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재회한 지 일주일. 주치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료실을 다시 찾지 않았다. 더 이상 치료를 미룰 수 없었다.
『1706호 – 신태영』
나는 어느새 그의 병실 앞에 달려와 있었다. 슬라이딩도어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신태영 님!”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태희의 지친 어깨가 황급히 돌아섰다. 뒤이어 마주친 그의 시선. 얼굴은 일주일 전보다 더 초췌해져 있었다.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흰 가운에 한번 문지르고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여경 언니, 왔어요?”
태희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 후 이내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태희가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와 눈을 한번 마주친 그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
‘형’이라는 호칭에 놀랐는지 그의 안면 근육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형, 잠깐 얘기 좀 해요.”
“…….”
“형한테 언어재활이 얼마나 시급한 지 잘 알잖아요. 언제까지 절망하고만 있을 건데요? 이런 절망적인 상황 누군 안 겪어본 줄 알아요?”
병실로 올라오기 전,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절대로 감정적인 발언을 하지 말자. 결단코 사사로운 마음을 내보이지 말자.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 혀는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형이 그렇게 떠났을 때 내가 얼마나 절망했을지 생각이나 해 봤냐구요! 눈앞에서 버젓이 다른 여자랑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떤 고통인지 알아요? 다른 여자랑 결혼하겠단 말이 나한테 얼마나 큰 비수가 될지 알긴 했어요?”
1인 병실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병원 스태프로서의 선을 넘어선 난동을 부리는 중이니 말이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은 짙은 홍조를 띤 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마비된 오른손을 움직이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식했는지 이번에는 슬며시 왼손을 들어올렸다.
“미, 미아아, 아미, 해애…….”
그의 언어를 듣는 순간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형은 이런 사람이 아니잖아. 누구보다 유창한 달변가여야 하잖아.
“내가, 내가 최선을 다할게요, 형.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볼게요.”
20년 가까이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진 걸까. 눈물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았다.
“형은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의 눈동자와 안면 근육이 심하게 요동쳤다. 재활의지를 보이지 않는데다 우울 증상까지 있는 환자에게 최악의 자극을 가하는 셈이었다.
착잡한 얼굴로 그가 펜과 종이를 집어 들었다.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왼손으로 쓰인 그의 글씨는 조악하기 그지없었지만 하나하나 가슴에 와 박혔다.
『치료 받을게.』
『아주 아주 열심히.』
“정말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째 수염을 깎지 않았는지 귀밑부터 턱 중앙까지 거뭇한 털이 수북했다.
“약속하는 거예요?”
『약속해. 너랑 같이 해볼게.』
담당 간호사 박 선생이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얼굴을 추슬렀다.
“어머, 지 선생님. 병실엔 웬일이세요?”
“아, 아니에요. 치료 때문에 전할 말이 있어서요.”
“저희한테 전화 주시지 뭐 하러 직접 올라오셨어요?”
대화를 하면서도 그녀는 능숙하게 태영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신태영 님, 오늘은 기분 좀 어떠세요? 오늘도 치료 스케줄 다 펑크 내실 거예요?”
“아니에요, 오늘부턴 그런 일 없으실 거예요.”
“정말요? 주치의 선생님께 보고 드려야겠네요. 엄청 반가워하시겠네요.”
***
『똑똑똑.』
가벼운 노크소리. 박사논문 예심이 코앞이라 환자가 없는 여유 시간에는 논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드니 문 앞에는 지환이 환히 웃으며 서있었다.
“들어가도 되지?”
“벌써 들어왔잖아.”
“그런가?”
나는 책상에 펼쳐진 논문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음이 분주해서인지 그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먹지? 곧 12시잖아.”
“벌써? 근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내 시선은 여전히 책상 위에 고정된 채였다. 그가 서운했는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연애를 너무 오래 했나. 깜짝 방문도 별 효과가 없네.”
어쩐지 미안해져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전에 강의 없었어?”
“응. 금요일은 연구의 날이잖아. 벌써 까먹었구나?”
“아, 그렇지. 근데 나 딱 1시간밖에 시간 못 내. 예심이 다음 주잖아.”
“그래, 알아. 네 시간 아껴주려고 여기까지 왔잖아.”
지환의 빈틈은 뭘까. 남자로서, 교수로서, 한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그는 너무도 완벽했다. 가끔은 그런 그가 너무도 숨 막히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고모까지 대대로 정치인 집안이라,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남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자랐다.
“너 좋아하는 회전 초밥집 예약해뒀어. 마무리하고 바로 나가자.”
그의 시간 개념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집안의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하루하루 극도로 성실히 살아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명문 사립대의 최연소 정치학 교수로 자리 잡았다.
“장어랑 연어 좋아하지? 여긴 특히 장어가 싱싱해서 좋아.”
“응.”
“시환이 형 말이야. 한 달 전에 선 본 여자랑 잘 되고 있나 봐.”
“그래?”
지환네 집안의 유일한 오점은 그의 쌍둥이 형이자 장손인 시환. 10년 넘게 사귀던 연인이 결혼 직전 사고로 죽은 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그 때문에 온 집안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맞선이 일상처럼 반복됨에도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의도적인 실패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의 거듭된 실패는 6선 의원인 할아버지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급기야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장손이 결혼하기 전에는 집안의 그 누구도 먼저 결혼할 수 없다!
“이번엔 정말 잘 되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도 빨리 결혼할 수 있지. 저녁에 너랑 헤어지는 거 더 이상은 못 하겠다.”
그가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태영 앞에서 악다구니를 썼던 어제의 일이 뇌리를 스쳐갔다. 논문 예심도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넌 어때?”
“응? 뭐가?”
“저녁에 헤어지는 거 너도 그만 하면 좋겠지?”
“그렇지, 뭐.”
내 시큰둥한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그가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뭐야? 나만큼 절실한 느낌이 아닌데?”
“…….”
“논문 때문에? 너무 긴장하지 마. 그동안 착실히 잘 준비했잖아.”
내 무성의한 태도에도 그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새삼 미안해져 장어 초밥 하나를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우리 처음 만난 날도 초밥 먹었었는데.”
“그랬어? 난 기억 안 나는데.”
초밥을 먹은 기억은 없었지만, 6년 전 그날 내가 왜 지환을 만나러 나갔는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권 변호사인 태영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는 착잡해진 기분을 추스르기 어려웠었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인권 문제를 대두시킨 인권 변호사 신태영(38). 우리 사회의 인권을 지키는 숨은 파수꾼인 그는 90년대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한…….』
그에 관해 마지막으로 들은 건 1999년. 사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신태영’이란 세 글자는 여전히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애써 덮어두던 상자를 열어본 것처럼 마음이 몹시 아렸다.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그날 나는 지환을 만나러 나갔다. 그는 첫째 오빠 수호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응. 그래야지.”
시작부터 잘못이었던 걸까. 6년을 만나면서 나는 지환에게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천천히 한번 해볼게요, 형. 등/등산.”
“드응/드드사드, 산.”
“좋아요.”
태영의 언어는 1~2 음절의 단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브로카실어증(Broca’s aphasia)과 마비말장애(dysarthria), 말실행증(apraxia of speech)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유창한 발화를 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거의 온전했다.
“다시 한번 해볼래요?”
“등/드응산”
“아까보다 훨씬 좋아요.”
그의 발화는 짧은 단어 수준에서 출발해 문장과 구 순으로 길이를 늘려갈 것이다. 운동성 언어장애인 마비말장애를 고려해 말명료도(청자가 화자의 말을 이해한 정도)를 높이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였다. 한마디로 그의 언어재활은 말의 정확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발화의 길이를 서서히 늘려가는 게 목표였다.
“생각보다 너무 좋아요.”
“그, 그래?”
“그럼요. 내가 형한테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언어재활이 본격화되면서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 기분을 좌지우지했다. 우리는 또다시 절망과 희망을 함께 오가고 있었다. 1997년의 그날들처럼.
“네, 네가, 조, 좋다니, 나아도, 조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