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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12화. 전할 수 없는 메모 - 2037년, 태영
작성일 : 17-11-24 09:50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4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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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문틀 작업할 거야.”

 “현관문이랑 창문까지 하면 6개 정도 되겠네요.”

 “오늘 중으론 안 되겠지?”

 “무리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쉬엄쉬엄 해요.”

 

 우리는 마당 한편에서 바짝 말려두었던 목재들을 천천히 옮겼다.

 

 “문턱은 없는 게 좋겠죠? 휠체어 로봇도 지나다녀야 하니까.”

 “응, 그래.”

 

 집짓기는 말할 수 없이 세심한 작업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심하고 계산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전 단계가 허술하거나 조악하면 다음 단계로 진전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난제였다.

 

 “문틀 작업의 핵심은 수직 수평을 잘 맞춰서 단단히 고정시키는 거야. 안 그러면 나중에 벽돌 쌓을 때 문제가 된다는군.”

 “그것도 시민대학에서 알아낸 노하우군요?”

 “물론이지.”

 

 나는 2년 전부터 지리산 시민대학의 수강생이자 강사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리산에 정착한 초반부터 나는 건축과 목공 관련 수업을 꾸준히 수강해왔다.

 

 “우리가 임 교수님 신세를 너무 많이 졌어요.”

 “그렇지? 언제 그분 가족들 초대해서 식사라도 함께 해야겠어.”

 

 건축가인 임 교수는 퇴임을 5년이나 앞두고 어머니의 고향인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시민대학에서 그가 맡고 있는 전문가 수준의 건축 강의를 통해 집짓기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우리 집을 방문해 진행 과정을 꼼꼼히 체크하거나 관련 서적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소소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다른 수강생들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수강생 중엔 건축가나 목수, 도예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민대학의 강의 수준이 워낙 높아서 여느 대학 못지않은 거 같아요.”

 “맞아. 수준별로 세분화돼 있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갈 수 있어서 좋아.”

 

 고령화나 귀농의 영향도 있지만, 평생 동안 다양한 직업에 몸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평생교육의 질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맡은 강의는 어때요?”

 “성소수자 관련 법률만 다루니까 굉장히 깊이 들어가게 돼. 강의 준비가 만만치 않아.”

 

 발병 이후 재활 치료까지 5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회복 후에도 나는 변호사로서 현업에 복귀하지 않았다. 대신 인권이나 생활 관련 법률 서적을 집필하고, 내 전문지식을 요하는 다양한 공간에서 강연을 해왔다. 무료 법률 자문도 공을 들이는 일 중 하나였다.

 

 “변호사로 다시 복귀하고 싶진 않아요?”

 

 언젠가 여경이 물었을 때 나는 단호히 ‘No’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대학 다니던 90년대까지도 직업에 대해 너무 경직된 편견을 가졌던 거 같아. 의학을 전공하면 의사가 되어야 하고, 운동권 학생은 시민운동가나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식이지. 요즘 같은 시대엔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구시대의 전유물이 됐지만.”

 “아직도 관행이나 관습, 고정관념, 편견 같은 게 남아있는 거 같아요.”

 “우주비행사 출신 헬스 트레이너나 성형외과 전문의의 웹툰 같은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도 그런 경향 때문이겠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속 어딘가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

 

 “오빠!”

 “잘 지냈어? 보나도 잘 있지?”

 “응, 워낙 똘똘하잖아.”

 

 올해 열일곱 살이 된 태희의 딸 보나는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 윤리 관리자’가 꿈이라는 그녀는 태희를 닮아 여간 야무진 성격이 아니었다. 보나는 정자 기증을 통한 인공수정 시술로 얻은 나의 하나뿐인 조카이기도 했다.

 

 “세계 윤리 관리자란 게 정말 전망이 있는 걸까?”

 “물론이지. 첨단사회가 될수록 종교적 논란은 더 가속화될 거야. 더 무수한 종교들이 생겨날 거고 광신도에 의한 테러 문제나 인종적 충돌도 숱하게 일어나게 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난제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필요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걔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잖아. 문학, 철학, 사학부터 공학이나 의학까지 두루 관심을 보이더라구. 덕분에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지금의 사회는 인종과 민족, 종교를 떠나 세계 공통의 형제애인 자연 윤리를 따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윤리 관리자는 보편적인 윤리를 연구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보나가 지금 몇 개 국어를 하는지 알아?”

 “그 꿈 이루려면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많을수록 유리하지.”

 “자그마치 7개 국어를 한다니까.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한 거라서 정말 놀라워. 내 딸이지만 어찌나 존경스러운지.”

 “역시 내 조카답네.”

 

 남편도 없이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태희를 보면서 내내 안쓰러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보나는 태희의 버팀목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조카를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걸 보면 엄마인 태희는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여경 언니도 잘 있지?”

 “그럼. 집에 들렀다 가라고 성화던데.”

 “오늘 저녁에 명상 수련 모임 있어서 안 돼. 지금 가도 빠듯해. 언니한테 보고 싶다고 전해줘.”

 

 그녀는 간호사로서 30년을 쉼 없이 일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직업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는 꾸준히 명상 수련을 병행해왔다. 현재 그녀는 서울경기지부 보건의료인 명상 수련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참, 정민영 씨 만났다며? 지난번 통화할 때 여경 언니가 그러더라.”

 “응, 만났어.”

 

 함께 독일로 가자던 민영 때문에 갈팡질팡하던 나를 단단히 붙잡은 건 다름 아닌 태희였다. 내 마음이 한결같이 여경에게로 향하는 걸 알던 그녀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단호하게 탓했다.

 

 “오빠가 흔들리면 정민영 씨한테도 여경 언니한테도 또다시 상처를 주는 거야.”

 “그럴까?”

 “내가 오빠라면 다신 후회할 일 안 하겠어. 두 사람한테 상처 주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봐. 또 그러면서 살겠다고? 다른 데선 안 그러면서 두 사람 앞에서는 왜 그렇게 어리석어?”

 

 그녀 덕분에 나의 요동치는 갈등은 결국 잦아들었다. 타인을 위한 선택이 진정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사람을 위한 선택이 다른 한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면? 다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때 오빠를 말리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남은 평생 괴로워하며 살았겠지.”

 “그러게. 오빠 인생에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태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농담 같은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같다는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다음엔 보나랑 같이 올게. 삼촌이랑 외숙모 보고 싶다고 난리야.”

 “나도 많이 보고 싶다, 기특한 내 조카.”

 “뭐 부탁할 건 없어?”

 “있어.”

 

 내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부터 태희는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서울이나 경기도, 충청권의 출판사나 에디터들과 미팅을 하고, 각종 강연회 일정을 처리해 주었다.

 

 “지난번 신간 더 찍기로 한 거 말이야. 전자책도 있으니까 무리할 필요 없다고 담당자한테 전해줘.”

 “3쇄 들어가기로 얘기됐어. 오빠가 종이책을 더 좋아하니까 내가 강력히 주장했지.”

 “그래, 고마워.”

 

 오늘날 사회 구성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오로지 디지털만 선호하는 세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아날로그에 호기심을 보이는 세대. 나는 첫 번째에 속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날로그를 훨씬 선호하는 부류였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음원 스트리밍보다는 LP로 듣는 음악이 몇 백 배나 더 좋은 부류.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정도면 베스트셀러야. 물론 전자책이랑 비교할 순 없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종이책이 사라질 거란 전망도 많았는데. 예전만은 못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이 건재한 걸 보면 정말 신기해.”

 “맞아. 오빠 같은 사람들이 제법 많은가 봐. 보나만 봐도 자기 방에 종이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는다니까.”

 

 다양화된 사람들과 세분화된 지식들. 이들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책’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건

 인간 본연의 욕구 때문이 아닐까.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욕구,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무한한 욕망.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어서가 아닐까.

 

 ***

 

 얼마 전 구입한 자율주행차를 몰고 지리산 초입에 위치한 납골당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태영아,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하렴.』

 

 아버지의 납골함 앞에 붙은 메모 한 장. 어머니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그녀였지만 필체는 전과 다름없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가슴 한편이 찌릿해왔다. 우리가 미처 못다 한 말들과,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들은 어디로 다 흩어져버린 걸까.

 

 “지리산 근처에 머물고 싶다는구나.”

 

 그의 유골함을 들고 부탄에서 날아온 동료 스님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아들을 버려두었던 지리산은 그가 영원히 쉬고 싶은 고향이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 여러 번 네 이름을 부르더구나. 평소에도 너한테 미안하단 말을 많이 했어.”

 

 그의 출가는 가족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던 걸까.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기회마저 영원히 잃게 되었다.

 

 “다른 얘긴 없었나요?”

 “응. 네 이름을 마지막으로 길게 내뱉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지.”

 “그랬군요.”

 “아버지를 원망하니?”

 “…….”

 

 스님의 질문이 폐부 깊숙이 타고 들어왔다. 원망하기에도 지친 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것도, 여경에게 상처를 남긴 것도, 뇌가 아팠던 것도 모두 그의 탓인 것만 같았다.

 

 “자네의 원망 이상으로 아버진 힘든 세월을 살았어.”

 

 스님의 마지막 말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한 해 두 해 아버지의 기일과 생일을 챙기면서 그에 대한 원망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그의 기일과 생일 전날이면 어김없이 납골당을 찾는 어머니와 쪽지도 주고받게 되었다.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긴 세월 동안 그 어떤 만남도, 연락도 오가지 않던 우리였기에 말이다.

 

 『미안하다.』

 『답장 주어 고맙다.』

 『많이 미안하고 고마워.』

 『건강하지?』

 『더 이상 아프지 마.』

 『항상 밥 잘 챙겨먹어.』

 

 메모의 내용은 조금씩 진화했다. ‘미안하다’나 ‘고맙다’와 같은 회한의 단어에서 이제는 ‘밥’이나 ‘건강’ 같은 일상적인 용어가 오가는 수준이 되었다. 일상적인 메모가 늘어갈수록 내 입가에 미소가 더해갔다. 더불어,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더해갔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전할 수 없는 메모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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