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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54. Honesty(3)
작성일 : 17-07-16 21:50     조회 : 307     추천 : 1     분량 : 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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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림자에서 나온 인간을 보자마자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더불어 아까운 초능력도 사라졌다.

  폭신한 구름 위를 밟는 것 같던 발바닥에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여실히 느껴졌다. 입안에 이미 다 넘기고 난 소주의 끝 맛이 감돈다.

 

 "그러니까 왜 이 시간에..."

 "괜찮아, 진아."

 "누나."

 "얘기만 듣고 바로 보내면 돼. 나도 피곤해."

 

  그러나 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는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진이를 다독였다. 마지못해 돌아서는 진이에게 나는 연락하겠다 약속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

 "......"

 

  정작 나와 할 말이 있어서 왔다던 밀가루는 앞에 선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진이가 골목 끝에 다다를 때까지 그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진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꽃잎을 닮은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이 시간까지 저 남자랑 있었어요?"

 "네."

 "밤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몰라요?"

 "그러니 남자랑 있었죠. 그것도 믿을만한 남자랑."

 

  밀가루는 나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앙다문 잇새로 작게 제길,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를 무시하고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진이와 있을 때는 얌전하던 땅이 울렁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계단이 기우뚱, 움직였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른 땅바닥에 입술 도장을 찍으러 초고속 하강을 하는 도중, 강한 힘이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어... 라."

 

  어쩌다 보니 눈높이가 같아진 순도 86% 다크 밀가루가 예의 서늘하고 무서운 눈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의 손이 닿은 어깨를 제외한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술은 왜 마셨어요?"

 

  술을 왜 마셨냐고? 내가 술 마시는 이유도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해? 명의 한 번 잘못 빌려줬다가 아예 노예가 되겠다?

  상당히 불쾌해진 나는 어깨를 감싼 커다란 손을 탁, 뿌리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그는 뜻밖에 순순히 물러났다.

  뭐야, 이렇게 쉽게 물러설 거면 왜 잡았는데?

  화난 모습도, 물러서는 모습도, 그 여자도, 차승아 씨도 이젠 모두 다 마음에 안 들어. 특히 네가 제일 미워!

 

 "문도준 씨야말로 왜 왔어요? 계속 거기 앉아있지. 그 대단한 사람들이랑."

 "그렇게 말하지 마요.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까 해연 씨를 아는 척 하지 않은 건..."

 "잘했어요.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내가 K양인지, C양인지 모르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알았다 해도 문도준 씨가 날 따라 나올 이유는 없어요."

 "해연 씨를 지켜주려고 그랬어요."

 

 '네 잎 클로버만 찾는 사람들의 손길에 다치지 않게 내가 지켜줄게요.'

 "하아, 그게 날 지켜준 거라고?"

 

  지킨다는 말의 정의를 모르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는 나서줬어야지. 날 혼자 두지 말았어야지.

  소리 없이 비웃는 그 여자 앞에서, 당신에게 안기는 차승아 씨 앞에서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데. 얼마나 외로웠는데.

  얼마나 무서웠는데.

 

 "나 좀 봐요."

 "싫어."

 

  기분이 수그러진 그가 나를 향해 얼굴을 내렸다. 그럴수록 내 고개는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그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심리학 수업에서 '회피'는 가장 낮은 단계의 갈등 해결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활용한다고도 했다.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일단 도망치는 걸 택한다.

  그럼 어떡해? 용기가 없다고 비웃어도 좋아. 난 내 방식대로 평화를, 나 자신을 지킨 거야. 비겁하다고 욕하지 마.

 

 "진해연."

 "내 이름 부르지 마요. 듣기 싫으니까."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에 눈앞이 일렁인다. 물속에 잠긴 듯 일렁이는 물기가 초점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제 안 할래. 더는 상처받기 싫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금 가시를 세웠고, 그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아, 우리 서로에게 좀 솔직해져요."

 "솔직하지 못할 건 또 뭐야? 이보다 더 어떻게 솔직해지라는 건데요?"

 "사람이 말하면 가시부터 세우지 말고 좀 들어요."

 "나도 사람이에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다고요."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데?"

 

  음절을 끊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일순 커졌다. 하얀 목에는 푸른 핏대가 섰다. 화가 난 것이다.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믿어달라고? 그럼 믿을만한 행동을 하던가!"

 "......"

 "난 당신이 아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달라서 청산유수처럼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은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라 말이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일(一) 자로 굳게 닫힌 입이 묘한 쾌감을 준다. 나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가시를 쏟아냈다.

  한 마디, 한마디가 가시가 되어 폭포처럼 쏟아진다. 아프게, 아프게 쏟아진다. 물에 파묻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솔직한 거 좋아하는 문도준 씨. 그거 알아요?"

 "......"

 "이 세상에 솔직한 사람은 없어요. 단 한 명도."

 "......"

 "솔직한 척, 순진한 척하는 인간이 가장 비열한 거야.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치거든."

 "그만 해요."

 "싫은데?"

 

  솔직함이란 이름으로 한 번 시작된 비틀린 감정의 표출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이 아름다운 화해가 될지, 비극이 될지도 모르면서 솔직해지란 말을 남발한다.

  내가 원하는 건 솔직함이란 가면을 쓰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함과 솔직함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는 내가 누구를 찌르는지도, 누가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쏟아낸 뾰족한 감정들이 조용히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모를 비릿한 혈향을 풍기는 감정의 흔적을 땅은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장난식으로 말했지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날 지켜주겠다고? 그게 바로 거짓말이야."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진 그의 고백을 진실이라 믿고 싶었다. 정작 다가오면 밀어내는 주제에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것 봐. 내가 이렇게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사람이야. 나 자신에게도 진실해본 적이 없는데 남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방법을 알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래도 당신이 솔직한 걸 원한다니까 나도 까놓고 말할게요."

 "......"

 "같잖은 가짜 연애 따위 집어치우고 너 좋다는 그 여자한테나 가."

 

  대답 없는 그를 두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 여전히 비틀거리는 땅을 되짚어가며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서 최대한 빨리 멀어지고 싶다.

  낮은 계단을 겨우 올라 드디어 현관이 있는 대문에 다다랐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휘청, 다리가 엉켜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바로 직감했다. 아, 이대로 넘어지겠구나. 그럼 머리라도 시원하게 박았으면 좋겠다. 정신 좀 차리게.

  하지만 2초 뒤, 내 머리통에 닿은 건 차가운 바닥이 아니었다.

 

 "그거 알아요? 어제도, 오늘도 당신이 하는 말은 거짓말투성이야."

 

  속삭이듯 울리는 미성은 귀를, 달콤하고 시원한 비누 향은 코를 자극했다. 나는 어느새 다가온 그의 너른 품에 가둬지다시피 안긴 꼴이 되었다.

  한 번 풀려버린 다리의 힘은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가둔 단단한 두 팔에 은근한 힘이 더해졌다.

  작은 틈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팔은 내 몸을 조여왔고, 고개는 귓가를 스쳐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

 "난 당신이 아는 그 남자와는 달라."

 

  으르렁, 이를 악물고 거칠게 숨을 고르는 소리에 두 개의 동공이 초점을 잃고 어지러이 흔들린다.

  지금 이 남자가 나를 볼 수 없어 다행이다. 아니, 내가 이 남자를 보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다.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등에 여실히 느껴지는 빠른 진동만으로도 이렇게 떨리는데, 이대로 얼굴까지 마주한다면 분명 무너지고 말 거야.

 

 "후,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되겠어요."

 

  한참이나 숨을 고른 그가 자신의 팔을 풀어 내 어깨를 밀어냈다. 다소 거칠었던 조금 전과 달리 어깨를 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내일 저녁에 다시 만나죠. 감정적으로 실수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그때도 내 생각이 변함없으면?"

 "그게 진심이라면 나도 깨끗이 물러나야겠죠."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안을 가득 채우던 무언가가 썰물을 따라 빠져나가고 대신 공허함이 밀려들어 온다.

  순간의 허전함을 참지 못하고 바르르 떨고 마는 아랫입술을 나는 나무라듯 가볍게 깨물었다.

 

 "단, 내일도 오늘처럼 거짓말을 한다면..."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탁해진 눈이 가는 길을 따라 기다란 손가락이 나의 입술을 훑었다. 잇새에 짓이겨진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다시금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해진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이 표정, 위험하다.

  코끝을 사이에 두고 한층 진해진 비누 향에 이질적인 향이 더해졌다. 그것은 남자의 향기였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그의 입술이 귓가에서 멈춰섰다. 이윽고 쇳소리가 섞인 지독히도 아찔한 경고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다음은 나도 책임 못 져요."

 

 

 ♬♪

 솔직함이란 외로운 단어예요

 모든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죠

 솔직하다는 말은 듣기 어려워요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당신에게서 필요한 거죠

 

 내 감정을 솔직히 나타내면

 날 동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난 보기 좋은 얼굴로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하는 건 원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깊은 사색에 잠겨 있을 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내가 떠나 있을 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게요

 

 다만 내가 진실을 구할 땐

 내가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당신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니까요

 

 ♬♪Beyonce - Hon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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