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야 뭐! 날 파리가 많으면 좋죠. 탱크로리도 임대비고 기사도 운송비도 필요 없고 잘 됐네요. 제가 골머리가 아프게 생겼네요”
수리가 시무룩한 미소를 짓고는 깍지 낀 양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받치고는 눕듯이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뭘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해! 너도 임마 그러면 감량 조사해서 돈 벌잖아”
수리 눈이 날카로워 권태를 노려보고는 하소연조로 투덜거린다.
“허! 그거 몇 푼 된다고요? 차 기름 값도 안 나와요. 그건 그렇고 형님! 동원아!”
그렇게 부르고는 작심한 말이 있는 지 몸을 단정히 고쳐 앉고는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 새끼! 김경일이를 이번에 타깃으로 삼을까 하는데. 형님! 제 마음대로 하게 해 주실 거죠?”
권태가 관심이라고는 아예 없는 밋밋한 표정으로 콧방귀만 툭 치고는 너스레를 떤다.
“언제는 네 마음대로 안 했나?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한 게 뭐 있어? 자식이 결정을 이미 해놓고는 또 의논하는 척 하네. 네가 알아서 해. 임마! 딱 한번만이라도 나를 보스로 인정해주면 너는 죽어서도 복 많을 거다. 이 놈아! 뭔데 결정된 의견이 뭐야?”
이때는 예의를 깍듯이 갖추는 시늉인 벌떡 일어서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는 얼른 앉아 동원을 쳐다보고 묻는다.
“동원아! 너도 내 계획대로 해줄 거지? 요즘은 어른보다 너처럼 젊은 친구들이 더 무서워”
“뭐! 결론 다 내려놓고 저보고 반기를 들라고요. 하여튼 대가리 먹물 들어간 놈들은 저 모양이라니까. 이때는 형님이 대학 나온 건 인정합니다. 어떻게 잔머리 굴리는 데 머리를 써요? 정말 묻고 싶은데 형님 무슨 과 나왔어요? 잔 대가리 과? 그런 과도 있죠?“
수리가 벌떡 일어서 주먹을 동원에게 잽싸게 날렸지만 동원의 머리가 주먹보다 훨씬 빨랐다.
“뭐! 이 새끼가!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내가 입사 비리로 입사시켜줬더니 진급도 진급 비리로 대장 됐냐? 행동과 나왔다. 이 놈아!”
수리 주먹보다 더 빠르게 몸을 피한 동원이가 앉으려다가 다시 엉거주춤하게 일어 서서 주먹을 쥔 채 ‘원 투 원 투’,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면서 어깻죽지를 세게 비틀어 흔들기도 한다. 아마 다시 주먹이 날아올 걸로 착각해 방어 자세에 돌입한 것 같았다. 수리가 빙긋이 웃으며 앉는 모습을 본 동원도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다루지마! 그래도 동기잖아.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그 놈을 혼내려고 해?”
수리 입술과 눈에서 씁쓸한 미소가 번졌고 다시 일어서 잠시 원 투 스트레이트 시늉을 하고 발차기도 했다. 전혀 오십 대 중반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믿을 수 없을 만큼 올렸다 내렸다는 하는 발이 날카롭게 머리 위로도 올라갔고 가랑이도 아직 찢어지지 않고 쫙쫙 올라갔다. 아직 살아있었다. 권태가 그 모습을 흡족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요. 자기밖에 모르는 놈입니다. 참! 잊을 뻔 했네. 동원아! 이번에 한 놈만 쫓아야 해. 내가 공장 이름하고 주소를 알려 줄 테니 임기사만 쫓아가서 확실한 증거를 잡아 내야 해. 강성호 라는 작자는 인맥이 두터워서 잡아봤자 그거 해결할 때까지 우리만 골머리 아프고 피곤해. 이 놈 저 놈들 부탁 전화도 받아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사망 신고된 사돈에 팔촌까지 다시 무덤을 뚫고 나와 바지 가랑이 잡고 널어질 수 있어. 그냥 단순한 경일만 족치면 그 놈도 자연스럽게 백기를 들게 돼 있어. 족칠 때 확실하게 족쳐야 해. 소문이 삽시간에 번지도록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뭉개버려야 한단 말이지”
수리가 잠시 흥분돼 있는 것 같았다. 가랑이를 천정까지 치솟아 올리고 계속 씩씩대고 있는 걸 봐서는 김경일에게 악감정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동원이가 수리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서 수리 가랑이를 한번 세게 쥐고는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묻는다.
“아야! 야! 다리 올릴 때보다 더 아프네. 무슨 손아귀 힘이 이렇게 세? 아이고 죽겠다”
동원이가 입술을 툭 내밀고 눈알을 살짝 굴리며 능글맞게 쳐다보며 걱정하는 척 한다.
“괜찮아요? 형님! 나이를 생각하세요. 그러다가 가랑이 찢어지면 어쩌려 구요. 어디 보자. 제가 한번 만져봐야겠습니다. 허허허! 그 사람은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죠? 그것 말고는 제가 알아서 해도 되죠?”
가랑이에 사이로 온 동원이 손바닥이 간지러운지 한발 짝 뒤로 주춤 물러선 수리가 가랑이를 손으로 한번 쓱 쓸고는 자기 거시기 위에 손을 올려 동원이 보고 쳐다보라고 한다.
“아니! 여기 있지. 여기 중간다리만 뭉개 버려. 다시는 못쓰게. 그 새끼가 항상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척하면서 알짜배기는 쏙 빼가는 비겁한 새끼야. 중간다리를 다시는 못쓰게 자근자근 밟아버려. 혹시라도 살아나면 또 써먹을 놈이니까 다시는 못쓰게 뭉개버려. 방금 내 발차기 봤지. 그렇게 차버리라는 말이야. 네 발등이 센지 그 놈 거시기가 센지 한번 테스트해봐. 명심해”
권태가 이런 지시를 내리는 수리가 어이도 없고 가당치도 않은지 한숨이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내쉬며 물어본다.
“자식! 왜? 그 놈이 네 애인이라도 뺏어갔나? 지저분하게 그런 걸 시켜. 그냥 몇 대 때려주면 되지. 그건 아주 야비한 것 같다. 그런 방법은 우리 세계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 다른 방법은 없어?”
“뺏어갔으면 제가 이러겠어요? 개새끼가 자기 못 먹는다고 고추 가루 뿌렸으니까 그렇죠.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수리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정말로 순식간에 방금 전의 모습은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서 있었다. 눈이 벌겋게 충혈돼 살기마저 느껴졌다. 권태도 동원도 다른 싸움질에서 이런 눈을 숱하게 봐 와서 잘 알고 있었다. 권태도 동원도 몸이 움찔해졌다. 권태는 오랜만에 봐서 놀랬고 동원도 지금까지 비실비실, 허허실실 웃으며 농담조로 말을 하던 수리를 약간은 얕잡아 봤는데 지금 눈에 튀는 불꽃을 보고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수리가 입을 닫고 조용이 고개를 숙인다. 권태도 아주 잠시 흠칫 놀란 표정으로 수리를 쳐다 봤지만 이내 평정 심을 찾고는 초연하게 웃으며 다독이듯이 말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잊어. 너나 나나 과거에 얽매여 남을 욕할 자격은 없잖아. 안 그래?”
“예! 형님 말씀이 맞지만 그 놈만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번만 봐주십시오”
“야! 정말 치사하다. 형님! 그 깐 여자 때문에 지금 복수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