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제발 기운 차려요.”
태희가 침대 한편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서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친숙한 얼굴 하나가 황망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서균이었다. 그의 뒤에는 경호원인지 비서인지 모를 남자 두 명이 병풍처럼 따라붙었다.
“태영아!”
그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난감했다. 부끄러운 듯도, 화가 치미는 듯도 했다. 그가 진보 야당의 최연소 대표가 된 후 함께 축하연을 열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최근에는 새 내각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물망에 올랐다.
“괜찮아?”
“…….”
“임마, 네가 이렇게 되면 난 누굴 믿고 일하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같은 마음일 터. 이 난감한 상황을 나만큼 아파할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그일 것이다. 우리의 인연은 지리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리산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온 스무 살의 그는 열여덟의 까칠한 나를 만났다. 그때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젊은 날의 여정은 그가 터놓은 길을 스멀스멀 따라가고 있었다.
“할머니 생각해서라도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열심히 재활 치료 받으면…….”
나는 창밖의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가 치밀었다. 왜 나에게,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것 좀 드시고 말씀하세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태희의 얼굴은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가 내민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 없으면 내가 짊어진 짐은 다 어쩌라구. 너 때문에 기꺼이 자처한 건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그가 총학생회장이 되자마자 구속되었을 때 나는 기꺼이 그의 짐을 대신 짊어졌다. 거대한 정치권의 회오리 속에서 진보 야당을 굳건히 다져보자며 손을 내밀었을 때도 나는 기꺼이 그를 따랐다. 하지만 뇌와 몸이 망가진 지금, 나는 더 이상 그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난 누구보다 널 알아. 넌 여기서 무너질 놈이 아냐. 재활 같은 건 너한테 상대도 되지 않는다구.”
혼잣말인지 채근인지 모를 그의 두서없는 언어들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가슴이 저며 왔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폐부 깊숙이 스몄다.
“태희 씨가 고생이 많네요. 어떻게든 기운 차릴 놈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가 긴 한숨을 내뱉고는 힘겹게 일어섰다.
“다음에 올 때도 이런 모습이면 다신 너 안 본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대꾸한다 해도 나의 망가진 언어로는 그 무엇도 표현할 리 만무했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나의 사라진 언어를 되찾을 수 있을까.
“혀, 어엉, 혀엉…….”
그는 문 밖으로 이미 사라진 뒤였다. 입 속에서 맴도는 단어를 소리 내어 보았다. 누구도 듣지 못할 나의 사라진 언어를.
***
“좀 괜찮으세요?”
“…….”
아침 회진을 온 주치의 최 교수가 덤덤하게 물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최 교수 주변의 스태프 중 낯익은 얼굴이 끼어 있었다. 여경의 둘째 오빠 찬호였다. 그가 가볍게 눈인사를 보냈다.
“운동치료 때도 거의 움직이질 않으신다면서요?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 받으시면 훨씬 진전이 빠를 텐데요. 언어도 마찬가지구요. 변호사시고 연설이나 강연도 많이 하셨으니까 누구보다 언어 재활이 필요하시잖아요.”
며칠째 반복되는 말이었다. 학생회 간부, 변호사, 정치가, 연설가로서 숱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새삼 혼란스러웠다.
회진 스태프들이 병실을 나간 후에도 찬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가슴에 달린 사원증에는 ‘재활의학과장/의예과교수 지찬호’라 새겨져 있었다. 조각가가 되겠다던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대에 진학했다는 얘기를 여경에게서 들은 기억이 났다.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는 재활의학을 택한 게 의외라는 말도 했었다. 나는 늘 궁금했었다. 조각가가 되지 못할 바에야 손을 쓰지 않는 의사가 되겠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을까.
“신태영 씨. 저 기억하시죠?”
그의 눈빛이 간절해서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드신 거 알아요. 여경이도 많이 놀랐더라구요.”
‘여경’이란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동공이 움찔했다. 그녀가, 많이, 놀랐다.
“두 사람 많이 힘들었던 건 알지만 어찌 됐든 이렇게 다시 만났잖아요. 태영 씨가 괴로워하고 무기력해질수록 지켜보는 이들이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내 동생이 태영 씨 때문에 또다시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진 않네요.”
여경과 세 오빠, 이들 사남매의 우애가 각별하다는 것은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유복하지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들을 애틋하게 엮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럼, 쉬세요. 종종 뵐게요.”
그가 문쪽으로 걸어 나가다 잠시 멈춰 섰다.
“지금이라도 사과드릴게요. 전에 감정적으로 몰아붙였던 거요.”
20년 가까이 된 일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채 들이닥친 그가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던 그날. 나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멍든 뺨이 회복된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이 시렸고 가끔씩 온몸이 저려오던 때도 있었다. 그에게 맞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여경에게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사라지는 찬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슨 죄를 짓는지도 모르던 나를 일깨운 건 다름 아닌 그의 주먹이었기에.
“오빠, 누구야? 주치의 선생님은 아니잖아.”
물을 가득 채운 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태희가 물었다. 나는 종이와 펜을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여경이 둘째 오빠.』
“아, 그랬구나. 오빠가 많이 불편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길까? 여경 언니도 계속 봐야 하구.”
태희의 물음에 곧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환자가 된 상황에서 우연찮게 여경을 만난 게 내 혼란과 괴로움을 가중시킨 원인일까. 그렇다면 그녀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걸까.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놀라고 당황해하는 여경의 모습을 본 뒤로 마음은 자꾸만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 아아니.”
의외라는 듯 태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재활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여경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알았어.”
그녀가 부지런히 침대 주변을 정리했다. 여수 인근의 작은 요양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그녀가 어떻게 종일 내 곁에 붙어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너 일 그만뒀어?』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할까. 왼손으로 쓴 글씨는 삐뚤빼뚤 가관이었다.
“응. 서울에서 일자리 알아보려구. 오빠 돌보려면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여야 하잖아.”
그녀가 왜? 기자랍시고 평생을 떠돌던 아버지도, 어린 나를 지리산에 맡기고 떠나버린 어머니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왜? 같은 어머니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녀가 희생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지 마. 네가 왜?』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나한테 미안하면 얼른 회복하던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안부는 세 번째 결혼 소식이었다. 세 번의 결혼이라니. 두 번의 이혼을 거치고도 또다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다. 이혼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선택에 좌지우지되는 가족들의 삶과 남겨진 상처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오빠. 난 누구보다 오빠 믿어.”
“…….”
“결국엔 해낼 거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구.”
그녀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스쳤다.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나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경도 그럴까. 문득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며칠 전 재회한 이후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주치의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언어 재활을 하지 않겠다고 극구 거부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다른 누구도 아닌 신태영이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지금의 모습도 나일까. 끝까지 부정하고 싶고 한없이 외면하고 싶은 지금의 내 모습도 결국엔 나일까.
“여경 언니가 그러더라구. 오빠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자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면서.”
여경이 그런 말을 했구나. 과거의 나를 알던, 그 누구보다 잘 알던 그녀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구나.
“오빠가 밉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 여전히 밉고 원망스럽대. 그래서 오빠한테 꼭 대답을 듣고 싶대. 그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안경 아래로 말간 액체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희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다니.
그녀가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무슨 의미의 눈물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어디선가 낮고도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경이었다.
“신태영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