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스페인 북부 비에르소(Bierzo).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스페인의 북부지역을 가로질러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
피레네 산맥 발치의 프랑스 '세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방향을 안내하는 조개를 따라 약 800km, 평균 40일을 걷는 순례자들의 길.
겉보기에는 그저 한적한 시골 비포장도로이지만 군데군데 서 있는 오래된 교회, 십자군 전쟁이 남긴 흔적 그리고 2,000년에 가까운 역사의 진한 향기가 배어있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간 그 길에 초보 순례자의 엉성한 발자국을 하나 더 남겨본다.
오후 12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뜬 태양이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작열하는 시간.
순례길에서 태양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차라리 위험하더라도 선선한 달빛에 의지해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이 시각.
아, 달빛이라 하니 떠오르는 선율 하나.
다시는 들을 수 없을, 눈물 나도록 그리운 그 선율에 의지해 내딛는 발걸음마다 힘이 들어간다.
한 달 남짓한 기간을 쉬며 걸으며, 때로는 머무르며 남들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든 생각은 우리의 인생이 순례길을 걷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순례길에서 우리는 지팡이를 짚고 두 발로 걷다가도 길가에 앉아 쉬어야 할 때가 있다.
발바닥에 물집 잡히고 근육이 뭉쳐 더 걸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봐가며 조절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누군가와 대화도 하고 저녁을 같이 먹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삶의 접점을 나누었다가 또다시 각자의 길을 걷는다.
지독히도 외로웠다가 정신이 없을 만큼 웃고 떠들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 내 다투고, 별것 아닌 일로 혼자 감정을 소모하기도 한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순례길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늑대와 여자와 도둑이라 했다. 그중 현대에서의 늑대는 젊은 여성 순례자에게 접근하는 남성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것은 여자로서 걷는 인생의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 굳이 움츠릴 필요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말이다.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물기 가득한 흙냄새를 날라주는 바람이 친근한 동료가 되어주는 순례길의 봄.
이름 모를 색색의 봄꽃과 푸른 새싹이 거칠게 갈라져 있던 내 마음의 땅을 촉촉하게 덮어준다.
갈림길마다 방향을 표시해주는 투박한 노란색 화살표와 조개껍데기가 알려준 남은 여정은 약 200km.
태양이 저문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달빛을 따라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