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또 회장님이 정군이라고 했다.
아직 젊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 사람과는 졸업하는 날이 이별 날이었고 이별도 남들처럼 울고 불고도, 머리채를 싸잡아 뜯고도, 그 외에 아름답거나 애처롭거나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한 ‘편지할게’가 끝이었고 그 후로 전화 통화만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 무렵 윤부장도 지금 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 사람 회사에 전화를 수천 번은 했을 것이다. 국제전화 요금이 많이 나와 월급으로 모조리 털릴까에 대한 배려였는지 아니면 자기 주머니 걱정이었는지 그걸로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정수리는 이름은 하나의 마약 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뭐 그렇게 호감을 살만큼 잘 생기거나 똑똑하거나 하는 그런 사람을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 사람에게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도 끌려간 적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름 하나에 어디로 가는 방향인지도 모르고 또 어떻게 지하철을 탔는지도 잊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정신을 차릴 때쯤 집이 생각났다.
애들이야 다 커서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오겠지만 신랑이 문제였다.
젊었을 때, 특히 신혼 때는 완전무장에서 해체하고 온몸을 받아 줄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새벽녘에나 와서 드르렁거리더니 지금은 벌건 대낮부터 집에 와서 밥만 기다린다.
자기가 차려 먹어도 될 나이인데도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더 성가시게 하는 것 같았다. 나이를 꺼꾸로 먹어 어린애 같다고 나 할까? 점점 더 귀찮아지는데 하필 그 놈의 이름이 나타나 누구에게인지 모르지만 짜증이 났다.
오늘은 왠지 밥도 하러 가기 싫었다.
이상하게 그 사람과 그 놈과 그 새끼에서 오락가락하는 그 사람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기만 했다. 그리고 또 배도 떠올랐다.
그 사람도 윤부장도 촌 년 놈 출신이라 그와 함께했던 시골 고향도 떠올랐다.
거기엔 항상 그 놈이 같이 있었다.
바다도 배도 그 놈 때문에 처음 가 봤고 시골이 고향이지만 논 밭에는 얼씬도 않았던 자신이 그 놈 때문에, 그 놈 손에 끌려 논 밭에서 나뒹굴기도 했다.
나뒹굴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낮에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밤에는 특히 가을엔 구수한 가을 짚단 향기를 맡으며 손잡고 걸으며 ‘우리 저기 가서 나뒹굴까?’ 그런 농담에 가슴이 심하게 꿈틀거리며 요동도 쳤다.
말 뿐이었지만.
그래도 한 두 번은 부둥켜 안고 나뒹굴고는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지푸라기를 털어주기도 했다. 어떤 때 그 이전에 했던 애정표현보다 더 전신에서 소름이 돋게 했고 간지럽고 짜릿하기도 헸다.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윤부장인 연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그때처럼 칠흑 같은 바닷가이다.
집이 아닌 여기로 마음을 데려 온 사람도 그때처럼 수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그 사람과 같이 갔었지만 지금은 혼자다. 물론 그때 그 수리와 회장님이 말한 그 수리는 정군이었기 때문에 동명이인이지 같은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기분이 참 묘했다.
아주 잠시 선박이나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딱 하나의 이유로 나이 어린 대리에게 신출내기 신입사원 취급을 받았던 일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런 무시는 이 회사에 근무하며 겪었던 수 많은 일중의 하나이며 또한 다른 이유로 인해 이전에 수없이 들어와서 별로 개의치 않아졌다.
그래도 한참 아래에게 무시를 당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안 하던 욕이 입에서 나오고 만다.
“어이 씨~ 팔”
연어는 지금 여기 지역 이름은 모르지만 바닷가임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푸른 바다가 아닌 짙은 흑색의 바다고 석유화학제품을 실어 나르는 유조선이 아닌 어선들이 줄줄이 매달려 파도에 꿀렁거리고 있는 바닷가에 서 있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선창가구나!’
바다 반대쪽으로는 횟집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불빛 덕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갯바위도 보였다. 갯바위를 본지가 벌써 삼십 년이 지났다는 생각과 또 떠오르는 그 이름. 수리.
그때처럼 연어는 갯바위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때 연어는 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고 있었고 준 만큼 받고도 있었다. 그날 그 갯바위로 향해 뚜벅뚜벅 걷던 그날 그 사람이 연어 손을 잽싸게 낚아채듯이 붙잡고는 볼이 떨어나갈 정도 꼬집어 흔들었다.
“아야! 아야! 놔! 아야! 아프단 말이야. 아파~~~~”
눈물이 쏙 빠져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목소리는 어리광으로 가득 차있었다.
“야! 임마! 큰일 날 뻔 했잖아. 나를 홀아비로 만들고 싶어”
헛웃음과 콧방귀의 차이가 어떤 건지 명확히 구분은 가지 않지만 그는 홀아비인지 몰라도 나는 ‘노처녀가 아냐! 과부도 아니고’ 둘 중의 하나의 웃음이 씁쓸히 나왔다.
그래도 그때 그 사람 말대로 정말 큰 일 날 뻔했고 그 사람이 거기 없었다면 연어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는 건 기정 사실이다. 또 그 사람이 그때 연어 곁에 없었다면 그런 큰 일 날 일도 없었다는 것도 기정 사실이다.
그날은 어느 바닷가에 같은 과 선후배들이 매년 갖는 일박 이일 행사를 하러 갔다.
그때 그 사람이 과 대표였고 그 사람이 그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고 선후배들이 파도소리와 함께 즐겁게 떠들며 밤을 지샜다.
과 커플들은 자기들끼리, 커플이 없는 선후배들도 자기들끼리 즐거운 밤이었지만 커플을 둔 연어는 외로웠다.
하필이면 연어 커플인 그 사람은 과 대표였고 그는 그의 책임을 다하느라 그의 연인에게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 정도를 이해 못할 사람이 아니었던 연어는 그의 책무에 방해되지 않게 그와 멀리 떨어져서 갯바위 근처에서 외로운 뚜벅 이가 되어야 했다.
섭섭하기도 했다. 그의 책무가 도를 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오지랖 넓게, 짚은 밤 하늘 아래 철석거리는 파도 소리 속에 애정을 표시하는 후배 연인들 뒤를 쫓아다니며 사사건건 방해도 했다.
그는 그날 무서운 오빠였고 형님이었다.
연어 눈과 마음 속에서는 그런 그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후배들에게 신경을 끊고 자신에게 와서 그 커플들처럼 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갯바위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헛디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