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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의 끝
작가 : 이지원2
작품등록일 : 2020.9.29

끝없는 추위와 태양의 부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런 끔찍한 재앙들 속에서도 문명을 발달하고 나라를 건국한 인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문명이 위협 받는 위기를 겪게 되어 혼란이 찾아온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는 늘 있는 법. 그런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낙원이 있다는 말을 한 남자가 오는데...

 
6화
작성일 : 20-09-29 18:20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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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이 사격. 그건 상류층 사이에도 크게 유행을 하는 스포츠였다. 많은 귀족들은 탁트인 장소에서 사격들을 하며 자신들의 휴가를 즐겼다. 이건 물론 왕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인을 시켜 적당한 거리에 목표를 던지게 그들은 그 목표를 향해 총을 겨눴다. 겉으로 보기엔 쉬워보이며 모양세가 좋은 산탄총으로 하면 품격 있어보인다. 그래도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이런 사격도 나름의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처음에 쉽다고 생각하면 헛발을 맞기 쉽다. 거기다 우아함을 유지하라니. 백조가 물 아래서 발을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사람들과 히히동락하며 놀음하긴 좋은 놀이였다. 누가 더 많이 맞추냐로 경쟁만 없으면 더 좋았을거다.

 

 이번에도 경쟁은 계속되었다. 많이 맞춘 사람들은 어깨를 폈으며 반대인 사람들은 마구 성내했다. 백조와 같이 티가 안나긴 하지만. 그리고 이런 유치한 싸움 중에도 항상 우위는 존재했다. 바로 데이비드였다. 그는 사격 모임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 얼마동안 서열을 재배치 했다. 서열이라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이 사격 모임에서 제일 으뜸이였던 스비니아 후작도 그 앞에서 코가 낮아졌으니까.

 

 그런 데이비드는 지금 사격을 하고 있었다. 마당은 클레이 피죤이 하나씩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다. 전부 명중으로 보였다. 그가 총을 장전한 후에 크게 소리를 지르자 멀리서 하인 하나가 나와 클레이 피죤을 우레 소리를 내며 힘껏 던졌다. 작은 체구에서 볼 수 없는 괴력이었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말없이 장전한 총구를 던진 쪽으로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다. 눈 하나 껌벅할 사이에 취한 행동이었다. 역시나 명중이였다. 그의 클레이 피죤은 조각난 몸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실패할거라고 확신한 귀족들은 많이 놀란 듯 했지만 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일체 박수를 쳤다. 주위에 있던 스비니아도 손뼉을 치며 데이비드의 뒤로 다가왔다.

 

 “역시 대단 합니다 데이비드님.”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스비니아 경.”

 

 그는 총을 꺾어 탄피를 뺐다. 총 안에는 새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늘가에 모인 귀족들도 하나같이 그를 칭찬헀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잡은지 며칠 안됐는데 말이죠.”

 

 “당신이 군인이었다면 큰 공좀 세웠을 겁니다.

 

 입바른말. 어쩌면 저들은 아부를 잘 떨까. 그는 귀족들은 전부 박쥐라고 믿게되었다. 그릇된 의견이긴 하지만 그가 본 귀족들이 대부분 이랬다. 동물학자들이 백조가 하얗다는 의견을 내기까지에 수많은 노력이 들었다. 수백, 수만 마리의 하얀 백조들을 보며 그 수를 종이에 수없이 채워넣었을거다. 무언가를 사실로 확정시키는 일의 대가다. 우리는 이 세상에 관해 무지하며 아무 것도 모르니 그렇다. 그래서 백조는 하얗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도 동물학자였다. 그도 수많은 귀족들을 보았으며 자라왔다. 이십년이란 세월을 통해 그들과 가까이 하며 이런 관찰로 통해 의견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귀족들은 박쥐였다. 이리저리 붙고 이득만 보는 돼지같은 박쥐였다. 그는 그러므로 하얀 백조들을 더 알고 그들의 사회를 파악하기 위해 방탕한 왕자로 변했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하며 그 뿌리는 땅을 파헤쳐야 뽑을 수 있었다. 정말 이 작업은 더러운 사람들의 실체들을 보게 되니 힘들어진다. 그러나 그는 알고싶어했다. 어떤 인간이 더러운지.

 하지만 때론 검은 백조도 찾고 싶었다. 한 마리 라도 좋으니 그의 사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면 좋겠다는 모순된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한 마리는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건가.

 

 “책상에 앉아 있는 거 보단 이게 몇 배는 즐거워.”

 

 그는 총을 여자 하인에게 넘기고 그녀가 주는 포도주를 한모금 마셨다. 하지만 탄닌으로 인해 매우 떫었다. 그는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을 하인에게 재빨리 건내고 스비니아와 대화를 했다.

 

 “이제 당신의 차례인가요?”

 

 “그렇죠, 당신이 활약해서 제가 잘 보일까 걱정입니다.”

 

 스비니아는 데이비드가 건낸 산탄총을 받은 동시에 총알을 장전했다. 은과 여러 보석들이 여기저기 달려 가지고 다니기 버거운 총이었다.

 

 “그나저나 총이 너무 무거워요. 기본으로 된 걸 쓰세요.”

 

 “충고 감사합니다.”

 

 그는 그러곤 천막이 처진 그늘가로 돌아갔다. 그늘가에선 귀족들이 몰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 주제는 그였다. 힐끗힐끗 보는 시선과 부채 뒤로 보이는 비웃음을 보면 부정할 수 없었다.

 

 “ 에밋 왕자가 공부하는 시간에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그지 없죠, 게다가 같이 놀아도 떡도 안떨어집니다.”

 

 “에밋한테는 잘 먹혔는데 말이야. 제기랄.”

 

 “분명 정치는 커녕 역사도 모르는 백치일겁니다. 그럼 순진해야 하는데..”

 

 “ 대신 다룰 수 있는 총만 세개나 되지 않나, 소용은 없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그들은 곧바로 깔깔 웃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돌아오자 입을 닫고 그에게 몰려 다시 칭찬을 퍼부었다. 데이비드는 기쁘게 듣는 척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자리 양 옆엔 근위병들과 바네사가 서있었다. 바네사는 가슴골이 트인 빨간 실크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과일을 그의 입에 가져왔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여성이 주는 과일을 먹으며 귀족들과 더러운 대화를 하면서 사격 모임을 마쳤다.

 

 그가 방으로 돌아오고 방의 꼴을 보니 하녀들이 왔다간 듯 했다. 땀에 젖은 시트도 보풀이 생긴 이불도 새걸로 바뀌어 있었다. 또한 기분 나쁘게 생긴 물병도 없어졌다. 내가 아침에 불평을 했나. 그는 의아해했다.

 

 데이비드는 그러다 눈을 창문에 대며 큰 숨을 들이켰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아니,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이틀 전의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 명의 수색대가 전해준 소식은 왕실과 그의 맘 속을 휘저어 버리는 데 충분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많은 귀족들이 왕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저 자들도 내일 아침에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놓고 하루 전에 이런 짓을 한다는건 옳은건가.

 

 참으로 잘 굴러갔다 언제는 안그러더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그는 손에 얼굴을 포개며 혼잣말을 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처음에 그가 이런 기분을 겪은 게 언제였을까.이제 번데기에서 나온 사슴벌레를 그의 엄마에게 보여주려 했던 날이었나. 어릴 적일이었지만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침대에 죽어있던 엄마의 모습을. 그녀는 죽은 듯이 자고 있는게 아닌 자는 듯이 죽어있었다. 뼈의 굴곡을 못 가리는 피부를 두르고 색이 바라고 검은 자가 뚜렷하지 않은 눈을 감지 않은 채로 말이다. 검붉은색 피부 얼룩과 창백해진 얼굴은 어린 그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엄마가 불에 태워져 작은 자기 안에 채워질때 데이비드는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모든건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걸.

 

 “왜 내가 뭔 갈 하면 항상 그걸 하지 못하게 만들까.”

 

 그는 손에 쥐던 팔뚝에 손톱을 드러내었다. 힘을 많이 줬나 본지 팔뚝 소매는 붉은 얼룩이 퍼져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힘을 주었다. 아픔이 와도 그의 손아귀는 놓을 기미를 내주지 않았다.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른 생각에 사로 잡힌 걸까.

 

 하지만 이 행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게 되었다. 레이첼이 문을 두드리며 데이비드를 부를 때 그의 의식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헤레이스님을 모셔왔습니다.”

 

 데이비드는 팔뚝을 보고 걷은 소매를 손목까지 늘어뜨려놨다. 손톱에 찍힌 상처가 천에 스쳐 쓰라렸다. 제빨리 소독을 하고 치료를 하고 싶었지만 헤레이스가 왔으니 허사였다. 치료는 그가 간 다음에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의사이며 흉터없이 낫게 할 수 있어도 그에겐 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들어오라 그래.”

 

 그의 말에 문은 열리고 안엔 헤레이스가 들어왔다. 그는 팔뚝만한 의사 가방을 들고 왔는데 색이 다 바래있어 갈색 가죽 가방인걸 못 알아볼 정도였다. 그는 이걸 들고 침대에 앉아있는 데이비드의 앞으로 왔다.

 

 “오랜만이야 데이비드.”

 

 “두달 만이네요 헤레이스.”

 

 그는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두 팔을 뻗어 헤레이스를 안았다. 헤레이스는 가죽가방에서 한 손을 때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그의 손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많이 힘들었겠네.”

 

 “이 정도는 일상이죠, 헤레이스는요? 무슨 일 없었어요?”

 

 헤레이스는 등에 간 손을 그의 머리에 옮겼다. 데이비드는 딱히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 늘 똑같지, 어제 카일로랑 술마신 것 빼고는.”

 

 “ 삼년 만 이죠?.”

 

 “ 힘든게 너만은 아닌 것 같아. 카일로도 많이 걱정하고 있어.”

 

 데이비드는 헤레이스를 안은 손을 놓고 자신의 침대에 다시 앉았다.

 

 “우리가 아니라 당신을 걱정하는 거겠죠. 괴물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그는 미간을 손으로 누르며 헤레이스가 아닌 딴 곳을 바라보았다.

 

 “ 당신은 도망 안 가요?”

 

 헤레이스는 손바닥을 데이비드의 머리에 얹혔다.

 

 “나 없으면 누가 병원에 있겠어.”

 

 그는 헤레이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싱글벙글 웃고 있을거란 그의 예상관 달리 헤레이스의 표정은 복잡하고도 미묘했다. 미묘함 가운데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데이비드는 그를 보곤 작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썅.”

 

 헤레이스는 못 들었지만 그의 기분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 침대에 누워있어 데이비드. 준비하고 있을게.”

 

 헤레이스는 가방을 바닥에 두고 겉쇠를 열어 철통 상자를 꺼냈다. 그는 공만한 크기의 상자를 열어 솜뭉치와 작은 병을 꺼내더니 작은 병을 따 안의 액체를 솜뭉치에 쏟았다. 솜뭉치가 축축히 젖을 때 그는 다른 무언갈 뺴냈는데 그건 바로 수술용 나이프였다. 헤레이스는 솜뭉치를 이용해 자신의 손과 그 나이프를 닦았다. 그러더니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칼을 팔에 그어버렸다. 헤레이스는 아픔을 참으며 피를 다른 손으로 닦더니 이내 데이비드의 이마 쪽에 손을 갖다 댔다. 붉고 축축한 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갔다.

 

 침대보가 데이비드의 팔뚝 소매와 같은 얼룩이 생기는 것도 모르고 그들은 다른일에 열중했다. 데이비드는 식은 땀을 흘리며 두 눈을 꽉 감았고 헤레이스는 데이비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무언갈 중얼거렸다.

 

 헤레이스의 입술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들 주위로 불꽃이 나타났다. 노란 불꽃은 진한 빛으로 발광을 하며 돌아다녔다. 불꽃은 돌아다니면서 톡톡거리는 소리를 냈다. 소리는 마치 물조리개로 물을 뿌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불꽃은 흐름없이 우박처럼 쏟아지기만 하는 소리와 같이 동그란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빛만 보이는 반딧불이같은 몸에 뿌리나 줄기같은 가시를 뿜어내고 다시 둥그런 몸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또한 돌아다니면서 몸에 달린 큰 줄기를 개울가를 헤엄치는 올챙이의 꼬리만큼 부지런 하게 움직였다.

 

 불꽃은 돌아다니다 데이비드의 머리 쪽으로 헤엄치며 몰려 들었다. 데이비드의 머리는 불꽃으로 인해 눈이 부셨다. 만약 그가 눈을 뜬다면 한 치 앞도 못 바라볼 듯 했다. 그리고 헤레이스도 사방에 빛으로 끝내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란 불꽃들은 데이비드의 머리에서 떨어지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불꽃은 사라지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닫힌 눈꺼풀에 흐릿하게 비춰지는 빛이 사라지자 데이비드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데이비드는 머리가 아까보다 나아진걸 느꼈다. 이게 마법인가. 그는 생각했다.

 

 "뭔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네요."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으니까. 앞으로 괜찮을거야."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믿어야죠."

 

 데이비드는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의 손엔 붉은 피가 손에 축축히 달라붙었다. 헤레이스의 피는 인간과 똑같았다. 똑같은 붉은색. 묽지않은 색. 데이비드는 손금 사이로 고인 피를 홀린 듯이 바라보다 슬쩍 코를 가져다 대었다. 철의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그는 냄새로 인해 코를 멀리했다.

 

 “ 그냥 평범한 피야.”

 

 헤레이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법사의 피는 하나같이 붉은 색인가요?”

 

 그의 말에 데이비드는 손에 묻은 피를 그의 눈앞에 갖다댔다. 헤레이스는 그의 손을 훑어 보며 이에 답을 했다.

 

 “ 나도 모르겠어. 나 외의 다른 마법사를 만나 본적이 없거든.”

 

 헤레이스는 가방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데이비 드의 손을 닦았다. 나이프 덕에 피가 흐르던 팔엔 상처 하나 없었다. 벌써 나은 듯 했다.

 

 “ 그래도, 붉지 않을까? 내가 붉으니까.”

 

 “그럴까요?”

 

 데이비드는 피가 마른 손을 어루어만졌다. 손등에 달라붙은 물방울들이 다른 손에 붙었다. 작고 미세해 진드기와 같은 벌레만도 같았다. 헤레이스는 손수건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꺼야?”

 

 “뭐를요?”

 

 “뭐긴 뭐야, 곧 괴물이 쳐들어올거잖아.”

 

 그는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마구 긁었다.

 

 “여기에 미련도 없어요. 도망가야죠.”

 

 헤레이스는 그를 가만히 보더니 자신의 가방을 들었다. 가방엔 벌써 짐이 다 싸져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인지 어떻게 알아요?”

 

 “어른들은 다 알아, 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말야.”

 

 그는 그러더니 데이비드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문 밖으로 나갔다.

 

 “ 도망가는게 좋을 거야 데이비드, 강가가 마르면 다른 곳을 찾을 수 있지만 낚시꾼은 죽으면 거기서 끝이야.”

 

 데이비드는 그에게 맞은 어깨를 살살 만지며 힘없이 침대로 쓰러졌다. 하얀 시트엔 붉은 웅덩이가 아까보다 크게 번져졌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그 웅덩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려 할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해.”

 

 데이비드의 허락과 동시에 레이첼이 앞으로 나왔다. 그 사건이 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식은땀이라도 흘릴 줄 알았는데.

 

 “이제 잠에 드실 겁니까?”

 

 “ 조금 있다가 자려고, 뒹굴거리고 말야.”

 

 

 “ 알아서 하십시요, 혹시 모르니까 촛대를 켜두겠습니다.”

 

 레이첼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녀들이 방으로 들어가 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녀 세네명이 침대 쪽으로 가자 데이비드는 눈치껏 일어나 레이첼 옆으로 스리슬쩍 갔다.

 

 “불쌍하네.”

 

 “뭐가 말입니까?”

 

 “이들은 우리가 도망갈때까지 나가지도 못하잖아.”

 

 그 사이에 하녀 둘이 기침을 했다. 주변이 먼지로 뒤덮여서 코가 간지러운 거였다. 레이첼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녀들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입을 가렸다. 침 한 방울도 그의 방에 떠돌게 할 수 없는 꼴이었다.

 

 “ 그 것이 이들의 대가 입니다.” 레이첼은 사나운 눈을 풀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 대가?”

 

 “심한 노동없이 많은 돈을 버는 대가 말입니다.”

 

 “그게 대가인가?”

 

 “네, 돈이란 인간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포상이니까요.”

 

 “ 잔혹하네 그거.”

 

 데이비드는 하녀들 쪽으로 멍을 때렸다. 그의 눈빛은 나사 하나로 빠진 듯 공허해보였다. 이번엔 어떤 생각에 빠진 걸까. 또 어떻게 사로 잡힌 걸까. 그는 그러다 맨손으로 얼굴을 씻었다. 그러면서 그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마치 고민하는 것 같았다. 후엔 옅은 신음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이 행동이 그제서야 멈출때, 그는 손을 떼어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동물학자가 될 필요가 없어. 귀족들도 사람들도 다 죽을거야. 돈도 없어질 거야. 나라가 멸망할 거거든.

 

 이젠 다 끝났어. 왕은 왕국이 없으면 이름 뿐이야.

 

 어떤 상황이 와도 부정적인 말을 금한 그라도 이번엔 달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공적을 세울 기회 따윈 보이지 않았다. 왕궁을 무사히 지켜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

 

 희망이 없다.

 

 다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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