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26화. 심판의 날
말을 마친 도영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미사일이 정확하게 터지려면 조금이라도 놈의 움직임을 막아야 해...’
이미 수인(獸人)의 전투력이 자신을 압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오로지 현무 미사일의 탄두가 범의 머리통에서 터지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
군은 드론 촬영과 자신의 휴대폰 GPS로 위치를 추적해 발포할 터였다.
하지만 마지막 발포가 되기 전에 범이 미사일을 보고 위치를 옮겨 버린다면 위력이 감소할 것 이었다.
어설프게 빗겨 맞는 다면 저 두꺼운 보호막을 깨지 못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게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영호는 허리춤에 있던 자신의 삼정검을 뽑아들었다.
삼정검의 앞면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영호 앞날은 죽음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그 죽음을 어떻게 활용 하냐 하는 차이.
자신의 죽음이 어떻게 쓰여야 할지 고민을 하던 도영호는 다시 칼을 잡아 자세를 취했다.
두 발로 걷고 있는 저 수인(獸人)의 눈을 또렷히 보다가 발을 박찼다.
강렬한 기합과 함께 삼정검의 칼끝이 가슴팍을 노리면서 들어갔다.
합!-
칼은 허공을 갈랐다. 이범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했다.
도영호 준장은 속도를 높이며 칼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이범은 칼끝을 빠른 눈동자로 따라가면서 공격을 피했다.
도영호는 이범을 베지 못하는 것에 분노도 있었지만, 반격을 하지 않는 이범에게 되려 더 화가 났다.
도영호는 마치 자신이 어린아이가 되어, 범의 장난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더 분노해서 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질렀다.
감정과 힘이 실린 공격은 더욱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이범은 반사적으로 도영호의 칼을 흘려보내며 어떻게 하면 미사일을 막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그냥 도망가 버리면... 대한민국은 더 혼란에 빠지겠지?..’
‘여의도 시민들은 모두 대피 시켰나?’
‘길어야 몇 분 안으로 날라 올 텐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자신의 공격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 도영호는 범의 목 한가운데를 노렸다.
‘일단 저 사람부터 조용히 시켜야 겠어.’
도영호 회심의 공격을 피하며 칼을 야수의 손으로 쳐버렸다. 삼정검의 칼날이 반으로 쪼개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퍽!
이범은 주먹을 내질렀다. 복부에 주먹을 한 대 맞은 도영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때 이질적인 냄새와 기운이 하늘 저 편 끝에서 빠르게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젠장, 벌써.....’
냄새와 바람의 방향으로 보아 최소 20기 이상의 미사일이 발사 됨즉 했다.
‘아...!!’
그의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범은 즉시 손을 폈다.
그러자 예전보다 더 두꺼워진 보호막이 만들어 졌다. 그가 수인이 아닌 인간이었을 때 보호막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가 있었다.
‘보호막.. 이거라면.. 가능할 수 있어..!’
***
수도권 인근 모처의 산기슭
직사각형 모양의 발사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도열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발사대는 수직으로 일어났다.
이동식 발사대의 수는 30대
고요한 산속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무전기와 통신 하던 한 군인이 자세를 잡더니 그의 깃발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 신호에 맞추어 발사대 아래쪽에선 불길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몇 초 뒤엔 맨 입구에서 현무 미사일의 검은 탄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두르지 않고 현무 미사일은 탄두에서부터 몸체에 이르기까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곧장 모습을 드러낸 현무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하늘에는 차례대로 발사된 30여대의 미사일이 각자 거대한 불길을 내뿜으며 여의도를 향해 발사되었다.
육군참모총장 황서환과 나머지 군인들은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시민 모두 초조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종교인들은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지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손을 맞잡으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미사일은 서울 항공까지 순식간에 진입해서 들어왔다.
황서환은 천천히 일어나 경례를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끝까지 애써준 도영호 준장과 707특임대 부대에 대한 경의였다.
참모총장의 경례를 본 나머지 다른 사령관들도 일어나 화면에 대고 경례를 했다.
“목표 지점까지 도착 10초 전입니다.”
“10...9...8....7....6....”
황서환은 침을 삼켰다. 현무 미사일마저도 무용지물이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5..........응?!”
쿠웅...! 퍼어어엉!! 펑 펑 쾅!!
미사일들이 지면에 닿기 5초전 하늘에서 먼저 터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황서환은 경례하고 있던 자세를 풀고 통신병을 다그쳤다.
“뭐야? 지금 뭐 어떻게 된 거야?”
“그...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뭔가에 막혀 터진 듯 같습니다.”
“빨리 드론 더 보내거나 화면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빨리 연결해!”
화면은 연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답답함에 황서환은 자신이 앉고 있던 의자를 발로 찼다.
***
이범은 이리저리 보호막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모든 미사일을 막을 만큼 큰 보호막을 만들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자동차 하나 크기를 감쌀 수 있을 정도.
‘이걸로는 부족해..’
더군다나 보호막이 현무 미사일을 막아 낼 수 있을 지도 의문 이었다.
이범은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몇 번 건물 외벽을 밟더니 옥상으로 쉽게 올라갔다.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하늘에서 터뜨려야 한다!!’
옥상에서 그는 쪼그려 앉았다. 쪼그려 앉는 다리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밟고 있는 옥상의 시멘트 바닥이 이범의 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이범은 그 근육에서 터질 것 같은 압박이 들 때.
다리를 박찼다. 미사일처럼 이범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수 백 미터 상공에서 떠오른 상태
마침 미사일은 그 상공위에서 날라오고 있었다.
이범은 첫 번째 날라오는 미사일을 향해 손을 펼쳤다.
미사일 탄두 바로 앞에 파란색 두꺼운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단단한 보호막과 부딪힌 탄두는 하늘에서 폭발했다.
퍼엉! 쿠우우우웅!
하늘에서 굉음을 내며 현무가 터졌다. 보호막은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형을 유지하면서 그 폭격을 견디어 냈다.
‘됐어!’
이범은 뒤이어 다른 미사일들 앞에도 보호막을 만들어 내 공중에서 터뜨렸다.
퍼엉! 쿠우우우우웅! 퍼어어어엉!
하늘에선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물과 잔해물들이 어두운 비가 되어 내렸고,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범은 그의 신체감각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감각으로만 미사일들을 하나씩 공중에서 터뜨려 나갔다.
퍼어어어어엉! 쿠우우웅!
‘그래... 이 정도라면....’
퍼어어어억! 쿠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으으으윽!.’
그때 뒤쪽에서 날아온 미사일 탄두 하나가 이범의 등에 적중했다.
단단한 이범과 부딪히자마자 현무미사일은 그대로 터져 버렸다.
손 쓸 틈 없이 공중에서 폭발한 이범은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범이 보호막으로 터뜨린 현무 미사일은 10개 남짓.
발사된 30대의 미사일 중 남은 미사일 20대가 상공에 여전히 떠있었다.
지면에 떨어지는 곳에 방해물이 없어진 그 미사일들은 차례대로 여의도에 떨어졌다.
이범의 주먹을 맞고 어렴풋하게 정신을 차린 도영호 준장은 하늘에서 이범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왜..허공에서?...젠장...실패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이 미사일 하나가 이범의 등에 제대로 꽂혔고 그대로 터졌다. 보호막은 발동되지 않았다.
“아.... 다행...이다...”
그가 지상에서 이범을 붙잡아 정통으로 떨어지게 하는 게 목표였지만, 현무미사일의 탄두가 제대로 이범의 몸통에 터지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어찌 되었든 보호막 없이 저 미사일을 맞았다면 제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상태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는 입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경례를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마무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만..’
경례하고 있는 하늘에선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20대의 현무 미사일이 차례로 여의도에 떨어졌다.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우우웅!!!
현무 미사일은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기세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렇게 한 동안 미사일의 폭격과, 건물이 터지는 소리, 화재, 연기가 한 동안 여의도를 감쌌다.
얼마간 연기가 걷힌 후 드러난 여의도는...
모든 것이 없어진 폐허였다.
멀쩡한 건물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그 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된 그 날
심지어 시체 조차 찾을 수 없었던 그날
눈물을 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심판의 날’
***
- 군인 사상자 : 7000여명 (4000명의 707특임대 전원 사망)
- 민간인 피해자 : 3000여명
- 재산 피해 3조원 이상
‘심판의 날’ 이후 1달째 복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아직까지도 시체도 전부 찾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범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확실한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정부와, 시민 모두는 걱정과 우려 섞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정부는 괴물 범의 공식적인 사망을 선포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기보다, 계속된 공포 분위기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미지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사람들은 그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대로 살아가야 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필요한 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었다. 공포가 없다는 확신,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정부 내 관계자들도 나뉘어 싸웠다. 반은 현무미사일을 정면으로 맞았으니 뼈도 못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니 복구에 치중해야 하는 주장.
나머지는 그 강했던 범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뒤져서라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다시 공포에 휩쌓일 수 있으니 대비를 하자는 입장.
한 달.. 두 달... 그리고 1년이 지나도 범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의 공포는 줄어들었고, 범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시들해졌다.
대한민국 곳곳에 심판의 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모두 한쪽에 묵혀둔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
태백산맥의 한 깊은 숲 속
인간이 된 이범은 계곡에서 물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영험한 기운이 퍼져 나오는 듯 푸르스름한 기운과 붉은 기운이 그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 이었고, 수염을 제대로 자르지도 않아 마치 타잔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수련을 마치 구경거리라도 된 듯 숲속의 동물들이 힐끔 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이범은 오랫동안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다시 내려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