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가있는 우목과 다휘의 방 앞에 기다리고 있는 로이드, 본부로 오고 있는 도담과 선우,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환을 제외한 모두가 회의실에 있었다.
그들이 컨테이너에서 다휘를 구출해오는 동안 연호는 은국에게서 ‘현장에서 유 환 발견.’이라는 짧은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암살부에서 혜혁과 형주를 불러왔다.
덕분에 간부 회의실은 간만에 복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핸드폰에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간부의 단체 채팅방에 로이드가 보낸 메시지였다.
“다휘가 울고 있다고?” 은호가 그의 메시지를 읽고,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연호가 손으로 얼굴 하단을 가린 채 로이드의 메시지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는 손을 움직여 로이드에게 ‘몇 분이나 됐어?’ 라고 보냈다.
「로이드 : 15분 된 듯.」
로이드의 빠른 답장을 보며 연호가 시계를 확인했다.
그는 다휘가 도착하자마자 계속 울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내 모두의 의견으로 진행되었던 ‘다휘에게 혼자만의 시간 주기’가 후회되었다.
“혼자 두는 게 아니었어··.” 연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모두를 둘러본 후, 은호에게 눈짓을 했다.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쳐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럼 간단하게 보고 및 회의 할게요. 다행이도 은국 님이 모든 상황을 보고 들었으니, 컨테이너에 들어간 이후부터 보고 부탁드릴게요.” 은호가 말했다.
그녀는 연호의 뒤로 향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검은 마카를 들었다.
은국은 자신에게 몰린 시선들을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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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다휘를 납치한 게 유 환이 시킨 일이란 거죠? 그는 다휘를 알고 있었고, 우리를 향한 시비가 아니라 다휘를 위해서 휘원 님을 죽였다라···. 심지어 휘원 님의 정체도 모르고. 확실한 건, 우리 조직의 보안이 잘 지켜지고 있단 거네요.”
은호는 보드에 일의 개요를 정리해나가며 말했다.
휘원의 결혼식 사건, 살아남은 다휘, For Luciano의 보스인 유 환, 두 사람의 관계.
“심지어 다휘랑 그 사람은 만났었다니까. 꾸준히 교제 신청을 받았고.”
연호가 펜을 딸깍거리며 말했다.
그는 마음이 심란한 듯했다.
은국은 민환에게서 아까 전해들은 얘기를 생각해내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나와 현다휘가 헬기로 간 후, 민환이 더 얘기를 했다. 그가 민환을 알아봐서 우리의 정체는 알게 되었고, 결혼식의 참사 이후 그녀를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고 하더군. 그리고 경고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데려올 테니 방해하지 말라고.”
은국의 말에 형주가 유독 나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형주의 옆에 앉은 혜혁은 그의 기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책상 밑으로 형주의 손을 묵묵히 잡아주고 있었다.
“·· 그럼 우리가 할 일은 그거 하나네. 다휘만 지키면 되잖아.” 연호가 말했다.
그의 곧은 눈이 그의 결심을 말해주는 듯했다.
은호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 환, 그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도록 할 것이다. 모두의 생각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유 환은 다휘를 데려가서 뭘 할 작정이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복수?”
진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는 왜 유 환 정도 되는 거물이 다휘에게 집착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이상한 데 꽂힌 거지. 그 새끼, 진짜 내가 꼭 죽일 거다.”
형주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후로 유 환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그가 다휘를 왜 데려가고 싶어 하는지, 등등에 대한 모두의 추측이 난무했다.
연호는 때를 틈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챈 건, 그의 뒤에 서있던 은호와 그를 주시하고 있던 은국, 두 사람 뿐이었다.
* * *
“로이드!”
“아·· 보스.”
“하아···. 다휘는?”
연호가 다급히 뛰어온 목적지는 다휘의 방이었다.
그는 방 문 앞에 기대고 있었던 로이드에게 다가갔다.
로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한 10분 전부터 조용해졌어. 씻으러 간 건지는 잘 모르겠고.” 로이드가 말했다.
그의 건조한 시선이 다휘의 방을 잠깐 향했다.
연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겠어. 내가 들어가 볼 테니까, 로이드는 회의실로 가 있어.”
“응.”
그는 연호의 말에 아무런 미련 없이 그를 지나쳤다.
연호는 심호흡을 잠깐 하고서 다휘의 방 문을 두드렸다.
“·· 다휘야. 나 연호야. 안에 있어?”
그러나 다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연호는 잠시 망설이더니 문고리를 돌렸다.
“다휘야··?”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침대 앞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검은 양복 자켓과 체크무늬 담요였다.
연호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살폈고, 다휘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 방 안에 위치한 욕실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다휘가 씻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창가에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의자를 꺼내 앉은 연호는 테이블에 두 팔을 올렸고, 팔을 베고 고개를 뉘였다. 그는 굉장히 피로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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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휘는 욕실 안에 있던 샤워가운을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 위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연호였다.
“헉··!” 다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자신이 이곳에 처음 온 날의 데자뷰였다.
언제 들어온 거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그녀는 조심스레 뒤꿈치를 들고 연호에게 다가갔다.
“···.”
테이블 위에 얼굴을 둔 연호 덕에,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무릎을 반쯤 꿇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굉장히 남자치고 곱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조각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 둥근 코, 갸름한 턱 선과 그에게서 항상 나는 따뜻한 오렌지의 시트러스 향, 적갈색의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검은 정장, 따뜻한 손··.
다휘는 어느새 그의 얼굴 밑에 깔린 손을 조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등이었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신체마저 다정한 남자였다.
“아···.”
“·· 다휘?”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쳤다.
연호의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다휘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 다휘야.” 연호가 그녀를 불렀다.
다휘는 이상하게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만지작거리던 연호의 손은 어느새 그녀의 작은 손을 모두 감싸고 있었다.
“·· 이리와.”
연호는 의자에서 스르륵 내려와, 다휘를 꽉 껴안았다. 방금 씻고 나온 그녀에게서는 좋은 샴푸 향이 났다.
그녀가 좋아한다던 라벤더 향의 샴푸를 미리 준비해 둔 덕이었다.
다휘는 이 남자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아니, 방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녀는 연호의 품 안에 있던 손을 움직여, 그의 등으로 옮겼다.
그녀의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연호는 다휘의 움직임과 떨림을 느끼면서 그녀를 천천히 토닥였다.
규칙적이고 낮은 소리에 다휘는 어쩐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연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곧 어깨가 들썩였다.
“흐으··· 하.”
다휘의 젖은 목소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연호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더욱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그녀를 어루만졌다.
“혼자, 혼자 있는 게··· 너무·· 너무 싫었어요. 하, 흐으··· 무서웠어요··.”
다휘가 스스로 자신의 기분을 말한 건 처음이었다.
연호는 그녀의 슬픔에 마음은 아려왔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오빠가, 모두의 얼굴이·· 생각나서···. 하윽·· 그게, 생각나서···!”
그녀가 연호의 등 뒤로 깍지 꼈던 손을 풀며,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두 사람은 이제 두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같이 있어주는 게·· 그게, 좋았어요. 하, 혼자가·· 싫어서··· 혼자라는 사실이·· 흐윽, 너무··!”
“다휘야···.”
“그게·· 너무, 싫어요···.”
“다휘야··.”
“그러니까··· 저를, 흑, 저를···.”
“다휘야··!”
“네, 네··!”
“그래.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겠어. 그리고·· 내가 쪽지 남겼잖아.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연호가 다휘의 붉은 두 볼을 잡았다.
다휘가 흘린 눈물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붉어진 눈시울이 그녀를 더욱 안쓰럽게 만들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다휘야.”
“··!”
다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혼자가 아니야. 너를 그렇게 혼자 둬서 미안해··. 우린 네가 일부러 안 힘든 척 하는 게 더 힘들어 보여서···. 그냥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거야.”
“·· 아, 아···.”
잠시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좀 더 따뜻했다.
그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온기가 자신의 몸 끝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다휘야, 잘 돌아왔어.”
다휘는 연호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휘의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연호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연호의 입술은 호선을 그렸다. 그는 다휘를 다시 어루만져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