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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19화. 드라마보다 강렬한 현실 - 2017년, 여경
작성일 : 17-12-07 09:37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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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도 모르게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편두통이었다. 일주일 후 박사논문 본심이 예정되어 있었다. 손 봐야 할 것들이 수북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 민영 씨랑 독일 가려는 거야?”

 

 태희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안 바쁘면 잠깐 보자.』

 

 아버지의 메시지. 지환과의 결혼 때문이겠지. 바쁘다는 핑계를 대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한번쯤, 아니 여러 번쯤 부딪쳐야 될 일이었다.

 

 “아버지, 안 바쁘세요?”

 “딸 얼굴 볼 시간은 있다.”

 

 아버지의 책상에는 각종 결제 서류들이 수북했다. 보조 테이블 위에는 대학원생들의 논문 출력본들도 한가득 놓여있었다. 진료부원장으로 승진한 후 외래 환자와 수술 스케줄이 줄어들긴 했지만 숨 돌릴 틈 없는 워커홀릭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지환이네서 한번 보자는구나. 지환이 형 결혼하기 전에 너희들도 웬만한 준비는 다 해두는 게 좋지 않겠어?”

 

 지환은 어른들께 아직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 전 아버지한테 어떤 딸이었어요?”

 “뜬금없긴. 너야 항상 성실한 딸이지.”

 “딱 한번만 그거 안 하면 안 될까요?”

 “뭘?”

 “성실한 딸 안 하면 안 되냐구요.”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지환이랑 싸웠니?”

 “그건 아니구요. 우린 애매한 감정으로 너무 오래 만났어요.”

 “음.”

 

 그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난감한 상황 앞에서 그가 보이는 습관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알아요.”

 “단지 그 이유뿐이냐?”

 “네? 아, 네.”

 

 그가 책상 위 서류들로 시선을 옮겼다. 더 이상의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늘 그랬듯이, 부녀간의 대화는 짧고도 짧았다.

 

 “나중에 얘기하자.”

 “네.”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래, 이건 시작일 뿐이야.

 

 ***

 

 “선생님!”

 

 슬라이딩도어를 열어젖히고 등장한 얼굴은 뜻밖에도 송윤희 환자였다.

 

 “송윤희 님, 치료 시간 아닌데 여긴 웬일이세요?”

 “선생님, 저, 저저 좀, 숨겨 주세요.”

 “네? 그게 무슨…….”

 

 다급한 그녀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일단 나는 방문을 잠그고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송윤희 님, 무슨 일 있어요? 문 잠갔으니까 안심하고 천천히 말해 봐요.”

 “아빠가, 아빠, 쫓아와요, 싫어요.”

 

 33살의 그녀는 승승장구하던 보석 디자이너였다. 자신의 브랜드로 론칭한 사업이 번창하면서 젊은 나이에 꽤 많은 부를 축적했다. 젊고 예쁜데다 유능하기까지 한 그녀의 주변에는 늘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차트에 기록된 그녀의 병명은 저산소증(hypoxia)으로 인한 뇌 손상.

 

 “송윤희 환자 말이에요. 자살 시도하고 나서 발병했다고 하더라구요. 약혼자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랬다나 봐요.”

 

 간호사 최 선생이 귀띔하던 말이 떠올랐다.

 

 “송윤희 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님이 간병해 주고 계시잖아요. 아버지랑 무슨 일 있었어요?”

 “선생님, 무서워요.”

 

 그녀는 중추신경계의 손상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거나 의식을 잃는 증상을 보였다. 그에 따라 인지와 언어 능력이 떨어져 나와 치료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선생님, 안에 계세요?”

 

 최 선생의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송윤희 님, 여기 계셨네요. 아버님이 찾으세요. 갑자기 맨발로 병실을 뛰쳐나왔다면서요.”

 

 최 선생이 그녀를 병실로 인계한 후 헐레벌떡 들어섰다.

 

 “무슨 일이에요?”

 “돈이 화근이네요.”

 “왜요?”

 “송윤희 환자가 생각보다 엄청 부자였나 봐요. 발병하고 나서 아버지가 금치산자 신청을 해둔 상태래요. 이혼하고 코빼기도 안 보이다 갑자기 간병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있었던 거죠. 며칠 전부턴 헤어지자던 약혼자까지 들락거려요. 아까 병실에서 두 남자가 치고 박고 난리였죠. 그 틈에 송윤희 환자가 놀라서 뛰쳐나온 거 같아요.”

 

 진흙탕 중의 진흙탕. 현실 속 드라마는 때로 TV 속 드라마보다 더 강렬했다. 그녀의 절망 어린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문득 지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을 더 이상 연장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지환 씨, 오늘 좀 만나.』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이 개인이나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 글 기억나요?”

 “응.”

 

 내가 건넨 종이를 태영은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형이 모교 신문에 대담 형식으로 기고한 거예요. 문장이 길어서 자연스럽게 끊어줘야겠죠. 속도는 천천히 하는 게 좋아요. 지난번처럼 말속도가 빨라지면 더듬게 되거나 음절 순서가 바뀌는 증상이 다시 나타날 거예요.”

 “응, 명심할게.”

 

 그의 표정이 전에 없이 밝았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왜?”

 “기분이 좋아보여서요.”

 “부쩍 몸이, 좋아지고 있어. 오른쪽 다리랑, 팔 힘도, 많이 회복됐구.”

 “다행이에요.”

 

 그가 휠체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태희한테 부탁해서 샀어.”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선생님의 유고집이었다.

 

 “생각 나? 97년 봄 강연회.”

 “그럼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날의 강연과, 그날의 내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날 그곳에 있었던 태영의 모습만은 또렷이 떠올랐다.

 

 “그때 형 정말 멋있었어요. 마이크 앞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그가 얼굴 가득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산책하면서 이 책 같이 읽으면 좋겠네요.”

 “응, 그래.”

 

 그가 독일로 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그의 옆자리에 내가 다시 설 수도 있을 거란 상상도 해보았다. 어렴풋한 확신이었지만 가슴은 하릴없이 설레기 시작했다.

 

 ***

 

 “왜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우린 아무 문제없는 연인이야.”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던 거예요. 지환 씨한테 미안하지만 난 항상 우리 관계에 확신이 없었어요.”

 “여경아, 우리 이러지 말자. 너무 오래 기다려서 지친 거라면 나도 이해할게. 순전히 우리 집안 때문이었으니까.”

 

 그의 연구실은 캠퍼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5층에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캠퍼스에는 이미 초가을이 한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황급히 초록 태를 벗으려는 잎사귀들.

 

 “저녁에 어머니가 잠깐 보자셔.”

 “지환 씨!”

 “자주 오가던 사이였지만 정식으로 상견례 자리를 갖자고 하셔. 다른 준비들은…….”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났어.”

 

 그의 검은 눈동자가 갑자기 도드라졌다.

 

 “뭐?”

 “스무 살 때 만난 첫사랑인데 얼마 전 다시 만났어.”

 “그때 그 환자?”

 

 그도 알고 있던 걸까.

 

 “어떻게 알았어?”

 “그 남자 눈빛이 이상했어. 날 경계하는 것도 같았구. 뭣보다 그때 네 태도도 이상했잖아.”

 

 지환과 나의 관계에 태영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환자가 돼서 만난 첫사랑이랑 어쩌기라도 하겠단 거야? 그게 말이 돼?”

 “그런 건 아니야.”

 “나한테도 그런 게 없겠어?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거라구. 첫사랑 만나면 괜히 흔들리고 애틋해지는 심정 말이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설명한다 한들, 그를 납득시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지환 씨랑 헤어지겠다는 건 아니야. 그래, 정말 그건 아니야. 다만 그 사람이 계기가 된 건 맞아. 우리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됐거든.”

 “나 수업 들어가야 해. 나중에 얘기하자.”

 

 태블릿 PC와 책 한 권을 챙겨들고 그가 휑하니 나가버렸다. 조급한 마음에 연락도 없이 방문했던 나는 그의 연구실에서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나는 얼마간 황망히 서 있었다. 또다시 편두통이 밀려왔다.

 

 ***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진작부터 언니한테 밥 한번 사려고 했어요.”

 

 병원 근처 일식집에서 태희를 만났다.

 

 “요즘 오빠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주치의 선생님 말로도 재활 속도가 꽤 빠른 편이래요. 이게 다 언니 덕분이에요.”

 “내가 무슨.”

 “언니 아녔으면 재활은 시작조차 못했을 거예요. 처음 입원했을 때 오빠가 어땠는지 언니도 봤잖아요. 오빠가 영영 회복하지 못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그녀는 반찬들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느라 분주했다. 천성이 따뜻한 그녀였다.

 

 “간병하느라 힘들지?”

 “뭘요. 간병인이랑 교대로 하니까 훨씬 여유가 있어요. 직장이랑 집도 여기서 가깝구요. 그것도 다 언니 덕이지만요.”

 

 그녀가 내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두 사람은 정말 남달라. 우리 사남매도 우애라면 못지않은데 너랑 태영이 형을 보면 기가 죽을 정도라니까.”

 “강한 동지애 같은 거예요. 같은 어머니한테 버림받은 동지, 각자의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동지 말이에요.”

 

 그녀의 술잔이 말끔히 비워졌다. 나도 그녀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형이 민영 씨랑 독일로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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