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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17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 1997년, 여경
작성일 : 17-12-04 10:47     조회 : 347     추천 : 0     분량 : 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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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스프링’에서 8시에 봐요.』

 

 우편함에 쪽지를 넣어두고 황급히 학생회관을 빠져나왔다. 경호 선배와 마주쳤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왜? 우리가 남들 모르게 비밀 연애를 해야 할 이유가 뭘까. 태영이 우리의 만남을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추궁할 때마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내 생각도 그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소현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CC(캠퍼스 커플)랍시고 대놓고 연애하는 애들 봐봐. 동기고 선후배고 필요 없는 것처럼 둘만의 세계에 갇혀 있잖아. 둘이 헤어지면 또 어떻구? 난 태영 선배 생각을 알 것도 같아.”

 

 그녀의 설명을 들으니 일면 수긍이 가기도 했다.

 

 카페 ‘스프링’은 학교에서 제법 떨어져 곳에 위치한 셀프커피숍이었다. 셀프커피숍이 생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주말이면 세 오빠들을 따라 부지런히 나다니던 그때. 종로 2가의 한 셀프커피숍에서 둘째 오빠가 말했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카페 직원한테 서빙 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커피도 손님이 가져다 먹어야 하네.”

 

 늦은 오후의 카페는 비교적 한산했다. 나는 구석의 소파 자리에 자리를 잡고 ‘논리학개론’ 리포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교수님들의 성향에 따라 리포트 작성 방식이 달랐다. 수기로 작성하느냐, 컴퓨터 한글 워드로 작성하느냐의 문제였다.

 

 “난 아직도 독수리 타법이야. 다음 학기엔 수기로 리포트 내는 강의만 신청할래.”

 

 소현이 투덜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오빠들 덕에 나는 컴퓨터의 사용이 제법 능숙했다. 물론 독수리 타법을 탈피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건 피시통신. 채팅을 즐기려는 자의 기본 자질은 모름지기 빠른 타이핑이기 때문이다.

 

 “여경아, 여긴 웬일이야?”

 “어, 혁수 선배.”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 앞도, 서점도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아르바이트 동료를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난 이 동네 아파트에서 과외 아르바이트하거든. 넌?”

 “아, 숙제, 숙제하려구요.”

 “여기까지 와서?”

 “학교 앞은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이거 중요한 리포트라서요.”

 

 그는 묻지도 않고 맞은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있다 가도 되지? 30분 정도 시간이 비어서.”

 “아, 네. 그러세요.”

 

 태영과의 약속시간까지는 20분이 남아 있었다. 언제나 늦는 그를 생각하면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혁수는 같은 학교 선배도 아니니 당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르바이트가 많은가 봐요.”

 “고시 준비만 하기엔 경제적으로 빠듯해서.”

 

 그의 시선이 탁자 위 리포트로 옮겨갔다.

 

 “내 리포트 좀 참고할래? 이 과목 작년에 재수강했거든.”

 “오, 정말요? 저야 고맙죠.”

 “내일 갖다 줄게.”

 “뭘 갖다 줘?”

 

 태영이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간이었다.

 

 “어, 형 일찍 왔네요?”

 

 그를 본 혁수도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여기서 또 보네요.”

 “네. 여긴 어떻게?”

 

 어색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동네에서 아르바이트 있대요. 리포트 자료 빌려준다구요.”

 “그랬어?”

 “그럼, 전 이만.”

 

 난감한 기류를 의식한 듯 혁수가 서둘러 일어났다. 다행이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저 녀석.”

 

 태영이 나직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쪽문. 서너 번 들른 적이 있는 지영의 자취방이었다. 종일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던 그녀가 걱정이 되어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언니! 지영 언니!”

 

 불투명 유리로 된 현관문을 여러 번 두드린 후에야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웬일이야?”

 “오전 수업 안 들어왔길래 걱정돼서요.”

 

 그녀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자다 일어났는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도저히 못 일어나겠더라.”

 “그랬구나.”

 

 집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 왔을 때랑 뭔가 달라진 거 같아요.”

 “응. 이리저리 가구 위치를 좀 바꿔봤어. 마음이 심란해서.”

 “무슨 일 있어요, 언니?”

 “…….”

 

 그녀가 소리 없이 웃었다. 부엌으로 간 그녀는 한동안 부산스러웠다. 학기 초부터 그녀와 친해지게 된 건 ‘음식’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직접 만든 도시락이며 간식거리를 챙겨주는 그녀가 마냥 따스했다. 세 오빠들 틈에서 ‘거친’ 형제애만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녀의 푸근함과 섬세함에 금세 매료되었다. 가끔씩 보이는 알 수 없는 표정과 돌발적인 행동만 제외하면 평소 그리던 ‘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번 먹었던 전복죽이랑 해물파전 해줄게. 괜찮지?”

 “와, 너무 맛있겠다.”

 

 그녀의 앙증맞은 식탁은 자잘한 접시들로 하나 둘 채워졌다. 마지막엔 소주잔까지.

 

 “대낮인데 술 마시게요? 오후에 수업 있잖아요.”

 “알아. 딱 세 잔만 마실 거야. 넌 안 마시지?”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둑한 반지하 방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도 거뭇해 보였다.

 

 “아르바이트는 재미있어?”

 “네. 서점이 한가해서 책 읽을 시간이 꽤 많아요.”

 “나도 전엔 거기 자주 갔었는데.”

 “그래요? 요즘엔 안 와요?”

 

 그녀가 소주잔을 가득 채웠다. 소주를 입 안으로 넘기고는 살짝 눈을 감았다. 소주의 알싸함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긋거렸다.

 

 “응.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

 

 서점주인 경식을 말하는 걸까. 그녀의 말 속에는 어딘지 씁쓸함이 묻어났다.

 

 “학교생활은 어때? 이번 학기도 벌써 반이 지났네.”

 “학교 오는 게 신나요. 수업은 좀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학교 오는 게 즐거운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에 오면 ‘그’가 있었고, 우리의 우편함과 쪽지가 있었다. 그가 쉬러 오는 ‘서점’이 있었고, 청년 광장의 그 ‘벤치’가 있었다.

 

 “나도 그랬었는데. 학교가 마치 ‘성’ 같았는데.”

 “성이요?”

 “응. 누군가의 성. 누군가가 있어서 굉장히 멋있어진 성 말이야.”

 “지금은 아니에요?”

 “내가 실수를 좀 했거든. 그 뒤론 학교 가는 게 즐겁지 않네. 서점도 그렇구.”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나는 솜씨 좋게 부친 파전을 크게 잘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낮에 먹어도 소주 맛이 좋네.”

 

 그녀가 두 번째 소주잔을 채웠다.

 

 “넌 좋아하는 사람 없니?”

 “네?”

 “좋아하는 남자 없냐구?”

 “어, 아직은.”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솔로여야 했다.

 

 “너 짝사랑이 왜 슬픈지 아니?”

 “사랑을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니까?”

 “아니.”

 “그럼 왜요?”

 

 그녀의 소주잔이 세 번째로 채워지고 있었다.

 

 “짝사랑하는 나 자신이 측은해서.”

 

 ***

 

 “이게 다 뭐야?”

 

 투명한 유리병 안을 채운 종이 쪼가리들을 가리키며 셋째 오빠가 물었다.

 

 “영수증.”

 “영수증을 모아?”

 “응.”

 “왜?”

 

 나는 병 안으로 손을 넣어 영수증을 펼쳐보았다. ‘신영복 선생님’ 강연회 티켓, ‘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 티켓, 각종 식당과 카페 영수증…….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

 “글쎄, 짐이 되지나 않을는지.”

 “오빤 왜 그렇게 항상 삐딱해?”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얼마나 재밌는데.”

 

 그다운 발상이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본 덕에 우리 집안의 유일한 문제아로 자리 잡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좋았다.

 

 “오빠의 삐딱함을 응원해.”

 “역시 너밖에 없다.”

 

 그는 방 한편에서 뒹굴던 기타를 들어올렸다. 기타 선율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물샐 틈 없는 인파로 가득 찬 땀 냄새 가득한 거리여.』

 

 멜로디에 얹힌 그의 나직한 음성. 어스름한 저녁노을이 창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 빈 거리여/칠흙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그의 입에서 익숙한 지명이 흘러나왔다. ‘청계천 8가’. 수능이 끝난 지난 겨울, 청계천의 책방 거리를 지나다 그가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의 읊조림은 나직했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청계고가도로가 없던 시절엔 청계천도 꽤 낭만적이었을 텐데.”

 “그랬겠지? 시냇물 졸졸 흐르는 개천이었겠다. 정말 상상이 안 가네.”

 “뭔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걸 막아 도로로 만들었을까? 인간이란 참 무지막지해.”

 

 그가 기타를 내려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참하지만 끈질긴 삶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해. 그게 위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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