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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55. 사랑한다 말할까 봐(1)
작성일 : 17-07-18 23:06     조회 : 315     추천 : 1     분량 : 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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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015. 9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이 감은 두 눈을 간질인다. 건조한 바람이 데려온 달콤한 옥수수떡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건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는 볼리비아의 여름 냄새.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감기는 그리운 어느 날의 기억.

 

 "음음음."

 

  나는 다니엘라(Daniela)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사르륵,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스치는 손길에 나는 살포시 마음 한자락을 내려놓았다.

  볼리비아에서는 친구이지만 사실은 세 살 언니인 다니엘라가 웃음기 배인 말을 흘렸다.

 

 "Estas camote. No? (너 사랑에 빠졌구나. 그렇지?)"

 "No. (아니.)"

 "Mentira. (거짓말.)"

 

  아니라니까! 아, 진짜. 여기나 저기나 왜 이리 사랑 타령에 거짓말 타령이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니엘라의 손을 떠난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붕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Pobrecita. Hasta cuando quedaras en el pasado? (이 불쌍한 아가씨야. 언제까지 과거 머물러있을 거야?)"

 

  안타까움과 나무람이 공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투명한 유리잔처럼 훤히 보였다.

  하지만 난 전혀 불쌍하지 않다고, 오늘을 아주 잘살고 있다고 그녀에게 반박하려 했다.

  그런데 한 남성이 나타나 나를 가로막았다.

 

 "누구?"

 

  서양 아기들만 가질 수 있는 레몬 빛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남성이 언젠가 봤던 것과 같은 진녹색 재킷을 걸치고 눈을 가늘게 늘이며 웃었다.

 

 "사려 깊은 아가씨라 그래."

 "당신은 레몬 보이?"

 "신중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하지만 때로는 머리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는 것도 좋아."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는 제 할 말만 이어갔다. 그러더니 녹색 재킷의 주머니를 뒤져 두 개의 실뭉치를 꺼냈다.

 

 "파란색은 '성숙한 믿음과 지혜'를, 은색은 '마술 같은 일'을 의미하지."

 "마술은 속임수예요. 진실이 아니라고요."

 "그러는 넌 속임수라도 좋으니 달라지길 바라고 있잖아. 너야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 아니야?"

 

  자신이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그는 내 마음을 제멋대로 판단했다.

  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살며시 미소 지은 그가 두 개의 실뭉치 중 은색을 내게 내밀었다. 세밀한 조직으로 이뤄진 실은 신기하게도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난 이미 너에게 마술을 선물했어. 그걸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그래요. 내 자유니까 강요하지 마요."

 "그런데 말이야. 네가 선물한 푸른 실을 받은 누군가는 꽤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더라고."

 

  레몬 보이는 남은 실뭉치를 가볍게 위로 던졌다 받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깊은 심해를 떠올리는 짙푸른 색의 실뭉치마저 내게 건넸다.

 

 "이번에야말로 네 눈에 가득 찬 눈물이 마르길 바라."

 

  그에게서 실뭉치를 건네받는 순간, 등 뒤에서 맑은 피콜로 소리를 닮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문도준."

 "......"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문도준."

 "......"

 "그 빛, 나한테만 비춰줘야 해."

 

  도준이라 불린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만으로도 문자를 대신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쪽, 입술로 도장을 찍었다. 둘인 듯, 하나가 된 두 사람이 그대로 뒤돌아서서 멀어진다.

 

 '잠깐만!'

 

  그들을 불러세우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온 힘을 끌어모아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스치듯 잠시 마주친 그의 눈은 얼음장만큼 차가웠다. 갑자기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나의 하늘에서 태양을 떨어뜨린 이와 너무나 닮은 뒷모습이 뿌연 안개 너머로 사라진다.

  다니엘라도, 레몬 보이도 사라진 이곳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넌 이제 예전의 태양이 아닌 것 같아.'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나를 감쌌다.

  손으로 이리저리 휘저어도 소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안개 속에 앉아 울고 또 울다가 잠을 깬 것 같다.

  햇살이 아파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얼굴을 다 적시고 베갯잇까지 얼룩지게 만든 물기 때문에 기분이 찝찝하다.

 

 "예전의 태양이 아니라고?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떠나간 사람 하나 때문에 과거에 묶여있는 내가 싫다. 고작 깨진 사랑 하나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싫다.

  이제는 나도 변하고 싶다. 레몬 보이의 말대로 머리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고 싶다. 마술 같은 오늘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

 -1시간 뒤에 집 앞으로 갈게요.

 

  두개골을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밀가루의 문자가 도착했다.

 

 "아, 그래.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

 

  술과 감정에 휩싸여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만나 담판을 짓기로 했어.

 

 "잠깐, 1시간 뒤에 보자고?"

 

  지금 몇 시지? 시계가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오후 4시? 맙소사. 내가 대체 몇 시간이나 잔 거야?"

 

  나는 좀비와 다름없는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빛의 속도로 샤워를 끝내고서 신경 써서 옷을 고르고, 화장대에 앉았다.

  오늘따라 손이 왜 이리 더딘지 모르겠다. 숙취로 퍽퍽해진 얼굴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필이면 상대가 어리고 잘생긴 문도준이라서 더 그렇다.

  나는 비장의 무기로 생기를 더해줄 오렌지 빛깔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에 그었다.

 

 "그나마 봐줄 만 하네."

 

  그러고 보니 쓰디쓴 오렌지를 따 먹어 보겠다고 한밤중에 둘이서 생쇼를 펼친 적이 있지, 아마.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밀가루랑 있으면 웃는 날이 많았던 것 같네.

 

 "미워하려도 미워지지 않으니 어쩌면 좋아."

 

 

 *

  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어제의 추태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도, 밀가루는 내가 차에 몸을 집어넣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생각해봤는데, 오늘이 마지막인 걸로 하는 게 좋겠어요."

 "뭘요?"

 "계약이요."

 

  아, 그 말도 안 되는 명의대여 계약 말이지.

  잠깐. 중간에 해지하게 되면 내 돈은 어찌 되는 건가, 가수양반? 설마 쪼잔하게 다시 뱉으라고 하진 않겠지?

  밀가루가 다가와 빨간색 벨트를 매주었다. 계약해지라도 하러 갈 예정인지 어지간히 급해 보인다.

 

 "지금 시각 5시 17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다 하려면 우리 오늘 엄청 바빠요."

 "뭘 얼마나 하려고요?"

 "그건 비밀. 신데렐라 될 준비나 하고 있어요."

 "설마 12시까지 안 들여보내겠다는 건 아니죠?"

 "빙고."

 

  B-I-N-G-O. 빙고는 뉘 집 개 이름이던가?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느라 통금시간이 엄격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린 시절 동심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그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각오해요."

 "하아."

 

  갑자기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술 깬다고 찬물에 샤워한 게 문제였던 걸까, 이 제멋대로인 밀가루가 문제인 걸까?

 

 

 **

  야간개장을 시작한 놀이공원의 매표소 앞, 얼핏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 놀이공원 가기로 했잖아요."

 "싫어. 차라리 다른 거 해요."

 "난 꼭 들어가야겠어요."

 "동네방네 다 소문낼 일 있어요? 문도준이 데이트하러 왔다고?"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두 남녀는 입장권을 양쪽에서 잡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여자가 소리를 빽, 지르는 순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며 입장권은 남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남자, 밀가루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입장권을 머리 위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도 좋고."

 "미쳤구나. 돌았구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핀잔에도 밀가루는 싱글싱글 웃어넘길 뿐이었다. 미친 게 분명해.

  그가 가방에서 검은 물체를 꺼내 들었다. 얼굴 3분의 2는 충분히 가릴 법한 마스크였다.

 

 "설마 준비도 안 하고 왔을까 봐?"

 

  그는 내게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꼼꼼하게 씌워주고 나서야 자신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래도 불안해."

 

  과연 이런 걸로 웬만한 연예인도 해양 연체동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문도준 후광을 가릴 수 있을까?

  그래도 알음알음 까맣게 변한 세상에 적응하고 있을 즈음, 이번에는 머리띠로 추정되는 물체가 얹어졌다.

  이것은 주로 콘서트에서 착용한다는 깜빡이 리본? 이게 미칠 거면 혼자 곱게 미칠 것이지, 나는 왜 물고 늘어져?

  내가 당장 벗어버릴 기세로 손을 올리자 밀가루가 황급히 머리띠를 붙잡았다.

 

 "어어!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아, 네네. 그러세요."

 "마지막이니까."

 "그래요."

 

  그래요. 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없었단 거 다 알아.

  시작부터 기운을 빼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빠르게 체념하고 머리띠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그러자 밀가루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낚아챘다.

  살짝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꿈에서 본 두 개의 실뭉치를 풀어 엮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가 깍지낀 손을 번쩍 들어 가슴께에서 흔들었다. 마스크도, 선글라스도 가리지 못한 순백색의 미소가 단번에 시선을 앗아간다.

 

 "그러니까 오늘은 진짜 연인처럼 데이트해요."

 "...그래요."

 

  그래, 마지막이니까.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보자.

  처음이자 마지막일 우리 두 사람의 달콤시큼한 데이트, 마음이 이끄는 대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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