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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66. 그대에게선 설렘설렘 열매가 열리나봐요(3)
작성일 : 17-07-26 01:23     조회 : 356     추천 : 1     분량 : 8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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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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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여행?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염소 울음소리가 나왔다.

  본디 성인 남녀 간의 여행이라 함은 산과 바다 그 어디로 가든 결국 '오빠 믿지?'로 귀결되는 깔대기형 구조가 아니던가.

  아, 이 남자는 오빠가 아니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무리 알게 된 지는 제법 됐다지만 사귄 지는 한 달도 안 됐다고! 진도가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거야?

 

 "다음 달에 컴백하려면 아무래도 다음 주부터는 잠깐 얼굴 보기도 힘들 테니까.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볼 추억 정도는 만들어 두려고요."

 

  싱긋, 화사한 미소와 함께 대답한 도준 씨가 빨대를 다시 입에 물었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모양을 보며 나는 돌연 부끄러워졌다.

  아, 그는 정말 순수한 의도로 여행을 권한 것이었다.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할 연인을 위한 배려였다.

  못 살겠다, 진해연. 이런 착한 남자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인천 섬 중에 내가 아는 분이 하는 펜션이 있는데, 어때요?"

 

  잠깐, 펜션? 그것도 배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섬에서?

  뭔가 수상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야.

 

 "저녁에 나오는 배는 있어요?"

 "작은 섬이라 배가 일찍 끊기긴 하는데, 그래도 펜션이라 배를 놓쳐도 걱정은..."

 "나 안 가."

 "어, 왜? 나 막, 일부러 배 끊길 때까지 기다리고 그러지 않아요. 물론 어찌하다 보면 놓칠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우연과 사고로 인한..."

 

  내가 눈에 힘을 주어 째려보자 그가 깨갱, 하고 꼬리를 내린다.

  그럼 그렇지. 순수한 의도란 말 취소다. 착한 남자는 무슨, 흥이다!

 

 "오케이, 오케이. 당일치기 콜."

 

  두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한 도준 씨가 쳇, 하고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지. 그런데 오히려 보란 듯이 입을 쭉 내밀고 소파에 몸을 묻는다. 문도준 어린이의 등장이다.

  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 위로 파고들었다. 덩치는 커다래가지고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아기새다.

  몸만 큰 아기새 한 마리가 입을 오물거리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제법 낮게 깔린 미성이 새의 지저귐처럼 귓가를 간질인다.

 

 "추억 만들려면 3박 4일도 부족하단 말이에요."

 "추억은 하루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좋아. 시간은 양보할게요. 대신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요."

 "언제는 안 그랬어요? 매번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했으면서."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나의 어깨에 기댄 채로 조용히 중얼거린 그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무릎 위에 가만히 얹어져 있던 나의 손 하나를 찾아낸 그가 깍지를 끼고 엄지손가락을 비빈다.

  어깨를 스치는 그의 머리카락과 손등을 간질이는 그의 손가락에 발끝부터 생경한 느낌이 피어 올라온다.

  평소라면 뭐 하는 거냐고 밀어냈겠지만, 오늘은 그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여 아무 말 하지 않고 견뎌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지릿지릿한 느낌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던 나는 심각하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게는 내색하지 않지만 높은 강도의 연습으로 지친 그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졌다.

  이 남자가 왜 갑자기 심각 모드지?

  흩날리는 밀가루답지 않게 묵직한 그의 모습이 왠지 위로해줘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아래로 흘러내려 예쁜 두 눈을 가린 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내게는 도준 씨와 함께라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머리카락을 넘겨 시원하게 노출된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곧 초승달 모양으로 보기 좋게 휘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강아지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잠자코 있던 도준 씨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왔다. 손길을 더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불만인 것 같기도 한 눈빛이 내 손을 멈춰 세웠다.

 

 "너무해요."

 "뭐가 너무해? 도준 씨가 좋다는 말이잖아요."

 

  내게 기대있던 그의 몸이 털썩, 소리를 내며 소파로 옮겨갔다. 어깨 위에 얹어졌던 무게가 사라지니 생각보다 허전하다.

  그도 입으로는 불평을 터뜨렸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이다. 입가에 맺힌 웃음 위로 뺨에는 발그레한 꽃이 피었다.

  하지만 정말로 지친 듯 소파에 몸을 깊숙이 기댄 그가 한 팔로 눈가를 가리며 내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얼굴에도 그와 동일한 꽃이 피어올랐다.

 

 "이러면 설레서 집에 보내줄 수가 없잖아."

 

 

 *

  새벽 3시, 늘해랑 작업실 앞.

 

 "피곤하겠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오늘도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자주 보지 못하는 만큼 서로에게 집중하자고 다짐했건만, 반듯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을 놓고 마는 나다.

  나는 데려다 준 도준 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그의 품에 포옥 안겨버리고 말았다.

 

 "아아, 보내기 싫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시원한 비누 향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남자다운 목울대가 일렁이는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우자 목에서부터 열이 확 올라온다.

  말장난이야 사귀기 전부터 많이 주고받았으니 적응했지만, 아직 스킨십은 어렵단 말이야.

  나는 후다닥 그의 품을 벗어나 반 바퀴를 빙글 돌았다. 부디 어둠이 붉은 뺨을 가려주길 바랐지만 우리 둘의 위에는 은은한 가로등이 비추고 있다.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었는지 그는 다시금 나를 돌려 안았다. 단단한 팔은 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조여왔다.

  널찍한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으니 기분 좋은 현기증이 일었다. 이대로 더 있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팔딱대는 심장 소리를 들킬 것 같아 나는 서둘러 몸을 틀었다.

 

 "그럼 잠깐 차라도 마시고 갈래요?"

 "아니. 가야죠."

 "그래요, 그럼."

 "잠깐."

 

  그가 품에서 벗어나는 나의 팔을 꽉 붙잡았다.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린 것을 보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왜? 차 마시고 가라는 걸 거절한 건 당신이잖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를 빤히 올려다봤다.

  그런 나를 본 도준 씨가 입안에서 끄응, 소리를 내더니 이내 한숨을 포옥 내쉰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해연 씨는 꼭 한 번씩만 권하네요."

 "응?"

 "자고로,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세 번은 권하는 것이 예의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한참 만에야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지금, 다시 한번 물어봐달라는 거지? 이 남자가 한 번 튕겨놓고 내가 다시 잡지 않을까 봐 끙끙대는 거 맞지?

  잡고 있는 팔은 놓기 싫고, 하지만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하겠고. 고개를 돌린 채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입 밖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사람이 어딜 봐서 대한민국 여심을 강타한 치명적 카리스마 문도준이라는 거야? 내 눈에는 그저 귀여운 재패니즈 스피츠인걸.

  한참이 지나도 웃음소리가 줄어들지 않으니 본인도 민망한지 이제 그만 웃으라며 머리를 꾹꾹 눌러댄다. 이건 고양이가 꾹꾹이 해주는 것 같아.

  도준 씨의 가슴에 손을 대고 내가 좋아하는 작은 밤하늘에 가만히 눈을 마주쳤다. 맞닿은 그의 몸이 흠칫 놀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실은 얼마 전에 도준 씨 주려고 과일청을 만들었어요. 지금쯤이면 잘 익었을 것 같은데..."

 

  얼굴 사이로 손바닥 하나가 지나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표정 변화가 한 눈에 보인다.

  입술은 꼬물꼬물, 코는 찡긋찡긋하는 걸 보니 이 남자, 지금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나는 거절할 생각이 없는 그를 위해 다시 한번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주었다.

 

 "차, 마시고 갈래요?"

 "네."

 

 

 **

  따뜻한 물에 우린 차를 쟁반에 들고 나왔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파에 앉아 영어교재를 넘겨보던 도준 씨가 사라졌다.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이내 창고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역시나 그는 창고에서 말린 꽃으로 만든 카드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가 해사한 미소와 함께 성큼 다가왔다. 그 미소에 홀린 내가 멍청히 들고 있던 잔을 입으로 가져간 그는 다시 한번 미소를 띄웠다.

 

 "맛있다. 이건 무슨 차예요?"

 "배랑 도라지요. 어렸을 때 천식 때문에 많이 먹었는데, 목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한테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가져가서 멤버들이랑 같이 먹어요."

 "지금도 아파요?"

 "응?"

 "천식, 아직 아프냐고요."

 

  정작 천식에 걸려서 목과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은 건 나인데, 누가 봐도 신체 건장한 남자가 마치 자기가 더 아픈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아아, 지금은 괜찮아요. 날씨가 아주 춥거나 숨이 차지만 않으면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무리 없어요."

 

  전혀 아프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는 얼굴에서 걱정을 지워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선반으로 돌렸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을 들고 창고 안을 돌아보는 그를 따라 나의 시선도 찬찬히 움직인다.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도 한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달라 보이는구나.

 

 "이러고 있으니 그날 생각나네."

 

  도준 씨는 먹기 좋게 식은 차를 한 모금 넘겼다.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둘러보는 그의 눈이 무언가를 회상하듯 흐릿해졌다.

  그가 말하는 그 날이 언제인지 나도 알고 있다.

  온종일 혼자서 술래 없는 얼음 땡 놀이를 했던 날. 결국, 아무도 땡을 쳐주지 않아 얼음 상태로 놀이를 마쳐야 했던 그 날.

  그날 나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알아채고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혹시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당황했을까, 좋았을까, 아니면 싫었을까?

 

 "만약 그때 눈치 없는 채라희가 오지 않았다면, 우린 여기서 뭘 했을까요?"

 "그냥 얘기나 하고 나갔겠죠."

 "흐응."

 

  콧소리와 함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남자치고 선이 고운 기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날카로운 턱선을 느릿하게 쓸었다.

 

 "정말? 확신해요?"

 "그, 그럼. 그때 우리 사이에 할 게 뭐가 있어요."

 "나는 있었는데."

 

  성큼 다가온 그의 얼굴 때문에 돌연 심장이 쾅, 하고 얻어맞은 것처럼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등 뒤로 선반의 감촉이 와닿았다.

 

 "아, 이건..."

 

  데자뷔인가? 그때와 똑같잖아.

  심장에서부터 홧홧한 기운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나는 또 이렇게 얼음이 되어버리는 걸까?

  양팔로 가로막아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공간, 코가 스칠 정도의 거리에서 건너오는 다디단 차향이 섞인 그의 숨결, 그리고 고막을 세차게 두드리는 나의 심장 소리.

  열기에 휩싸여 정신이 꽁꽁 얼어버린 나를 내려다보는 그가 낯설다. 누구라도 유혹할 만큼 뇌쇄적이고 거만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눈빛에 나는 그만 사로잡혀 버렸다.

  맹수 앞에 선 먹잇감마냥 바르르 떨고 있는 나의 손을 그가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심장박동에 손가락 하나하나가 저릿해진다.

 

 "내 심장은 그때도 이렇게 뛰고 있었어요. 처음엔 내가 이상해진 줄 알았어."

 "아..."

 "콩알 같이 조그만 여자가 항상 강한 척만 하는데, 어쩌다 문득 쳐다보면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더라고."

 "......"

 "애꿎은 입술을 짓이기면서 눈물이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걸 보면 이유 없이 화가 났어요. 그래서 해연 씨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또 깨물겠다 싶으면 짓궂게 굴곤 했죠."

 

  입술을 깨무는 건 나의 습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눌러야 할 때, 눈물샘이 가득 차 아려올 때, 내뱉어선 안 될 말이 입안에서 모양을 만들어낼 때 입술을 깨물곤 했다.

  그렇게 억지로 밖으로 나가는 문을 닫고, 가장 연한 살을 관통하는 짜릿한 통증에 집중했다.

  스스로 가하는 고문은 입술 껍질이 벗겨져 비릿한 쇠 맛이 느껴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부터 그래왔던지라 요즘은 나 자신도 입술을 깨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물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나조차도 모르는 사실을 알아챘을까? 손바닥에 맞닿은 심장이, 손등에 맞닿은 손이 문도준이란 섬세한 존재의 온기를 전해준다.

 

 "그러다 세 잎 클로버를 녹음하던 날, 부스 안에 서 있는 해연 씨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눈에 띄게 흔들리는 게 너무 불안해서, 그런데 그 모습조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 그제야 알았지. 아, 내가 이 여자를 신경 쓰고 있구나."

 "도준 씨."

 "그동안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뿐, 이미 많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사랑이란 감정은 물감을 풀어둔 물 같다. 그 물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한참 물들어 도저히 색을 지울 수 없게 된 후에야 정신을 차린다.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칠수록 심술궂은 물은 더욱 천을 적시고 더 진하게 물들이곤 한다. 바로 나처럼, 우리 두 사람처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짙은 숨결과 함께 귓속을 파고드는 달콤한 목소리에 점점 물들어가고 있다.

 

 "아까도 말했듯 난 이기적이에요. 난 당신과 매 순간 같이 있고 싶어.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 다 우리가 함께했으면 좋겠어."

 

  자신이 한 '같이'라는 말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 그 말이 내게 얼마나 강한 울림을 주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아픔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프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탈진할 때까지 울고,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짐을 가족에게 지울 순 없었다. 진이에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일을 더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달에게 말을 걸면서 조용한 밤길을 걸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고 곁길만 걸었다. 그런 내 인생에 갑자기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당신은 어쩜 예쁜 말만 골라 하는 거예요?"

 

  태양보다 달이 좋다고 했다. 같이 있어 줄 테니 도망가지 말라고 했다. 혼자 버티는 건 그만하고 제게 기대달라고 했다.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해달라고 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모진 말도 했지만, 사실은 이미 나도 모르게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나를 떠날까 두려워했다.

  아무리 입술을 꾹꾹 짓누르고, 깨물어봐도 나만을 위해 해사한 미소를 지어주는 한 남자를 향해 새어나가는 감정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 입술 괴롭히지 마요."

 "도준 씨."

 "내 것이기도 하니까."

 

  말을 하면서 그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입술 위를 살며시 쓸었다. 그 손길이 솜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캐러멜처럼 진득해 나는 추운 겨울날 소름이 돋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얼굴 위로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맞닿은 코끝이 간지러운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다. 정말 그의 것이 되기라도 한 듯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고막을 크게 울렸다.

  으아, 도준 씨한테 들렸으면 어쩌지? 상상만으로도 창피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쪽, 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이마 위에 닿았다 떨어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아, 이마부터 시작인 건가?

  그러나 계속 기다려봐도 더 이상의 접촉은 없었다. 한쪽 눈을 살짝 올려 뜨자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 입술 끝이 씨익, 짓궂게 올라간다.

 

 "너무 늦었다. 그만 가볼게요."

 "어?"

 

  설마 방금 이마에 한 걸로 끝난 거야? 어, 그런 거야? 아니, 그보다 나는 더한 걸 바라고 있었다는 거야?

  오, 마이, 갓!

  아무래도 그에게는 내 머릿속의 외침이 들리지 않나 보다. 머리를 정돈해주고는 언제나와 같이 우유 푸딩을 닮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줄 뿐이다.

 

 "내일모레 새벽에 여기로 데리러 올게요."

 "아..."

 "밤 12시까지 안 놔줄 거니까 미리 스케줄 조정해둬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창고를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다행히 뜨거울 정도로 푹 익었던 두 볼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갈수록 난리가 나고 있다.

 

 "엄마야. 아무래도 나, 음란마귀가 씌었나봐."

 

 

 ♬♪

 몰래몰래몰래 자꾸 쳐다봐요

 원래원래원래 이리 예뻤나요

 절레절레절레 고갤 흔들어도 안 돼

 

 빨리빨리 나 좀 어떻게 해줘봐요

 난리난리난리나겠어요

 그대라는 감옥에 평생 갇혀 살고 싶어 가둬줘요

 

 그대에게선 설렘설렘열매가 열리나봐요

 그대 때문에 놀란 놀란 내 마음은 어쩌죠

 난 자꾸만 그대에게 홀리고 말리고만 싶어져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진 마요

 

 나를 좀 봐봐요 이런 날 아나요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도 벗어날 수 없잖아요

 

 이런 나를 그대 외면하진 마요

 

 ♬♪ 음란소년 - 그대에게선 설렘설렘 열매가 열리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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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07-3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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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38. 얼음 땡(2) (2) 2017 / 7 / 11 354 1 4880   
40 037. 얼음 땡(1) 2017 / 7 / 11 281 1 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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