 한 가운데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듯 시간이 흘렀다.

 

 물만 마시며 방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낸지 나흘째였다.

 

 소중한 자를 잃은 그들의 눈을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죽은 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만큼 매 순간 공감하면서 살아가는 자도 드물었다.

 

 할아버지와 황제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잃은 이름도 알 수 없는 무고한 생명들과 부모님, 오빠들, 삼촌들, 사촌들 그리고 아론.

 

 영주의 방에선 산자락 밑에 위치해 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세라는 힘없이 창에 기대 온종일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처럼 음산하고 곳곳에서 들려와야 할 노예들을 휘갈기는 채찍소리도, 들려야 할 비명소리도 없었다.

 

 유린당한 집터와 도로들 대신 말끔하게 단장한 집들과 솜씨 좋게 깔린 돌들이, 색깔과 모양에 맞춰 도로를 이뤄 혈관처럼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가 있었다.

 

 굴뚝마다 꾸불꾸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맑은 날엔 아이들이 눈싸움하는 소리가 마당마다 들려왔다.

 

 하인들이나 일꾼들은 그녀와 반대로 여유 있고 편해 보였다.

 

 자신들의 할 일을 끝내고 나면 그들은 자유롭게 성 밖으로 나가거나 삼삼오오 모여 소일거리를 해서 수입을 늘리기도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북풍의 매서운 바람 때문에 야외활동은 거의 없었지만 각자의 보금자리를 손질하고 보수하는 일들이 낮 동안 활발히 이루어졌다.

 

 소문처럼 지옥을 연상케 하는 것은 혹독한 눈보라뿐이리라.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녀를 따라다니는 파갈 이라는 성(姓)이겠지.

 

 파갈이기에 원한을 품고 있는 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위로가 없었다.

 

 그녀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미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뭘 해도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용서를 빌어야했다. 그 다음에 저들 손에 죽든, 골병이 들어 죽든, 굶어죽든 해야 한다.

 

 그리 결정하고 나니 눈이 스르르 감기며 악몽도 사라지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격정을 간신히 누르고 바네사가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향해 세라의 말을 대신 외쳤다.

 

 

 “미안하대요!”

 

 

 바네사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휘감겼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대요. 소중한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었을 텐데…….”

 

 

 바네사가 다시 감정을 누르기 위해 애썼다.

 

 

 “그리워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대요. 되돌려 줄 수 없어서 미안하대요.”

 

 

 시간의 흐름이 잠시 그들을 비껴가듯 그곳에 움직임이 없었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가 공기와 함께 흩어졌다.

 

 경직된 표정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네사가 세라의 말을 마치니, 세라가 그녀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가진 힘을 다 쏟아 냈는지 세라는 바네사에게 기대었고 바네사도 그녀에게 기대었다.

 

 세라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내어 소리를 내었다. 눈물을 닦던 바네사가 그 소리를 듣고 피식 웃고는,

 

 

 “밥 좀 달래요.”

 

 

 

 

 **

 

 

 

 

 이틀 후. 묽은 수프와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세라의 회복속도가 빨랐다.

 

 영주의 방에서 약방 브르노가 소파에 앉아 있는 세라를 살피고 있었다. 옆에 할리부인과 바네사가 지켜보고 있었다.

 

 

 “깨끗해요.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브르노가 시선을 돌려 할리의 이마를 응시했다.

 

 

 “할리부인도 천만 다행이었어요. 눈이라도 만지셨더라면, 그 자리에서…….”

 

 

 할리는 두건으로 감춘 이마가 더 화끈 거리는 듯 했다.

 

 멀쩡한 세라와는 반대로 점점 넓게 번져가는 수포와 발진 때문에 고생 중이었다.

 

 가렵고 따갑고 어쩔 땐 참기 힘들 정도로 화끈 거리기도 했다.

 

 

 “드물게 독에 내성을 가진 자들이 있긴 한데 이렇게 강력한 맹독은 내성이 생기기 힘들죠. 정말 기적이에요.”

 

 

 “이름이 뭔가요 그 맹독?”

 

 

 조용히 듣기만 하던 세라가 물어왔다.

 

 

 “마라……마라입니다. 늪이라는 뜻입니다. 헤어나오기 힘들죠.”

 

 “당연히 혼합독이겠죠?”

 

 “그렇죠.”

 

 “해독약은……없는 거군요.”

 

 

 세라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러니까 하사품들이 죽어 나가는 거 아니겠어요.”

 

 “왜 영주님은 그런 위험한 독을 사용하시죠?”

 

 “네 궁금증을 일일이 풀어 줄 짬이 없는 분이다. 진료가 끝났으면 나가시죠 브르노 선생님.”

 

 

 할리부인이 끼어들었다.

 

 

 “너도 그만 쉬고.”

 

 

 할리부인과 브르노 선생이 나가자 바네사는 기지개를 펴고는 세라 옆에 바짝 앉았다.

 

 

 “할리부인 저리 무뚝뚝해도 사람 좋아. 너 완쾌 될 때까지 오전 일만 하고 너랑 있으라고 해줬는걸.”

 

 

 할리부인 때문에 세라가 언짢아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너보고 뭐라는 줄 알아?”

 

 

 바네사가 물었다. 세라가 바네사의 답을 기다렸다.

 

 

 “카라스의 여자.”

 

 “……카라스의 여자?”

 

 

 특별 하사품도 카라스의 여자도 탐탁지 않지만 그걸 말로 표현해서 무엇 하리.

 

 

 “드디어 영주님의 오랜 고독이 끝나는 거지.”

 

 “……?”

 

 “스치기만 해도 몹쓸 병에 걸리게 하는 남자를 감당 할 여자가 떡하니 나타났다는 뜻 아니겠어.”

 

 

 바네사가 눈썹을 까딱까딱 들어 올리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넌 진하게 키스까지 했는데 멀쩡하잖아.”

 

 

 어렴풋이 입술에 느껴졌던 감미로운 감촉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네가 괜히 특별 하사품이었던 게 아니었어. 황제는 그걸 알았을까? 네가 영주의 독에도 끄떡없는 걸.”

 

 

 

 세라를 보는 바네사의 눈초리가 잠시 가늘어졌다.

 

 정말 라시스 황제가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철두철미한 계획을 짤 줄 아는 뱀 같은 자이니까.

 

 

 “영주님은 하사품이 죽으면 바로 방을 비우시는데 밤새 꼬박 이방에 머물러 계셨대. 뭐하고 계셨던 걸까?”

 

 “영주가 적어도 나를 뜯어 먹진 않았네요. 사지가 멀쩡한 걸 보면.”

 

 

 당장은 그걸로 만족했다.

 

 

 “히익? 그게 무슨 소리야, 뜯어 먹다니. 본토에선 그렇게 소문났어?”

 

 

 세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미치광이 카라스 영주에 대한 소문들을 열거했다.

 

 

 

 “위험한 분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끔찍한 분은 아니지. 너 바로 전 하사품은 영주님의 피나는 노력으로, 살아서 이 방을 나왔으니, 이번에도 신경 써 주실 거야. 왜 너도 알거야. 세탁방에서 같이 일하니까.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여자.”

 

 “그 여자도 하사품이었어요?”

 

 세라는 자신보다 어려보이는데도 자신을 하대 하는 바네사를 일단 존대하기로 했다. 무척 그런 예우를 맘에 들어 하는 눈치라……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세탁방에서 이유 없이 자신을 노려보곤 하던 금발의 여자.

 

 종종 손에든 빨래들이 세라를 의미하는 듯 잔인한 눈빛.

 

 손가락으로 빨래 한 번, 세라 한 번 가리키고는 인정사정없이 빨래를 내려치곤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온 몸이 욱신거렸다.

 

 바네사는 누가 들을세라 좌우를 살피더니 소리를 죽였다.

 

 

 “그게……영주님이 정상일 땐, 하사품들의 생존을 위해 조심 차원에서 본성을 떠나 계시지.”

 

 “…….”

 

 “그런데! 한 번씩 맛이 확! 가시거든. 그 때 하사품들이 정신 줄을 놓게 되는 거지. 성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는 알아서 대처 하는데 뭘 모르는 여자들은 겁도 없이 영주님 품속으로 뛰어 든다니까 불나방처럼.”

 

 “……불나방처럼?”

 

 “그래, 그 치명적인 겉모습에 맛이 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 실제 나이는 60이 훨씬 넘었대. 트리스톤 성주보다 나이가 많아.”

 

 “말도 안돼요. 60이 넘은 노인이 국경을 지킨다니."

 

 

 카라스 영주에 대한 퍼즐이 좀처럼 맞춰지지 않았다.

 

 치명적인 겉모습.

 

 맛이 확! 간다.

 

 미쳤다는 뜻인가?

 

 혹한다.

 

 여자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영주님의 피나는 노력으로 살아남은 이전 하사품.

 

 60이 넘는 노인.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치명적인 겉모습? 여자들이 혹한다고?

 

 무슨 주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적어도 여자를 산채로 잡아먹는 식인 습관은 언급되지 않았다.

 

 침대로 쪼르르 가서 침구를 정돈을 하느라 말을 잠시 멈췄던 바네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화족들이 원래 노화가 더디 오잖아. 우리 영주님은 유독 더 안 늙어.”

 

 

 화족이란 말에 세라의 눈이 커졌다.

 

 

 “카라스 영주가 화족이라고요?”

 

 

 금시초문이었다. 미치광이 카라스 영주가 화족이라니.

 

 

 “카라스 가문 자체가 화족가문이잖아.”

 

 “바깥에선, 무시무시한 용병을 뽑아 영주자리에 앉히고 국경을 지키게 하는 줄 알고 있는데.”

 

 "황제의 농간이지 뭐. 이곳이 워낙 고립 되어 있다보니, 본토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골빈 사람들은 그대로 믿겠지."

 

 

 졸지에 세라는 골빈 사람이 되었다.

 

 

 “보통 화족은 잘 늙지 않는 대신 수명이 짧잖아. 그래서 선대가 일찍 죽으면 후대가 성장하기까지 임시로 강한 용병들을 등용하기도 해. 우리 영주님도 어렸을 때 선친이 돌아가셔서 용병 손에서 훈련받았다고 들었어. 우리 영주님은 다행히 수명은 긴데, 후사가 없어서 다들 걱정이야.”

 

 

 화족의 수명은 전사하지 않는 이상 50전후였다. 보통 남자가 70이니까 20년의 에너지를 미리 끌어다 써서 수명이 짧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황제의 전투노예였던 화족, 리딕도 2년전 51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모습은 30대 초반의 젊음을 간직한 채였다.

 

 전쟁과 질병등을 고려하면 40전후가 보통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었다. 리딕은 천수를 누린 거였다.

 

 

 “그래서 영주님이 15살 되던 해부터 6개월 단위로 계속 황제의 하사품이 들어오는 거잖아. 대부분 미모를 겸비한 몰락한 귀족의 딸들이지. 후사 좀 보라고. 그 수많은 하사품들 다 마다하고 저리 혼자 지내고 있잖아. 보고 있는 우리들도 애타게시리.”

 

 “세상에! 그 오랜 시간동안 단 한명도 마음에 든 여자가 없었단 말이에요?”

 

 “한 명 있었다고 들었어. 35살쯤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 만났는데 얼마가지 않고 죽었다나봐. 그 뒤로 계속 쭉 일관되게 혼자시지.”

 

 

 화족남자들이 늑대들처럼 한 명에게만 연심을 품는다는 것이 사실이었구나. 황제의 전투노예 리딕도 그랬고, 아론도 그랬으니까.

 

 

 “참 기구한 팔자야. 정신 말짱할 때마다 얼마나 비참할까?”

 

 

 바네사의 카라스 영주에 대한 동정심이 아직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괴물도 미치광이도 아닌, 한 인간의 비참함을 공감 할 수 있을 만큼, 영주를 알지 못하기에.

 

 여전히 영주는 멀리 할수록, 안 볼수록 안전한 존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입맞춤만으로 여자를 죽일 수 있는 작자에게 연민이라니.

 

 처음은 운이 좋았다쳐도, 만나면 아주 조심해야할 위험인물이었다.

 

 아사직전 의식을 찾았을 때 당시가 문득 떠올랐다.

 

 그녀는 영주의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이 가슴까지 덮여 있고 두 손이 가슴 위에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가지런히 한쪽 어깨 위로 모아 정돈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옷이……분명 그녀는 앞섶 조임끈이나 허리끈들이 모두 풀어진 채로 방을 서성거렸었다.

 

 하지만 일어났을 때 그 끈들은 단정하게 묶어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이 방에 있었던 손길이……이 방 주인의 손길…… 일리가 없었다.

 

 하인들 중 그녀를 동정했던 누군가였겠지. 누굴까? 만나고 싶네.

 

 세라는 상념들을 털어버리려고 다른 생각들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찾았다.

 

 

 “참, 사람 좀 찾을 수 있을까요, 바네사?”

 

 “누구? 벌써 눈 독 드린 사람이라도 있나?”

 

 “아니, 나 여기 데리고 온 기사. 고생 많이 했는데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어요.”

 

 “기사가 갔어? 난 영주님이 직접 갔다고 들었는데.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이 영주님밖에 없다고 들었거든.”

 

 “본인이 영주님이 보낸 기사라고 했는데.”

 

 “하긴, 관심도 없는 하사품 받으러 카라스영지를 떠날 분이 아니지. 말코족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이 판국에.”

 

 

 바네사는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

 

 

 

 

 

 하루거리에 위치한 벨루스성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벨루스 성주의 새로운 무기 디자인이 완성되었다는 전갈을 전서구를 통해 받았었다.

 

 디자인을 변형시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느라 일주일 만에 카라스성으로 돌아왔다.

 

 동행했던 세 명의 기사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군영으로 가지 않고 본성으로 들어왔다.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기에 보초병들 외에는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았다.

 

 아카드 일행의 어깨와 후두 위로 조용히 굵은 눈들이 내려앉았다.

 

 온통 하얀 드넓은 마당에 한 사람만이 눈 속을 걷고 있었다.

 

 이곳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저 여자 뭐야?”

 

 “설마, 산책이라는 것을 하는 건가?”

 

 “발락, 자네가 가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봐. 손도 잡아주고, 눈 속에서 뒹굴고, 구해주고.”

 

 “저 여자, 제 정신일 리가 없잖아요.”

 

 

 피곤에 지쳐 무뚝뚝했던 기사들이 낄낄 거리며 시시덕거렸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말없이 말에서 내린 아카드가 시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시갈이 그를 마당 쪽으로 디밀었다. 푸르르 입김을 불며 발로 바닥을 긁어 대는 것이 무언가 요구하는 모양새였다.

 

 

 “시갈, 피곤하다. 너도 그만 쉬어.”

 

 

 그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군, 그냥 가십니까, 한 잔해야죠?”

 

 “그냥 가시려나 본데.”

 

 

 아카드는 그들의 초대를 무시하고 계단을 올랐다.

 

 

 “요 며칠 더 쓸쓸해 보이시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습니다.”

 

 “하사품으로 보내진 여자들이 죽을 때마다 우리도 기분이 그런데 주군은 더 하시겠지.”

 

 “이번에 다른 때보다도 더 안 좋아 보이세요.”

 

 “직접 데리고 오는 동안 정이라도 들었나?”

 

 “하긴 엿새거리인 윈터포인트에 열흘만에 도착했으니 많이 배려하셨던 것 같군.”

 

 “어, 시갈 이 녀석은 마구간으로 안가고 어디 가는 거야?”

 

 

  손가락 보다 작게 보일 만큼 멀어진 여자를 향해 시갈이 달려갔다.

 

 

 “저 녀석, 저 여자한테 가나 본데요.”

 

 “어이, 시갈. 인간하고 짝짓기 하는 거 아니다-.”

 

 

 기사들이 시갈 들으라고 지르는 소리에 아카드가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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