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 강연회. 수요일 오후 5시. 대강당. 총학생회 주최.』
촘스키에 관한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 범접할 수 없는 거장의 지성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마침 학생회관 한편의 플래카드를 발견하고는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셋째 오빠의 책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단숨에 읽어 내려간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총학생회 주최’라는 글귀에 가슴이 마구 콩닥거렸다. 강연회에 가면 그를 볼 수 있을까.
“시선공포증이란 게 있어? 거 참 특이하네.”
2월의 파전집에서 그는 내게 무심한 듯 말했었다. 그의 크고 검은 눈동자가 유달리 새카맣던 기억이 났다. 깊게 패인 눈 속에 마치 커다란 우물 하나가 박힌 듯했다. 180 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키 때문인지 말할 때마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휘청거리는 느낌이었다. 운동권 특유의 음울함 같은 건 없었다. 호탕한 웃음 속에 쏟아져 나오는 그의 재기발랄한 언변은 금세 보는 이를 사로잡을 정도였다.
“개강하면 종종 보게 될 거야. 내 시선엔 공포 느끼지 말고 인사 꼬박꼬박 해!”
마지막 인사와 달리 개강 후 2주가 지났음에도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경호 선배 말로는 구속된 총학생회장을 대신하게 된 그를 자주 보기는 힘들 거란다.
“같이 가자, 소현아.”
“나 아르바이트 가야해. 그리고 신영복인지 뭔지 난 처음 들어본다니까. 내 관심 분야가 아니야.”
그를 만나려면 어떻게든 강연회에 가야 했다. 혼자서라도 갈까.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래,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강연장에는 제법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인지 무대 위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이크 앞에 그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강연회를 진행할 총학생회장 대행 신태영입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어쩌지?
강연은 무르익어갔다. 그는 중간 중간 부연 설명을 하거나 질의응답을 통제하며 강연회를 진행해 나갔다.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말로써 통솔하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반짝였다. 그가 객석의 나를 볼 수 없음에도 내 얼굴은 자꾸만 붉어져갔다. 가슴은 왜 이리도 쿵쾅거리는지…….
『선생님께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이제 강연회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 멘트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말이지, 안 될 것 같았다.
『여기서 그만 마무리하도록 하겠…….』
나도 모르게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객석에 있던 많은 이들이 일시에 나의 얼굴을 주목했다. 그도 날 알아본 듯했다. 목 언저리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얼굴까지 달아오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들어 올린 오른팔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감옥에 계신 동안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지키셨나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오른팔이 움직이고 질문을 내뱉기까지, 그 모든 일이 내 의식 너머에서 일어나는 듯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은 영겁의 세월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신영복 선생님의 답변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황당한 질문에도 꽤 성의 있는 답변을 하셨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좌중이 가볍게 술렁였던 듯도 했다.
그렇게 강연은 끝이 났다.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무대를 정리하는 몇몇 학생들만 눈에 띄었다. 나는 튕겨 오르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가방, 가방이 어디 갔지? 바닥을 두리번거리니 앞좌석 아래쪽에 내 캔버스 가방이 널브러져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바짝 엎드려 팔을 뻗었다.
“이거 찾니?”
그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 그가 있었다. 그의 한손에는 덩그러니 내 가방이 들려있었다.
***
“맛있지?”
“네, 너무 맛있어요.”
“이래봬도 여기가 삼 대째 내려오는 콩나물국밥집이야. 신입생 때부터 내 단골이 됐지. 특히 술 먹은 다음날 먹으면 속이 확 풀려서 좋아. 그럴 땐 얼마나 행복한지.”
“아, 네.”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찾을 만큼 술을 마신 적이 없었기에 그의 기분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한 기분을 나도 느끼고 싶었다.
“근데 강연회에서 널 볼 줄은 몰랐네.”
“셋째 오빠 덕분에 읽게 된 책이 꽤 많아요.”
“그렇구나. 시선공포증 있다면서 질문도 잘하던데?”
“네? 그건…….”
부끄러움과 머쓱함이 뒤섞여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숟가락을 놓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더 안 먹어?”
“아뇨, 먹어요.”
“보기보다 잘 먹네. 이런 데 한 번도 안 봤을 것처럼 생겼는데.”
칭찬일까. 칭찬 같지 않은 그의 칭찬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밥 먹고 나랑 어디 좀 갈래? 쉬고 싶을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가 쉬고 싶을 때마다 들른다는 곳은 후미진 골목 끝자락의 자그마한 서점이었다. 희미하게 새겨진 서점 이름은 ‘북두칠성’. 서점 주인은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선배라고 했다. 학생운동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급기야는 3회 연속 학사경고로 퇴학을 당했다는 그.
“경식이 형, 지난번 부탁드린 거 들어왔나요?”
“그럼, 당연히 구해놨지.”
주인이 한쪽 벽면의 책장 하나를 옆으로 밀자 또 다른 책장이 겹겹이 나타났다. 가장 안쪽에는 사람 하나가 쪼그려 앉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주인이 그곳의 책 더미 위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나는 무슨 책인지 궁금해 연신 힐끔거렸다.
“뭐가 궁금해서 힐끔거려? 너한텐 내가 재밌는 책 선물할게.”
그가 고른 책은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다이 호우잉의 책을 번역한 이는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었다.
“저기, 이거 정말 저한테 선물하는 거예요?”
“응.”
“와, 감사해요.”
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가방 속에서 삐삐가 울려댔다. 보나마나 집에서 호출이 시작된 것이다.
“근데 선배한테 ‘저기’가 뭐냐?”
“뭐라고 불러야할지 몰라서.”
“경호한텐 뭐라 그러는데?”
“형.”
“음.”
버스 정류장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간간이 그의 지친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많이 피곤하겠어요.”
“아니, 보통 때보단 양호해.”
그의 하루가 궁금했다. 그의 보통 날들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그를 지치게 하는 걸까.
“뭘 그리 빤히 봐?”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28번 버스가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 왔어요.”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얼굴을 훔쳐본 걸 들켰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버스를 향해 정신없이 뛰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흰 면티 위에 체크무늬 남방을 멋스럽게 걸친 그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태영이 형! 책 고마워요.”
***
“여경아, 이 책 네가 산 거야?”
주말에도 얼굴을 보기 힘들던 셋째 오빠가 일요일 오후에도 집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시디플레이어와 이어폰, 너덧 개의 시디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태영에게서 선물 받은 책이 들려 있었다.
“선물 받은 거야.”
“선배가 준 거지?”
“응. 어떻게 알았어?”
“그럴 거 같았어.”
그는 곧장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다 읽었는지 중반부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근데 어떤 선배?”
“왜?”
“이런 책을 선물한 선배라면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받은 두 권의 책을 단숨에 독파해버린 나 역시 무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지만 강하게 뇌리에 새겨지는 메시지들.
“오빠는 웬일이야? 일요일인데 집에 있고?”
“글쎄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넌 학교생활 어때?”
“음. 어떻다고 해야 하나.”
그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강렬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시디 케이스에는 ‘라디오헤드’라 쓰여 있었다. 그가 열중하고 있는 게 라디오헤드의 음악인지, 다이 호우잉의 책인지, 아니면 나와의 대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남매 중 유일하게 멀티태스킹에 능했다.
“사람은 말이야. 어떤 행동을 할 만한 이유가 딱 한 가지만 있어도 계속하게 돼 있어. 다른 사람한텐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유라도 말이야.”
단 하나의 이유만 있어도 행동하게 된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더더욱 공감되는 한마디였다.
“근데 그 이유가 당사자한텐 결코 사소한 게 아니거든.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오만가지여도 그 하나 때문에 행동하게 되니까 말이야.”
“오빠한텐 그런 게 있어?”
“그럼. 그러니까 너도 찾아야 해.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스스로.”
몇 마디 말을 툭 내뱉고는 또다시 음악과 책에 몰두해버리는 그. 나보다 한 해 먼저 고민했기 때문일까. 오빠의 말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힘이 있었다.
“그 이유가 사랑이라면 너무 하찮을까?”
“아까 말했잖아. 당사자한텐 결코 사소하지 않다구.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럴까?”
“근데 넌 대학 들어가고 한 학기도 안 지났는데 벌써 사랑 운운하는 거냐?”
“아니, 내 얘긴 아니구.”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하루를 살고, 대학에 다니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는 이유가 ‘사랑’이라 해도 괜찮은 걸까.
“근데 너 아냐?”
“뭘?”
“사람들이 자기 사랑 얘기할 땐 꼭 남의 일처럼 말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