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연호의 목소리가 멎었다.
“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어어. 들어와.”
카랑카랑한 민환의 목소리였다.
연호의 대답에 민환은 조용히 문을 열고 집무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서류 파일이 여러 개 들려있었다.
“얘기중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오후에 암살부로 이동하기 전에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서류 좀 들고 왔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내 책상에 올려줘. 고마워.”
연호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민환은 그대로 연호의 책상 위로 향했다. 연호는 끊겼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당분간 다휘를 우리가 데리고 있기로 했어요. For Luciano 건으로 암살부 가려고 하는 거고요.” 연호가 말했다.
로빈은 30분 넘는 시간 동안 다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루하다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연한 브라운 색의 눈동자로 그를 직시했다.
“유 환, 그 개자식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과거에 다휘랑 접점이 있는 거 아냐?” 로빈의 물음에, 연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휘원이도 다휘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 경호를 붙인 거라, 그 전의 행적은 알 수 없어요.”
연호는 휘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로빈의 물음에 대답했다.
은호는 아주 약간의 온기가 남은 커피 잔을 양 손으로 감싸면서 들었다.
혹시 해서 For Luciano의 보스인 유 환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개인적으로 그를 알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일단 그 문제는 뒤로하고, 유 환의 최측근까지 올라간 도하에게 어제 은국 형님이 연락하셨대요. 아직 상황을 모른대요. 상부에도 전멸로 보고되어있고, 아무래도 그들 사이에서도 극비에 진행된 일 같아요.”
연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본래 bloody ellipse의 전투 일원인 도하는 그를 포함해서 10명의 정예 일원으로 추려져, For Luciano에 스파이로 잠입을 했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유일하게 남은 동아줄이었다.
다행이도 보스인 유 환에게 신임을 얻어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은국이 그에게 연락을 하고 있다.
“어쨌든, 암살부에서 하루 자고 올 거니까요. 이번 기회에 혜혁 형이랑 화해하세요.”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 거야!”
연호의 말에 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는 혜혁의 이름조차도 듣기 싫은 듯 했다.
“에이·· 형. 같은 조직 사람인데, 영원히 이렇게 안 보고 살 건 아니잖아요.”
연호는 그를 달래기 위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로빈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였다.
“나는 그 놈이랑 상종하기도 싫거든!”
* * *
“난 그 놈 머리카락 한 올도 보기 싫으니까, 여기에 발 들이지 말라 그래.”
“··· 성질 하고는. 보스, 이제 나이가 앞자리도 바뀌었는데 성격 좀 죽이고 살지 그러세요?”
이곳은 bloody ellipse의 암살 전문부의 건물이 들어선 부지. 그 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의 최상층에 위치한 간부 휴게실이다.
눈을 반 정도 가리는 흑발을 가지고, 그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싸늘한 한 남자.
‘성질이 더러운 것’으로 유명한 그의 이름은 견 혜혁이다. 그가 암살 전문부의 수장이었다.
그의 말에 대답한 어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드러운 백발에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었다.
청년의 ‘성질 좀 죽여라.’는 대답에 혜혁은 손에서 빙빙 돌리고 있던 피스톨을 청년을 향해 겨누었다.
“목숨이 소중하지 않나?” 혜혁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 청년은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능청스런 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요. 저는 항상 제가 우선입니다.”
청년의 여유로운 미소에 창가에 걸터앉은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냈다.
“그런 새끼가 수장한테 그런 말을 하냐? 죽을 때는 고향에 묻혀야 하지 않겠어?”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년은 그에게서 묘한 살기를 느끼며, 그가 진심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제 고향에서는 여러분들처럼 무식하게 흙에 묻지 않습니다.” 청년이 악의가 없다는 듯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두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본부 놈들 오기 전에 처리해.” 혜혁이 가죽 의자에 몸을 맡기며 누군가에게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짙은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씩 하고 이가 보이도록 웃으며, 청년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섰다.
“예스, 보스.”
“아니, 이럴 때만 예스맨입니까?! 자, 잠시 만요! 형주, 아니 형님!!”
청년의 뒤늦은 외침이 울렸지만, 이내 저택은 청년의 처절한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은 blood ellipse 암살 전문부 내의 간부들이다.
수장이자 암살 전문부의 보스라고 불리는 ‘견 혜혁’, 그의 오른팔인 짙은 회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공 형주’, 아직 등장하지 않은 금발의 미청년 ‘백 기준’과 마지막으로 깔짝대는 행동의 일인자이자 막내를 담당하고 있는 ‘남 호수’까지.
다휘는 또 다른 비정상적 인물들과 마주할 상황을 두고, 진탁과 아무 것도 모른 채 blood ellipse 본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 * *
그래서 한편, 다휘와 진탁은···.
“어라, 은국 씨 저희 뒤에 계속 계시는 줄 알았는데··.” 다휘가 뒤를 돌아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택의 뒤쪽 정원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주위에는 좋은 향기가 나는 꽃들이 가득했다.
“아아. 그 녀석은 워낙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12시에 출국이라 했으니까, 그거 타러 갔을 거야. 벌써 1시 다 되가네.”
어느새 다휘에게 말을 튼 진탁이 손목의 시계를 보며 말했다.
다휘는 점심시간이 한창일 시간에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그녀는 다시 꽃의 향기에 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진탁은 때마침 울리는 채팅방의 알림을 보며, 다휘를 건드려서 그녀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다휘야. 우리 가야겠다. 이제 출발하자네.”
“아, 넵. 어서 가요. 주차장으로 가나요?”
“응. 아까 말했다시피 간부들이 움직일 땐, 내가 운전 하거든. 로이드도 같이 간대.”
공간 지각능력과 기억력이 좋아 주차장의 위치를 금방 외운 다휘는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진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저음의 안정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암살부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 보면 알거야. 일단 정상적인 놈이 없지.”
“아···?”
다휘는 진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탁은 그런 다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거기 수장이 견혜혁 이란 놈인데, 이놈부터가 좀··· 성질이 더럽다고 해야 하나. 그 다음으로 혜혁이의 오른팔인 공형주 란 놈이 있는데, 이놈은 행동파에 좀 성격이 과격하지.”
밖에 있던 탓에 가장 먼저 주차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전날 다휘가 타고 왔던 중형 차량으로 향했다.
진탁은 다휘에게 자신의 옆에 타라고 하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밑으로 백기준이라고 잘생긴 애가 있어. 기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이쪽 일을 해 와서 애가 삐뚤어지긴 했지만, 나쁜 놈은 아냐.”
진탁의 설명에 다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너보다 어린 애가 있지. 이름은 남 호수고, 원래 우리 본부에 있던 놈인데 암살부가 만들어질 때 혜혁이가 데려갔어. 호수는 이탈리아 사람이라 본명은 그레비 뮬랑이야.”
진탁은 본관 저택 건물 앞으로 차를 멈췄다.
그러자, 본관 건물에서 연호를 포함한 이들이 차를 타기 위해 걸어오는 게 눈에 보였다.
다휘는 암살 전문부의 간부인 네 사람의 설명을 들었지만, 조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직접 만나봐야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