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둣가에 한참을 서서 어두운 바다를 쳐다보았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웃음이 나와 옆에 보이는 갯바위로 걸어갔다. 만약에 발을 헛디디면 당장이라도 그 사람 손에 낚아 채 질 것만 같은 설렘도 같이 몰려와 가슴이 두근거려 뒤를 쳐다 봤다. 그는 없고 어둠만 깔려 있었다.
혹시라도 회장님이 말한 정군이라는 그 젊은 친구가 동명이인이 아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가 환생한 그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떠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멀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둘이 싸운 것도 아니었다. 그때 둘의 사랑은 뜨거움을 훨씬 지나 혼인 신고만 안 했을 뿐이지 평범한 신혼부부 같은 사이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나 사랑을 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런 감흥도 없이 이별했다.
어느새 그 젊은 친구가 그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어는 출장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이! 정군! 자네 말이야! 이번에 해줄 일이 있어”
윤부장 회사 회장이 수리에게 전화를 했고 수리는 벌써 그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예! 회장님!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계속 감량이 난다면서요?”
“그래! 아무래도 장난을 치는 것 같아. 자네가 직접 가서 확인해줘. 그리고 우리 회사에 부장이 내려 갈 거야. 하역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줘”
“예! 염려 마십시오. 제가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어. 이번에 확실히 잡아내줘”
전화를 끊은 수리가 고개를 숙여 만지작거리고 있는 손 등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왜? 회장님 전화야? 한 판 붙어달라는 모양이지. 손등을 매만지는 걸 보니”
“예! 형님! 주먹 쓸 일은 아니고요. 기사들 중에 아직도 장난 치는 놈이 있는 것 같아요. 고양이를 호랑이 새끼로 키운 것 같네요. 형님도 잘 아시겠지만 날 파리들이 많아지면 우리도 골머리 아파지잖아요. 더 부풀어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막아야 할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옛날 일까지 들춰내 줄줄이 쇠고랑 찰 것 같은데요”
이 형님은 오래 전에 바다 파의 보스였고 지금은 Sea 상사의 회장이다.
주먹 세계의 이권 개입에서 떠나 지금은 그때 우연찮은 살인사건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이 조직도 그때 그 아저씨. 지금은 회장님의 도움으로 조금씩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그렇다고 그 세계를 완전히 떠난 건 아니었다. 누구나 하나씩의 잘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장점이 무엇인지 모르고 활용하지 못해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장점을 잘 알면서 잘 활용하다가도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여 눈을 돌리다가 굶어 죽는 사람도 자주 볼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만이 불러온 허세 때문에 비참한 결과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조직은 그런 오만을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나름 주관이 뚜렷한 직원이 워낙 많이 있다 보니 오만이란 말 자체가 없는 회사였다. 오만을 부리다가 죽도록 얻어터진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말을 해도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었다.
겸손이 몸에 베인 직원들 밖에 없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바다와 하늘과 땅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제품에 관해 구입과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종합 상사의 이권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법적인 하자가 있어 위험성이 있는 거래에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수리가 직접 나서서 은밀히 조사를 해서 보스에게 보고하고 믿을 수 있는 알짜배기 직원들만 데리고 다녔다.
직원 몇 명은 분사가 아닌 그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상호로 창업해 경영을 원했고 서로 합의하에 떨어져 나간 게 아니고 혈전을 벌인 후에 대부분 매장돼 나갔다. 세상 어디에든 하나의 우두머리만 있는 게 아니듯이 이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지금 여기에서도 그런 독립을 원하는 일부가 또 감지되었다. 그런데 방법이 아주 치졸했다. 세상에 도둑 놈 물건을 도둑질 하려는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기 집 물건을 따로 빼돌리려는 놈이 눈에 훤히 들어오고 말았다.
그들은 한낱 주먹잡이에서 작은 종합상사로 키울 때까지의 노하우를 도용하려고 했다. 어찌 보면 과거로 회귀한다는 고나 할까? 손바닥 주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노력한 과정을 선배들이 잊었다고 오판을 내려 손바닥에 훤히 보이는 짓을 모방하는 몇몇이 감지되고 있었다.
뿌리부터 싹둑 잘라야 할 책임은 오로지 수리만이 져야만 했다. 자기가 개발한 상품이 밖으로 새나가는 데 그걸 막을 자는 그 상품을 개발한 전문가인 수리밖에 없었다.
이 조직폭력조직을 종합 무역상사로 성장시키기까지 수리는 본업에서 가장 솔선수범해서 막아야 할 장물아비들을 차단시키다가 어쩌다가 자신이 더 유능한 장물아비가 돼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세계에서 손을 털고 나왔다. 지금 감지된 짓은 어두운 시절에나 가능했던, 수리가 진절머리 나게 했던 그런 짓인데 이들은 지금 시대에 뒤떨어진 크나큰 오판을 답습하려고 하고 있었다. 도둑질도 해 본 놈이 더 잘 한다는 걸 이들이 망각하고 실행에 들어가고 있었다.
“자! 이 놈들 이름 봐봐”
“운송회사서 빼 온 겁니까?”
“그래!”
“몇몇 회사는 아는 사람들이네요. 그 좀 우리하고 같이하지… 허! 섭섭하네요”
권태가 한 쪽 다리를 꼬여 올리고는 빙긋이 웃으며 수리를 쳐다보고 묻는다.
“야! 임마! 너는 정체가 뭐야? 그러다가 자격증 박탈 당하면 어쩌려고. 나중에 내한테 오지 마라. 나는 한번 떠난 놈은 절대 안 받아준다”
수리가 허리를 앞으로 바짝 붙여 양 팔꿈치를 테이블에 받치고 두 주먹으로 턱을 괴고 권택 코까지 얼굴을 밀어 넣고는 노려본다.
“형님! 요즘 같은 불경기에 형님처럼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직원들과 손톱에 떼나 빼는 형님이나 직원이 회사를 위하는 겁니까? 이 불경기에 저처럼 알아서 퇴사해서 밖에서 물심양면으로 돕는 놈이 진정한 충신입니까?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 위인께서 어떻게 20년 넘게 회사를 운영했는지 참 세상 불공평하네요. 형님은 진짜 천운을 타고 났다니까. 이번에 일 마치고 떡고물 좀 주셔야 해요”
옛날엔 깡패 두목이고 지금은 종합상사 회장인 박권태가 조직원들? 아니 직원들이 수집해 온 이름들은 수리 앞에 내 놓고 수리가 꼼꼼히 살피고는 빙긋이 웃는다.
“피라미들이네요. 일단 지켜보죠. 형님이나 회장님이나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네요”
“야! 그래도 안 되지. 이건 도둑질이잖아”
한쪽 눈을 잔뜩 찌푸려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얼굴로 만들고는 권태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침이 튀어나올 정도로 웃는다.
“풉~~”
“자식이! 더럽게. 웃지마. 임마!”
“아니! 형님! 제가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어요?”
“그 참! 듣기 불편하네. 그런데 잘 처리할 수 있겠어? 손해 안보고?”
“염려 마세요. 일단은 이 놈들이 하는 데로 내버려주세요. 잘 됐네요. 요즘 팔 때도 없는데 이 놈들이 알아서 팔아주는데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죠”
“하여튼 아는 놈이 더해! 배는 언제 들어 온데?”
수리가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휴대폰에 저장된 무슨 사이트를 보고는 대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