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군신(軍神)의 별 (2)
#7. 화성정부 정보도서관 열람실. 앞 장면의 연속
-위 영상기록에서 참석자 중에 특별히 조명된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있나?
-추방된 화성생명법인의 사람들 중에 그 얼굴이 있습니다.
-그쪽 통로는 열려 있나?
-필요 정보가 약간 남아 있습니다. 단, 개개의 이름을 밝히지 못합니다.
-재생 가능한 영상을 보여줄 것!
-실사하겠습니다.
#8. 실사된 영상. 지구력2101년. 화성. 스키아파렐리 우주공항
영상은 식민지 시대 초기 군항으로 이용되던 시절의 스키아파렐리 우주공항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단의 군인들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우주선에 오르도록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수선013이 알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확대되어 나타난 영상에는 감시당하는 쪽에 김진욱과 간디가 있었고, 제복 군인들 중에 류우가 있었다.
#9. 화성정부 정보도서관 열람실. 앞 장면의 연속
-저 정보에 연계된 후속 정보가 있나?
-저 장면은 지구 정부의 기록 중에 우연히 삭제되지 않고 남은 유일한 정보입니다. 다른 정보는 모두 통제되었습니다.
-다시 질문 하나. 화성생명법인?
-거부된 질문입니다.
-앞서 언급하지 않았나?
-거기까지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흑장미, 혹은 화성의 검은 장미1000에 관한 정보는?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은 거부된 질문이고 흑장미는 재생번호의 혼미(昏迷)입니다.
-혼미?
-흑장미는 본래 4색 장미극단의 프리마돈나의 예명이었습니다. 재생번호가 붙은 이후 거부로 분류되었습니다.
-다시 질문 하나. 4색 장미극단?
-거부된 질문입니다.
-질문 추가. 로테라는 이름을 쓰는 재생인간의 정보가 있을까?
-로테는 지구계 인류 가운데 흔한 이름입니다. 어떤 로테를 찾는 것입니까?
-한 개인이 그린 여신의 그림, 여신상으로 조각된 생체예술의 중간완성품 로테. 이 조건에 맞는 로테가 있나?
-화성생명법인의 초기 지도자 중에 그 같은 시도를 한 분이 있었습니다. 무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시도였는데, 생체예술 금지법에 저촉되어 실패했다고 기록에 있습니다.
-화성생명법인의 초기 지도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공칠성입니다. 지구 정부의 반군 토벌 때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문 하나. 공칠성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유능한 생명공학자였는데 죽었다- 여기까지입니다. 화성반란사건과 해적선 신천지호의 주요 인물과 연계된 사안으로 지구정부가 삭제한 정보입니다.
-공칠성과 해적선 신천지호?
-거부된 질문입니다.
-공칠성과 로테의 이후 행적?
-기록이 없습니다.
컴퓨터와 수선013의 줄다리기가 길어지자 시종 지켜보던 론773이 입을 열었다.
“정보가 살아있는 곳이 있네. 새로 화성의 식구가 된 영통교의 컴퓨터……”
론773은 다급한 일이 있는 양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몇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마는….”
“한계야. 지금 가려는 곳에 살아있는 정보가 있네.”
-둘. 질문 끝.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0. 화성의 신흥종교 영통회의 집회 현장. #4의 연속
모든 것이 소멸되어 있었다. 수선013은 사람도 건물도 또 다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파괴의 현장을 반세계에 몸을 감추고 지켜보고 있었다.
“왜 저런 파괴를……”
“사막 바오밥나무일세.”
“?”
“바오밥나무는 산소가 부족한 별의 산소공급 수단으로 개발된 환경식물 중 가장 번식력이 강한 나무이지. 그중에서도 사막 바오밥나무는 외계의 행성을 발견하게 되면 제일 먼저 상륙하는 환경지표식물이기도 하여 모든 식민지별의 식물을 대표하고 있는데……
절기마다 수억 개의 포자를 날려 생태계가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폭주하는 식물…… 여행자들의 짐 속에 숨어들어 이웃별을 정복하는 사례도 있곤 하는…… 발본하여 근절하려 드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화성은 몰려드는 외계의 사람들을 사막 바오밥나무로 비유하여 절멸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이야기였다. 뿌리를 뽑아내는 일에 잠깐이라도 태만하면 별은 바오밥나무에 정복되고 만다…… 때문에 전장으로 공인된 곳이 화성이다…… 론773은 화성의 특수상황을 들어 그 논리를 해설했다.
“화성은 군신(軍神) 마르스의 별일세. 지구별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은원을 청산할 수 있는 자유 전장이기도 하네. 외계 우주로부터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지구별의 그릇이 너무 작다네.”
시원의 땅 지구, 우주 안의 지구계 인류는 낙원을 바라고 지구별을 찾지만 정작 지구는 그들을 부양할 식료를 키워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론773의 마지막 설명은 오랜 세월 전장에서 살아온 노병으로서의 탄식이었다.
“싸움에는 상대역이 있어야하고 정의를 집행하려면 악한 세력이 필요하지. 지구별로 가는 도중에 화성에 멈춘 나그네족 무리는 약간이나마 재물을 갖고 있네. 좋은 사냥 목표였다고 이해하면 될 걸세.”
긴 시간 동안의 관람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현재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냥하고, 사냥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당도하는 곳, 화성은 지구별로 순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든 은원을 해결할 수 있는 군신의 별이었다.
“모순투성이의 상황이지만, 저게 저들 세계의 윤리이고 생존활동이라네, 간여해서는 안 되네.”
수선013은 영통교의 컴퓨터를 통째로 머리에 담은 후 론773에게 끌려 본래의 황갈색 대지로 변해버린 그곳을 떠났다. 그에게는 어렵게 얻은 정보들을 분석할 장소가 필요했다.
#11. 지구력 2095년 5월. 화성생명법인. 수선013이 얻은 정보의 재생
두 미인이 전라의 몸으로 무균실 내의 병상에 누워 있었다. 핏기가 전혀 없는 육체가 절대0도로 냉각되어 있었으므로 얼음으로 깎은 조각처럼 보였다.
“최선을 다해 시술을 하고, 회생 여부는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네.”
레이저 메스를 든 로봇팔이 두 여인의 머리를 둘로 갈랐다. 두개골 아래 드러난 두뇌 뭉치는 절대0도로 냉각된 탓에 상아 조각처럼 빛을 반사했다.
“다행히 거부반응이 없는 상대를 구했지만, 두 생명 모두 살아난다는 장담은 할 수 없네. 아무튼 두 환자의 신분이 워낙 대단해 놓으니 조심하기는 하겠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화성생명법인의 수술담당 의사 공칠성이었고, 그의 늙수그레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김진욱과 류우였다. 두 사람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들의 친구 간디는 재생의학 전문가로서 직접 수술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모님은 화성생명법인과 간디의 합작품일세.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에 의해 기획 재생된 18세기의 사람.”
류우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무균실 내의 두 미인은 머리에 이어 가슴이 절개되고 있었다. 두 미인 중의 한 여인은 자신이 잘 아는 장미장원의 첫째 여주인 흑장미의 얼굴이었는데 왠지 낯설어보였고, ‘이모님’으로 지칭된 여인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낯익은 얼굴이어서 수선013은 ‘이 정보의 해석은 도무지…’하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12. 지구력2095년 4월. 4색 장미극단. 수선013이 얻은 정보의 재생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은 ‘4색 장미극단’이 공연한 환상극으로 한 예인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것이었다. 어떤 생체예술가가 빚어낸 인조 생명이 겪는 사랑의 역사가 기둥 줄거리였는데, 고대 지구의 전설을 21세기의 시대상에 맞추어 각색한 것이었다.
“마주 대해 가슴 떨림이 없는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할 수는 없겠지요.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주인공을 맡은 흑장미의 대사였다. 가장 믿었던 여인에게서 이별 선언을 들은 사내는 비탄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어어허허~ 어허허~ 어어어허~”
환상극의 절묘한 점은 말로 표현되지 않은 대사가 관객들에게 각자가 필요로 하는 감동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이었다. 비극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인기 연예인 코넬이 뱉는 신음소리 같은 노래는, 관객들에게 탄식도 감탄도 절망도 될 수 있었다.
-잘 가시오. 난 당신의 거짓 사랑을 진작 알고 있었소.
-아냐! 난 당신을 보낼 수 없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엮어왔는데……
-지금의 사랑이 미덥지 못하다면, 찾아야지. 추억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을……
-잘 사시오. 당신을 잃은 내 인생에 무슨 대견한 점이 있겠소. 나 먼저 가리다. 비극이 없는 세계로.
환상극의 창시자는 유명한 나그네족 김진욱이었다. 21세기판 집시족인 나그네족은 본능의 가식 없는 표출을 통해 인간 소외를 표현하려 한 유랑예인의 집단이었다. 21세기 후반 지구계 인류는 태양계 내의 행성과 위성 몇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으로 탈지구적인 문명의 수준에 달해 있었는데, 발전의 주류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받을 만큼의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 일부 계층에 독점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21세기 말에 몰려온 환상문명의 조류를 천민자본주의의 종결로 보았다. 선택된 신분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문명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는데, 시간의 진행 속도를 월등히 뛰어넘은 문명 발전의 속도에 편승하지 못한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공상과학소설 속의 이야기를 듣는 양 언론을 통해 전달받을 뿐이었다.
당연한 순서로 문명을 독점한 세력을 타도대상으로 한 반체제운동이 일어났다. 소외의 원인을 천민자본주의 문명과 기득권 세력의 야합에서 찾은 일파가 ‘현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부르짖어 나그네족을 형성한 것이었다. 김진욱은 그 일파의 대표급 인물로 자신의 분야인 환상극에 나그네족 사상을 접목시킨 작품을 내놓아 호평을 받고 있었다.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의 지구순회공연을 마치고 화성으로 돌아온 '4색 장미극단'이 극의 고별무대를 갖는다하여 무대를 찾은 시민들 속에는, 김진욱과 류우, 간디가 있었다.
#13. 화성생명법인. 앞 장면의 연속. 수선013이 얻은 정보의 재생
“희망을 가져도 될까?”
“이 방법뿐이야. 다행히 화성생명법인이 돕겠다고 했으니.”
“그들이야 원래 자신들의 식구를 찾는 일이기도 하니 문제가 있을 수 없지. 흑장미가 그곳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지구세계 제일의 재생의학연구소라는 명예가 걸려 있기도 하고.”
그들은 ‘4색 장미극단’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극장 내의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주요 화제는 ‘4색 장미극단’의 단장이자 극의 여주인공이기도 한 흑장미에 대한 염려가 대부분이었다. 류우 가(家)가 극단의 최대 후원자인 탓도 있었고, 지구 순회공연 때에 흑장미가 공연 도중에 쓰러져 재생 불가의 진단을 받은 탓도 있었다. 류우가 극단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한 이유가 흑장미에 대한 애정 표현이었다는 사실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렇더라도 흑장미는 대단해. 그런 몸으로 무대에 올랐으니.”
“마지막이라고 우기는 데는 말릴 수가 없었어.”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돼. 더구나 이모님의 목숨까지 담보로 한 마당에……”
#14. 수선013의 기도실
수선013은 명상에 들어 최근의 사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통회의 파괴현장에서 받아들인 정보들이 경황없이 떠오르는 두뇌를 진정시킬 방편으로, 신을 찾는 외의 방법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을 열어버린 에피메테우스입니다.
이렇게 운을 떼었지만 다음 기도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금기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원죄론자의 두뇌는 제멋대로 온갖 정보를 토해낼 뿐이었다.
-인간은 신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버렸지요. 화성의 현실을 보면 고대 종교의 원죄론이 이해가 됩니다.
-초보적인 군중최면이지요. 종교적인 의식 따위를 성공시키는 데는, 열광하는 척만 하게 만들면 돼요. 조금 특별한 주장을 갖추고 조금 목청을 높여 말하면 스스로 빠져들어 열광하게 되는 게 인간이니만큼.
-우리야말로 주체입니다. 본래 없는 것에서 탄생한 있는 것이 우리이니 우리가 바로 기적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것은 우리의 뿌리일 뿐이고 다른 무엇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사랑한다고요? 무엇을 사랑했지요? 사랑을 사랑한 겁니다. 사랑 행위에 지고선을 두고 엉뚱하게 끌어들인 게 신이었죠. 인간의 사랑 따위, 신은 진작 정체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지구교 화성총본부의 사제인 론078이 자신의 종교를 공격하고 있었다. 수선013은 두뇌가 제멋대로 조형해 낸 악몽을 떨치려고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혼돈을 극복하는 방법은 방관하는 것. 신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우주로 나가야…… 옛적 일개 민족의 민족신이었던 분이 지구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신이 되셨듯이, 우주시대에는 우주 신으로 변화할 수밖에……
수선013은 정신계는 경황없이 떠오르는 정보들이 서로 엉켜 감탕이 되어 있었다. 지구교의 유일신, 해적선 신천지호, 김진욱, 류우, 간디, 장미장원, 황금전함, 흑장미와 네 자매, 로테와 공칠성, 그리고 마지막에 본 ‘이모님’이라는 여인……
‘이모님’을 언급한 정보 속의 영상을 새긴 순간, 수선913의 두뇌는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고 탄성을 흘렸다.
“타이탄이야. 타이탄의 장미장원에 열쇠가 있었어.”
왠지 낯설어 보이던 흑장미와 낯익어 보이던 ‘이모님’이라는 여인…… 두 얼굴이 하나로 될 때……
파괴된 영통회의 집회에서 얻어들은 ‘저주의 별 타이탄’이라는 말이 되새김되었다. 수선013은 자신의 기도가 통하여 신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고 믿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