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조용한 곳이었다.
사방에는 아무 가구도 없었고, 넓은 공간의 중앙에는 단 하나의 고급스런 의자가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은 굉장히 공허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심의 의자에 앉은 남자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풀빛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 같은 표정을 하고서,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 킥.”
돌연, 남자는 조소를 흘렸다.
이내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는 듯하더니, 기어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쿡·· 푸하핫···.”
그가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를 등지고 있던 달빛이 질세라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뒤로 넘긴 머리를 왁스로 단단히 고정시킨 금발은 그를 단정하면서도 절도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의자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웃음을 멈추고 다시 싸늘해진 표정으로 희면서도 노란 달을 바라봤다.
“··· 부수고 싶어.”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달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자신이 가장 철저히 부숴주고 싶은 사람.
하지만 동시에 가장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사람이었다.
찬란한 달을 닮아 누구의 옆에 있든 밝게 빛났지만, 그것도 태양이 있기에 가능한 일.
주변의 빛을 모두 부수어도 과연 빛날 수 있는 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현재 자신이 가장 원하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바닥의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면 그제야 자신을 봐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소매를 걷어 팔에 새긴 문신을 빤히 내려다봤다.
Don't forget, Luciano.
그 문장은 자기 자신을 위하고, 자신이 이끌고 있는 이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는 유 환. For Luciano의 보스이다.
* * *
“가져왔어요. 다휘에게 붙인 발신기랑 연결된 기기에요.” 은호가 무전기 같이 생긴 기계를 들고 상황실로 들어왔다.
상황실은 약 20여개의 커다란 모니터들과 그 앞에는 10명의 요원들이 앉아있었다.
그 뒤로 연호와 도담을 포함한 간부들이 서있었고, 은호가 들어오자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휘의 어디에 붙인 거야? 어떻게 붙어 있을 걸 예상해?” 진탁은 은호에게서 기계를 받아 요원에게 넘기며 물었다.
진탁에게서 기계를 건네받은 사람은 일련번호를 입력해 다휘의 위치를 화면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은호는 어쩐지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 기기에 연결된 발신기는 총 5개에요. 투명 패치로 발명한거라 붙여도 티 안 나게 했고··· 다휘를 집에 데려다 줄 때 나도 같이 갔었거든요. 그 때 다휘의 신발 총 5개에 골고루 붙였지. 뭘 신고 나갈지 모르니까···.” 그녀가 말했다.
은호가 수줍어하며 말하자, 도담에 그녀를 한심하게 보며 한숨을 쉬었다.
“스토커도 아니고, 이게 무슨···.”
“도담 님! 스토커라뇨. 그저 다휘가 걱정되는 마음에 한 거죠. 그리고 솔직히 제가 이렇게 안했으면 다휘 못 찾았어요.”
도담의 말에 은호는 오히려 반박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모니터에 도식화된 지도에 총 5개의 붉은 점이 나타났다. 그 중 한 개는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고, 네 개는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다휘 양 위치 파악되었습니다. 현재 XX대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요원들 중 헤드가 말했다.
연호는 그에게로 다가가 의자에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 자신을 기다리는 간부들을 쭉 둘러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그럼 오더는 내가 내릴게. 은호는 여기서 나랑 같이 대기해. 급한 사항이니 모든 무기를 허용하고, 민환이는 돌격을, 선우는 스나이퍼 라이플로 저격을 맡자. 로이드는 이런 팀은 처음이니까 보고 배우고, 진탁 형은 로이드 많이 챙겨주세요.”
연호의 지시가 내려졌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은호를 제외한 모두가 뒤를 돌아 상황실을 나가면서, 입구 근처의 바구니에 담긴 이어셋을 하나씩 착용했다.
은호는 모두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굳게 닫힌 철문은 바깥의 소음을 막아주는 듯 했다. 상황실은 조용해졌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기기로 따뜻한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보스. 이동 경로를 보니 SH산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주변 지형을 파악하겠습니다.”
“그래.”
다휘를 표시하는 붉은 점은 점점 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보스. 여섯 분, 출발하셨습니다. 모두 위치 파악 되었습니다. 진탁 님께서 직접 헬기 조종하고 계십니다.”
“위치 띄우겠습니다. 최고 속도로 20분이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곧 모니터에 6개의 푸른색 점이 나타났다.
각 점에는 모두의 이름이 작게 적혀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어셋 전부 연결 했어?” 연호가 말했다.
그의 말에 한 남자가 버튼을 누르자, 버튼 옆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네. 통신 상태 안정합니다. 연결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연호는 빠르게 이동하는 푸른색의 점들을 보며 팔짱을 꼈다. 요원 중 한 명이 목을 가다듬었다.
“흠. 여기는 상황실입니다. 들리십니까?”
[홍도담이다. 잘 들려.]
도담의 목소리가 상황실에 울렸다.
그에게 말을 건 요원은 자판기를 두드리며 계속 말했다.
“다휘 양 위치 정보를 단말기에 보내드렸습니다. 진탁 님, 확인 되십니까?”
[그래. 그리고 예상 목적지는?]
“일단은 SH산으로 예상됩니다. 주변 지형 3D 모드로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진탁과 함께 조종석에 앉은 도담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현다휘가 인질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을 시, 상대의 목숨도 고려해야 하나?]
그의 말에 일순간 상황실이 침묵을 찾았다.
연호는 고민하는 듯 자신의 인중을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은호는 그런 연호를 향해, 그리고 도담을 향해 말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세요. 목숨만 부지해서 이곳으로 데려오면, 제가 살려낼게요. 대신 다휘는 털끝도 다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연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덧붙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상대가 다수일 시엔 제일 높은 놈만 살리고, 상대가 한 명이면 다리를 노려야지.” 연호가 말했다.
그의 표정은 단호해서, 자칫 보면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
도담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
.
“보스. 다휘 양이 멈췄습니다. 위성사진과 3D 지도로 띄우겠습니다.”
그리고 약 10분 후, 다휘를 표시하는 붉은 점이 멈췄다.
요원은 다른 두 개의 모니터에 각각 위성사진으로 그 지점의 모습과 주변 지형을 나타내는 지도를 띄웠다.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서 다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주변 지형을 파악하기에는 용이했다.
[홍도담이다. 목표지점에서 200m 떨어진 곳으로 5분 내에 도착 예정이다.]
연호는 두 사람의 보고를 들으며, 모니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다휘가 멈춘 장소는 컨테이너 박스 몇 개가 버려진 곳이었다.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의 위쪽에는 창문이 있어서 저격 역할인 선우가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장소는?” 연호가 물었다.
상황실의 요원들 중 한 명이 주변 지도를 물색하더니, 나무가 우거진 숲들 중 컨테이너에서 얼마 멀지 않은 장소에 빈 공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그 지점을 또 다른 모니터에 띄웠다.
“파악했습니다. 진탁 님, 보내드렸습니다.”
[그래. 확인했다. 목표 지점 변경. 2분 내 도착 예정.]
진탁의 침착한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연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말했다.
“좋아. 전원 전투 준비. 담이 형이 상황에 따라 지시해줘. 진탁 형과 로이드는 헬기에서 대기.”
연호의 지시에 스피커에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선우의 물음이 스피커에서 나왔다.
[저격 장소는?]
그의 물음에 요원들 중 한 명이 위성사진 상의 컨테이너 박스들의 모습을 캡쳐해 선우가 가진 단말기로 보냈다.
“선우 님. 사진 보냈습니다. 어느 컨테이너로 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선우는 알겠다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착륙 시도한다.] 진탁이 말했다.
곧 헬기의 소음이 심해 통신이 끊겼고, 진탁과 로이드를 두고 네 사람이 움직이는 위치가 지도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통신이 다시 연결되었다.
[안전히 착륙했다. 작전 시행한다.] 도담의 목소리가 울렸다.
연호는 다휘가 부디 무사하길 바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 * *
다휘는 자신의 몸이 밧줄에 의해 감겨져 있다는 걸 느꼈다.
굉장히 조이고, 아프고, 답답했다.
이외에도 두 다리도 묶여 있었고, 몸과 팔이 함께 묶여있는데다 손목마저도 묶여있었다.
그리고 눈을 떠도 온통 검은 시야라서, 무언가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서웠다.
그녀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차의 시트에 눕혀있는 게 느껴졌다.
차는 산길을 달리는 듯 덜컹거렸고, 차가 움직일 때 다리가 앞좌석에 부딪혀져서 일반 승용차의 뒷좌석에 있는 것이 알 수 있었다.
조용했던 차량은 곧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울렸다.
몇 번 울리지 않아,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 넵. 이동 중입니다. 곧 도착합니다.”
목소리는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그로 인해 다휘는 두 명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전화를 받은 그는 몇 번이고 상대방을 향해 공손하게 알았다고 대답을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 차가 멈추었다
다휘는 혹시 몰라 아직 정신을 잃은 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에 힘을 풀었다.
그녀의 다리가 있는 곳의 문이 열리며 따뜻한 산의 향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투박한 손의 누군가가 그녀를 차 밖으로 당겨, 품에 안아들었다.
“보스는?”
“출발하신답니다.”
두 남자의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다휘는 귀에 온 신경을 다하면서도 몸에 힘을 푸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어딘가로 옮겨졌다.
그리고 멈춰진 그녀는 자신을 안고 있지 않은 남자가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었다.
쿵쿵거리며 문을 두드리자, 그 너머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덜컹거리며 문이 열리고,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굉장히 오래되어 청소가 잘 되어있지 않은 냄새였다.
“안녕하십니까! 5부대 소속 황수혁··”
“닥쳐. 인질 안 보이냐?”
“죄, 죄송합니다!”
컨테이너 안에서 뛰어나온 사람이 굽실거리면서 사과했다.
다휘는 곧장 컨테이너 안으로 이동되어졌다.
그녀의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자칫하다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호에게 진작 연락 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컨테이너의 문이 끼익거리며 쿵 하고 닫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