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
이소라는 휴대폰을 끊고 바로 전화를 하였다.
“죄송해요! 꼭 받아야 하는 전화라서.......”
“이수성의원인가 보죠.”
“네! 맞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급한 사람은 저니까요. 그런데 왜 또 전화를 하셨나요? 무슨 방법이 있나요?”
“최근에 민재수교수랑 만나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만난 지 조금 되었습니다.”
“민재수교수가 우리 집에서 어떤 존재인지 아시죠! 거의 꼭두각시에 가깝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움직이는.......”
“그런데, 민재수교수 말은 저에게 왜 하시는지요?”
“민재수교수님은 지금 지쳐 있어요. 창피하지만 저의 아버지, 어머니, 오빠까지 필요하면 종을 부리듯 하고 있습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불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오빠들 대학교 때 일, 둘은 학교에서 영웅으로 한 명은 배신자로 둘은 정치인과 교수로 성공의 길을 다른 한 명은 지금 전화 통화하고 있죠. 아마 그 둘은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아버지 그늘 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나요. 그리고 이수성의원이 뒤에 있다는 것은 짐작만 하고 있었어요.”
“제가 왜 기자를 하고 있는지 아세요?”
“뭐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쓴다고 들은 것 같아요.”
“기자를 하면 각종 정보를 수집하기가 쉬워요. 특히 이수성의원을 뒤에 두고 있는 기자는 더 쉽죠. 특종을 계속 주시죠! 그 특종들을 정리하다 보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릴게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길이 있을 거예요. 저도 찾아볼게요.”
“도와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무슨 뜻으로 저를 도와주시는지 알려주면 안 되나요?”
“네! 지금은 ...... 그리고 TV토론회에 저도 갈 것입니다. 만약 민재수교수가 이민구 후보쪽으로 기울면 제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니 편히 준비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재개발문제 말고 특별한 정책이 없습니다. 그게 저의 TV토론회 최대 단점입니다.”
“처음에 왜 국회의원에 출마하신다고 했나요? 그 마음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 꼭 잘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이렇게 나약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젠 끊어야 될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김진성후보님 미행이나 도청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 네 안 그래도 저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진성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는 미소구의 잘 못된 재개발 추진을 막기 위해 나왔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나온 것이다.
정의를 생각하였던 권력의 부조리에 억눌린 자기 인생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신의 장난처럼 상대가 이민구이고 야당에서는 출마를 포기하여 무소속으로 나온 자신과 이민구와의 싸움이 된 것이다.
이민구후보와 같은 지역인 것은 단순히 내가 여기에 주소를 두고 살고 있기 때문인 우연일 뿐이다. 이곳 미소구의 삶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만큼 중요한 건 없다. 왜 사람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지 2년 만에 찬성에서 반대로 바꿨는지, 그건 그들은 삶의 터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좋다는 말과 같이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자기들 삶을 살아가는 일에는 이웃과 여유를 나누며 정의, 규범, 규칙 이런 것이 필요 없이도 잘 살아갈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지켜주려는 법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법을 지키고 살면 더 억울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술자리 안주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이 선거 이민구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 미소구 부자만들기 캠페인처럼 이곳저곳 난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수성의원과 큰 손들은 이미 이 지역에 많은 자금을 투자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동산 시세 차익을 최대로 남겨 자기의 몫을 챙기고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지역에 작업을 들어 갈 것이다.
또한 이수성의원은 시행사, 건설사, 분양사 선정에 간섭하며 저울질해서 더 큰 정치자금을 내 놓고 기분을 맞추는 곳에 특혜를 주고 준공시점검사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입김을 넣을 것이다.
과연 그 많은 돈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자기 개인들이 쓰기에는 너무나 큰돈인데 관리하기도 힘든 돈이고 또 그 돈을 계속 굴려야 할 것인데 그 작업은 누가하는 것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부정을 저지르는 것인가? 김진성은 물음에 물음에 꼬리를 물었다. 단지 이민구와 이수성만의 싸움이 아닌 것이다. 김진성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대로 사무실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 신미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나야. 지금 어디야? 사무실.”
“어! 깜빡 잠이 들었네.”
“지금 집으로 올 수 있어. 집 앞에 못 보던 검은색 못 보던 차가 있어. 수상해. 그리고 나 무서워.”
“그래, 알았어. 바로 출발할게.”
김진성은 ‘검은색 차, 검은색 차, 미행’ 민재수를 만났던 날 보았던 그 검은 차가 생각났다. 그럼 지금까지 날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다. 그 동안 뭐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지만 민재수교수 만남과 이소라기자와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도청까지 했을까? 아니면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 중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수성의원 역시 누구도 못 믿게 만들어 버리는구나! 나를 사지로 몰고 하고 있어. 포기하게 만들려고.
“미진아. 나야”
미진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나야. 무슨 일은 없었어. 겁났지. 이제 괜찮아.”
“어! 나 좀 무서워.”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 같아?”
“몰라 퇴근해서 집에 올 때도 서 있었는데 안에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차문을 열고 나와서 담배만 피우고 들어가고 우리 집 창문 한 번씩 쳐다보고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서 겁이 났어.”
김진성이 커튼을 살짝 올려 밖을 보니 그 때 민재수교수를 만날 때 보였던 그 차량이랑 같은 차였다. 번호는 몰라도 차에 붙어 있는 이미테이션이 똑 같았다.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었구나.
“걱정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혹시 요즘 구청에서 무슨 일이 있어. 혹시 인사발령이라든지?”
“뭐. 특별하게는......부자사망사건으로 과장이 바꿨지. 그런 인사발령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 새로 발령 온 복지과장은 어때?”
“뭐 공무원 과장이 그렇지 뭐 지시......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현장조사만 시키고 있어.”
“그럼 구청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일이잖아. 혹시나 당신이 나하고 부부사이인거 아는 사람이 있었어?”
“물론이지, 당신도 전에 일이 없을 때는 나 외근 나가서 조사하는 것 도와주곤 했잖아. 그래서 당신을 거의 다 아는 사람이야. 재개발지역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기초생활 수급자들, 독거노인, 차상위계층 등 빼고 그냥 일반적인 사람이나 민원이 발생시키는 사람을 있었어. 특히 그런 사람들 중에 먼저 아는 체 한다든지 이상한 점 느낀 사람 있었어?”
“그러게 정신없이 하루에도 여러 명을 만나고 다녔더니 잘 기억이 나질 않네. 그런데 요즘 만나야 될 사람 명단을 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몇 명 끼어 있긴 했어.”
“조심해야겠다. 목표가 내가 아니라 당신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노리고 있는 거야 내가 아니야.”
“무게 무슨 소리야?”
“당신 신분은 공무원이야. 공무원은 선거에 중립을 지켜야하지. 당신이 일반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 그것도 근무시간에 선거운동하려 다닌다고 일을 만들기 딱 좋은 그림 아닐까? 그 과장 믿을 만한 사람인지 이수성의원 쪽 사람인지 모르잖아. 난 그 과장이 수상하게 느껴져. 이 선거는 이민구가 나온게 아니라 이수성이 뒤에서 다 조정하고 있다고......”
“몰라, 다른 구청에서 왔나봐.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했는데, 원래 미소구 사람은 아닌 것 같아보였어.”
“그래 그 과장 조심해라, 이민구 아니 이수성의원 사람 쪽 같아.”
“그러면 그 인간 회식자리에서 내 몸 더듬는 것 다 봤는데 보내버리지. 뭐”
“뭐라고! 그런 일까지 일 있어. 당신은 참고 있었어. 내일 당장 인권인원회에 전화해야겠다.”
“뭐! 그런 일이 한 두 번 인가? 젊었을 때는 더 했는데. 만약 이수성의원 사람이면 인권위원회 전화해도 해결 되었어. 또 다른 사람 보내던지 인권위원회에서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겠지. 그냥 내가 그 사람 유심히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당신 많이 속상했겠구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 나에게 말하지......그럼 그 때 전화했던 날이었구나. 미안하다. 미진아!”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에게 꼭 당선되라고 했지. 왜 그런지 이젠 알겠지.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해. 난 지금 당신이 당신다워 보이니까? 대학교 때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기분 좋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는 모습. 절대 어떤 것에도 비굴하면 안 돼. 알았지. 나가 지금 믿는 사람은 당신뿐이야, 그리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도 잊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을 믿어요.”
“고마워! 지금 당신이 많이 힘든 시간 보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고 있네. 그래 힘내고 열심히 할게. 당신 정말 힘들면 다른 부서로 전출 신청해.”
“그럼 그 쪽에서는 이수성의원의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아. 똑같아. 내가 여기서 과장을 역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 좋겠어.”
“그래, 나는 요즘 TV토론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네.”
“들어 온 김에 쉬어요. 집에서도 조심해야겠어. 되도록 말을 줄이도록 해요. 사무실에서 자게 되면 연락만 줘요.”
“그래! 고마워. 난 다시 사무실로 가야 될 것 같아. 무슨 일 있으면 전화기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전화만 해 내가 바로 올게.”
“네! 수고해요. 포기하지 말고.”
김진성은 이수성의원에게 다시 한 번 놀랐다. 정말 승부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구나! 선거에서 이젠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수성이라는 사람에게로 초점이 맞춰졌다. 승리를 위해서는 이수성의원의 약점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김진성 자신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산이다.
김진성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아내 미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도 걱정 되었다. 갑자기 온 몸을 휘감는 차디찬 느낌이 들었다.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수성, 이수성, 이수성.........’
사무실에 들어온 김진성은 흰색 A4지에 이름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적었다.
'내가 꼭 너 잡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