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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2화. 그녀의 시선공포증 - 1997년, 태영
작성일 : 17-11-07 09:43     조회 : 323     추천 : 0     분량 : 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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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개강이네요. 학우들이 직접 뽑아준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총학생회를 만들어 봅시다.”

 

 풀이 죽은 임원들을 어떻게든 다독여야 했다. 그것만이 총학생회장 서균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길이었다.

 

 “개강도 하기 전에 서균 선배를 구속해 버리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요?”

 “정부에서도 뭔가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거야. 임기 말이잖아.”

 

 학생 운동을 주도하는 대학이기는 하나, 개강을 앞두고 총학생회장을 구속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서균과 팀을 이뤄 회장단 선거에 나온 게 작년 가을, 올해는 여러 모로 중요한 사안이 많은 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학생회를 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나는 학생회관 건물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2월 중순. 개강을 앞둔 캠퍼스는 점차 활기를 띠고 있었다. 뒷주머니에 넣어둔 삐삐가 울렸다. 학과에서 자주 가는 파전집이었다. 공중전화까지 걸어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이 몰려오고 있었다. 후배들이랑 술이나 진탕 마실까. 어깨 위의 짐이 오늘따라 너무도 무거웠다.

 

 “태영이 형!”

 

 좁은 술집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과 학생회장 경호가 얼른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너덧 명의 낯선 얼굴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97학번 신입생들 같았다.

 

 “개강도 하기 전에 신입생들 데리고 벌써 술이야?”

 “이 친구 빼고 나머진 오늘 기숙사 들어온 애들이에요.”

 

 경호가 가리킨 여학생은 맞은편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다른 후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표정들. 그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던 중인 듯했다. 맞은편 여학생이 수줍은 듯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지여경이라고 합니다. 학과에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가 엉겁결에 이 자리에 끼게 됐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특별할 것 없는 멘트였다. 하지만 그녀의 인상만큼은 평범하지 않았다. 짧은 단발머리에 새하얗다 못해 핏줄이 들여다보일 듯 투명한 피부, 멘트와 함께 급속도로 빨개지는 얼굴까지. 4년이나 어린 후배여서일까.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어린아이처럼 무구해 보였다.

 

 “드디어 여기 계신 대선배님을 소개하게 됐네요. 93학번 신태영 선배로 말씀드리자면, 재작년에 과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이번 총학생회에서 부총학생회장, 아니 총학생회장 대행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 언어학과의 자랑이자 정신적 지주인 신태영 선배의 한마디를 들어보겠습니다.”

 

 장난기와 허풍이 뒤섞인 경호의 소개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섰다. 앞에 앉은 여경의 얼굴이 다시 투명해졌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다른 말 필요 없고 오늘은 무조건 제가 술 사겠습니다.”

 

 발그레한 얼굴의 신입생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댔다. 그래, 신입생인데 뭔들 안 즐겁겠냐. 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벌써부터 재수를 고민한다는 녀석부터, 문민정부 시대에 학생운동의 방향이 뭐냐는 도발적인 질문까지, 스무 살의 후배들과 늙수그레한 선배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뭘 알아보러 왔다구?”

 “네?”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여경이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반문했다.

 

 “아까 소개할 때 말이야. 학과에 뭐 알아보러 왔다면서.”

 “아, 네. 조기졸업이랑 교환학생 알아보려구요.”

 “입학도 하기 전에 떠날 생각 먼저 하네?”

 “아, 그건 아니구요. 부모님이랑 오빠들 때문에.”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눈이 연신 깜빡였다. 깜빡였다기보다 반짝였다고 해야 하나.

 

 “근데 굉장히 힘드시겠어요.”

 “뭐가?”

 “총학생회에서 일하신다면서요. 셋째 오빠도 운동권이었거든요. 한참 힘들어하더니 군대로 도망가 버렸어요. 정확히는 끌려갔지만.”

 “끌려가?”

 “아빠 강압에 못 이겨서 끌려갔거든요.”

 

 짧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새빨개지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조목조목 가족 얘기를 꺼내는 그녀.

 

 “아깐 얼굴 새빨개지더니 이젠 괜찮네?”

 “주목 받으면 많이 부끄러워지는 성향이 있어서요. 시선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이라고들 하더라구요.”

 

 흥미로웠다. 투명하고 해사한 얼굴에 차분하고 지적인 말투, 자신의 약점을 마치 남의 일인 양 설명하는 그녀. 나의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하고 있었다.

 

 ***

 

 자취방 미닫이문을 열었다. 퀴퀴한 냄새가 그득했다. 총학생회나 학과 선후배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탓이었다. 남의 방에서 신세를 지려면 최소한 청소라도 해놓아야 하거늘, 누구 하나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가는 이가 없었다. 청소를 안 하기로는 나 역시 매한가지. 제대로 된 걸레질을 해본 지 족히 일 년은 넘은 듯했다.

 

 “형, 있어요?”

 

 경호 목소리였다. 간만에 청소한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우와, 방이 왜 이래요?”

 “이게 정상이거든. 너희들이 맨날 더럽혀서 그렇지.”

 “그랬나?”

 

 경호의 손에는 소주와 안주거리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형이랑 한잔 하고 싶어서 그러지.”

 

 하긴, 우리가 술 마시는 데 무슨 이유가 있었던가. 비가 와서, 기분이 꿀꿀해서, 날이 좋아서, 학교가 싫어서, 연애가 잘 안 돼서…… 술을 마시기 위한 이유들은 넘치고 넘쳐났다.

 

 “유진인 미국 잘 갔고?”

 “잘 갔겠죠.”

 “아예 헤어진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요. 학생회장 하면 유학 가버릴 거란 말이 진심이었나 봐요. 설마 했는데.”

 

 경호와 유진은 내가 학생회장이던 해에 나란히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개강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불꽃이 인 그들은 3년 가까이 사랑을 키워가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시위 나갈 때마다 싫은 내색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이 다른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두 학생회장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유진이도 이해해 주리라 믿었죠. 정말 떠나버릴 줄은 몰랐네요.”

 

 안주로 사들고 온 새우깡은 뜯지도 않은 채 그는 내내 소주만 들이켰다.

 

 “유진이가 꿈꾸던 대학생활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저도 함께 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녀 친구들 데리고 록카페도 가주고 취향에 안 맞는 로맨스 영화도 같이 봐줬는데…….”

 

 경호의 몸이 점점 기울어갔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엎어질 듯한 자세였다.

 

 “잊어야 할까요?”

 

 감기려던 눈을 번쩍 뜨면서 그가 불쑥 물었다.

 

 “글쎄. 잊을 수 있겠어?”

 “잊어야 한다면 잊어야죠. 그깟 첫사랑쯤 뭐 대수라구.”

 “유진이가 첫사랑이었어?”

 “순서상 처음이어야 첫사랑인가요? 죽을 만큼 사랑했으면 그게 첫사랑이지.”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게 첫사랑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첫사랑이 있었던가.

 

 “형은 뭐예요? 형 좋다고 쫒아 다니는 여자들 죄다 울리구. 왜 그렇게 고고한데?”

 “너 취했나 보다.”

 “아니, 그렇잖아요. 유진이도 처음엔 형한테 반했었대요. 부드러우면서 냉철한 카리스마가 너무 멋있다나 뭐라나. 마음 돌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랬어? 유진이가 남자를 좀 볼 줄 아는군.”

 “형한테 꽁꽁 숨겨둔 여자친구 있단 소문도 자자했다니까요.”

 

 피식 웃음이 났다. 어딘가에 숨겨둔 여자친구라도 있다면 요즘 같은 때에 조금이라도 힘이 날까.

 

 “여자친구 있었으면 왜 꽁꽁 숨기겠냐? 나도 너처럼 떠들썩하게 연애하지.”

 “내가 그랬어요?”

 “유진일 누가 채갈까 봐 그랬나 본데? 아님 그 애 마음 변할까 봐 그랬는지도.”

 

 두 사람의 연애를 바라보는 선배들의 시선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운동권 남자친구를 둔 새침떼기 여대생. 과정의 힘겨움은 차치하고라도, 두 사람의 결말이 희망적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예상은 거의 적중한 셈이었다.

 

 “형은 그러지 마세요.”

 “뭘?”

 “누가 봐도 위태로운 연애는 하지 말라구요.”

 

 경호는 어느새 바닥에 널브러졌다.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소주병 두 개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채로.

 

 ***

 

 캠퍼스에 봄이 만개했다. 흐드러지게 핀 철쭉이며 개나리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었다. 바야흐로 봄.

 

 오늘은 총학생회가 주관한 강연회가 있는 날이었다. 존경해오던 신영복 선생을 마주할 수 있다니. 온종일 가슴이 설레었다. 총학생회 대표로서 그를 소개하고 강연회를 이끌어야 하기에 사뭇 긴장도 되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신영복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강연회는 무르익어갔다. 그의 연설이 일단락된 후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나 역시 그의 수감 생활과 굳건한 신념,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행자로서 주어진 시간을 통제해야만 했다.

 

 『선생님께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이제 강연회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만 마무리하도록 하겠…….』

 

 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객석 뒤쪽에서 누군가 황급히 손을 들었다. 치켜 올린 손에서 어쩐지 간절함이 전해졌다.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분의 질문만 더 받겠습니다. 방금 손 드신 뒷자리 학생분, 말씀하세요.』

 

 모두의 시선이 객석 뒤쪽으로 모아졌다. 가녀린 실루엣이 쭈뼛쭈뼛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여경이었다. 시선공포증이 있다던 그녀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침이 바싹 마르고 맞잡은 두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내가 왜 이렇게 긴장을 하지?

 

 『감옥에 계신 동안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지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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