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23화. 또 다른 세계 - 1997년, 여경
작성일 : 17-12-14 09:50     조회 : 387     추천 : 0     분량 : 439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두 권 대출이요.”

 

 학생증을 집어든 소현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중앙도서관 대출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가 힘없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몇 시에 끝나?”

 “10분 남았어.”

 

 소현이 하품을 하며 잠깐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아르바이트가 많은 그녀와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일할 때 잠깐씩 틈을 낼 수 있었다.

 

 “피곤해 보이네.”

 “응. 과외하는 아이들 중간고사라 수업이 많거든.”

 “에구에구, 이러다 우리 소현이 늙겠다.”

 

 강의 이외의 시간을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녀의 부모님은 오래 전 이혼한 상태였지만 치과의사인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은 꽤 넉넉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경제적 독립에 목을 매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인생 어차피 혼자 사는 거야. 아버지 돈은 무조건 저축하고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독립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제법 체계적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각종 보험과 결혼 자금, 주택 마련 비용까지 철저한 계획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너처럼 취미로 아르바이트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그래도 학생으로선 너무 벅차잖아. 꽃다운 20대가 아깝기도 하구.”

 “아니,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오늘 하루 피곤해서 내일이 안정될 수 있다면 난 당장 뭐든 하겠어.”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소현과 흡사한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그러했듯, 미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현재를 희생해도 된다는 한국적 가치.

 

 “난 생각이 달라. 오늘은 다시 오지 않아. 오늘이 행복해야 평생이 행복한 거 아닐까?”

 “그건 너처럼 있는 집 자식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단짝이긴 하지만 그녀와 나의 가치관은 극과 극이었다. 두 사람의 견해가 유일하게 합치되는 지점은 연애에 관한 것뿐이었다.

 

 “뭐 그런 인간이 다 있냐?”

 “그러게.”

 

 소현은 학기 초 기계공학과와의 과팅에서 만난 동갑내기와 사귀는 중이었다.

 

 “나랑 상의도 안 하고 다음 학기에 군대 가겠다는 게 말이 돼?”

 “말 안 되지. 얼마 안 됐지만 진지하게 만나는 중이잖아. 당연히 너랑 상의했어야지.”

 “그러게. 나쁜 놈!”

 

 얘기만 꺼내도 열이 오르는지 그녀는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그것도 30개월이나 되는 공군으로 가겠대.”

 “공군은 휴가가 많다던데?”

 “휴가고 뭐고 30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니? 난 절대 못 해!”

 “기다려 달래?”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딱히 기다려 달란 말은 안 했지만 지금 마음으론 당연히 기다리고 싶지.”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인연이면 제대 후에도 계속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겠다.”

 

 흥분이 진정된 듯 그녀는 나의 연애로 화제를 돌렸다.

 

 “너흰 어때? 태영 선배 얼굴은 제대로 봐?”

 “못 본 지 일주일은 됐나 봐. 5월엔 시위가 부쩍 많대.”

 “근데 참 신기하다. 운동권이랑 사귀면 자기 여자친구도 시위에 데려갈 거 같은데. 같이 나가잔 말은 안 해?”

 “사람마다 자기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잖아. 형처럼 시위에 나가고 사람들을 이끄는 행동파가 있고, 책상에 앉아서 전략을 짜는 이도 있지. 시위대 옆을 지나면서 ‘옳소’라고 외치며 박수를 치는가 하면, ‘공부들은 안하고 저게 뭐람’이라며 비난하는 이도 있잖아.”

 

 그는 자주 말하곤 했다. 어떤 행동이든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방식이 아니라면 ‘진짜’일 수 없다고. 누군가 특정한 행동을 하는 데에 반드시 이유가 있듯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데에도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선배랑 같이 시위에 나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지?”

 “응.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말이야.”

 “음. 역시 태영 선배는 다른 선배들이랑 달라. 네 남자친구 좀 멋지다, 얘.”

 “웬일로 칭찬을 다 해?”

 “사실은 사실이니까. 내가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 사람이거든.”

 

 우리는 서로를 보며 까르르 웃어댔다. 축제가 끝난 캠퍼스는 어쩐지 휑했다. 하지만 우리의 스무 살은 여전히 축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

 

 『미안. 너무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네. 가능하면 오늘 저녁 서점에 들를게.』

 

 우편함에 덩그러니 놓인 그의 쪽지. ‘가능하면’은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였다. 나는 터덜터덜 학교를 빠져나왔다. 서점으로 가는 골목길이 오늘따라 더 쓸쓸히 느껴졌다.

 

 “여경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혁수였다. 나의 실망한 기색을 읽었는지 전에 없이 명랑한 소리로 그가 물었다.

 

 “이거 한번 들어볼래?”

 

 그의 손에는 CD 하나가 들려있었다.

 

 “교대시간 한참 남았는데 웬일이에요?”

 “이거 주고 아르바이트 가려고.”

 “아, 네.”

 

 떨떠름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장난스럽게 나를 서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잊었어? 우리 집이 저 건너편인 거.”

 “아, 맞다.”

 “이거 작년부터 들었던 ‘전람회’ 노랜데 들을수록 참 좋아. 한번 들어봐.”

 

 그가 미니 콤포넌트 위에 CD를 올려두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경식 선배가 계산대 위에 남겨둔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여경아. 급하게 일이 생겨서 먼저 나간다. 가능하면 7시까지 돌아올게.』

 

 ‘가능하면’이 유행인가. 남자친구건 서점 주인이건 남발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네. 어쩐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미니 콤포넌트의 ‘on’ 버튼을 무심히 눌러 보았다.

 

 『별이 가득한 어느 여름밤 꿈꾸듯 내게 말했죠/그대 영원히 머물 곳은 저 하늘 너머라고/그 어디쯤 있나요 내게 닿을 순 없나요/그대 없는 이 세상에 내 쉴 곳은 없나요』

 

 울적함 탓인지 멜로디에 실려 오는 가사가 애절하게 가슴에 닿았다. 생각지도 않던 서점 아르바이트를 누구 때문에 하게 됐는데…… 괜스레 태영마저 야속했다.

 

 『나 이제 훨훨 날아올라 오래전 잃어버린 내 영혼을 찾아 /그곳에서 날 기다릴 그댈 향해 날아/외로운 날갯짓으로』

 

 서둘러 ‘off’ 버튼을 눌렀다. 조금 더 듣다가는 처연함의 끝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드르륵 출입문이 열렸다.

 

 “여경아!”

 

 그였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물에 빠진 생쥐처럼 엉망이 된 모습으로…….

 

 ***

 

 “우리 딸이랑 같이 영화 보는 거 오랜만이네.”

 

 토요일 오후 1시. 어머니와 나는 충무로의 한 극장 앞에서 만났다. 을지로 4가에 있는 어머니의 회사와 가까운 거리였다.

 

 “토요일은 일하는 거 같지도 않게 후딱 지나가 버리네. 그냥 쉬는 날 하면 안 되나?”

 “우리도 외국처럼 주 5일 근무하는 날이 오겠죠. 토요일 강의도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세 오빠들의 영향으로 존댓말을 하는 데 익숙한 나를 신기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호칭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면서 뭐 좀 먹을까?”

 “전 팝콘이면 돼요.”

 “그래. 대충 군것질해도 되겠다. 영화 보고 나서 종로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영화 시간을 기다리면서 어머니의 직장 동료를 둘이나 만났다.

 

 “어머, 권 부장님. 따님이랑 영화 보러 오셨나 봐요.”

 “응. 최 대리는 데이트?”

 “네. 두 분 참 좋아 보이세요. 아, 그리고 아까 회의 때 김 이사님 막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어머니와 최 대리는 두 사람만의 훈훈한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 권 부장! 토요일은 토요일이네. 바쁜 권 부장도 문화생활을 다 하고.”

 “네, 상무님. 저희도 ‘트레인스포팅’ 보러 왔는데. 혼자 오셨어요?”

 “응, 대니 보일 감독 광팬이거든. 꽤 감각적인 작품일 거 같아서 공부할 겸 보러 왔어.”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하셨다. 카피라이터로서 유명세를 얻기도 했지만, 전례 없는 여성 임원으로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난 이런 어머니 모습이 참 좋아요.”

 “뭐가?”

 “집에선 그냥 평범한 네 아이의 어머니인데, 밖에선 멋진 사회인의 모습이잖아요. 너무 다르기도 하고 새롭기도 해서요.”

 

 어머니가 콜라를 들이켜며 말없이 웃었다.

 

 “네가 말한 두 모습을 지키려고 무진장 노력했지. 넌 그런 노력의 과정을 유심히 봐야 해.”

 “네, 알아요.”

 

 아침저녁으로 늘 분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의아했던 적도 많았다. 끊임없이 동동거리는 사람은 아버지도, 사남매도 아닌 언제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되고 20대가 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분주해야만 했던 이유를, 그리고 말할 수 없었을 힘겨움을.

 

 “주변에선 의사 남편 두고 취미로 회사 다니냔 말도 많았지. 그런 시선 때문에 더 악착같이 일했던 것도 같아.”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할 것 없이 기회만 되면 어머니의 퇴사를 종용하는 그 말들.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온 어머니에게 온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 딸, 연애는 안 해?”

 “연애는 무슨.”

 “왜?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자신의 한계를 깨는 데는 사랑만한 게 없어. 그걸 깨고 나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이거든.”

 

 깨뜨려야 할 나의 한계란 무엇일까. 태영을 통해 내가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보다 먼저, 그리움을 견디는 인내의 한계를 깨뜨려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물대포와 최루탄 세례로 뒤범벅이 된 그의 또 다른 세계를 한껏 안아줘야 할 것 같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월, 수, 목, 금 연재 2017 / 11 / 6 584 0 -
23 제 23화. 또 다른 세계 - 1997년, 여경 2017 / 12 / 14 388 0 4394   
22 제 22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 2017년, 태영 2017 / 12 / 13 337 0 4218   
21 제 21화. 보이는 게 전부일까 - 2037년, 여경 2017 / 12 / 11 319 0 4281   
20 제 20화. 끝나도 끝나지 않은 - 1997년, 태영 2017 / 12 / 8 352 0 4202   
19 제 19화. 드라마보다 강렬한 현실 - 2017년, 여… 2017 / 12 / 7 320 0 4237   
18 제 18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 2037년, 태… 2017 / 12 / 6 341 0 4264   
17 제 17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 1997년… 2017 / 12 / 4 347 0 4133   
16 제 16화. 수많은 ‘왜’ - 2017년, 태영 2017 / 12 / 1 333 0 4585   
15 제 15화. 보듬고 싶은 상처 - 2037년, 여경 2017 / 11 / 30 342 0 4608   
14 제 14화. 뜨악한 고백 - 1997년, 태영 2017 / 11 / 29 323 0 4783   
13 제 13화. 방치한 나의 시간들 - 2017년, 여경 2017 / 11 / 27 323 0 4185   
12 제 12화. 전할 수 없는 메모 - 2037년, 태영 2017 / 11 / 24 328 0 4972   
11 제 11화. 단 하나뿐인 호칭 - 1997년, 여경 2017 / 11 / 23 331 0 4358   
10 제 10화. 이기적인 연민과 사랑 사이 - 2017년, … 2017 / 11 / 22 327 0 4277   
9 제 9화. 아마도 운명이 아닐까 - 2037년, 여경 2017 / 11 / 20 343 0 4371   
8 제 8화. 밤바람에 흔들리는 - 1997년, 태영 2017 / 11 / 17 330 0 4925   
7 제 7화. 절망과 희망 사이 - 2017년, 여경 2017 / 11 / 16 344 0 4168   
6 제 6화. 그녀만을 위한 삶 - 2037년, 태영 2017 / 11 / 15 310 0 4412   
5 제 5화. 단 하나의 이유 - 1997년, 여경 2017 / 11 / 13 330 0 4489   
4 제 4화. 믿는다는 그 말 - 2017년, 태영 2017 / 11 / 9 332 0 4291   
3 제 3화. 시간과 공간의 추 - 2037년, 여경 2017 / 11 / 8 326 0 4596   
2 제 2화. 그녀의 시선공포증 - 1997년, 태영 2017 / 11 / 7 324 0 4436   
1 제 1화. 무력해진 언어 - 2017년, 여경 2017 / 11 / 6 551 0 445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나의 유령 작사
이류수
사랑에 관한 여
이류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