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내시 같은 개 새끼가….?’
비열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비아냥거리듯이 들은 척 만 척 외면하는 뒤로 히죽거리는 입 꼬리와 깔보는 듯한 눈빛은 어제 오늘 봐온 건 아니었다.
사내새끼가 돼 가지고 야비한 짓을 한다는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정말 야비하고 비열하다는 그의 이미지를 한번 더 각인시켜주는 것 같이 보였다.
요즘 세상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SNS을 통해 매장되는 세상이라 윤부장은 아무리 얄밉고 죽여버릴 정도로 소름 돋게 하는 놈이지만 부하 직원인 고대리에게 감히 이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술김에 귀사대기를 후려치고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시 같은 새끼! 내시는 이미지만 간사하지만 실제는 아니라고 하던 데 그럼 저 놈은? 반반한 얼굴이니 기생 오라비? 하여튼 간에 붙였다 쓸개에 붙었다 종잡을 수 없는 놈은 확실히… 힘이 아니 주먹만 세다면 저 놈의 면상을…. 어이 씨! 여자만 아니었다면…’
어느 대학, 어느 지역 출신 등 출신성분을 떠나, 업무 능력 하나만으로 평가한다면 저 놈은 이 회사에 입사할 어떤 자격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단 한가지 잘 하는 건, 사내 자식이 살살거리고 엄청 친절한 척하면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서 이간질을 하는 게 저놈이 가장 잘하는 트레이드 마크다.
어떤 강력한 후광으로 입사했는지를 들춰내고 싶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놈이라 저 놈만 쳐다보면 뇌가 분산되듯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여기가 무슨 먹자골목 좌판인 줄 아냐? 나이도 어린 놈이!’
또 미간을 잔뜩 찌푸려 이를 바드득 갈고는 또 후회할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이번을 기회로 삼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실행에 옮겼다.
“고대리! 동우! 이 개 새끼 내 말 안 들려? 이리 와! 이 개 새끼야!”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사무실의 모든 동선도 엄청나게 크게 폭발해 터지고 있다.
간혹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동선도 있다. 아마 그런 놈들은 졸았을 게 분명했다.
책상머리에 머리를 숙여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직원도, 책꽂이서 무슨 자료 책을 열심히 뒤지던 직원도, 저 놈 고대리처럼 휴대폰을, 전화기를 귀에 대고 열심히 떠들고, 듣고 하던 직원도, 모든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갈 정도로 이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윤연어.
국내 열 손가락에 안에 들어가는 종합상사 화학영업 팀장 겸 부장님이시다.
나이 48세.
첫인상은 남자라면 누구나 유소년 시절에 한번쯤 이런 사람을 보면, 나도 커서 저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해야지 하는 소망 같은 게 있을 것이다.
한복 입은 온화한 당숙모라고 하면 언뜻 이해가 되려나?
그런 인상이고 실제 성격도 유순하고 온화하다.
그런 사람 입에서 ‘개새끼’라는 말이 어떻게 튀어 나왔다. 이때 모든 직원이 느낀 이미지는 양반 집 맏딸이고 맏며느리가 아닌 조직 폭력배 보스는 아니고 행동 대장도 아니고 졸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자지만 항상 기품 있고 도도했다. 그리고 온화도 했다. 기품 있고 도도하고 온화한 이 윤부장의 이미지는 이 회사에서 동료들에게는 항상 맏언니고 큰 누나고 회장에겐 맏며느리였다. 그녀의 고성은 영락없는 보스의 품격을 갖춘 위엄과 절도로 가득한 당장 무릎을 꿇어 개 맞듯 맞을 준비를 하라는 명령으로 들렸다.
그런데 이런 위인의 염장을 뒤집은 놈.
고동우.
어느 날 갑자기 이 회사 좁아 트진 옆 문으로 어깨부터 밀어 넣고는 고개를 내밀어 잠시 기웃거리다가 여기가 무슨 공기업인 줄 알고 기어 들어왔다.
흔히 말하는 스카우트가 아닌 뒷문으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저 놈이 국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굴지의 무역 회사에 공채도 아닌 속 알맹이가 붕 뜬 채로 뒷구멍으로 기어 들어오기 전에 다른 놈이 들어 온다는 소문이 부장인 자신도 모른 사이에 부서에 잠시 돌다가 그 놈이 아닌 저 놈이 들어왔다.
원래 오기로 했던 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서 아무도 없다.
만약에 아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다면 저 놈! 고동우뿐 이지만 저 놈은 그 놈인지 그 분인지 그 사람에 대해 일체 발설하지 않고 함구하고 있다. 그렇게 저놈이 대리 운전 회사도 아닌 무역회사에 대리 기사도 아닌 영업부 대리로 입사를 했다.
처음에는 사근사근하게 다가와서 살살거리며 가끔 술자리서 ‘누님’이라 부르기도 하며 붙임성 있게 접근해 적응을 해서 친절하게 업무를 가르쳐줬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업무를 안다고 판단했는지 다른 부서, 남자 상사에게 가서 윤부장에게 그랬듯이 똑같이 사근사근하게 붙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터 저놈이 윤부장을 쳐다보는 눈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사나 동료들 눈에는 아직인데 본인은 벌써 회장 옆에 꼭 붙어 보필하는 내시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윤부장의 ‘개새끼’가 저장된 고 음질 스피커에 놀란 고대리의 뻔뻔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휘둥그렇게 커져버린 눈깔과 툭 튀어나오다가 주춤한, 양쪽으로 치솟은 얄팍한 입 꼬리. 섬뜩했다.
만약에 이 부서에 단 둘이 있었더라면 과연 저 놀란 토끼가 아닌 개새끼 눈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까? 윤부장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알아서라기 보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 서져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같은 성별이라도 뒤로 물러 서야만 할 나이차이다. 30대 중반의 남자와 모레면 쉰 살인 여자. 그것도 원인이야 어떻던 결과가 중요한 세상. 입장 바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서 고대리가 남자고 부장이고 윤부장이 여자고 대리로 설정해보자.
“윤대리! 연어 이 년 내 말 안 들려? 이리와! 이 개새끼야!”
지금 완전히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다시 한번 상상하며 윤부장 아니 윤대리의 대응을 지켜보자. 이런 말을 과연 사내에서 할 수 있을까? 이 눈물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고부장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엉엉… 개새끼라니요? 엉엉엉…..’
고부장님이 서럽게 절규하며 펑펑 울다 주저 앉은 윤대리를 일으켜 세우러 오는 게 아니라 고대리가 지금 윤부장을 사정없이 밀어 내버리거나 아니면 귀싸대기를 한대 후려칠 기세로 성큼성큼,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오고 있다.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인 건 조물주가 하사하신 신체적 혜택을 하나를 백분 활용했다.
지금이 생리기간이고 아직 생리기여서 생리대를 차고 있었다. 부라린 눈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그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가까이 다가 오면 올수록 다리에 힘은 점점 더 빠지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기 직전이었지만 이대로 앉을 수는 없는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