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에 샤스타는 아차! 하고 혀를 찼다. 누가 반장인지를 안 정해줬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그러나,
마론과 리아는 인상을 구기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누구를 반장으로 임명해야 되나? 누굴 임명한다 하더라도 한쪽은 틀림없이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겨우 사이가 좋아진, 아니, 완전히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침보다는 좋아진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버리게 될 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장은 당연히 나겠지. 안 그래, 리아 부반장?”
“어머나, 무슨 농담을 하는 걸까나? 당연히 내가 반장인 게 당연하잖아, 마.론. 부.반.장?”
두 사람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반 학생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람 모드로 들어갔고, 제라늄은 서둘러 내기 판을 꺼냈다.
탕!
그러나 그보다 한발 먼저 샤스타가 교탁을 쳐서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주위를 끈 것과는 달리 샤스타는 굉장히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건 어떨까요?”
“에에?!”
학생들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마론과 리아는 납득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일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죠?”
샤스타는 필사적이었다. 겨우 돌아온 교단에서의 첫날 수업 중 그나마 정상적으로 진행한 마지막 시간까지 엉망으로 만들면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둘은 전혀 납득 못하겠다는 표정인 걸요?”
제라늄의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론과 리아는 제라늄의 말대로 절대 납득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제의 일은 어떻게 해결됐다 치더라도 둘은 여전히 앙숙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의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반장이란 직책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그것도 가위바위보라는 방법으로.
“그렇다고 말싸움으로 결정짓는 것도 우습지 않나요? 그리고 어차피 진짜 반장을 정하기 전까지 임시 반장 직인데 그렇게 열을 낼 필요는… 아, 그렇지! 그럼 내일 반장 선거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 말에 마론과 리아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마론, 도망갈 생각 말고 반드시 입후보해.”
“그쪽이야말로 귀찮다는 변명 따위로 입후보 안 할 생각하지 마.”
이것으로 내일 반장 선거에 마론과 리아의 입후보는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내일 또 누군가 입후보는 해주고 표가 갈려서 반장과 부반장이 정해지면 드디어 마법 특수반에 재미없게도 평화가 올 것이다.
“자, 그럼 아까 말하던 것인데 반장은…….”
마론과 리아는 즉시 서로를 노려봤다. 샤스타는 즉시 말을 정정했다.
“반장 겸 부반장인 두 사람은 저를 따라와 주세요.”
샤스타는 간신히 첫날 수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교단에서의 첫날, 이날은 샤스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날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샤스타의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일단 입후보자는 단 두 명. 마론과 리아뿐이었다. 둘은 소신을 가지고 학급을 위해 일하겠다는 연설을 했다. 그리고 투표가 시작됐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투표함 개봉은 바이올렛과 디옴이 했고, 결과는…….
마로니에 루드베키아: 19표
리아트리스 헤본 에르미야라스: 19표
거짓말처럼 딱 반으로 갈려 동표였다.
“꽤 하는군, 리아.”
“너도 마찬가지야, 마론.”
마론과 리아는 웃으면서 서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어째서 둘만의 공간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일까?
한편, 제라늄은 남 몰래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쥐고 ‘예스!’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 투표는 그가 조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로 재미를 위해서다.
잘했다, 제라늄!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샤스타는 어떻게 해야 될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대로 재투표를 해봐야 결과는 뻔하니 의미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스럽게 둘이 알아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승부하자, 마론!”
“뭘로?”
“이번 중간고사 성적으로 정하는 거야! 반장으로서 반 아이들의 신임을 얻는 결과는 방금 전 투표로 동점이라는 것이 증명됐으니 남은 것은 실력을 겨루는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호오, 그래서 마법 공부로 승부를 하자는 건가?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는데도 굳이 시험 결과로 하자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흥! 비록 수석을 놓치기는 했지만 나 역시 공부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입학시험에 졌던 빚까지 갚아주겠어!”
“좋았어! 그 승부, 받아주마!”
마론과 리아는 샤스타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샤스타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열심히 하세요’라고 격려해 줄 수밖에…….
“그럼 그동안 임시 반장은…….”
샤스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론과 리아는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임시직이니 제발 평화롭게 갑시다.”
샤스타는 골치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국 임시 반장 직은 가위바위보에 의해 마론으로 결정됐다. 그때 분해하며 마론을 노려보는 리아의 모습은 학생들의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정도로 무서웠다고 한다.
[소년과 소녀는 화해했다 아마도……. 2]
봄이 끝나가고 이른 여름이 찾아올 때쯤 폭풍과도 같은 중간고사가 끝났다.
결과는 놀랍게도 리아의 승리였다.
그러나 정작 승부에 이긴 리아는 마음껏 퉁퉁 불은 얼굴로 삐쳐 있었다.
“졌다. 완패야, 리아 반장.”
“놀리는 거야?”
리아는 사나운 기세로 마론을 째려봤다.
“놀리다니? 종합 성적 1등은 리아, 그리고 2등은 나인걸. 그러니 솔직하게 졌다라고 말한 것뿐이야.”
“그래, 종.합. 성.적을 보면 내가 1등이지. 하지만 마법 과목은 하나같이 참패잖아? 마법 과목 올 만점인 반.장. 마.론.”
그렇다. 종합 성적, 즉 마법과 관계없는 예절 교육과 예법, 역사, 지리학 등등에서는 리아가 우세였다.
물론 마론에게 귀족들이 익히는 예절과 예법 교육에서 좋은 점수를 따는 것은 무리가 따랐다.
그러나 마법 과목에서는 마론의 독무대였다. 마법 전 과목 만점. 그것이 마론의 마법 성적이다.
반면 리아는 여섯 문제를 놓치는 바람에 마론에게 진 것이다. 그러니까 마법 과목에서만 말이다. 그런데,
“잠깐, 전에는 마법과 관계없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배워야 된다고 잔소리를 해놓고서 어째서 승부에서는 종합 성적은 관계없다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해도 반장은 리아야. 네가 이긴 거라고!”
“난 어디까지나 입학시험에서 진 빚을 갚는다고 했잖아! 입학시험에는 당연히 딴 과목은 나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마법 과목으로 다시 한 번 진 나는 확실히 진 거야. 더는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 마론 반장.”
“그건 그거고, 내기와는 별도였어. 너야말로 사람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 리아 반장.”
“난 별도라고 말한 적 없어! 마론이야말로 가련한 소녀의 프라이드를 어디까지 깎아내릴 참이야?!”
“별도가 아니라고 말한 적도 없잖아! 그리고 보통 자기 입으로 가련한 어쩌고 말하냐? 제라늄도 아니고 말이야!”
“카아악! 방금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어! 나랑 제라늄이 닮았다니, 그딴 폭언은 당장 취소해!”
“닮았다고 말한 적은 없어!”
“비슷한 말이었어!”
어느새 말싸움은 원래 목적이었던 ‘누가 이긴 것인가?’와는 다른 주제로 흐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제라늄을 끌고 들어가서 간접적으로 잔인하게 씹어버리는 일로 이미 일상으로 굳어져 가기 시작한 일이다.
“어째서 항상 마지막에는 나를 들먹이며 잔인한 말을 해대는 거야?”
그리고 제라늄은 평소대로 구석에서 훌쩍거렸다.
“그거야 제라늄이 두 사람을 가장 많이 놀려댔으니 은연중의 복수가 아닐까?”
디옴은 쓴웃음을 지으며 제라늄을 위로했다.
“평소 재미있게 놀린 반동이라고 생각하면 샘샘이잖아? 자, 그만 이리 와서 홍차 마셔.”
바이올렛은 제라늄의 컵에 홍차를 따르며 말했다.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데이지가 홍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옆에 앉은 페튜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평화로운 오후. 한 잔의 맛있는 홍차.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가득해요.”
“평화로운은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페튜니아의 옆에 앉은 로우즈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론과 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론과 리아가 여전히 열을 올리며 한판 대결 중이었다.
그날 이후 마론과 리아의 사이는 사이좋은 앙숙이 됐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인 것은 알지만 저 둘의 사이를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이걸로 참아주길 바란다.
아무튼 사이좋은 앙숙이 된 이후로 데이지와 페튜니아, 그리고 로우즈 셋이서 즐기던 티타임에 마론 등이 끼어들게 되었다.
원래는 마론 등은 낄 생각이 없었지만 다음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페튜니아가 찾아와서 ‘기껏 여러분 몫까지 준비했는데 왜 안 왔어요?’ 하며 울먹이는 사건 덕분에 오후 티타임에 오는 것이 마론 등의 자연스런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바이올렛이 페튜니아에게 홍차 끓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오늘은 그 실습을 실험하는 첫날이자 중간고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한편, 열심히 말싸움을 하는 두 사람의 주제는 다시금 누가 반장이 되어야 하는가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도 전날 했던 제라늄의 장난에 대한 응징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마론과 리아의 교묘한 합동 공격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제라늄이 한숨을 쉬며 바이올렛이 따라준 홍차를 마셨다.
“그나저나 오늘은 유난히 오래가는군.”
“그거야 반장이 누구인지 결정해야 되니까 쉽게 결말이 안 날 것 같아.”
“그렇긴 하지만 저러다 영원히 안 끝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두렵다. 아, 이 홍차, 맛있어. 실력이 좋아졌네?”
“후후후, 고마워.”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요 근래 바이올렛의 차 끓이는 실력은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한번은 페튜니아가 ‘이제 안심하고 졸업할 수 있겠어요’라고 할 정도니 스승인 페튜니아와 비슷한 실력으로 성장했다는 소리다.
그나저나 페튜니아님, 아직 졸업하시려면 반년 넘게 남았습니다만…….
“저기 데이지 씨, 슬슬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디옴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데이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네요.”
한숨 쉬며 일어난 데이지는 한창 열을 올리는 마론과 리아에게 다가갔다.
싸움이 끝날 것 같지 않을 때 둘을 말리는 것은 항상 데이지의 몫이었다. 데이지는 말로 하거나 억지로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마론 씨, 리아 씨.”
그렇게 부르며 손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헉!”
“히익!”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론과 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싸움을 중단했다.
“자, 모처럼 바이올렛 양이 차를 만들었는데 친구로서 맛있게 마셔줘야죠? 그렇게 생각하죠?”
“네.”
“네.”
마론과 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