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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1화. 무력해진 언어 - 2017년, 여경
작성일 : 17-11-06 10:46     조회 : 552     추천 : 0     분량 : 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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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 30분 신환(평가), 10시 40분 송영철(치료), 13시 40분 김숙자(치료), 15시 강진숙(치료), 16시 20분 표창식(치료)』

 

 출근하자마자 빠르게 스케줄 표를 훑어보았다. 신환을 제외하고 모두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8시 40분. 잠깐이지만 어제 읽다 만 논문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박사논문 심사가 코앞이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올해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논문을 끝내야만 했다.

 

 ‘오늘도 바쁘겠네.’

 

 9시 10분. 졸음이 밀려왔다. 참고문헌에 넣을 논문을 찾느라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영어 문장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속도를 내야 할 텐데. 첫 번째 스케줄이 신환 평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미리 환자의 기본 정보를 숙지해야 했다.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로그인했다. 환자의 이름을 몰라 내 치료 스케줄 화면으로 들어갔다.

 

 『9시 30분 언어평가 신태영.』

 

 신태영? 설마…….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다. 당연히 ‘그’는 아니겠지. 무심히 환자 이름을 클릭했다.

 

 『신태영. M(남자). 1970년 3월 15일생. ICH(뇌내출혈). Rt. hemiplegia(오른쪽 편마비). Speech-language evaluation(언어 평가) 요.』

 

 마우스를 움직이던 오른손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얼어붙은 건 오른손만이 아니었다. 수면 부족 때문에 몽롱하던 머리와 가슴이 일제히 서늘해져왔다. 1970년 3월 15일생 신태영이 ‘그’ 말고도 또 있는 걸까. 흔치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아는 ‘1970년 3월 15일생 신태영’이 아닌 다른 신태영이 존재할 것이다.

 

 9시 25분.

 

 마른 침을 삼켰다. 읽고 있던 논문을 책상 한편으로 밀어두었다. 그가 누구이든 일단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stroke(뇌졸중) 환자에게 으레 적용하는 언어와 말 관련 평가도구를 책상 위에 세팅했다. ‘그’가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그’가 아니어야 했다.

 

 9시 31분.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슬라이딩도어가 서서히 열렸다. 누군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 연변 출신 간병인 김 여사였다. 그녀가 눈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9시 30분 맞지요? 신태영 환자예요.”

 

 내 시선은 김 여사에서 환자에게로 옮겨갔다. 신태영. 내가 아는 ‘그’였다. 제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선생님, 저희 들어가도 되나요?”

 “아, 네.”

 

 에어컨 바람 탓인지 그의 몸에는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는 무심한 듯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그는 아직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신태영 님 맞으세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즐겨 쓰던 은테 안경과 날카로운 턱선은 예전 그대로였다. 덥수룩한 수염 탓인지 얼굴은 더없이 초췌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 쌍꺼풀이 없는 그의 커다란 눈이 놀랍도록 커졌다.

 

 “이 환자분 여사님이 봐주고 계세요? 다른 보호자는요?”

 

 다른 보호자라면 그의 여동생 태희, 아니면 연로하신 조모일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가 돌발적인 행동을 했다. 왼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세차게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 같았다.

 

 “태영 씨, 왜 그래요? 언어평가 하고 가야죠.”

 

 김 여사의 말에 아랑곳없이 그는 신경질적으로 휠체어를 돌려세우려 했다. 물론 수차례의 시도에도 목적은 쉬이 달성되지 않았다. 오른손잡이인 그의 왼손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리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나만큼이나 이 상황에 당황했겠지. 자존심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디 강한 남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반응으로 볼 때 언어 이해나 인지 능력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신태영 님. 이쪽으로 오세요. 지금 가셔도 평가 받으러 다시 오셔야 돼요.”

 

 그의 왼손이 동작을 멈췄다. 그 사이를 틈타 김 여사가 휠체어를 재빠르게 들이밀었다. 베테랑 간병인답게 그녀는 환자의 돌발 행동에 적절히 대응했다. 김 여사의 능숙함 덕에 나 역시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신태영 님. 안녕하세요. 오늘 저랑 몇 가지 평가를 하실 거예요.”

 

 유순해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 가슴에 달린 사원증이었다. 그도 믿기지 않았는지 내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저는 신태영 님 언어 재활을 담당할 언어치료사 지여경입니다. 환자분 언어와 말 상태를 진단하고 나서 치료에 들어가실 거예요.”

 

 단숨에 기계적인 언어가 튀어나왔다. 언어가 손상된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말하는 게 몸에 배어있었지만, 그에게만큼은 예의 차분한 속도와 호흡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어서 모드를 전환해야 했다. ‘그’가 아닌 ‘환자’ 모드. 그는 스무 살에 만난 ‘신태영’이 아니라 환자 ‘신태영’인 것이다.

 

 이성을 찾고 보니 그의 언어 상태가 궁금해 사뭇 조급해졌다. 생각보다 손상이 심하다면 어쩌지? 지금까지 그는 단 한마디의 음성도 내뱉지 않았다. 누구보다 명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가가 아니던가. 그의 언어는 어떤 식으로든 훼손되어서는 안 되었다.

 

 “본인 성함을 말씀해 주실래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그의 입이 움직이려는 순간, 숨이 멎을 듯 떨려왔다.

 

 “시시, 시신, 트, 여엉, 어엉…….”

 

 ***

 

 “찬호 오빠, 여기야!”

 “응. 같은 병원 있어도 얼굴 보기 참 힘들다.”

 

 둘째 오빠가 식판을 들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넌 어때? 논문은 잘 돼가?”

 “그냥 그래.”

 “지환인 잘 지내구?”

 “응.”

 

 오빠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식판 위의 음식을 게걸스레 구겨 넣었다. 나는 말없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지환이네도 참 징하다, 징해.”

 “왜?”

 “그쯤 했으면 첫째 아들 장가보내는 건 포기할 만도 할 텐데. 쌍둥이 형 때문에 지환이랑 너까지 결혼 미뤄지구. 넌 안 속상해?”

 “속상하긴. 난 괜찮아.”

 

 결혼이 미뤄지는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 잘못인 걸까. 지환과 6년을 만나오면서도 늘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와 결혼해도 되는 걸까.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왜, 뭐 할 말 있어? 병원에서 나한테 콜을 다 하구.”

 “오빤 소아 환자만 보나?”

 “그렇지. 소아 재활이 내 전공이니까. 새삼스럽게 왜?”

 “신태영…….”

 

 찬호가 바삐 움직이던 숟가락질을 멈추었다.

 

 “알아.”

 “알아?”

 “그저께 입원한 거 보고 단번에 알아봤지. 벌써 만났어?”

 “응. 평가 의뢰돼서.”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물을 들이켰다.

 

 “그냥 환자야. 다른 의미 부여는 하지 말라구. 그 형 때문에 너 많이 힘들었잖아.”

 “…….”

 “나도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 그렇다고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골라 받을 수도 없잖아.”

 

 찬호는 디저트로 나온 복숭아를 우걱우걱 씹어댔다.

 

 “내 동기 최 교수 환자니까 특별히 잘 부탁할게.”

 “응.”

 “마음은 안 좋겠지만 너두 이성적으로 잘 대할 거라고 믿어.”

 “그럼.”

 

 애써 자신 있는 척 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그와의 시간들은 여전히 생생했다. 문장 하나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그를 본 후로 머릿속은 온통 쑥대밭이었다.

 

 “이십대 뇌졸중 환자도 가끔 보긴 했지만 그 사람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엔 삼십대나 사십대 환자들도 늘고 있어.”

 “예후는 어떨 거 같아?”

 “건강한 체질이고 아직 젊으니까 재활 의지만 있으면 예후가 나쁘진 않아. 근데 최 교수 말 들어보니 좀 염려되는 부분도 있더라.”

 “뭐가?”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라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대. depression(우울증)도 보이구.”

 

 그의 언어 상태는 과히 좋지 않았다. MRI 상에서 발견된 출혈 부위는 크게 두 곳이었다. 전두엽(frontal lobe)의 하단, 흔히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라 불리는 곳, 그리고 기저핵(basal ganglia)을 포함한 피질하 영역(subcortical area)이었다.

 

 “언어 상태는 어때?”

 “브로카실어증(Broca’s aphasia)이랑 마비말장애(dysarthria), 말실행증(apraxia of speech)이 전부 나타나.”

 “음.”

 “그나마 인지랑 언어 이해가 괜찮아서 다행이야. 의지만 있으면 치료 진전도 빠를 수 있는 양상들이구.”

 

 의지. 문제는 그의 의지였다.

 

 “할 수 있겠어?”

 “뭘?”

 “의지를 끌어낼 수 있겠냐구.”

 

 자신이 없었다. 태영과 같은 언어적 양상은 임상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숱하게 다뤄온 것들이었다. 그가 아닌 다른 환자였다면 분명 확신에 찼을 것이다.

 

 하지만 태영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과 젊은 날은 온전히 그를 향해 있었다. 영혼과 신념이 담긴 그의 숱한 언어들이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 살아 있었다. 엉망이 된 그의 언어를, 무력해진 그의 언어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여경 언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태희였다. 그의 이복동생 신태희. 반가웠다. 태영과 헤어진 후에도 얼마간 만나왔던 터라 가끔씩 떠오르곤 했었다.

 

 “우리 오빠 어떡해요?”

 

 재활센터 대기실 한가운데서 그녀가 나의 팔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꺼이꺼이, 그녀의 서러운 눈물은 오래도록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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