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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의 끝
작가 : 이지원2
작품등록일 : 2020.9.29

끝없는 추위와 태양의 부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런 끔찍한 재앙들 속에서도 문명을 발달하고 나라를 건국한 인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문명이 위협 받는 위기를 겪게 되어 혼란이 찾아온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는 늘 있는 법. 그런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낙원이 있다는 말을 한 남자가 오는데...

 
2화
작성일 : 20-09-29 18:11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1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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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정오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기차는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난 자태를 창가 밖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에반은 창가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기차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때 그의 어깨에 잭의 손이 얹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돌아보니 잭은 에반의 빈손에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돈일까.

 

 “ 이 정도로 부족할 것 같지만. 일단은 받아주게.”

 

 잭은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를 헝클더니 이내 도로 기차를 나왔다. 당연히 동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손바닥에는 은화가 있었다. 그것도 순도가 가장 높은 은화. 동전에 세겨진 숫사슴이 그 증거였다. 평생 자신의 아빠 손에도 보지못했던걸 만진 에반은 이 순간으로 인해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이걸로 뭘 살 수 있을까? 옷? 아니면 그림도구?”

 

 그는 토끼뜀을 하며 기차역을 나와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밖엔 사람들이 우글댔다. 이젠 멀미날 지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등석의 사람들과 잭과 같이 실크 모자에 몸에 맞는 정장이나 강하게 조인 코르셋에 부풀어진 긴치마를 입었다. 여자들의 모자는 대부분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했다. 마치 닭의 벼슬과도 같았다. 아마 귀족들의 복식을 따라한것 같았다. 에반은 길을 가다 코르셋으로 인해 조여진 허리를 보며 굳이 저렇게 해야할까라며 걱정했다.

 

 그는 힘든 광경에서 눈을 때어내 빈 길거리를 보았다. 거리엔 마차들이 지나갔다. 말d들은 머리털을 날리며 사뿐사뿐 걸었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가벼워 보였다. 에반은 마차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행군을 끝까지 지켜봤다. 이 층은 늘 봐도 신기함이 가득했다.

 

 “맘만 같으면 살고 싶다.”

 

 에반은 자신의 복장을 바라보았다. 상의엔 먼지가 붙고 옷 주름이 가득했다. 줄리아가 이런 복장을 입은 덕에 나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참으로 한숨이 나왔다.

 

 그는 혼잣말로 불평하다가 마저 갈 길을 갔다. 일등석을 막 지나칠 때의 걸음걸이였다. 하지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멈추어 뒤를 돌아봤다. 뒤엔 잭과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잭의 옆에 있던 누군가는 인파로 인해 알아보지는 못했다. 잭이 꽃다발을 건내 주는 걸 보면 그가 말한 도련님으로 보였다. 꽃다발에는 파란 꽃잎과 보라색 꽃잎이 조화를 이룬 물망초가 있었다. 게다가 예쁘게 포장이 되어 좋은 선물로 느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이제 그들에게 꺼낸 관심을 거두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에반은 건축된 수많은 다른 풍의 저택들과 건축물들을 지나치고 어느 대저택에 도착을 했다. 저택은 붉은 벽면과 연녹색의 지붕이 가지런히 건축된 곳 이였다. 또 갈색의 창문이 다섯 개의 층 하나하나에 여덟개 정도 붙여져 있었다. 큰 몸집을 뽐내는 저택 이었지만 화려해 보이지 않았다.이 집 주인의 검소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 안에 들어가자 백항목 특유의 그윽한 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마음이 진정되는 향이라 거친 숨도 진정이 된 느낌을 받았다. 저택 안은 백향목으로 마감되었으며 목재 벽면 양 쪽으로 촛대가 나열되었다. 안에도 역시 샹들리에나 명망 있는 화가의 그림 하나 없었다. 딱봐도 귀족같은 상류층들이 사는 집은 아니었다. 아무리 남작 직위라도 보석 박힌 샹들리에는 달기 마련이다.

 

 저택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쳤다. 아까와는 다르게 다양한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후줄근한 옷을 입은 사람부터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까지. 그렇지만 대부분은 환자복 같은 하얀 천을 입었으며 어딘가 아파보였다.

 

 그는 환자 같은 사람들을 뚫더니 어느 여자 눈앞까지 종종 걸어갔다. 여자는 악성 곱슬머리를 가진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환자들과는 다른 흰옷을 입고 있었다. 에반은 그녀 에게 손을 흔들었다.

 

 “혹시 헤레이스 선생님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여성은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계단 아래층을 가리켰다. 계단은 복도 끝 쪽에 나열 되었다.

 그녀는 손짓을 하곤 아무런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원래 무뚝뚝한 건지 아님 벙어리였는지 조금 무례해 보였다.

 

 그는 예의상으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건네고 계단 쪽으로 내려갔다. 계단은 걸레로 깨끗이 닦은 티가 났다. 그치만 미끄러웠는지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한 칸씩 내려갔다. 미끌거리는 계단은 발이 내딛을때 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목재 안에는 분명 귀신이 들어있을거야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귀신 계단으로 내려왔던 지하는 지상과는 전혀 달랐다. 목재로 된 지상과는 달리 지하는 온통 흰색밖에 없었다. 그런 하얀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었고 그런 침대들의 뒤편엔 어느 탁자가 있었는데 양옆으로 이층짜리 서랍장이 붙고 위엔 서류봉지와 의료도구들이 놔뒹 굴었다. 그리고 탁자엔 어느 남자가 엎드린 채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코골이나 버릇이 없어 죽었나 착각할만 했다. 에반은 그에게 기묘한 미소를 짓고는 다가가 자신의 입을 그의 귀와 가까이했다. 그리고는-

 

 “헤레이스!”

 

 그는 큰소리를 내었고 헤레이스란 남자는 얼굴을 책상에서 떼어 내더니 금방 뒤로 넘어졌다. 에반은 박장대소하며 허벅지를 쳤다.

 

 “그러게 낮잠같은걸 자래요?”

 

 “밤에 잠을 자지도 못 했는걸..”

 

 헤레이스는 엉킨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 오랜만에 낮잠 잔거란 말이야..” 물에 잠긴듯한 목소리는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순한 눈빛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 청년의 주위엔 단단하고 새파란 백향목 냄새가 났다.

 

 “ 어차피 지금 쯤 일어나야 했으니까. “

 

 헤레이스는 가볍게 이걸 넘겨 버렸다. 역시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군소리는 들었을 테다. 에반은 그래도 죄책감에 미안한 티를 내었다.

 

 “괜찮아 에반. 그런 거 가지고 화 안낼 사람이야”

 

 “ 당연하지. 오랜만에 에반 얼굴 보니까 얼마나 좋은데.”

 

 헤레이스는 그의 팔을 잡아 끌어 안으려 했지만 하필 그가 잡은 팔이 왼팔이라 에반은 아야 소리를 냈다. 아차. 들켜버렸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헤레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에반의 팔소매를 걷었다. 팔뚝에는 피멍까지 든 상처가 자리잡았다.

 

 “조심해야지 에반.”

 

 “죄송해요.”

 

 에반은 귀족들이 그랬다고 말고 싶었다. 하지만 말해도 속만 썩일까봐 말 하지 못했다. 헤레이스는 한숨을 쉬곤 어떤 상자를 꺼냈다. 반지 상자 크기였다. 그 안에는 송곳과 물병이 들어가있었다. 물병은 뚜껑을 열자 알코올 냄새가 났다. 헤레이스는 그 알코올을 상처부위와 송곳과 그의 손가락에 뿌렸다. 그리곤 그 송곳으로 손가락에 상처를 내버렸다. 에반이 당황해 하던 참에 그는 손가락에서 나는 피를 에반의 상처에 발랐다. 보통 이런다면 미친 사람이고 상처따윈 낫지 않는게 당연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에반의 팔뚝은 그의 피를 바르자마자 낫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에반은 이 상황이 익숙한건지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까먹고 있었어요. 헤레이스 원래 마법사였죠.”

 

 마법사. 에반이 듣기로는 이들은 피를 내는 것으로 우리가 하지 못할 기적들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헤레이스가 한 게 그 기적 중 하나인 것이다. 지금 이 기적은 헤레이스밖에 못한다는데 많이 신기했다. 부럽기도 했다. 에반은 만약 가진다면 큰 금덩이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헤레이스는 그의 심정을 알지 모르는지 안도하는 얼굴로 에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에반은 그의 말에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한 감정이 생겨나 버렸다. 괜히 장난쳤다.

 

 “헤레이스가 원해서 한거니까 미얀해 할 필요없어 에반. “

 

 탁자 맞은편에 누워있던 환자였다. 그의 아빠와 동갑대인 사십 대로 보였다. 틈새없이 붕대로 싸여져 있으니 많이 우스꽝스러웠다.

 

 " 그래도 내가 그랬다면 돈은 내야하지만.”

 

 “론 아저씨..”

 

 론이 장난 식으로 말하자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웃었다. 시체 같은 안색에 핏기가 돌았다는 말이 더 적합 했다.들어왔을 땐 별로 좋은 분위기로는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환자가 많은 거 에요?’

 

 에반이 아는 바로는 지하병동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있어도 한두명이 전부고 웬만한 병들은 헤레이스가 바로 낫게 해주니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가 침대를 꽉 채웠으니 궁금한 게 당연했다. 설마 단체로 아프자고 작정을 했는지. 아님 그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지.

 

 “...”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물음에 답을 꺼내지 않았다. 헤레이스 또한 그랬다. 그는 턱을 만지며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런 그도 대답하기 눈치 보일 문제라는 게 무얼까. 알고 싶어졌지만 그의 머리 속엔 그럴싸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숨소리만 반복할 때 즈음 론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 다음 주위를 둘러봤는데 모습이 마치 승낙을 요구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답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론은 승낙을 받자 바로 입을 떼었다.

 

 “매복한 괴물에게 습격당했어.”

 

 군인보단 익살꾼의 이미지가 잘 어울렸던 그가 정색을 띄었다. 에반은 그의 모습과 말에 놀라 잠시 굳은 상태로 머물렀다. 또 습격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로널드를 떠올렸다. 그때의 로널드는 자랑이나 허세를 부리는걸로 보였었다. 그리고 그게 맞는지 그는 턱을 들며 더욱 미친 발언을 한 걸로 기억이 난다.

 

 괴물들과 전쟁했던 지역으로 갈 거야.

 

 가서 괴물들의 뼈를 가져갈 거라고. 그는 이 말과 함께 유유히 밖을 나갔다고 한다. 평소에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달고 살던 그가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 시점이었다. 그는 괴물이 어떤지 알고 있을 거다. 그게 어떤 위험을 가져올지도 말이다. 부모한테 세뇌되듯 들어온게 그거니까.

 

 많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금붕어보다 멍청하지만 호랑이 처럼 강하다. 한 종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거나 공동체를 꾸미기도 한다.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다 달라서도 이유가 되지만 더 적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주를 내리며 인간이든 짐승이든 마주치면 먹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늘 전쟁만 했던 바르리안보다 무서웠던 건 그 괴물들이다. 군인들도 바르리안보단 괴물과 싸우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한다. 그래도 이런 염려와 달리 괴물을 만날 날이 없었다. 밖에 안 나가면 되었으며 괴물들이 거주지를 바꿨다는 말까지 돌아 안심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오늘. 그것도 지금. 괴물과 연관된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불안해졌다. 설마 잡아먹히지 않겠지 이러면서.

 

 왜냐하면 그도 오늘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그랬다.

 

 “어째서요?”

 

 그는 길게 뜬 눈을 감았다. 눈가의 아픔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긴장이 되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눈을 안뜨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에반은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알고 있지?”

 

 “군인이요. 저희들을 보호하는 직업이라고 들었어요.”

 

 에반은 시린 눈을 만지며 답했다.

 

 “그래. 그리고 우리들은 이번 동맹 제안에서 왕의 서신을 보호하기 위해 길을 나섰어.”

 

 “네.”

 

 “물론 임무는 순조로웠어. 바르리안들도 고까운 반응을 안보이고는 동맹 제안에 승낙했어. 왜그랬는줄 알아?”

 

 “네? 그거야 저도 모르죠.”

 

 에반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를 굴리려 하다 이내 포기했다. 애초에 바르리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우리와 같은 지성을 가졌지만 기술은 엉망이며 야만적인 생각은 읽기 힘들었다. 론은 그의 대답에 앞머리를 넘기며 답했다.

 

 “괴물이 침략을 했어. 그로 인해 영역도 뺏긴 상태라고 했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론은 턱을 만졌다. 이번엔 턱 수염 쪽이었다.

 

 “ 몇 년 전에 괴물들이 거처지를 바꿨거든. 우리 왕국 근처였는데 멀어져서 왜인지 궁금했는데..설마 이거일 줄이야. “

 

 “..”

 

 “그리고 우리도. 동맹 협의를 맺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받았지. 정말이지 그 놈 아니었으면 우린 죽을 뻔했어.”

 

 에반은 몸의 오한을 느꼈다. 털이 곤두섰으며 숨이 가파졌다. 무서운 그의 예상을 훼방을 놓을 수도 부정도 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론! 에반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충격을 받은 그를 본 헤레이스는 소리를 높혔다. 론은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며 반박했다.

 

 “내일 폐하가 직접 발표하실 거야.”

 

 “발표하면 사람들 상태가 어떻게 돼 가는지 알고 있어요?”

 

 ‘헤레이스. 걱정할 필요가 없어.”

 

 “왜요? 뭘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거에요?”

 

 “이들은 이제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거든. 다른 땅을 침략하려 하고 있어.”

 

 “누구한테서 들은 건데요?

 

 “그 바르리안들의 족장이 직접 말한 거지.”

 

 “확신할 수 있어요? 게다가 우리를 매복했었잖아요! 수상하다고요.”

 

 “ 너는 자기를 도우러 오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것 같아 헤레이스?”

 

 론은 진지한 어조로 헤레이스를 몰아붙였다. 어디서도 익살꾼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별 걱정 안 할거야. 내가 확신하지.”

 

 “대체 왜요? ”

 

 “그건 너가 제일 잘 알지 않나?”

 

 헤레이스는 갑작스레 그 말에 멈칫했다.기계가 잘못된 것 같았다. 론은 자세를 바르게 잡으며 말을 덧붙였다.

 

 “헤레이스. 그 녀석은 이제 개지랄 떠는 꼬맹이가 아냐.”

 

 론은 침대에 누운 환자들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환자들도 론과 같이 바로 몸을 폈다. 눈치를 보는 걸보니 론이 높은 직급에 있는걸 알 수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차 특징을 볼 수 없는 둘이 먼저 말했다.

 

 “ 한 번에 쳐들어왔어. 낌새를 알아차리고 매복했었던 거겠지. 팔 한번 휘두르니까 다섯은 나가떨어졌고. 위험한 상황 이었죠.”

 

 “근데 카일로가 다 해치워버렸어요. 순식간이었죠.”

 

 “애초에 그 놈은 이방인이야, 괴물상대는 간단하다고.저런 괴물들이 아침에 노커 업 대신 깨워줬을테니까.”

 

 “ 덕분에 공적은 전부 카일로가 가져갔고요.”

 

 “ 어쩔 수 없잖아.”

 

 에반은 그들의 대화에 그 상황을 상상해봤다. 그 풍경은 마치 사진 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울음소리나 신음소리. 오줌 질질 짜고 도망가는 신병들. 주위에 널 부러진 사람의 시체와 그걸 맛있게 먹고 있는 괴물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을 개미 죽이 듯이 죽이는 한 남자를.

 이 왕국에는 보기 드문 것이 세가지 있었다. 돈과 왕과 이방인. 그리고 이방인은 이중에서 가장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유는 그들이 왕국 밖에 왔다는 것이었다. 왕국 밖에서 태어나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름이아니라 이런 괴물들이 가득한 시대에서. 그것도 혼자. 그의 왕국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일이 겠지. 그래서 별 이상한 소문도 돌기도 했다. 이방인은 식인종에 괴물도 잡아먹는다. 글자도 못읽는다. 바르리안보다 훨씬 큰 덩치를 지녔다 등등. 그러나 그 환상은 얼마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헤레이스도 이방인이었으니까. 그리고 헤레이스는 비록 마법사여도 빵을 좋아하며 어려운 단어도 알고 론보다 왜소했다. 에반은 역시 그의 모습을 보고 환상은 환상이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카일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다시 환상이 생겨날 것 같았다. 혹시 자신을 먹지 않을까? 에반은 조금, 아니 많이 걱정 되기 시작했다.

 

 “근데 그 녀석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 이제 아내한테 한 소리 듣게 됐어.”

 

 론은 기분이 나쁜걸 떨쳐내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이미 주변은 싸늘해진지 오래였다.

 

 “솔직히 그 놈같은 녀석들이 여기에 때거지로 있는데 사람들이 겁을 먹겠냐?”

 

 “게다가 여기는 빌어먹을 눈보라 덕에 수세기동안 위치를 들키지 않은 땅이에요. ”

 

 “그래서 다 발 뻗고 자겠다 라는 소린가요 론?”

 

 “당연하지.”

 

 “카일로는 별말 안했나요?”

 

 “별말? 그건 갑자기 왜?”

 

 론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거다. 괜찮다고 얘기를 했는데.

 

 “뭐 그 자식도 너 처럼 불길하다 뭐하다 이랬긴 했지. 역시 의심병도 유전인가봐.”

 

 론은 붕대를 찬 부위를 긁으려고 손을 뻗다가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흔들자 론은 손을 침대에 가져다 대었다. 손은 가려운 나머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실의 생기있는 공기는 다시 고요해졌다. 론의 말 몇 마디 때문인지는 모른다. 보통 론이 오면 웃음기가 가득해야 할 공기였었지만 오늘은 아닌가 보다. 그 순간에 에반은 기회를 잡아 헤레이스에게 보자기를 건내려 했다. 하지만 때가 안좋게도 지하 병동의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왔다. 바닥엔 두 그림자가 비추어졌고, 그림자들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은 그림자는 금발 머리가 매력적인 간호사였고 또 하나는 그녀와 이미지가 사뭇 다른 남성이었다.

 

 흑발의 짧은 머리와 동양인의 특유한 이목구비. 사나운 인상. 정말 인지 호랑이가 인간이 된다하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드러난 후론 다르게 병실사람들의 시선은 이 남자에게만 쏟아졌었는데 이건 이질감 때문이었다.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호흡과 발걸음. 그건 인간에겐 몰라도 철 덩어리 에게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보자 하나같이 경직 되었다. 마치 소문 속의 괴물이라도 보는 줄 알았다. 론도 차마 그와 눈을 못 마주쳤고 옆의 간호사도 덜덜 떨며 애처롭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과 다르게 반기는 얼굴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헤레이스였고 그는 한달음에 그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카일로, 이제 퇴원하려고?”

 

 “네.”

 

 그가 입을 때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어 하나하나에 위압감이 드러났다. 에반은 이 사람이 바보 같은 농담을 해도 대서사시로 들릴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뻥끗 꺼내면 바라보기 무서운 표정을 지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뤄뒀다. 언제 할 수 있을 진 모르지만.

 

 “ 바로 군대로 돌아가는 거야?”

 

 “며칠 있다가 돌아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여기서 지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럴래? 오랜만에 술도 같이 마실겸.”

 

 카일로는 그 말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층 첫 번째 방에서 자도록 해. 무슨 일 있으면 나 부르고.”

 

 “네.”

 

 그는 헤레이스가 준 황금색의 무난한 열쇠를 받자마자 헤레이스에게 인사를 한 후 문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그가 오르는 계단소리가 그들과 멀어지자 긴장을 풀었다. 에반도 헤레이스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아요? 저도 도울 거 있음 도울게요.”

 

 “물론이지.”

 

 헤레이스는 자신의 손을 그의 머리에 덮었다. 그의 큰 손은 조그만 한 머리를 반 넘게 가렸다. 그의 또 다른 빈손은 에반에게 또 다른 열쇠를 넘겨주었다. 카일로의 열쇠와 비슷했다.

 

 “꼭대기층 두 번째 방열쇠야.”

 

 에반은 쓸 방의 위치를 알고는 흠칫했다. 맨 위층은 그렇다 쳐도 두 번째 방이라니. 첫 번째 방이 카일로의 방 이였는데. 그럼 옆방에서 자는 꼴 이었다. 그래도 그는 음식을 줬어도 함부로 놀러온 사람이었다. 참아야만 했다.

 

 “잘 쓸게요. 고마워요.”

 

 에반은 안 올라가는 입 꼬리를 올려가며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연기력이 좋지 않아 간단한 거도 힘이 들어 가야만했다. 그래도 그의 앞에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옆방에 카일로가 있다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울텐데.

 

 그와 그의 누나는 예전 부터 겁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남들이 못할 짓을 하고 다니곤 했다. 농장에서 탈출한 말에게 달려가거나 귀신이 나온다는 집을 탐험한다던가.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짓을 계속 했다. 진짜 무서운거를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날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겁이 없는건 자기가 무서워 하는걸 모르기 때문이라는걸. 또 지금도 그는 무서워하는걸 알아버렸다. 바로 자기 옆에 있는 카일로란 사람. 물론 에반은 덩치 가지고 겁을 먹지 않는다. 자신의 아빠도 큰 덩치를 가져 크기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카일로는 아빠와 달리 이상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더불어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를 보기만 해도 식겁하는지 알아버렸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안 무서운지 그의 등을 치며 농담을 했다. 경악을 안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헤레이스가 삶에 미련이 없나 했다. 에반은 시계를 보곤 모른 척했다. 일종의 현실부정이다. 믿기지가 않아서 부정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시계는 저녁시간을 가르켰고 환자들은 병원 사람들이 주는 저녁을 먹고있었다.헤레이스와 카일로는 시간이 되자 바로 저택의 꼭대기로 올라갔다.에반도 그들을따라 계단을 올랐다. . 헤레이스는 밥을 준비해 그릇에 담고 있었다. 거기엔 에반의 엄마가 전달한 음식들도 있었다. 꿀에 절인 햄이나, 매쉬 포테이토, 스카치 에그 같은 반찬들이 식탁에 나란히 차려졌다. 그러나 헤레이스는 그 외에도 다른 것을 차리고 있었다.

 

 “오늘 질 좋은 토마토를 샀거든, 조금만 기다려줘.”

 

 헤레이스는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 그릇으로 옮겼다. 시큼하고도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야채 특유의 풀내와 미묘하게 느껴지는 단내음도 느껴졌다. 또 기름냄새도 그의 코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이걸 맡고 음식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했다. 토마토 스튜. 헤레이스가 제일 잘하는 요리였다. 헤레이스는 기대하는 얼굴로 에반에게 스튜를 내밀었다. 그릇엔 기름칠 된 고기와 큼직한 야채들이 빨간색 국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에반은 군침을 다시며 옆에 있던 빵을 찢어 안으로 넣었다. 벌써부터 먹고 싶었다.

 

 “ 후식도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고마워요.”

 

 에반은 먹으라는 말과 동시에 국물에 넣은 빵들을 집어먹었다. 그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는 스튜로 인해 따끈따끈 했으며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에반은 그의 요리가 좋았다. 물론 자신의 엄마도 요리를 잘 하는 편이지만 헤레이스만큼은 아니였다. 만약 요리를 배운다면 엄마가 아니라 헤레이스한테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에반은 뭔가 엄마한테 미얀한 감정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인걸. 그는 다시 한번 빵을 찢어 스튜에 찍었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웬일인지 입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카일로가 아까부터 보내는 거였다. 카일로는 물을 마시며 에반에게 물었다. 아까처럼의 낮고 위압감있는 목소리였다.

 

 “너, 오늘 여기 있을거지?”

 

 “네.”

 

 에반은 그의 목소리에 놀라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카일로는 이런 대답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꽤나 민망했다.

 

 “여기 있어. 그러는게 좋을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하는 거지. 에반은 영문이 가지 않았다. 그 순간 병실에서 헤레이스의 태도를 떠올렸다. 부전자전. 아마 괴물때문에 그러는 걸 수도 있다. 그치만 그건 왠지 쓸데없는 걱정 같았다. 불길하다 느낌이 안 좋다 뭐 그런 거 겠지.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거래.”

 

 “다행이네요.”

 

 카일로는 헤레이스가 건넨 후추를 받으면서 답했다. 전보다 다른 분위기였다. 헤레이스는 그걸 아는지 에반에게 귓속말을 하며 웃었다.

 

 “쟤. 너 걱정했나봐.”

 

 “저희 초면인데요?”

 

 에반은 낮간지러워 하며 헤레이스에게 귓속말로 답했다. 헤레이스가 대단히 착각을 한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런게 지금 카일로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에반은 헤레이스가 술이라도 마셨나 생각했다. 카일로는 그런 그를 보고 컵에 물을 따랐다.

 

 “요즘 밖에 나간다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밖에 나가?”

 

 헤레이스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론 아저씨의 농담을 들었을때와 같았다. 그 정도로 어이가 없다는건가. 에반은 그의 표정이 상당히 웃겨 피식하고 웃었다. 카일로는 그 표정을 못 봤는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어제도 한 명이 몰래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경비병 없는 타이밍에 말이죠.”

 

 “ 맙소사..”

 

 헤레이스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는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카일로는 턱을 만지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이름이..로버트였나?”

 

 “로버트?”

 

 역시나 헤레이스는 그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에반은 그걸 듣기만 해도 밖에 나간 사람을 알 수 있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 로널드의 아빠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로널드 형의 시신을 찾으러 간 걸 수 있겠다. 동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로널드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했다. 오직 그가 아끼던 목걸이만 있었다고 그러던데. 평소에 반짝이는걸 목숨처럼 여기던 로널드가 그걸 버럴리 없다 했으니 죽은걸로 확정난 거였다. 불쌍해라.

 

 “어찌됐든 비극적인 일이야. 그 사람이 살아돌아왔으면 좋겠어.”

 

 헤레이스는 양손에 깍지를 꼈다. 그 모습은 마치 기도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카일로는 이거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죽겠죠. 특히 총도 없으면 먹이로 괴물한테 봉사하는겁니다.”

 

 “그래도 살아돌아왔으면 좋겠어.”

 

 “헛된 희망입니다.”

 

 카일로는 명확히 선을 그으며 헤레이스의 말에 답했다. 헤레이스는 카일로의 답변에 한숨을 쉬더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체념한 얼굴이었다.

 

 “알았어.”

 

 카일로덕에 분위기는 다시 안좋아졌다. 이젠 론의 농담도 안통할거다. 그걸 안 헤레이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치웠다. 카일로도 일어난걸 보니 에반도 그를 도와야했다. 에반은 수저와 컵들을 헤레이스에게 가져다 주며 생각했다. 정말 나가면 죽을까. 확실히 죽을까. 하지만 가야하는데. 카일로도 조심성이 많으니 그렇게 느껴질 뿐 인거 아닐까. 이건 명확한 현실부정이었다. 하지만 에반은 그렇게 해서라도 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또, 오늘따라 불길한 느낌이 더 들더군요.”

 

 카일로는 설거지를 하다가 오랫동안 닫힌 입을 열었다. 헤레이스는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그랬니?”

 

 에반은 확실히 알았다. 이게 유전이구나. 론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십여년 전부터 같이 다녔다고 했다. 게다가 이 둘은 왕국 밖에서 왔다니 그보다 더 오래 전 부터 같이 있었을 수도 있다. 론 아저씨는 그들을 처음 봤을때 그들이 부자지간인줄 알았다. 헤레이스가 아빠고 카일로가 아들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형제지간으로 본다. 에반도 그러했다. 그 정도로 헤레이스가 젊어보이는 탓이다. 마법사라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이들은 늘 다른 이들보다 궁합이 좋았고 서로를 더 잘알았다. 그리고 서로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의심병까지. 하지만 이 의심병은 맞아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에반은 이걸 감 이라 불렀다. 그치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같이 평화롭고 잘 풀리는 날에 무슨 불길한 느낌인지. 이제 더 이상 바르리안같은 야만인의 습격도 없을텐데. 역시 카일로도 이상한 것 같았다.

 

 병동에서는 사람들이 다 잠들었고 간호사들도 집에 가는 시간. 창 밖에는 문을 닫은 건물도 많았다. 에반도 뒷정리를 돕고 침대에서 뒹굴던 참이었다.

 

 그의 몸은 힘없이 침대에서 축 쳐져있었는데 그의 머리만큼은 아니었다. 머리 속 에는 초조함이 맴돌았고 여러 생각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 헤레이스의 병동엔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더 이상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을 뿐 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가야만 했다.

 

 기필코 직접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채워야 한다.

 

 그에게 있어 풍경은 그림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 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두 눈으로 직접 봐야지 배우고 느낄 수 있는거였다. 그런 풍경은 십년 동안이나 세상 밖을 나오지 못한 아이에게 있는 유일한 소망이며 욕구였다.

 

 “바깥은 어둡지만 주변에 솟은 우파하르로 인해 경치를 볼 수 있었어. 산은 정말 크고 나무들은 울창했지. 너희들이 그 경치를 봤어야 했어.게다가 눈은 진짜 예쁘게 내렸다니까? 어른들은 우리를 질투하게 하려고 안 내보내준게 분명해. 안 그러면 그런 멋진 환경을 왜 안 보여주겠냐고!”

 

 줄리아의 친구인 데릭이 한 말이었다. 데릭은 주워온 괴물의 손가락 뼈를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고 싶어했다. 웬지 이 뼈가 금화나 훈장보다 가치 있어 보여서 그런걸 지도 모른다.

 

 “완전 사람 뼈처럼 생긴거 있지? 색깔만 아니었으면 못 알아봤을 거야.”

 

 괴물의 뼈는 인간의 뼈와 달리 검은 색을 띄였고 큰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뼈 주위에는 굳은 파란색 액체가 묻어져있었는데 에반은 그걸 피라고 생각했다. 아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것 같았다. 저걸 보니 데릭 형이 오랜만에 사실을 말하고 있구나 라고 확신했다. 에반은 데릭의 말 그대로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책 속에 거인과도 같이 큰 산과 흰털같이 덮인 눈, 또 그걸 그리고 있는 자기자신까지. 그러자 그의 가슴은 데릭의 말과 그 뼈들을 보자마자 두근거렸고 동시에 그는 한 가지 결심했다.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려야겠다고.

 

 헤레이스의 병원 맨 지하층에 어떤 통로가 있으며 통로 안엔 바깥으로 올라가는 승강기가 있었다. 원래 승강기는 왕궁이나 귀족저택에만 설치되어있는 귀중한 도구였다. 하지만 이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병동과 왕궁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 졌다고 들었었다. 병원에서 왕이 그런 지원을 해준건 그 일이 처음이었다. 그런 호의로 인해 그 승강기가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정문과 후문은 경비가 삼엄했지만 그 곳은 잘 안 쓰는 나머지 경비마저 없었다. 하지만 이래도 실패한다면 시간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야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그는 그 것만 생각하는 걸로 옆도 뒤도 바라볼 수 없었다.

 

 이제 자정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헤레이스와 카일로는 같이 술을 마신다 해서 헤레이스의 방인 끝 방에 들어갔다. 아무 문제가 없다. 오늘 운수는 전부 그에게로 쏟아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는 마음을 다 잡았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병문 복도의 승강기를 탈 때까지 발끝을 들고 걸었다. 승강기와 가까워지기 까지 그의 불안감은 더욱더 고조되었었다. 그는 이런 불안감을 이겨내어 승강기를 탔고 맨 지하층의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른 후, 문이 닫히자 승강기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내려 갈 수 록 기계들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귀에서 번져 졌다.

 

 승강기가 맨 아래층에서 서서히 몸을 멈추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틈 사이로 커다란 터널이 보였다. 안에는 어떤 소리가 메아리 쳤었다. 휘파람과 비슷한 소리. 기계음이 아니었다. 기계가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바람소리였다. 이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마구 흔들어서 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오늘이 운좋은 날이라며 자기 자신을 칭찬했다.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은 자기 자신에게. 또 언젠가 또 나와야 겠다고 결심하며 걸어나갔다. 터널의 끝에는 희미하게나마 철문이 보였다. 그는 이 철문을 만질 수 있는 거리까지 발을 움직였다.

 

 그는 걸으면서 통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왼편에는 또 다른 철문이 있었는데, 이 철문은 기본 문보다 몇 십배는 컸다. 아마 지하 1층의 철문 정도가 저 정도 쯤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하 1층의 철문과는 달리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왜 쓸데없이 만든거지 하며 에반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생각을 하자면 그의 삶에서 이런 순간은 없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며 앞의 일이 기대되는 순간을 지나본 적이 없었다. 있었다 할지라도 기억이 안났다. 그래서 인지 그는 지금 승강기 안에서 진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 승강기는 왕궁까지 이어져 있다 했지만 그에게 있어 왕궁은 중요치 않았다.

 

 “진정하라고 해도 하는 게 불가능해.”

 

 오래되어 갈색 녹이 슨 내부. 피 냄새 같이 조금 역한 철의 냄새.

 

 올라가는 소리.

 

 지렛대 처럼 줄을 잡아당기는 소리. 이 소리가 귀에 들어가면 갈수록 심장은 더욱더 두근거렸다. 이렇게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 진걸까. 그는 생각했다.

 

  생각이 뇌리에 여러 번 스쳐 지나갈 즈음에 귀가 먹은 걸까 하고 의심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원래 승강기가 이렇게 조용했었구나. 그는 순간 깨달았고 이 깨달음에 응답을 해준 건지 승강기의 문은 열리고 말았다. 철문은 천천히 문 사이를 벌려주었고 바람은 틈 사이로 불어왔다. 그러자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그는 옷을 두껍게 입을 껄 이라며 후회를 했다. 그래도 이미 늦어버렸다. 그가 이런 식으로 후회하고 문 쪽으로 돌아보는 사이엔 이미 문은 멀어져있었다. 대신 아름답고 하얀 세상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주변엔 눈으로 덮인 산들이 크기를 자랑했다. 옛날 이야기에서 들어본 거인들보다 훨씬 커 보였다. 그들은 산보다 크다 했지만 이젠 그 말이 거짓으로 들려왔다. 그를 넘어 왕국 사람들을 가려줄 만큼의 크기를 가진 산인데 작을리가 없었다. 산은 웅장하고 컸다. 기차가 기사나 현자라면 산은 그 위에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왕이나 신같은 높은 무언가. 그렇지만 산은 내세울게 크기 밖에 없었다. 이들에겐 나무 한그루도 없어 매말라보였다. 엄마는 산이 생물들의 집이라고 했었지만 그의 눈에는 파리에게도 자리도 안내어줄 산으로 비춰졌다. 자신의 몸에 발자국 하나 남기기 싫은 이기적인 산 말이다. 그리고 바닥도 마찬 가지였다. 바닥엔 작은 크기의 우파하르들을 빼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가 울창하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역시 데릭 형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였다. 그래도 그는 이건 이것대로 만족스러워 보였다. 눈에 있는 발자국도 그의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아 발자국을 보면 온세상에 그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상하고 멋진 기분이었다. 어쩌면 하늘에서 내린 눈이 그들의 일부가 된게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피부가 된 눈을 안 밟길 원하는 건가. 만약 그래도 백금색의 빛을 밝혀주는 우파하르는 예외의 대상이 되는 건가. 그는 곳곳에서 두더지처럼 고개만 내민 우파하르를 바라보았다. 손만큼 작았지만 많이 널려 있어 주변을 충분히 밝혀주었다.

 

 그는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발과 눈을 맞대는 소리는 고무를 비트는 소리보다 무거웠다. 그는 이런 발소리를 들으며 경치를 자세히 보려고 자리에 앉아 그림 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비록 그의 뺨은 터질듯이 빨갛게 부풀어오르고 호두까기 인형처럼 턱을 떨었지만 마냥 이 순간이 행복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벌써 그의 발자국은 눈에 덮여갔다.

 

 그가 이런 경치를 그려나갈 때 갑자기 걱정이 생겼다. 이러다가 나도 로널드 형처럼 죽으면 어쩌지. 제대로 탈출할 수나 있으려나.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잊혀졌다.

 바보야. 이번에 바르리안들과 평화 협정을 맺었잖아. 게다가 괴물들 거처도 바꿨다 했어. 머리 속의 자신은 거들먹거리는 투로 그를 안심시켰다. 참으로 고맙네. 안심시켜서.

 

 그렇지만 곧이어 불안에 떠는 자신이 주절댔다. 확실한 정보가 아니잖아. 그리고 헤레이스의 그런 모습 처음 봤어. 그의 예상은 언제나 맞았잖아.

 

 자신은 이런 후자의 생각을 마구 다그쳤다. 인간은 한계가 있으며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헤레이스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생각은 이렇게 말을 했다. 헤레이스는 마법사라 감이 좋아. 그는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론은 인간이야.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해.

 

 론도 실수를 할 수 있잖아.

 

 그는 섬뜩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주변은 아까와는 달리 좋은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색안경을 쓴 거와 같이 장소는 이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설마. 자기가 예상하는 그런게 아닐 것이다. 론이 말이 틀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웬지 불안해졌다. 왜인지도 모르겠다.

 

 이때 그의 귀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돌아가자. 이런 생각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후자의 자신이 이겨버렸다. 그림을 다 그려야 했지만 대충 경치를 봤으니 상관없었다. 엄마가 말했듯이 목숨이 제일 소중한 거였다. 빨리 가서 승강기를 타야해. 승강기를 타서 지하로 내려와야 해. 거기까지 간다면 내 목숨은 이제 안전할거야. 그는 승강기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제발 빨리 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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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불안해지는 거지. 왜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거지? 왜 발소리가 들리는 거지? 왜 여러 개나 들리는 거지?

 

 그는 겁이 없었다. 그래서 무모한 짓들을 많이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겁이 없는게 아니라 진짜 무서운걸 못 봐서 그런거라고.

 

 설마 아닐 거야. 그는 승강기의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댔다. 발소리는 그와 가까워 졌다. 이게 환청이었다면. 지금 그가 헤레이스의 병원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거다.

 

 어쩌면 신은 이미 예측하고 그를 보호하려 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지하에서 가장 안전한 대피소에 있었으며 자신을 보호할 남자를 곁에 두었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지금 그가 이제 의지할건 승강기 뿐 이었다. 하지만 승강기는 너무나도 느렸다.

 

 발소리는 멈췄으며 그의 앞이 어두워졌다. 그는 어둠이 사람의 것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도 사람의 그림자는 괴상망측한 형태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살해당하고 잡아먹히는 걸까. 상상만으로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려졌다. 그치만 느껴지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대신 목 쪽이 너무나도 아팠다. 칼이 그의 목에 움푹 들어간걸까. 목이 매여 말은 커녕 숨도 쉴 수 없었다. 도중에 쉬려해도 공기가 목부분에서 움직임을 멈추어 다 들이쉴 수가 없었다. 이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그의 입은 계속 무언갈 중얼거렸다. 어쩌면 신음소리일거다. 혹은 살려달라는 소리나. 이게 정확하지 않은게 에반의 머리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서 그렇다. 그의 머리상태는 아픔 직후에 심한 어지럼증을 느껴 정신을 못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에반은 다쳤나 싶어 머리 숙이려 했지만 그의 눈 앞엔 자신의 몸이 아니라 괴물이 나타났다.

 

  눈 앞엔 푸른 어린을 두른 괴물의 잇몸엔 이빨이 없었고 눈이 있는 자리엔 음푹파진 살덩이만 보였다. 그는 대체 어떻게 날 볼 수 있는걸까 했지만 그 궁금증은 괴물의 혀를 보자 해결되었다. 개구리처럼 기다란 혀에 수십, 아니 수백개의 눈이 붙어졌고 그 눈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혀는 온몸의 터럭을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괴물의 혀와 다르게 그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었다. 대신 괴물들끼리 주고받는 웃음소리와 어느 말이 귀에 들려왔다. 괴물은 사람의 언어도 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닌 말을 했다.그리고 이 말을 후로 축축하고 빨간 것이 그의 얼굴을 휘감아버렸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 발악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할 수 조차 없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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