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휘는 낡은 매트리스 위로 눕혀졌다.
그녀를 눕힌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자신의 상사 옆으로 가서 뒷짐을 지고 섰다.
이들 중에서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는 비쩍 마른 남자는 시멘트 바닥을 걸어 다휘가 눕혀진 매트리스로 걸어갔다.
그가 긴 한숨을 내뱉었고, 두 눈은 눕혀져 있는 다휘를 향해 있었다.
어딘가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진득한 시선이었다.
“보스가 오기 전에 잠시 손 좀 보고 싶은데··.” 그가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거나 토를 달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못했다.
그가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옆에 서있는 덩치가 큰 남자는 오히려 그의 말에 동조했다.
“보스께서 차타고 오시는 거면 1시간은 걸리지 않습니까? 잠깐 정도라면···. 저희도 이런 일은 오랜만이고요, 형님.”
덩치가 큰 남자가 다휘의 몸을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훑었다.
매끈하게 쭉 뻗은 다리와 새하얀 피부는 그들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자신의 부하의 말에 그는 망설임이 들었다.
이런 여자를 눈앞에 두고 참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니지. 그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보스의 직접적인 명령이 떨어진 타깃이었고, 그녀에게 생채기라도 있을 시 자신들의 가족이 죽어나갈 것이다.
웬 결혼식에서 대인간살상용 무기로 많은 사람들을 죽일 때는 희열감에 가득 차있었다.
보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던 건지, 자신들의 통장에는 굉장한 돈도 들어왔다.
그래. 일을 망치지는 말자. 끝까지 잘 완수하면 보너스를 더 줄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남자들도 하나 둘씩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들은 이제 이 여자를 보스가 올 때까지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마피아 조직, For Luciano의 끄트머리 일원인 그들은 하청 정도의 일을 해왔다. 대한민국의 조폭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For Luciano의 한국 지부 몇몇 간부들은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몇 천 만원씩 벌어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도 조직 내에서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었다.
하급 대원이 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총 14부대로 이루어진 한국 지부는 각 부대를 이끄는 대장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선호하는 인재의 유형도 달랐다.
재능이 없다면 밑바닥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평소 하는 일은 담당 지역의 수금을 맞추는 것, 불법적인 도박장 운영, 마약 밀매 등으로 조직에게 돈, 즉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간만에 하는 보스의 직접 지시에 그에 따른 보수도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고,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잡아먹어 달라는 듯 누워있었다.
결국, 약 15명의 부하들 중 한 명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쩍 마른 남자와 덩치가 큰 남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쭈뼛거리며 비쩍 마른 남자에게 걸어왔다.
“저·· 형님. 조금만 손 좀 봐줍시다.”
그의 용기 있는 말이었다. 비쩍 마른 남자는 천천히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의 밑에 있으면서 항상 고생을 많이 하던 부하였다.
그래. 한 번 쯤은 괜찮겠지. 하지만 보스의 허락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보스께 전화 드려라.”
“예. 여쭤볼까요?”
“그래.”
그는 자신의 오른팔인 덩치 큰 남자에게 시켰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기를 들었다.
* * *
“···. 그래. 그때도 말 했지만 상처만 내지 마. ‘상품 가치’가 있으니까.”
유 환이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대답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탄 차의 밖으로 높은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오른 차의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었지만, 그의 마음에 차지는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기분만큼은 째지고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부수고 싶은 여자를 자신의 말단 부하들이 손수 망쳐주겠다니.
며칠 전, 그녀가 있었던 장례식장의 앞에 bloody ellipse의 사람처럼 보이는 놈들이 두 명 있었던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 조직과 그 여자의 연관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별 일 아니겠거니 했다.
이제 방해물은 없다.
몇 년 동안 그녀의 주위를 천천히 망가뜨려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들을 몰살했다.
때는 좋았다.
자신이 그녀의 주변에 심어놓은 그의 하수인이 그녀의 오빠의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는 작전을 감행했다.
물론 지금 그녀를 지키고 있고, 범하려 하는 멍청이들은 그녀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결혼식을 습격했겠지만.
··· 완벽했다. 자신의 작전은.
그렇기에 불안했다.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이대로 목적지까지는 1 시간이었다.
차라리 헬기를 탈 걸 그랬다. 전부 임무로 나가 남는 헬기가 없긴 했지만.
유 환은 찜찜한 기분을 안고 SH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곧 그녀를 마주할 상상을 하면서.
* * *
헬기 안에서 언제든지 이륙할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진탁과 로이드, 그리고 헬기의 주변에서 선우와 은국이 대기하고 있었다.
곧 숲 속에서 민환과 도담이 걸어 나왔고, 두 사람은 선우와 은국에게로 향했다.
“숲 속에 승합차가 2대 세워져 있고, 컨테이너는 총 5개. 가장 큰 게 중앙에 있고, 양 옆으로 2개씩 쌓여있어. 선우의 저격 위치도 확인했고, 큰 컨테이너 앞에 차가 세워져 있고 지나다닌 흔적이 있어. 예상 인원은 12~15명 정도.” 도담이 말했다.
그는 이어 민환과 은국을 번갈아보며 이어 말했다.
“공간이 제한적이니, 민환은 선우와 같이 저격 위치로 은국은 나와 함께 정면 돌파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어셋에서는 연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표는 다휘의 안전이 우선이야.]
분노가 짓눌린 목소리였다. 이어 은호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넥타이에 카메라 달고 나간 사람 없어요? 영상 좀 틀어주세요.]
그녀의 말에 상황실의 요원이 기계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선우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넥타이의 소형 카메라의 전원을 켰고, 영상이 잘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은호와 연호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담은 컨테이너 쪽으로 몸을 돌리고, 민환과 선우, 은국을 쳐다봤다.
“가자.”
.
.
선우는 민환과 함께 큰 컨테이너의 왼쪽에 위치한 2단 컨테이너 위로 올랐다.
컨테이너 안이 훤히 보이는 창문이 나 있었고, 크기는 사람이 출입할 만 할 정도였다.
선우는 창문을 들여다보더니, 주섬거리며 라이플을 바닥에 지지대로 세우고 몸을 밀착했다.
민환은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옆으로 비켜났지만, 창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리는 구조가 아니라서 안쪽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왠지 네가 창문을 깨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선우가 말했다.
민환은 난감한 듯 창문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치 못한 돌격으로 적을 당황시키기엔 적합했다.
“도담 형님. 위치 잡으셨습니까?”
[그래. 문을 잠그진 않은 것 같다. 너희는?]
“저희는 창문이 개폐 형식이 아니라···, 제가 깨고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높이는?]
“아래에 박스가 쌓여 있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민환과 도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담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말이 떨어지면 돌격하라고 지시했다.
선우는 조준경으로 창 너머로 컨테이너의 상황을 훑어봤다.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가관이었다.
“·· 잠시만. 상황이 좀.”
“왜 그러는데?”
선우가 주춤거리며 말하자, 민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 ×발.” 민환이 낮게 욕설을 뱉었다.
그들의 짧은 대화에 도담과 은국을 포함한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뭔데?] 도담이 물었다.
“··· 현다휘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어요.”
민환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은호의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은국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 내부 상황을 전달해.]
연호의 목소리였다. 이를 악물고 있는 듯, 화가 억눌린 목소리가 표출되었다.
“·· 일단 현다휘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이고, 수는 14명 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제일 높은 놈이 하나 있는 것 같고, 현다휘에게 5명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 덩치 큰 놈이 한 명 서 있습니다. 내부는 천장에 몇 개 전구가 있어서 어두운 편은 아닙니다.” 민환이 말했다.
이어셋 너머로 모두의 침묵이 이어졌다.
민환은 침묵 속에서 모두의 분노가 느껴져서 등이 서늘해졌다.
[담이 형.]
연호가 말했다.
도담은 그의 말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 하아.]
은호의 한숨이 이어 들렸다.
민환은 창문 너머의 상황을 차마 지켜보지 못해 고개를 돌렸다. 선우는 두 눈을 감았다.
“도담 형님. 지시를··.”
민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손에 든 리볼버를 꽉 쥐었다.
[··· 들어간다. 각자의 판단에 맞게 행동하고, 선우는 팔과 다리만 노려라. 긴급 상황이면 내가 알아서 행동한다.]
도담의 지시가 떨어졌다.
민환은 유리창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