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의지를 무기 삼아 소년은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이미 그것은 열심이라는 말보다는 광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을 소년의 아버지가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소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소년은 16세가 되는 해에 억지로 기사 학교에 입학시키려는 아버지에게 반발해 가출을 감행해서, 마법으로 유명한 학교가 있는 도시로 왔다.
소년의 이름은 마로니에 루드베키아. 16세. 적당한 길이의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온순해 보이는 인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론이라 불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여자 같은 자기 이름이 싫어서 스스로 붙인 애칭이다.
혈기 넘치는 젊은 나이로 꿈과 희망을 안고 왕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로 통하는 마법 학교 글록시니아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힘차게 돌진했다.
“시험 접수 비용은 실기 시험 교재 포함 5골드입니다.”
예쁜 여자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어마어마한 금액을 아무것도 아닌 듯이 요구했다.
그 금액은 보통 서민들의 석 달 치 생활비였다.
마론은 접수 창고 앞에서 좌절했다.
불타오르는 의욕은 도시에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돈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꺼져 버린 것이다.
더구나 마론을 더욱더 절망에 빠뜨린 것은 입학금과 수업료가 천문학적인 가격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조금씩 저축을 해서 모아온 돈은 접수비로도 모자랐다.
애초에 수석을 차지해서 장학금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그 뒤도 문제였다. 알아본 바로는 마법 교재나 실습 재료는 직접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구하는 거라면 목숨 걸고 서바이벌이라도 해서 구하겠다는 의욕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돈을 주고 구해야 되는 것이라면 마론에게 절대로 무리였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
어릴 적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가 철들고 나서는 증오하게 됐던 중년 마법사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마론은 온몸으로 체험했다.
지난 10년간 죽어라 공부만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고향으로 돌아갈까? 기사라……. 그것도 괜찮을지도. 하아, 공부밖에 안 한 내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드디어 마론은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운명이란 어느 순간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의 계기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짐을 들고 일어서는 마론의 앞으로 한 장의 종이가 떨어졌다. 원래 벽보로 붙어 있던 종이인지 뒷면에는 말라 버린 접착제의 흔적이 있다.
마론은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집어 들고 읽으면서 역으로 향했다.
『마법에 학구열을 불태우는 젊은 인재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하아, 비싼 마법 학교 선전문인가?’
라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갔다.
『우리 사프란 마법 학교는 역사는 비록 10년으로 짧지만 아름답고 예의 바른 대마법사 베고니아를 배출한 우수한 학교로…….』
‘그래, 그래. 우수한 학교라서 비싸다고? 다 알았다고, 돈 없으면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다는 빌어먹을 진리를. 우라질!’
속으로 욕을 하던 마론은 종이의 중간쯤을 읽어갈 때 점점 눈이 빛났다.
『수석으로 입학하는 학생에게는 입학금과 수업료 면제. 그것뿐만이 아니라 각종 마법 교재와 재료도 무료로 제공하며, 성적이 좋은 학생은, 요청하면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실력만 있다면 범죄자라도 환영-예를 든 겁니다. 진짜로 범죄자가 오시면 곤란해요-합니다. 마법 실력에 자신 있습니까? 실전은 잘 하지만 이론이 안 되십니까? 이론은 되지만 실전에 약하십니까? 걱정 마시고, 망설이지 말고 신청하세요. 졸업 후 달라진 자신의 실력에 놀라실 겁니다. 지금 신청해서 합격하시면, 이럴 수가! 고급 교과서가 무려 공짜, 고급 마법 교재가 공짜입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교복과 구두, 각종 의류도 공짜로 지급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신청하세요.』
거기까지 읽은 마론은 즉시 종이에 표시된 장소로 달려갔다.
마지막에 싸구려 제품 선전할 때나 사용하는 말투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렇게 멋진 학교가 있었단 말인가? 마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사프란 마법 학교 시험 접수 창고에 도착한 마론은 실망했다.
생각해 보니 시험을 칠 돈이 없었다. 기세 좋게 달려와서 줄을 선 것까지는 좋았지만 눈앞에서 낼 수 없는 금액을 요구하는 그 아픔을 또 한 번 맛봐야 된다.
‘나, 무엇에 들떠 있었던 걸까? 어차피 세상은 돈 아니면 안 되는데.’
마론은 알고 싶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오세요. 이름과 나이를 말해주세요.”
“예? 네.”
세상에 대한 욕을 한없이 퍼붓고 있을 때 어느새 마론의 차례가 된 것이다.
“마, 마로니에 루드베키아 열여섯 살입니다.”
“어머나! 좋은 이름이네요. 굉장히 부드럽고 예쁜 이름이에요.”
접수창구에 앉아 있는 흑발의 긴 생머리 미인이 웃으면서 마론의 이름을 칭찬했다.
솔직히 마론은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뜩이나 성도 여자 같은데 거기에 맞춰서 이름까지 여성스럽게 지은 부모님을 한때는 원망도 했었다.
그래서 스스로 마론이란 애칭을 지어서 친하게 지내든 한 번 보고 말든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에게는 항상 애칭으로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칭찬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눈앞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진심으로 칭찬해 오자 어쩐지 싫다는 기분이 안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뻤다.
마론은 붉어진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그런가요?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어서 좀 부끄럽네요.”
거짓말.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고, 놀림거리로도 많이 이용됐다.
“어머나! 그랬나요? 무척이나 예쁜 이름이라서 자주 들으셨을 것 같은데……. 생일은 언제죠?”
여성은 정말로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론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아, 아니요.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기,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생일은 왕국력 385년 7월 12일입니다.”
“아뇨. 기분 좋으셨다면 이쪽도 칭찬한 보람이 있네요. 그런데 1+1은 뭘까요?”
“네? 그, 그거야 2…….”
번쩍!
우악! 뭐, 뭐지?!“
마론은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빛이 번쩍여서 깜짝 놀랐다.
“아, 앞의 분이 하는 걸 못 보셨군요? 이건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런데 이전에 다른 학교에 다니신 경험은 있으신가요?”
“사, 사진이요? 아뇨.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여성은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모양을 만들어서 마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그 네모난 모양에 마론의 얼굴을 담고 있는 듯한 포즈였다.
“네, 이렇게 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이 특수한 마법 종이 위에 손을 대면…….”
여성의 손이 마법 종이 위에 올라가자 잠시 후 그곳에 마론의 얼굴이 그려졌다.
아니, 그림과는 달랐다. 마치 물에 비친 듯한 자신의 실제 모습이 종이 위에 그려졌다.
“우와아아아아! 이거 뭐죠? 이것도 마법인가요?”
“네. 사진을 찍는 마법이에요. 처음 보셨죠?”
“네, 마법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마법은 정말 처음 봤어요. 독학으로 공부할 때도 이런 마법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긴, 그럴 거예요. 별로 실용적인 마법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을 거예요. 아, 그런데 사는 곳은 어디시죠?”
“네? 어째서죠? 이거 초상화보다 훨씬 정교한 그림인데……. 아, 사는 곳은 상당히 멀어요. 시골이거든요. 노릅 마을이란 곳에서 왔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진을 담을 특수한 마법 종이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거든요. 음, 그럼 이 도시에서 지내고 계신 곳은 어딘가요?”
“비싼가요? 일단 여관에서 묵고 있습니다. 이름은 덴파레 여관입니다.”
마론은 어느새 까다롭거나 힘들다는 것은 바로 돈에 결부시켜 버리게 됐다.
“아뇨. 어느 쪽이냐 하면 재료비는 굉장히 싸게 먹히는데 만드는 시간과 수고가 굉장히 많이 들거든요. 차라리 그 시간에 몬스터 퇴치를 하거나 모험가 조합의 의뢰를 맡아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돈이 돼요. 그래서 실용적이지 못한 마법이라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음, 덴파레 여관, 덴파레 여관.”
“아, 네. 그렇군요.”
마론의 예상은 어느 의미로는 절반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결국 이런 신기한 마법이 빛을 못 본 것도 그놈의 돈 때문이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인가?
마론은 가슴속 깊이 누구에게 퍼부어야 될지 모르는 분노가 치솟았다.
“자, 다 됐습니다.”
여성은 어느새 완성된 서류를 마론에게 내밀었다.
“예? 네.”
마론은 얼떨결에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곳에는 아까 여성과 잡담 중에 질문 받아서 대답한 자신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
옆에서 듣기로는 정신없는 잡담의 연속이었지만 여성은 그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해치웠던 것이다.
마론은 얼떨결에 서류 작성 절차를 전부 끝마친 것이다. 그녀는 프로였다.
“아, 저기, 그런데…….”
마론은 그녀에게 접수비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까 당했던 창피를 또 당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더구나 잠깐 이야기한 것뿐이지만 이 여성의 앞에서 ‘돈이 없어요’ 라는 궁상을 떨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시험에 합격하면…….”
여성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로니에 군은 제 후배가 되는 거네요.”
“네?”
“제 이름은 페튜니아 나이트슈마허예요. 이 학교 3학년이에요.”
여성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제야 마론은 여성, 아니, 페튜니아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합격하면 이 아름다운 여성의 후배가 되는 것이다.
여자 선배.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벅찬 울림인가! 더구나 친밀도에 따라서는 누나라는 달콤한 업그레이드도 가능한 아름다운 언어다.
더구나 페튜니아같이 아름다운 여자 선배를 모시게 되는 것은 남자로서 최대의 행운이며 불타오르는 상황인 것이다.
마론도 틀림없이 이 행운을 기뻐하며 마음속 깊은 곳의 하트가 불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불태운 적 없어!”
“네?”
“아, 아뇨. 지금 무언가 엄청나게 사악한 의지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뭐라고나 할까…….”
사악해서 미안하군.
아무튼 얼굴이 빨개져서 쩔쩔매고 있는 마론을 보며 페튜니아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후, 그럼 힘내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후배 마로니에 군.”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드시 합격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며 마론은 접수장을 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페튜니아가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프란 마법 학교는 시험 치는 데 돈도 요구하지 않는구나. 크흑, 살아 있길 잘했어. 아직 세상에서 버려진 것이 아니야. 이렇게 인간미 넘치고 따뜻한 장소가 남아 있잖아? 결심했어. 나, 반드시 이 학교에 합격하고 말겠어! 반드시! 응원해준 페튜니아 선배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소년 마론은 새로운 야망에 타올랐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마론은 돈 걱정에 앞의 사람들이 어떻게 접수하는지 보지 못했다.
마론이 가고 난 뒤의 접수장은 다음 사람이 접수를 하고 있었다.
“만약 시험에 합격하면 ○○○ 군은 내 후배가 되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후후후, 그럼 힘내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후배 ○○○ 군.”
“네, 네! 반드시 합격하겠습니다!”
페튜니아는 아까 마론에게 했던 격려에서 +, - 하나 없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마론이 접수하기 이전부터 계속 저 격려문의 반복이었다.
즉, 아까 마론에게 했던 말은 페튜니아의 영업용 스마일과 격려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점을 알면서도 여자 선배라는 환상적인 울림에 기뻐했지만 마론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마론은 그런 사정은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정말로 자신 ‘만’을 격려해 주었다 굳게 믿고 있으니…….
하지만 뭐,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딴생각을 하느라 듣지 못했던 마론이 처음의 말에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페튜니아는 자신의 이름과 학년을 가르쳐줬다.
작은 차이지만 그래도 그런 차별화된 점이 있으니 특별 취급당했다고 기뻐하는 것에 조금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솔직히 그것도 없었다면 마론이 너무 불쌍하다.
“수고했어.”
“아, 로우즈 양. 고마워요.”
로우즈라고 불린 여성이 어느새 페튜니아 뒤에 나타나서 차가운 아이스티를 담은 찻잔을 내려놨다.
그녀의 이름은 류베로우즈 에르카. 키는 186센티로 웬만한 남자보다 컸고, 푸른색 머릿결을 섹시한 목덜미가 보일 정도로 짧은 커트머리였다.
그래서인지 얼핏 보면 미형의 남자로도 보였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스커트가 그녀는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아, 지쳤어요. 오늘 하루 300명은 찍은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 사진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페튜니아뿐인걸.”
“그렇죠. 여학교에서 남자를 뽑는다는 것을 알고 몰려드는 남자 중에 꼭 좋은 목적으로 오는 사람만 있을 게 아니니 대리 시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진이 가장 확실하니까요.”
페튜니아는 로우즈가 가져온 달콤한 아이스티로 계속 혹사당했던 목을 축였다.
“아~ 아~ 달콤해~”
“아무튼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어. 오늘 밤은 푹 쉬라고.”
로우즈는 어느새 페튜니아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아~ 음, 으응, 아앗! 하아아~”
누님, 어째서 한숨 소리가 관능적인가요?
“후우, 하지만 누군가가 푹 자게 해줄지 의문이네요.”
“아, 눈치 챘어?”
“같은 방에서 2년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예요.”
“후후후, 페튜니아는 가끔 가다 참을 수 없게 귀여운 말을 한다니까.”
“누군가의 탓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이 대사만 들었다면 닭살 돋는 커플이라고 생각했을 대화를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