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천년 주점 ‘언제나 장미가 피어 있는 곳’(2)

　#6. 우주력 1세기. 지구력2070년. 화성. 화성생명법인에 관한 기록에서 재현

　 화성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지 않은 별이었다. 황갈색 대지가 연속될 뿐인 경치 속에 정착한 지구인 이주민들은 당장 숨을 쉴 수 있는 대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약간 있는 공기는 그나마 인간이 숨 쉴 수 없는 이산화탄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공기의 정화는 생몰과 직결된 시급한 문제였다.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화성생명법인이 변종 식물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을 때 이주민들은 대기를 바꾸는 방법을 식물에 의존한 초기 지구의 역사를 기억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실제로 ‘검은 장미1000’의 본격 재배가 시작된 이후 화성의 대지는 인간이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산소를 만들기 시작했고, 맑은 공기를 맛본 이주민들은 즐겨 화성생명법인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렇게 불모의 땅 화성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지구력 21세기 말의 세상에 선보인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은, 필요 외적인 분야까지 영역을 넓혀 본격 진화를 시작했다.

　 식물형‘검은 장미1000’이 세상에 나온 얼마 후 애완동물과 인간의 대역으로 동물형‘검은 장미1000’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파괴예술(破壞藝術), 그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생체예술(生體藝術)이 개화기를 맞을 때의 사건이었다.

　 소문은 곧 상품화를 불렀다.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은 산업으로 자리 잡아 화성세계 밖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이용한 예술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던 지구정부는 칼을 빼들어 재제를 가했고, 은혜를 입은 화성생명법인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자 이주민들은 너나없이 무기를 들었다.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이 세상에 나온 지 5년이 채 못 된 시각에, 태양계 제4행성 화성은 독립전쟁의 열풍으로 휩쓸려들었다.

　#7. #5의 연속. 원시 행성 ‘푸른 게’별 성역. 황금전함

　 ‘푸른 게’별 성역을 지키는 황금전함의 전력은 함대 급의 대군이었다. 황금전함은 선수를 돌려 ‘푸른 게’별 성역 밖의 우주로 항진을 했다. 타이탄의 무역선 장미13호가 선교선의 명목을 걸고 우주로 나온 이면에 상선 복분자호를 비롯한 김진욱B계열의 부추김이 있었고, 제일의 적으로 꼽고 있는 김진욱A계열의 숨은 응원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던 탓이었다. 김진욱 일문의 본가인 A계열은 해적선 신천지호 일맥뿐이었기 때문에, 황금전함의 함장인 류우399는 1급 경계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우리 가문과 해적선 신천지호는 500년의 구원(舊怨)이 있다. 승패 간에 싸움도 많았지만, 300년 전의 은하대전 때에는 압도적인 전력을 갖고도 일개 해적 집단에 몰려 멸망 일보 전까지 갔었다. 경적필패라는데, 그 쉬운 진리를 몰랐던 거지.”

　 류우399의 곁에는 가장 신임하는 참모인 류우401이 있었다. 두 사람은 2대의 전생테를 격하여 할아버지와 손자 격인 동류의 복제로 서로 뜻이 통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타이탄의 장미장원과 은하연방은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일개 유인위성이 대국 은하연방을 상대로 독립을 행사하게 된 이면에는 우리 류우 가계의 흑장미 가계에 대한 은원간의 역사가 작용한 비사가 숨어 있다.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세부 기억에 유실된 곳이 많아 정확한 사정이 전해지지 않지만, 류우 가계와 흑장미 가계의 은원사에 해적선 신천지호의 김진욱과 간디 가계의 인연이 겹쳐 현재의 우주 질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대대로 전승되어온 은하연방의 숨은 역사이다.”

　 류우399는 류우401을 상대로 장미13호에 대한 대책을 논하면서 그 같이 말해 기억 밖의 지식을 전수했다. 사건이나 상황의 기억은 복제로 전할 수 있지만 경험은 연륜에 비례한다는 것이 류우 가문의 주의였다.

　 “장미13호는 타이탄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전함이다. 상선으로 위장하고는 있지만 위장을 벗어 던질 경우 우리의 일개 함대나 해적선 신천지호와 필적할 만큼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류우399는 ‘푸른 게’별을 조사할 탐사대의 장으로 류우401을 임명했다. 자신과 복제 계통이 다른 방계의 혈족이지만 유전인자는 온전히 같은 류우401은 함대 내에서 그가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인물이었다. 류우401은 타이탄의 독보적인 생산품인 장미주의 마력에 중독되지 않은 함대 내 하나뿐인 인물이기도 하였다.

　 “장미13호나 해적선 신천지호, 혹은 무역선 복분자호 패거리들이 무슨 잔꾀를 부릴지 모른다. 장미13호가 우리 함대의 통제권 밖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고, 해적선의 출몰이 의심되는 정보가 들어와 있기도 하니,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해라.”

　 류우399는 류우401에게 함대를 나누어 주어 떠나보낸 후, 탁자 위에 보배처럼 모셔진 장미주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장미13호는 반송한 장미주와 함께 증거 자료로서 ‘화성의 검은 장미 1000’을 다시 보내 왔으므로 류우399는 처치에 곤혹을 느끼고 있었다.

　 (화성에서는 우리 류우 가계의 선대가 곤욕을 치른 역사가 있었지. 아냐, 화성이 모든 은원의 시발처였지 싶군. 지구별과 타이탄을 포함한 세 개의 별이 벌인 혼돈의 역사. 하기는 우주 어디에도 그들과의 싸움터 아니었던 곳은 없었지만.)

　 류우399의 상념은 해적선으로 의심되는 함대의 내침을 알리는 상황 변화가 있고서야 끝을 맺었다.

　#8. 앞 장면의 다른 시각에서의 연속. 황금전함 ‘푸른 게’별 탐사대

　“경계를 강화할 것. 해적선, 혹은 타이탄의 세력으로 의심되는 전선 집단의 ‘푸른 게’별 진입 시도가 있었음. 현재 교전 중.”

　 류우401이 탐사대를 이끌고 ‘푸른 게’별로 진입한 후 받은 첫 번째 통신문이었다. 해적선과의 전투는 류우 가문이 세대를 이어 해온 싸움이었으므로 류우401은 곧 함대에 전투준비의 명령을 내렸다.

　 “함대 1급 경계! 모든 전투원은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무장을 갖추고 대기할 것!”

　 선대의 류우들이 가진 기억은 후대의 류우들도 나누어 갖고 있었다. 때문에 해적선 신천지호와 타이탄의 장미장원에 대한 추억들은 류우401의 추억이기도 했다. 류우401의 상념이 류우399의 것의 속편이 되는 이유였다.

　 (해적선 신천지호의 내습이라면 대환영이지. 그들과 우리의 은원간의 갈등이 해결되려면 한바탕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걸.)

　 제1대의 류우는 제1대 흑장미의 연인이었다고 했다. 일부 기억을 지운 선대들 때문에 두 연인이 적이 된 이유는 비사가 되어 있었지만 개요는 적확히 전승되고 있었다. 음유시인들이 노랫말로 만들어 우주 안팎에 전파한 류우가(家)의 비사는, 후대에의 전승을 꺼렸을 만큼 굴곡이 많았다.

　 “생명의 기운입니다. 핵에 도착했습니다.”

　 관측병의 보고였다. 핵이 되는 부분에서 생명력이 감지된다는 보고서는 진작 확인하고 있었다. 그곳 어디에서인가 상도를 벗어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었다. 류우401의 상념은 관측병의 보고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을 시작했다.

　 (무엇이 그들을 이 보잘것없는 별로 모이게 했는지 밝힐 순서가 되었군.)

　 ‘푸른 게’별의 중심에 위치한 핵은 격렬한 회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주 먼지의 모임인 원시 성운이 별로 변하는 첫 번째 순서인 혼돈의 구현이었다.

　 (사실임이 확인되었다고는 하지만, 저 핵 속에 생명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 걸.)

　 생명은 적당량의 물과 적당량의 중력과 적당량의 빛과 적당량의 기적이 조화를 이룰 때 생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류우401은 ‘푸른 게’별의 핵을 보며 기적 외에는 전혀 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원시 성계에서 생명계가 탄생한 데 대해 경이를 느꼈다.

　 “강력한 적과 교전 중이다. 임무 수행에 만전을 기할 것.”

　 류우399의 전언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하루를 넘긴 시간이었다. 통신 스크린에 나온 류우399는 아군의 승세를 확신하고 있는 모양으로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밝은 표정이었다.

　 (적도 끈질기기는 하군 그래. 우리 류우 일가의 함대를 상대로 잘도 버텨 주는 걸. 부디 내가 탐사를 끝내고 돌아갈 때까지 도망치지 말아주기를.)

　 류우401은 직접 하선하여 탐사대를 지휘할 결심을 굳혔다. 사령선 내에 발 뻗고 앉아 보고서를 기다리는 방식은 류우 일가의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화성의 검은 장미 1000’이라, 우주 안에 유명한 ‘언제나 장미가 피어있는 곳’의 특산 장미주(薔薇酒)의 원종이 저 곳에 있는 이유를 알려면…)

　#9. 위와 같은 날. 황금전함 ‘푸른 게’별 탐사대. 속1

　 황금전함 함대의 탐사대가 ‘푸른 게’별의 핵 속으로 진입하는 도중에도 ‘푸른 게’별 외곽에서의 전투는 시시각각 속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적은 뜻밖으로 강력하여 전투는 육탄전으로 승부가 결정될 듯싶다는 전언이었다.

　 류우401은 우주전에서의 육탄전이 어떠한 것인가 실전으로 배워 알고 있었다. 개개의 전투병이 빛을 추월하는 이동 속도를 갖고 있었으므로 적과 부딪치는 행동 이전에 죽음이라는 결과가 오는 모순 속의 상황이 우주시대의 육탄전의 핵심이었다. 소위 마이너스 시간 속에서의 전쟁인데, 때문에 전투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봉쇄’하려는 시도와 ‘기왕에 일어난 사건은 거스를 수 없다’는 물리 법칙을 이용한 초광속 세계에서의 느린 살상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행동을 일으키고 상대로 하여금 다음 행동을 시도할 수 없도록 죽음을 사실화시켜 두어야 했으므로 전투병들은 죽임을 당해 멈춤이 강제될 때까지 눈부시게 움직여야 했다.

　 외부에서의 시각으로 본 전투는 서로 충돌 이전에 죽어 쓰러지는 기이한 것이었지만, 기실 초광속계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전투병들은 각기 마이너스 시간 속의 현실을 확인하고 있었으므로 그 자체로 일상의 움직임과 같다고 할 것이었다. 물질계와 반물질계의 경계면에서 치르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초광속 운동에 숙달된 전투병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우주력 5세기의 전쟁이었다.

　 (우리가 이기겠지. 작정하고 병력을 동원했으니까. 저들을 유인하기 위해 장미주를 온 우주에 뿌렸고, 떠돌이 음유시인들을 동원하여 소문을 내기도 하였으니…… 게다가 최근에 연구한 전술 훈련은……)

　 초광속계의 전쟁에 전술의 개념을 도입한 전투 집단은 신천지호의 해적들이었다. 한동안 우주는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전투병들이 로마군단을 형성하고 무작정 짓밟고 지나가는 형식의 전술을 도입한 해적들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대 지구별의 패권국가인 로마제국을 괴롭혔던 한니발의 전술을 도입하여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었지. 강력한 보병으로 적의 주력을 막고 좌우익의 기병으로 날개를 펴서 포위 섬멸하는 칸나에회전의 전술을 응용한 적에게 우리는 매번 손해를 보았는데…… 등 뒤에 적이 나타나면 공포를 느끼게 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전쟁의 철칙이지만…… 우리 류우 가의 전문가들은 한니발을 이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자마회전을 연구하여 반격을 했고, 거의 성공하기도 했어. 적의 작전과 개념은 다르지 않지만, 압도적인 전력으로 맞불을 놓는 형식의 전술로…… 그때의 우리 류우 가의 용전분투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주는 은하연방의 차지가 아니었을 걸.)

　 류우 일가의 선대는 해적들의 로마군단 전술에 대한 대비로 능력이 백중한 로마군단의 무한 투입이라는 폭력적인 전법을 택했었다.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적의 날개보다 더 큰 날개를 펼쳐 상대를 포위하는 형식의, 물적, 인적 자원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황금전함 함대의 그 같은 인해전술에 의해, 우주 제일의 용맹을 자랑하던 해적들도 결국 항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한 친구들이었어. 지휘부의 항복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무기를 휘두르다 죽었어.)

　 해적들의 기본 무기는 단발 격발식 총검이었다. 초광속계의 전쟁에서는 한 명 또 한 명, 상대의 초광속계에서의 현장 실존을 확인하며 총을 쏘고 단검을 찔러 넣어야 했으므로 필요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찾은 결과였다.

　 (그 원시적인 무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었던가. 결국 병력의 무한 투입이라는 소모전 끝에 승전을 끌어내기는 하였지만……)

　 그때에 우리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장본인들과 그들을 막아낸 우리가 지금 ‘푸른 게’별 성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생각하니, 류우401은 젊은 투지에 불이 붙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전쟁에서 항서를 썼던 해적들은 대부분 감방에서 생애를 마쳤다는데, 남은 불씨가 살아나서 이런 사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는 데에서는, 그 질긴 생명력에 감탄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때의 적장이 김진욱121이었던가. 이번에 장미장원의 전함을 몰고 온 친구도 B계열 김진욱의 입김을 받은 포교사인 모양인데, 필시 타이탄이 해적들과 내통한 결과인 듯……)

　 “생명체의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관측병의 보고가 류우401의 상념을 멈추게 했다. 류우401은 관측병이 지적한 구름 뭉치 속에서 한 생명체가 세계를 꾸미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생명체는 지구계로 보이는 인간 여성이었다. 여인은 검은 색깔 장미 문양이 선명한 하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길게 딴 쌍갈래 머리를 허리 아래까지 감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