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보스는 다휘를 위해 그녀의 작업실을 본관에 만들어주었고, 다휘는 꽤 기쁜 모양이었다.
다휘는 지난 일주일간 우리와 잘 지내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왔다.
말수가 눈에 띄게 부쩍 줄어든 것 빼고는·· 괜찮았다.
“은호야. 신원 확인은?”
“아, 보스. 방금 결과 나왔어요. 9명 중 두 명이 For Luciano 소속으로 되어있어요. 죽은 5명을 포함한 12명은 그 헤드의 하수인들 인가 봐요.”
나는 연구부 채팅방에서 도착한 메시지를 보며 대답했다.
사실 일주일간 우리도 조금 바빴다.
결혼식의 일을 겨우내 마무리 지었고, 다휘의 납치 사건도 슬슬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인질로 잡혀 온 9명은 모두 지하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죽기 직전의 녀석들은 나의 뛰어난 솜씨로 기적적으로 살렸다.
“응. 그 파일 정보부에 보내고, 총기류 감식도 끝났어?”
“2시간 후면 결과 날 거예요. 끝나면 정보부랑 무기부에 보낼게요.”
아침 식사 자리인데도 몇몇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공석의 대부분은 일 때문이었다.
“그래, 그리고 오늘 ‘차례’는 누구지?”
“아, 나야.”
그리고 우리에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다휘를 위해서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일.
일이라고 해봤자 하는 건 없다.
다휘가 워낙 의욕도 없고 말도 없어서 우리가 대책으로 세운 일이었다.
오늘로 4일째 시행하고 있었고, 첫날은 내가 했었는데 생각보다 다휘가 잘 지내주어서 다행으로 여겼는데 큰 오산이었다.
두 번째 날은 다들 출장과 임무가 겹쳐서 되는 사람이 단 한 사람, 선우 님 뿐이었다.
워낙 과묵한 사람이지만 다휘가 조용한 편은 아니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휘는 선우 님을 보더니 처음엔 없는 사람 취급을 했더란다.
이후에는 두 사람은 일절 대화가 없었고, 저녁시간이 되어서 복귀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대부분의 밥을 남겼다.
그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다.
선우 님도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고, 그래서 세 번째 날은 다휘가 그나마 익숙한 진탁 님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다휘는 어제 하루 종일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진탁 님의 노력에도 아무런 말도 없이 작곡 일만 했다고 한다.
이 사태가 지속되면 다휘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예상한 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보스가 다휘를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대부분이 바쁜 이유로 우목 님이 맡게 되었다.
“우목아. 다휘 잘 부탁할게.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응, 알았어. 그럼 나랑 은호 빼고는 전부 외출이야?”
“그래도 저녁이면 나랑 담이 형은 돌아올 거야. 민환이도 본부에 있을 거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일 복귀.”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목 님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씩 미소를 지었다.
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끝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바라봤다.
“은호야. 다휘 단 것 좋아하지?”
“어·· 네. 지난번에 얘기했을 때, 케이크나 마카롱··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나 그럼 잠시 나갔다 올게.”
우목 님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식당을 나섰다.
식당 안에는 나와 보스, 도담 님, 민환 오빠만 남아있었다.
다휘도 없고, 이런 답답한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 밥은 못 먹겠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스와 오빠가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일이나 해야지.
* * *
밖에 나갔다 오겠다며 나선 우목은 3시간이 지나서 점심때가 될 즈음에 본부에 복귀했다.
동시에 그는 다휘에게 본관 앞의 정원으로 나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양손에는 달콤한 냄새로 가득한 박스들이 잔뜩 들려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그는 자신의 수행원들에게도 나누어 들라 지시했다.
덕분에 우목은 두 명의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라? 다휘. 진짜 나와 있네?”
우목이 도착한 곳은 깨끗한 테이블이 놓인 정원의 한복판이었다.
얇고 흰 여름 가디건과 남색의 반팔 블라우스, 흰색 치마를 입은 다휘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목은 다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보다는 기분이 좋아졌나 보네’ 하고 생각하며 그는 다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뒤에 서있던 수행원들이 테이블 위로 상자들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달콤한 향기가 주위로 피어올랐다.
두 사람이 물러가자, 우목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다휘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우목의 말은 다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단 냄새와 우목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다휘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향했다.
그러자 그는 의도 대로인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헝클었다.
“아, 아··.”
애써 빗어놓은 머리가 망가지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탄을 흘렸다.
우목은 그런 그녀를 향해 두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너 11년 전에 일본에서 열린 국제 유스(youth)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 적 있지?”
“네··? 네?!”
다휘의 두 눈이 커졌다.
어떻게 자신의 오랜 과거까지 알고 있나 싶었다.
그녀의 반응에 우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걸 알고 계세요··?” 다휘가 물었다.
우목의 입 꼬리는 호선을 그렸다.
웃고 있던 그는 아무 말 없이 디저트의 포장들을 뜯기 시작했다.
박스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딸기와 초콜릿 등을 활용한 디저트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그는 다휘의 앞으로 얼음이 담긴 커피 한 잔도 내밀었다.
테이블 위로 화려한 상이 펼쳐졌다. 온갖 디저트들이 두 사람을 향해 유혹하고 있었다.
다휘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우목의 행동에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마 우목은 지금 자신의 단식투쟁에 이른 종점을 찍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때 네가 연주했던 곡 말이야, 중간에 사회자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려서··· 한 번, 아주 짧게, 1초도 안 된 시간 동안 끊겼었지? 그래서 1등을 못 하고 2등 했었잖아.”
이상했다.
우목은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휘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우목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자연스레 포크를 들고 자신의 앞에 있는 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1등은 웬 근육이 울퉁불퉁한 까까머리 남자애였지. 키는 산처럼 커서 너랑 같이 서니까 더 대비가 커 보였어. 또 어울리지 않게 연주는 그렇게 섬세해서, 콩쿠르가 끝나고 리포터들이 들이닥쳤지만 그 남자애는 연기처럼 사라졌지.”
다휘는 11년 전의 기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의 두 눈은 우목을 천천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내려앉은 고동색의 눈동자가 잘 어울렸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떡 벌어진 어깨와 검은색 반팔 티셔츠 -우목에게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정장은 입지 않았다- 밖으로 드러난 팔의 근육, 짧은 길이의 머리카락.
그리고 활짝 웃을 때 보이는 특이한 모양의 보조개가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어·· 어?”
다휘가 우목의 모습 위로 겹쳐지는 소년의 얼굴에 흠칫 놀라 의자의 등받이 끝까지 몸을 뒤로 밀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맞춰진 퍼즐에 그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우목 오빠가, 그··· 콩쿠르에서··?!”
우목은 그녀의 물음에 씩 웃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그녀에게 내밀어 보였다.
“그래. 널 처음 봤을 때 한눈에 알아봤어. 나이가 들고 키도 크고 머리색이 바뀌어도·· 여전히 예뻐서.” 우목이 말했다.
그들의 주위로 따뜻한 여름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다휘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그 바람이 가져다준 열기라고 치부했다.
입이 큰 우목이 웃는 모습이 뒤의 여름의 배경과 너무 잘 어울렸다.
“어째서 지금은·· 운동선수에 마피아에··· 피아노랑은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다휘가 말했다.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양 볼을 보며 우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농구 선수였어. 농구는 원래 좋아했던 거고, 피아노도 어릴 때부터 했던 거였고. 그 콩쿠르 이후로 피아노는 접기로 마음먹었지. 이 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늦게 시작했어. 5년 전에 시작했거든.”
그는 다휘에게 손등을 보여주었다.
손등에는 온갖 상처로 가득했다. 그녀는 우목의 손을 어루만졌다.
“어째서·· 농구도 피아노도 손으로 하는 건데··. 이런 손으로는 둘 다 힘들잖아요.”
그녀는 우목의 이야기에 심히 동조되어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우목은 자신의 이야기에 이 정도로 눈물을 보이는 다휘의 반응에 놀랐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사정은 bloody ellipse의 다른 일원들에 비하면 아주, 아주 작은 상처였다.
기껏해야 손가락이 바늘에 찔린 정도.
그래, 이 아이는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여자니까 이 정도로 반응할 수 있는 거야.
우목은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는 다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유가 있었어.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떤 거 길래···.”
다휘의 얼굴을 보며 우목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는 드디어 본론을 찾은 듯했다.
“이 이상은 다휘가 여기에 있는 디저트를 나랑 같이 다 먹어주면 말해줄 거야.” 우목이 말했다.
다휘는 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내어 포크를 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어떻게든 다 먹을 거예요··.”
다휘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붉어졌다.
지금은 꼬르륵거리는 배에서 난 소리 덕분이었다.
우목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휘와 우목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디저트를 하나씩 해치워갔다.
그리고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연호의 집무실에서 서류를 정리 중이던 민환은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