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군신(軍神)의 별 (1)
#1. 지구력 2100년. 이번 이야기의 서장
고대의 지구 예술은 사실상 파괴예술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지구별의 작가들은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어머니를 왕비로 맞아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를 서사시로 만들거나, 남의 아내를 훔쳐 달아난 왕자 때문에 한 민족이 절멸되는 비극의 기록을 냉정하게 써내고는 하였다. 그것이 무대에 올라 춤극이 되고, 영상예술이 되고, 전자예술이 된 것이 지구 예술의 주류였다.
21세기 말, 전자예술의 시대도 시들할 무렵 일단의 파괴예술가들이 고안해 낸 환상예술은, 기왕의 예술이 추구하던 형식을 뒤집는 것을 능사로 했다. 더구나 환상예술의 특성이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관객 개개인의 본능을 현상화하여 성취토록 하는 기능성 예술이 되어놓으니, 평소 꿈꾸던 상황 속의 세계에서 이상으로 갖던 주인공이 되어 희비극을 맛본 관객들은 파괴예술의 마력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인성과 상식의 파괴로 본능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 파괴예술의 목표가 되어버린 21세기말의 현실은, 일상의 평화에서 만족을 찾는 일이 불가능해진 초문명시대가 낳은 목적외적 탄생에 다름 아니었다.
그 해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최고에 달한 해였다. 태초의 우주에 씨앗이 있었다면 씨앗을 수용할 대지가 있었다는 주장이 논쟁의 시작이었다. 태초의 씨앗 밖의 우주를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우주론에 대한 반대론으로 착안된 빅뱅이론 무용론자들의 주장은, 무한 우주론이라는 구시대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우주 개발 초기의 지구계 인류 중 어느 부류의 주장이었는데, 우주는 시작과 끝이 맞물린 순환의 세계이므로 시초와 종말을 구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소위 태초의 대폭발은 본래의 무한 우주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현상의 하나일 뿐 진정한 우주의 시작은 아니라고 하였다. 우주가 터무니없이 넓고 인간의 생애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짧은 데 대한 해답으로 영혼우주론이 등장했고, 학문적인 증명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번져 사람들을 유혹했다.
물질계 우주의 밖은 영혼계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신우주론자들의 논리였다. 인지하는 만큼만 세계를 가진다고 정의하고, 기억의 동시성에 착안하여 무한 우주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려 들었다. 우주의 무한성은 물질 우주에서의 개념일 뿐 영혼 우주에서의 크기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의였다.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적 존재의 생존 공간이 우주라는 뜻이었다.
22세기를 목전에 둔 지구계 인류의 세계는, 그 같은 무리한 주장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혼돈의 바다였다.
#2. 우주력 6세기. 화성. 스키아파렐리 우주공항
우주력 6세기, 화성의 스키아파렐리 우주공항은 홀연 사라지고 나타나는 우주선들이 간간히 보일 뿐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부스터에서 쏟아지는 화염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도 없는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시원의 땅 지구별을 찾아온 외계의 여행자들은 성지로 가기 위한 관문인 붉은 색 대지의 행성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지구별의 우주시대 여명기에 군신의 별 화성을 연구했다는 천문학자의 이름을 빌린 스키아파렐리 우주공항은 외계의 여행자를 위해 반갑지 않은 선물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우주선의 트랩을 내려온 나그네 행색의 수선013을 맞은 화성의 첫 선물은 폭탄 세례였다. 화성의 대기를 처음 숨 쉬는 초행의 지구계 인류는 호흡기를 착용해야 했는데, 캡슐 형식의 산소발생기를 입에 넣는 순간 폭발이 시작됐던 것이다.
호위역을 자처하고 따라온 용병 론773의 진가는 첫 위기부터 드러났다. 폭발이 진행되는 찰나의 시간 동안 수선013은 론773에 끌려 반세계를 경험했다. 홀연 치밀어 오르는 상실감에 오싹 한기를 느꼈다 하였을 때, 수선013은 무형이 강조된 무색의 세계에 들어 있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원초를 찾아 방황하는 서러운 영혼…… 수선013이 스며든 반세계는 그러한 비감으로 엮어진 마이너스 시간계(時間界)였다.
폭탄은 역진의 수순으로 본래의 모습을 찾아 산소공급기로 돌아갔다. 진행 시간계에서 역진 시간계로 이동하고 다시 진행 시간계로 옮겨 오는 시간 동안, 수선013은 지난 열 세 차례의 죽음에서 경험했던 사후세계를 삶의 몸으로 겪었다. 기억을 가진 상태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여행한 수선013의 정신계는 정체를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았다.
“한가하게 아픈 걸 흉내 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론773이 수선013을 끌고 공항 밖으로 내달았다. 정신을 차린 수선013은 총탄의 소나기 속을 헤엄치듯 빠져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적들은 폭탄이 불발된 이유를 알고 있을 걸세. 아마 살인전문가들일 텐데, 저들도 파괴예술의 미학을 추구하는 자들이니 좋은 적수를 만났다 하고 추격해 올 걸. 각오를 하게.”
초소형 대인 미사일이 빛줄기를 그리며 뒤따라 왔다. 론733의 운동은 아광속이었지만 수선013은 그렇지 못했다. “앗!” 하고 놀라는 사이에, 미사일은 수선013의 이마 앞에 멈추어 있었다.
“시간을 정지시켰네. 오래 지속하지는 못해. 곧 추격해 올 걸세. 이쯤해서 반격을 할 테니 눈을 감게.”
감던 눈을 다시 뜨기도 전에 상황은 돌변해 있었다. 수선013은 진행 시간계로 바뀐 화성의 붉은 색 대지 위에서, 머리통이 박살난 시체 몇 구가 구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3. 위 장면의 연속. 지구교의 화성 회당
지구종교연합회의 화성 회당은 지구 종교 제종파의 화성총본부라는 명색을 갖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장식이 없는 도움 형식의 평범한 건물이었다. 수선013은 종교의식을 끝내고 신도들을 배웅하고 나온 사제복의 목회자에게 치하의 인사를 건넸다.
“고대 지구의 종교의식을 잘 보존했더군요.”
“샤먼이죠. 교조들이 경계한…… 신은 간 데 없고 의식만 남은……”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수선013은 그의 온유해 보이는 표정 속에서 자조의 빛을 읽었다.
“론078입니다. 선배님과 동문이지요. 마르스의 인사를 단단히 받으셨다고요.”
사제복의 사나이는 이름과 전생테를 소개한 후 수선013의 핏방울과 먼지가 뒤범벅된 차림새를 살피며 안부를 했다. 수선013은 지구 종교의 정식 의례에 따른 답례를 한 후 물었다.
“론 가(家)의 분이시라면……”
“론은 초기 화성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이름이었습니다. 화성 방언으로 자유시민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지요. 저는 일 세대 화성인의 후예로 화성독립전쟁 때에 지구로 소개된 몇 중의 하나였습니다.
선배님의 일행도 론이셨지요. 그 분…… 론773과는 동족이기는 하지만 핏줄이 같지 않습니다. 동명을 사용하지만 복제 계보를 공유하지 않는 의형제 정도라고나 할까요.”
회당의 주위에는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타이탄의 장미장원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어서 수선013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산소를 만들어 내는 환경식물입니다. 원종은 아니지만 초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화성은 지구인이 정착한 최초의 이주 행성이라서 유적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화성의 검은 장미1000’의……”
“직계 후손쯤 되나요. 아무튼 몇 남지 않은 원종과 흡사한 종자라니까…… 그때는 이놈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더군요.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초기의 지구계 화성인은 산소 없이는 살 수 없었으니까요.”
회당안의 숙소에 자리 잡은 후 론078은 전언이 있다고 하였다.
“지구의 연합회에서 내린 명령입니다. ‘영통회’를 살피고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 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조심하시기를.”
#4. 화성의 신흥종교 영통회의 집회 현장. 위 장면의 연속
“우리는 먼 길을 돌아 화성으로 왔습니다. 왜? 무엇을 찾아서? 오로지 삶의 진리…… 그렇습니다. 생존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별에 실망을 하고 우주를 향해 떠난 지구인 중에 우리 영통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해를 받고 고향별 화성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수선013은 론773과 함께 영통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지구계 종교의 목회자임을 알리지 않고 신도들의 사이에 어울려 사제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좋은 구경을 하시겠나? 원하는 정보를 얻을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유혹을 받아 참석한 자리였다. 수선013은 화성회당의 목자 론078로부터 전달받은 지구교 총본부의 명령도 있고 하여 기꺼이 응했다.
“사건이 있을 걸세. 내 곁을 떠나지 말게.”
론773은 공항에서의 습격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따로 행동하고 있었다. 영통회의 집회는 여러 날 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그가 찾아 낸 사건의 실마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저주의 별 타이탄에는……”
긴 의식의 시간이 끝나고 대표사제의 설법이 시작되는 순간 예고한 사건이 터졌다. 일단의 중무장 병사들이 난입하여 신도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무기를 들어 반격하는 신도들도 있었으므로 집회장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판이 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네. 따라오게.”
습격자들은 총과 칼을 사용하여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불의에 기습을 당한 신도들은 강약부동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워 할 것 없어. 순교자가 되기 위해 화성에 온 사람들이니.”
론773은 수선013의 팔을 끌어 살상의 현장 속을 헤쳐 들어갔다.
“저들이 가져온 선물 중에 통제가 안 된 정보가 있네.”
통제실이었다. 파괴된 컴퓨터 중의 하나에 역진 시간을 걸어 원상을 회복시킨 론773은 수선013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능력은 3초야. 분석은 나중에 하고 우선 저장을 하게.”
밖에서는 영통회의 신도들이 살육되고 있었다. 총성과 비명소리와 폭발음이 간단없이 들리는 혼란 중에, 수선013은 황급히 두뇌를 개방하고 정보를 받아들였다.
-타이탄이 왜 저주의 별로 불렸는가?
-화성에서 패퇴한 세력이 몰려간 곳이고, 항복한 사람들을 모두 유형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타이탄의 유형수들은……
폭발은 이내 그곳까지 따라왔다. 수선013의 두뇌는 짧은 시간동안 단편적이나마 알고 싶은 것을 저장하고 있었다.
#5. 화성정부 정보도서관 열람실. 앞 장면의 직전 장면
수선013은 론733의 안내로 화성의 정보도서관에 있었다. 도움 형식의 건물 전체가 데이터의 바다인 도서관 안에서 수선013은 전자두뇌와 줄다리기를 하였다.
-질문 하나. ‘화성의 검은 장미1000’에 관한 모든 것?
-거부된 질문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해적선 신천지호와 화성 식민지의 관계?
-거부된 질문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타이탄의 장미장원과 식민지 시절의 화성과의 관계?
-거부된 질문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류우 가와 장미장원 간의 은원은?
-거부된 질문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영통회란?
-고대 지구 종교의 일파가 화성의 환경에 맞게 진화한 종단의 이름입니다. 인간 개개가 독립된 신이라는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능력이 개발되지 않았을 뿐 지구계 인류는 선택된 인종으로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지구력 22세기 초기, 화성독립전쟁에서 패배한 불법세력 중의 하나로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추방된 곳은?
-정보가 없습니다.
-최근에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데, 이유는?
-정보가 없습니다. 동명의 이름을 쓰는 다른 무리일지도……
-초기 영통회에 관한 정보는?
-집회 현장에 식민정부의 진압군이 진입할 때의 기록이 있습니다.
-실사를!
#6. 실사된 영상. 지구력2101년. 화성. 영통회의 집회
“인지할 수 없는 세계는 세계가 아닙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사건은 사건을 인지한 주체에게만 성립되므로 죽는 이에게 죽음이 기억되지 못한다면 죽음은 사건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죽었다’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만이 죽음을 사건으로 인식할 수 있으므로, 지성체 된 자는 영원히 죽음을 소유할 수 없는 불운한 존재인 것입니다.”
한 사내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신종교운동의 회합인 듯 보였다. ‘영혼통신회 화성총본부’ 명패가 나타나는 전자막이 화려할 뿐 발언자인 사내도 듣고 있는 청중도 모두 평범한 차림새의 보통 시민이었다.
“최초의 대폭발로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우주는 신에게 반기를 든 어떤 어두운 존재의 거사로 시작되었다고. 신이 인간계를 창조하신 이유는 원상으로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본래의 순수를 찾기 위한 방법론으로 인간을 남과 여로 나누어 만드셨고, 사랑회로를 주어 서로를 그리워하도록 하였습니다.”
청중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열광하는 교도도, 신들린 교주도 없는 조용한 모임이었다.
“우주는 99.9%가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하는데, 이는 신의 뜻이 감추어져 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신이 왜 이렇게 어려운 우주를 만드셨을까요. 신은 우리에게 그 분의 뜻이 읽히는 것을 경계하셨던 것입니다.”
영통회는 지구의 기존 종교에게 이단시되어 우주로 나섰고, 화성은 그들이 택한 첫 번째 기착지였다. 수선013은 그들의 500년 전 집회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우리 우주는 어둠의 세력의 반역으로 이루어진 대폭발을 시초로 봅니다. 우주의 주인에게 반역을 꾀할 만큼 현명한 어떤 존재가 어느 날 반기를 드는 것으로 우주 최초의 빛이 생겼고, 그 빛이 150억 년 이상의 세월을 달려온 결과가 오늘날의 우주이겠습니다.
우주 최초의 반역과 성격이 같은 배신이 고대 지구의 많은 종교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신에게 반기를 든 아들 신이 형제들과 작당하여 주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남매 신이 서로 싸워 제3의 신에게 어부지리를 안기기도 하였습니다.
신, 혹은 신의 아들을 스승으로 모시던 제자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자가 배신을 하여 한 종교가 시작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그 종교의 교리가 신을 전능한 존재로 모시는 데서 복잡한 배경을 갖습니다.
배반은 감히 따를 수 없이 뛰어난 존재에게 질투를 느낄 때 하는 반항과 같은 것입니다. 최초의 우주를 탄생시킨 어두운 존재의 배신이나 2100년 전의 어떤 종교의 배신 역사는, 배신한 당사자가 자신의 하는 일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엄청난 갈등을 겪은 결과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공간영상은 거기까지였다. 폭발음과 물결무늬 형식의 잔상이 이어지더니 끝이 났다. 수선013은 잔상 가운데서 정규군의 복장을 한 일단의 무장 세력들이 진입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진입군과 맞서서 무기를 든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입체 영상이 집중적으로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