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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6화. 그녀만을 위한 삶 - 2037년, 태영
작성일 : 17-11-15 09:50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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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민, 영.

 

 윤호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여경의 얼굴을 살폈다. 애써 외면하는 건지, 정말로 무신경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민영의 이름을 꺼낸 윤호가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독일에서 정년퇴임하고 아예 귀국했다더라. 워낙 유명해서 잡지에 여기저기 실렸더라구. 쾰른 음대 측에서 석좌교수로 남아달란 제의도 고사하고 들어온 거래.”

 “어, 그래? 몰랐네.”

 

 민영과의 인연도 질기다면 질긴 것이었다. 학교에도, 집에도, 여경에게도 머물 수 없던 고단한 시절에 민영을 만났다. ‘강경대 열사 6주기 추모 및 부패정권 타도 결의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당하던 1997년 6월. 수배의 표면적인 이유는 시위였지만, 실제로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서균과 함께 한총련 정책국의 주요 요직을 맡고 있었다.

 

 “형, 민영 씨 얘기 편하게 해도 돼. 난 이제 아무렇지 않아.”

 

 여경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된 걸까.

 

 당시 은신처로 삼았던 후배의 춘천 고향집마저 들통 나면서 나는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여경이 너무도 그리웠다. 혹여 나 때문에 감시당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녀가 무사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여경의 성북동 집 근처를 기웃대다 우연찮게 민영과 마주쳤다. 그녀는 아버지의 동료 기자인 정무영 씨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한국에 계실 때 자주 만나던 사이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어릴 적부터 늘 첼로를 끼고 다니던 그녀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도 민영은 어깨에 첼로를 둘러맨 채 한적한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근처에 연습실이 있어. 당분간 거기서 지내면 어때?”

 

 수배 중인 나를 기꺼이 돕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의아했다. 어릴 적 잠깐의 인연이 그토록 대단한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나 너 좋아했잖아. 몰랐어?”

 

 나를 돕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민영은 무심한 듯 말했었다.

 

 “형! 태영이 형! 로봇이랑 운동할 시간이에요.”

 

 민영과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자 눈앞에 여경이 앉아 있었다.

 

 “지나간 여인은 그만 생각하시구요. 이제 운동 시작할까요?”

 “여경아.”

 “네.”

 “여경아.”

 

 그녀가 멀뚱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유 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

 

 “미안해.”

 “뜬금없이 뭐가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건 순전히…….”

 “됐습니다요. 이제 더 이상 지체 못해요.”

 

 여경이 서둘러 헬스 로봇을 작동시켰다. 발병 이후 나의 재활 과정은 갖가지 로봇과 함께였다. 수술 로봇이 tracheostomy(기관절개술)를 보조했고, BMI(뇌-기계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재활 로봇과 로봇 옷이 나의 재활을 도왔다. 대부분의 기능이 회복된 지금도 헬스 로봇 세 대가 나의 건강을 보조하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휠체어 로봇이 필수적이다.

 

 여경 역시 청소, 세탁, 설거지 등 각종 집안일에 로봇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흙벽돌집 안에 총 7대의 서비스 로봇이 공존하는 그림은 어쩐지 어색했다. 하지만 로봇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오늘따라 움직임이 둔하네요. 속도를 다시 세팅해야겠어요.”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어.”

 “무리하면 안 돼요. 흙벽돌집 완성하려면 아직 멀었다구요.”

 

 여경의 말이 옳았다. 요사이 벽돌 작업에 박차를 가한 탓인지 온몸이 찌뿌둥했다. 특히 편마비가 왔던 오른쪽 팔과 다리가 스멀스멀 저며 왔다. 헬스 로봇의 버튼을 ‘slow down(속도 천천히)’으로 바꾸었다.

 

 “형. 정민영 씨 한번 만나보면 어때요?”

 

 로봇의 팔이 내 오른쪽 허벅지를 터치하기 시작했을 때 여경이 불쑥 말을 꺼냈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민영과의 과거를 부러 외면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걸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하잖아요. 형한텐 정민영 씨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어서요.”

 “첫사랑을 못 잊는 현상 아녔어?”

 “첫사랑 뿐만은 아니죠. 일이나 관계에서 뭔가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이 계속되잖아요. 잔상도 오래 남구요. 두 사람이 서로 그렇지 않을까요?”

 

 ***

 

 “생각보다 어렵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흙벽돌을 켜켜이 엇갈려 쌓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벽돌이 만나는 부분을 중심선으로 삼고 윗단에 흙벽돌을 조심스레 올렸다. 벽돌 간에 물고 물리는 모양새가 계속되면 마침내 하나의 몸체가 되었다. 막힌줄눈(벽돌을 켜마다 엇갈리게 쌓아 위아래가 통하지 않는 줄눈) 모양이 연속적으로 드러나니 마치 멋스러운 기하학적 무늬 같았다.

 

 “제법 모양이 나오는데요?”

 “그러게. 벽돌만 만들 땐 몰랐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 실감이 나네.”

 “대충 마무리하고 외출 준비해야죠.”

 “그럴까?”

 

 민영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여경의 제안으로 성사된 만남이었지만, 사는 동안 한번쯤 필요한 일인 것도 같았다. 약속장소인 순천 시내까지 여경이 차로 데려다 주었다. 발병 이후 몸이 거의 회복되었지만 운전은 아직까지 자신이 없었다.

 

 “태영아!”

 

 카페로 들어서자 나직한 외마디가 들려왔다. 창가 자리에 앉은 민영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래. 몸은 많이 좋아졌네?”

 “응. 열심히 재활한 덕이지.”

 “다행이다.”

 

 그녀의 모습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은발의 머리칼이 중후한 멋을 더하는 정도.

 

 “여경 씨는 잘 지내?”

 “그럼.”

 “두 사람 참 대단해.”

 

 냉소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그녀의 말이 얕은 한숨과 함께 흩어졌다. 그녀가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독일에서 계속 혼자 지낸 거야?”

 “혼자는 아녔지. 항상 첼로랑 함께였으니까.”

 

 방음벽으로 둘러쳐진 그녀의 정릉동 연습실이 떠올랐다. 수배 생활이 길어지면서 온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곳. 그리고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나를 묵묵히 지키던 민영.

 

 “우리가 함께 지낼 때도 나한텐 첼로뿐이었어. 넌 항상 여경 씨만 그리워했지.”

 “…….”

 “3년 넘게 나랑 지내면서도 네 마음을 가졌단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어. 그땐 정말 원망 많이 했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무색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그때 왜 그랬어? 여경 씨가 연습실로 찾아왔을 때 말이야. 왜 날 사랑한다고 했어?”

 “…….”

 

 20대의 나로서는 삶이라는 여정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좀체 알 수 없었다.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나도 모를 열정을 불사르던 그때는 나 자신의 삶조차 책임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여경과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미안했어.”

 

 민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20대의 그녀에게 느껴지던 당돌한 에너지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그때 결정적으로 여경 씨를 돌아서게 만든 건 나였지. 우리가 약혼까지 했단 말에 어떤 여자가 더 이상 기대를 갖겠어.”

 

 민영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고도 믿지 않았던 여경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무너져 내리던 그녀의 얼굴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글쎄, 모를 일이지.”

 “여경 씨가 그렇게 떠났는데도 난 왜 널 잡지 못했을까?”

 

 회한인지 자조인지 모를 그녀의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당시의 나는 민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여경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고통에 허덕였다. 민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내 가슴은 말을 듣지 않았다. 수배는 생각보다 더 길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연습실을 나오면 당장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서균과 몇몇 동료들이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런 나를 한결같이 지켜봐주는 민영을 쉽게 떠날 수도 없었다.

 

 “독일 생활은 어땠어?”

 “그럭저럭. 한국이 몹시도 그리웠지. 특히 정릉동 연습실이 많이 생각나더라.”

 

 그녀의 독일 활동은 줄곧 화젯거리였다. 한국 여성 최초로 독일 음대의 종신교수가 된데다 전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전도유망한 첼리스트였기 때문이다.

 

 “결혼은 왜 안 했어?”

 “몇 번 기회가 있긴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안 나더라구. 이게 내 팔자인가 봐.”

 “여경이도 가끔 네 안부 궁금해 했어.”

 “그랬어? 여경 씨 얼굴도 한번 보고 싶다. 이젠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

 

 민영이 허탈한 듯 미소 지었다. 웃을 때마다 패는 이마의 주름이 멋스러웠다. 첼로를 옆에 끼고 나를 위로하던 20대의 그녀는 이제 없었다. 더불어 민영과 여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20대의 나 역시 이제는 없었다. 아쉽기보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평온하다.

 

 “이젠 너무 늙어버렸네. 우리 다음 세상에선 꼭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 절절한 사랑도 좀 해 보자구.”

 “그럴 수 있을까?”

 

 카페를 나와 여경과 만나기로 한 건너편 서점으로 걸어갔다. 스무 살의 그녀와 학교 앞 서점에 들렀던 그날의 저녁이 떠올랐다. 다음 세상에서는 온전히 여경만을 위해 살고 싶다. 눈앞이 캄캄한 젊은 날의 터널일지라도, 병마와 싸우는 고단한 나날일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여경만을 위해 살아있고 싶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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