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환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간이 지나서야 급한 볼일이 끝났다.

　그는 주방에 잠시 들려서 다휘를 위해 연호가 하루에 두 번 주문을 넣는 간식을 챙겼다. 민환이 든 라탄 바구니에는 샌드위치와 주스 병이 담겨 있었다.

　그는 붉은 카펫 위를 걷고 있었고, 목적지는 다휘의 작업실이었다.

　연호가 다휘를 위해 만든 작곡 작업실은 노력이 꽤 들었다.

　그녀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던 탓에 연호의 사비로 만들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들은 다휘는 연호에게 부담된다며 호소했지만, 연호는 자신에겐 별게 아니라며 선물로 받아달라면서 ‘환영 선물’이란 이름이 되었다.

　어느새 작업실 앞에 도착한 민환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경쾌한 소리가 나고, 얼마 되지 않아 다휘가 문을 열며 나타났다.

　“아, 민환 씨.”

　“들어간다.”

　“네, 네. 들어오세요.”

　민환은 그녀의 작업실에 처음 들어와 봤다. 자신과는 달리 다휘와 나름 절친인 은호는 몇 번 경험이 있는 듯했지만.

　“무슨 기계가 이렇게 많아?”

　“소리 만들고 편집하는 것들이에요. 저쪽은 녹음실이구요. 저 방에는 피아노랑 기타들도 있어요.”

　민환에게서 바구니를 받은 다휘가 바닥에 대충 내려놓았다.

　그리고 신기한 듯 방을 둘러보는 민환을 향해 간단하게 소개하며, 그의 옆에 있었다.

　“아.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책상 필요하시면 저기 쓰시면 돼요. 은호나 선우 씨, 진탁 씨는 업무 서류를 들고 오셔서 저기서 하셨어요.”

　“·· 난 급한 일 끝내고 온 거라, 한가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

　민환의 말에 다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 작업을 하고 있던 기계 앞으로 가서 헤드폰을 착용했다.

　민환은 그런 다휘를 보며, 책상에 앉아서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리듬을 타면서 악보 종이에 펜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휘갈겼다.

　간혹 고개를 갸웃거리며 컴퓨터 화면을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기도 했다.

　몸이 뻐근한 건지 기지개를 펴기도 하고, 갑자기 악기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연주를 행하기도 했다.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에 그는 마음이 편안해져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뭐, 뭐야. 몇 시지?”

　방 안은 환했지만, 다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들었다.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꽤나 오랫동안 잠들었다는 걸 인지한 그는 침을 삼켰다. 그의 목젖이 튀어 올랐다가 들어갔다.

　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눌린 머리카락을 휘저으며, 다휘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녹음실의 뚫린 창문으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휘는 동그란 평면의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듯, 입술이 움직이고 몸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러다 민환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눈이 조금 커지더니 이내 이어폰을 빼고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일어나셨어요? 피곤해 보이셔서 안 깨웠는데··.”

　“·· 그래. 괜찮다. 따로 찾아온 사람 없었지?”

　“네. 없었어요. 가보시게요?”

　민환이 다휘의 작업실에서 나가려는 듯 문고리를 잡았다. 그는 다휘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노래 잘 부르더라. 8시에 맞춰서 식당으로 내려와.”

　그리고 그는 문을 닫으며 작업실에서 나갔다.

　문 뒤로 -방음처리가 되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휘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는 무시한 채 유유히 식당으로 향했다.

　* * *

　도담은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수다에 미칠 지경이었다.

　운전에는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려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그리고 본부의 건물에 나무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천천히 창문을 내리고 답답한 마음을 식히고 있었다.

　“아 참. 홍 씨.”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에이, 왜 그래요? 정 없게.”

　도담은 자신의 이름을 영 이상하게 부르는 호수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호수는 악의 없다는 듯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긴 했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난 운전하면서 총 쏠 수 있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으스대며 말하자, 호수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할 말은 있는 듯, 자리가 빈 조수석의 등을 끌어안으며 몸을 밀착했다.

　“그 ‘다휘’라는 여자 말입니다. 보스의, 그러니까 차 씨요. 그분의 그겁니까?”

　호수가 물었다. 그는 이어 계속 말했다.

　“저희 쪽 애들 몇 명이 며칠 전에 여기서 보고하고 왔는데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이 정원에서 계속 같이 있고 막 그랬다던데요?”

　호수의 목소리는 굉장히 들떠있었다. 다휘와 연호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딱 걸린 좋은 먹이었다.

　보통은 기준도 함께 즐기는 편인데, 어쩐지 조용한 걸 보니 이상했다.

　그러나 도담은 호수의 말에 며칠 전 연호가 말했던 게 떠올라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몰라. 가서 직접 물어보던지.”

　“뭡니까! 그렇게 말하면··· 완전 흥미로운걸요? 안 그렇습니까, 선배?”

　호수는 도담의 말에 발을 동동 굴리며 신난 표정으로 기준을 바라봤다.

　그러나 기준은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창가의 턱에 팔을 놓고 턱을 괴고 있었다.

　“선배, 그 태도 뭐예요? 전 그게 궁금해서 온 건데.” 호수가 말했다.

　기준은 호수의 말에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다휘의 얼굴을 떠올렸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까 싶어서, 복부의 상처 때문에 며칠 동안 쉬며 정리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 형. 그 여자 오늘 나오지?”

　“아마.”

　기준은 도담을 향해 물었고, 도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차는 어느새 정문을 통과해서 간부 숙소 앞의 간부전용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세 사람은 간부 숙소의 앞을 지나가는 한 여자를 동시에 발견했다.

　“어? 저 여자?” 호수가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과 동시에 다휘를 발견한 도담은 미리 인사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을 가다듬었다.

　“·· 현다휘!”

　“응?”

　도담이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악보 파일들을 손에 들고 있던 다휘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 주차장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도담은 이쪽으로 오라는 듯, 작게 손짓했다. 다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세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기준은 자신들에게 걸어오고 있지만, 자신만의 세계에는 이미 다휘의 주위로 꽃잎들이 날리고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 도담 씨? 지금 도착하셨어요?”

　“그래. 한 10일쯤 전에 봤지? 노란 머리가 백기준, 하얀 머리가 남호수다.”

　도담의 짤막한 소개에 다휘는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녁이라 해가 져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 주위의 가로등 덕분에 조금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휘는 어색하게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호수가 먼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남 호수에요, 다휘 누나.”

　“누, 누나요?!”

　“어라? 내가 어린 거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다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가 어린 건 알고 있었지만,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현다휘 라고 해요··.”

　“네. 다휘 누나.”

　“아, 아니. 그 호칭은 좀···”

　“그럼 다휘라고 불러야지.”

　“네.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두 사람이 빠르게 호칭 정리를 끝냈다. 다휘는 기준을 향해 몸을 더 틀었다. 호수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다휘는 기준을 향해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백 기준 씨··? 그때 다친 건 좀 괜찮으세요···?”

　“아···.”

　그는 그녀가 내민 손을 보며 망설임이 들었다.

　지금 손을 잡는다면, 힘이 잔뜩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터치하듯이 그녀의 손을 스쳤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 뭐 하십니까, 선배?”

　“아, 아니. 이건··.”

　기준은 그녀의 손을 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전혀 없었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에 그는 당황했다.

　다휘는 악수를 하려 건넨 손이 거절당하자, 자신의 손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그게-”

　“-도담 씨. 저 옷만 갈아입고 식당으로 갈게요.”

　“·· 어, 그래.”

　그리고 그녀는 숙소를 향해 뛰듯이 걸어갔다.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다휘를 보며 기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괜히 연호와의 무엇이 있을 거란 생각에 무심코 화풀이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었는데··.

　그런 기준의 소심하고도 요상한 모습에 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기준이 다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도담은 그런 기준과 호수를 슥 보더니, 본관을 향해 앞장서서 걸었다.

　기준은 그렇게 모두의 오해를 산 채 다휘에게 단단히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