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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의 끝
작가 : 이지원2
작품등록일 : 2020.9.29

끝없는 추위와 태양의 부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런 끔찍한 재앙들 속에서도 문명을 발달하고 나라를 건국한 인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문명이 위협 받는 위기를 겪게 되어 혼란이 찾아온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는 늘 있는 법. 그런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낙원이 있다는 말을 한 남자가 오는데...

 
1화
작성일 : 20-09-29 18:06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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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느 어질러진 방안에서 한 아이가 눈을 떴다. 흉한 진흙 벽돌로 인해 조금만 만지면 부서질 것만 같아 불안한 방이었다. 방에 있는 가구 또한 그러했다. 가구도 희뿌연 먼지로 뒤덮이며 쥐 파먹은 흔적이 남았다. 그는 방이 오늘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들었다.하지만 마냥 그러지는 못했다. 눈앞에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가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오동통한 뺨을 꼬집었고 그는 결국 정신을 차렸다. 이건 아픔에 못 이겨 정신을 차린 꼴 같았다.

 

 “아프잖아요 엄마!”

 

 “아프라고 꼬집은 거야 에반. 진짜 아침잠 많은 건 아빠 닮아가지고.”

 

 그녀는 아이의 이런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곤 그녀의 시선은 에반이란 아이가 아닌 방바닥에 쏠렸다. 방바닥엔 종이들이 공벌레처럼 동그랗게 구겨져 있었다.

 

 “또 구겨놨니?”

 

 그녀의 물음에 에반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 망친 거에요.”

 

 “잘 그려놨던데.”

 

 “오늘도 그게 안 왔단 말이에요. 이건 잘 그렸다 하는 그거요.”

 

 아이의 이런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구겨진 종이 중 하나를 조심스레 펼쳤다. 종이 안엔 풍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바깥의 모습이었다. 빙산이 성탑처럼 우뚝하게 자리를 잡았고 예전에 호수였던 곳이 얼어버린 빙판으로 반짝였다. 게다가 하늘에는 오로라가 무지개처럼 몸을 뻗어져 진짜로 착각하게 만들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은 아이의 엄마라는 여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게 망작 이라면 길거리 화가들은 돈도 못 받는단다.”

 

 그녀는 아이의 어깨를 잡더니 붕붕 흔들어댔다. 그만큼 에반의 재능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신이 준 기적과도 같았다. 그림 수업도 캔버스도 모르는 열 살 소년의 수준은 이미 길거리 화가를 넘어섰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항상 그의 그림에 엄지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거에 대해 만족하지 못 했고 이러한 불만족은 그녀가 가진 유일한 고민 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니? 너무나도 잘 그렸잖아.”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거의 다 오래된 그림을 참고했어요.”

 

 “열심히 노력했구나.”

 

 “그래도 이건 실제에 못 미쳐요. 타인의 눈은 제 눈이 아니에요. 제가 이 숲을 오직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니?”

 

 그녀는 턱을 만지면서 다시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걸 그려야 할 것 같아요.”

 

 에반이 이런 말을 하자 그녀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에반은 아차 싶어 그녀를 바라보지 못 했다.

 

 그녀는 그를 와락 껴안았다. 힘이 꽤나 세서 빠져나올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답답해져서 버둥거리자 목덜미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엄마 말이야. 몇 년 전에 장례식을 다녀왔단다.”

 

 “장례식이요?”

 

 “옆집 그레이브스네 가족 말이야. 그 중에서 첫째아들.”

 

 “로널드 형을 말하는 거 에요?”

 

 에반은 자신의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사실 그녀가 말하는 로널드 그레이브스는 아는 동네 형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옆집이라 친한 건 아니지만 자주 마주쳤었다. 그래서 그 날 후에 로널드의 일행이 남들 몰래 밖으로 나간다는걸 들은 적이 있었다.

 

 아. 죽었었지.

 

 어쩐지 동네에서 안보였는데. 잠깐 잊고 있었네 라고 생각한 에반 이였다. 친한 건 아니라서 그다지 감정은 없었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말은 안 들린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에반.”

 

 안 들리는 게 익숙해질 때 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이 들어간 몸도 이젠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 마쉰 뒤에 에반에게 부탁했다.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렴. 너를 잃을 순 없어.”

 

 이런 상황에서 실랑이가 힘들었던 에반은 그녀의 부탁에 끄덕였다. 거절했다가 불효자로 낙인 찍힐 것 같아 연기라도 해야 했었다. 그러자 그녀는 구겨진 종이를 빳빳하게 펼치고는 방 밖을 나갔고 그 또한 조용히 그녀를 따라갔다.

 

 에반이 도착한 곳은 거실이었다. 벽에는 삐뚤삐뚤한 진흙 벽돌이 쌓여져 있었다. 거실 안에는 한 남녀가 식탁에 앉아있었는데 둘은 보기드문 적발머리를 지닌 그의 아빠와 누나였다 . 그가 아빠의 곁에 앉을 때 엄마는 그들에게 그릇을 건냈다.

 

 식탁에 차려진 나무 그릇들엔 넓은 접시엔 호밀빵과 감자가. 그릇에는 브로콜리가 둥둥 떠다니는 야채 스튜가 있었다. 상이 다 차려지자 그들은 묵묵히 먹기 시작했는데 그 또한 그러다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밖에서 실제로 볼 수만 있다면 감이 올 텐데.”

 

 그들은 이 말에 먹는 걸 멈추고 하나같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당황한 기색을 띄며 입을 황급하게 닫았다. 그만 말실수를 해버렸다.

 

 “그래도 밖은 위험하니까..”

 

 이런 말을 하자 그의 아빠는 굳은 얼굴을 피며 에반의 머리를 헝클였다.

 

 “ 다른 아이들처럼 호기심으로 밖에 나가면 안 돼 에반. 너무 위험해. 그치 줄리아?”

 

 “ 에반은 똘똘하니까. 안 말해도 알거야.”

 

 그의 누나 줄리아는 축 처진 눈으로 웃음 지으며 그의 등을 쳤다. 키는 엄마보다 컸으나 하는 짓은 또래 아이들다웠다.그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억지웃음으로 답하는 동시에 주머니 안에 접힌 종이를 힘껏 구겼다. 종이는 이미 찢어질 지경까지 왔다.

 

 가족들이 웃으며 말하는데도 그는 전혀 그 대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적당히 맞장구치는 게 한계였다. 에반의 입술은 스튜에 만 닿아도 따끔거렸다. 너무 깨물은 탓 이었다. 그는 대화가 서서히 끝나갈 때 즈음 그들에게 입을 땠다.

 

 “나 오늘 헤레이스 선생님 댁에 가 있으려고. 괜찮을까?”

 

 그의 물음에 그들은 궁금한 눈치로 그에게 왜냐 물으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대충 짐작을 했나보다.

 

 “너 선생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나 같아도 부담스럽겠다야.”

 

 줄리아가 그를 놀릴 때 그의 엄마는 식탁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급하게 챙겼다. 식사는 벌써 마친 것 같았다.

 

 “ 그냥 놀러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가기 전에 엄마가 준거 선생님께 드려, 빈손은 민폐야.”

 

 그의 엄마가 많은 음식들을 철통 안에 하나씩 담아갈 때 줄리아 와 그의 아빠는 다 먹은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에반도 그들을 보고 따라 도왔다.

 

 그렇게 모두 주방에서 일을 마치자 그의 아빠와 에반은 밖을 나가려했다. 그러자 그의 엄마는 어느 보자기를 그에게 내밀었다. 철통이 몇 통씩이나 들어가 많이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잔소리로 받아드리고는 길을 나섰다.

 

 “아 참! 에반!”

 

 문만 나가면 밖에 나갈 순간에 그의 엄마가 갑작스레 옷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돌연 무언가를 꺼내어 그에게로 던졌는데, 그건 바로 돈이었다. 살짝 녹이 슬고 생채기 자국이 많은 동화 두 닢. 앞면에는 무장한 기사가 칼을 받들고 있었다.

 

 “기차표 값이야. 왕복하면 없어질 돈이니까 잃어버리지나 마라.”

 

 그는 동화를 받고 아무 말 없이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집 밖을 나서자 밖엔 사람들로 이미 북적였다. 장사꾼들은 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물건에게 관심을 끌었고 제빵사 들은 자신 있는 빵을 진열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길 위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걷거나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옷을 입고 다녔다. 그렇지만 이런 옷들은 하나의 공통성을 띄었다. 장식하나 없으며 깔끔하지 않은 복장. 그런 밋밋한 복장. 그렇다. 여기엔 사치하나 못 부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사치쟁이들이 말하는 품격은 없었다. 이들은 돈이 없었다. 그러므로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이곳은 터렐쉬 지하 왕국 지하 3층,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넘칠정도로 부유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는 돈을 만지며 물고기 떼처럼 빽빽한 무리를 지나쳤다. 많이 다녀본 듯 했다. 그도 그럴게 이런 무리 사이를 지나치는 건 그에게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그의 터전이었으며 없어선 안 될 곳이 되었다.

 

 그는 길을 어지럽게 나아갔다. 어땔땐 지붕을 타기도 했고 벽 위를 뛰어다녔다.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요령만 잘 익히면 어린 아이도 따라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 사이에 그의 눈앞에는 벌써 큰 간판이 보였다. 간판엔 지하 2층 기차역이란 글씨가 적혔다. 기차역 주변의 사람들은 매우 평범해보였다.그리고 평범한 그 또한 이런 구멍 안에 들어갔다.

 

 기차역 안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이 시간이고 공간이 공간인 나머지 사람이 많은 건 당연했다. 다들 분명 기차역까지 오는데도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걸어 갔을게 분명했다. 에반은 자기 집이 기차역과 가까운 사실에 감사하며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에는 연세가 있는 노파가 맡고 있었다. 그녀는 자글자글한 주름과 금붕어 같은 눈을 위아래로 굴리고는 이내 혀를 차며 궁시렁 거렸다. 코흘리개가 기차는 무슨 기차란 말도 들려왔다.에반은 기분이 나빴지만 이내 참았다. 늘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익숙해진 상태였다. 노파는 그에게 작은 표를 주더니 십 분 후에야 온다며 말하곤 이내 딴 짓을 했다. 표를 보니 삼등석 칸이었다. 동화 한 잎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칸. 그는 미리 타는 곳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기차는 십분안에 온다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됬다. 하지만 십분. 에반에겐 십 분이란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십 분 안에 무언가를 먹을 수도 그림을 완성 시킬 수도 없었다. 이런 어중간한 시간에 하는 일은 발장난 뿐 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자 먼 곳에서 검은 기차가 달려 나왔다. 낡지만 웅장한 기차는 철도를 미끄러지며 전진했다. 마치 늙은 현자나 기사와도 같았다. 이런 기차가 마침내 에반의 앞으로 오자 문이 열렸으며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역 안은 증기로 인해 더워졌다. 에반은 재빨리 기관사가 가르쳐 준 방향 안으로 기차에 들어갔다.

 

 그가 처음으로 지나친 곳은 일등석 칸이었다. 칸엔 비싼 의자들이 나열해있었고 식탁 또한 대리석을 공들여 깎은 티가 났었다. 이런 칸은 귀족들의 장소라 여길 만했다. 심지어 이런 기차의 일등석도 안 좋은 편에 속하다고 했다. 에반은 좋은 기차의 의자는 비쿠냐의 가죽으로 만들었을 거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댔다.

 

 그는 조금이라도 일등석을 더 보고 싶어 이리저리 둘러봤다. 조금이라도 눈에 담아 간직하고 싶어 했다. 고급스런 침대. 눈이 아플 지경으로 눈부신 화장실. 아름답게 디자인된 내부 까지. 사실 그는 삼등석 칸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등석 칸을 지나가 보고 싶어 이렇게 먼 데까지 오게 된 거다. 물론 이건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어느 일행과 부딪혀 넘어지게 되었다. 일행 둘 다 깔끔한 프록코트를 입었고 신사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들은 에반을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 신사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역시나 그는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팔은 살갗이 찢긴 것 같이 쓰라렸다.

 

 그가 둘러보면서 일등석 칸이 서서히 끝나가고 이내 이등석 칸이 나왔다. 하지만 이등석 칸은 이제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든 일등석보다 한참 낮아보였다. 내부는 쾌적했지만 화려하지 않았다. 에반은 일등석 칸 쪽으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았다. 언젠가 저기에서 음식을 먹어보자며 각오를 다지고는 아픈 왼팔과 같이 터덜터덜 삼등석 칸으로 갔다.

 

 맨 끝 칸인 삼등석 칸은 매우 안 좋았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시가나 파이프를 입에 넣고 연기를 뿜어대어 연기로 자욱했다. 에반은 기침을 하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기차도 출발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삼등석 칸의 사람들이 하는 건 대부분 카드 놀이였다. 어른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삼등석 칸 안에 도박꾼이 나왔다고 한다나. 에반도 보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카드놀이를 하다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도 가는 도중에 귀를 기울였다. 왕인 다나카 2세에 관한 이야기였다.여러 업적을 많이 세웠지만 자식 복은 없는 왕이라 마구 비웃어댔다.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장남은 여자와 술에 미쳤고 차남은 무례하고 무식하며 막내는 유하지만 바보같다고 소문이 다 난 상태였다. 어린 에반도 어른들에게 자주들어 그 소문을 잘 알고 있다. 셋다 타국의 언어도 모른다고 하니 말 다했다.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다 사실인 것 같다. 에반은 그거 외의 얘기도 듣고 싶었지만 이제 어른들의 수위 높은 농담밖에 나오지 않았다. 에반은 결국 종이와 나무판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번에 그린 것은 기차 내부였다. 비록 연기로 인해 눈이 매워도 시간이 지나자 제법 잘 보였다. 처음엔 도박꾼들을 그리고 싶었으나 사람이 많아 잘 안 보이는 관계로 포기했다. 대신 칸 안의 풍경을 그렸다. 다 그린 후에는 앞자리에 앉은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느 남성을 보게 되었다. 검은 정장에 챙이 달린 모자 그리고 나무 지팡이. 아까 두 남자와 같은 복장이었다. 남자는 노년기에 접어드는지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졌다. 이런 노인이지만 무언가 온화한 분위기를 풍겨 다가가고 싶은 이미지였다.

 

 에반은 맘을 먹고 이 노인을 그리기로 했다. 왠지 허락을 못 구할 것 같고 노인은 자고 있어 몰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몽당연필과 지우개를 꺼내 구도를 잡았다. 오랜만에 그리고 싶은 인물이 생겨 매우 신나했었다. 다친게 왼팔이 아니라 오른팔 이었다면 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 했을거다. 이렇게 하더니 벌써 삼십 분은 거뜬히 지나가버렸다.

 

 삼십 분이 지나자 하얀 종이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옷매무세나 주름이 세세하게 드러나 너무나도 실제 같았다. 그는 만족하며 판자와 종이로 집어넣으려 했지만 그의 몸이 누군가의 몸으로 가려졌다. 그림자가 져 의아한 그는 위를 쳐다보았다. 위엔 노인이 입 꼬리를 올리며 에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에 몰두하느라 노인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었니 꼬마야?”

 

 노인은 웃으며 손에 들린 종이에 시선을 던졌다. 그는 아까 와 같이 식은땀을 흘렸다.

 

 “죄송해요.”

 

 에반은 손을 공손히 올리며 눈을 허벅지에만 두었다. 그는 노인의 욕설과 손찌검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그렸어요. 너무나도 그리고 싶어서..”

 

 이 말을 듣자마자 노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는 귀에 달린 모노클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에반에게 다가갔는데 투명한 수정유리와 패인 흔적 없는 금테가 노인과 잘 어울렸다.

 

 “혹시 그림을 볼 수 있을까?”

 

 노인이 조심스럽게 부탁하자 에반은 선뜻 그림을 내어주었다. 그림에 자신이 있었던 에반도 맘에 안 들어 할까 착잡한 기분에 놓인 순간이었다. 아무리 삼등석 승객이라고 해도 모노클을 가진 하류층 사람은 본 적도 없었다. 그러면 분명 눈이 높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걱정에만 지나쳤다. 노인은 그림을 받더니 입을 떡 벌렸고 장갑 낀 손을 내밀며 악수를 권했다.

 

 “잭 길리엄 라고 하네. 혹시 이 그림을 나에게 팔 생각이 없나?”

 

 에반은 예상외의 답이 나와 당황했다. 이 노인은 이 그림을 좋아하는 지경을 넘어 소유하고 싶다 했다.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괜히 기뻐져 배시시 웃었다. 많으면 은화 하나에 팔 수 있었고 은화는 엄마의 선물을 충분히 살 돈이었다.

 

 “그럼요. 그럼 이따가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그의 답에 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로 가 가방을 에반의 옆자리로 옮겼다.

 

 “같이 앉아도 괜찮나?”

 

 잭이 묻자마자 그는 즉각적으로 옆자리로 피했다. 그로인해 잭은 앉아서 그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받자마자 계속 그 그림만 뚫어져라 주시했다.

 

 "선을 꽤나 거칠게 그었어. 그러면서도 완벽함을 지키려했군."

 

 "감사합니다."

 

 에반은 칭찬에 부끄러워져 머리를 긁었다.

 

 "어느 화가 밑에서 일했나? 이름을 듣고 싶군."

 

 "스스로 배웠어요. 그럴 돈도 없어서."

 

 그의 고백에 잭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혹시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잭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까지 다시 확인했다.

 

 “그림을 독학으로 배웠단 말인가?”

 

  그러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고. 잭은 답을 듣자 맥이 빠져 자리에 힘없이 앉아버렸다.

 

 “믿기지가 않는군.”

 

 “진짜라니까요.”

 

 “믿어. 근데 정말 잘 그렸군. 우리 도련님에게 소개하고 싶을 정도야.”

 

 잭은 그림을 만지작거리며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살짝 아쉬움이 깃든 표정이었다.

 

 “도련님이요?”

 

 에반은 그의 모노클에 집중하면서 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노클의 금테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보단 글씨에 가까웠지만 차마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문맹이 아니었지만 모르는 글자가 많았다.

 

 “ 응. 도련님. 그 분도 그림 쪽에 관심이 많으시단다.”

 

 “ 그렇군요.”

 

 “ 가끔 나에게도 이런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셔. 난 화가도 아니고 집산데 말이지.”

 

 잭은 모노클을 귀에서 빼내더니 가슴주머니에 꽂은 흰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닦은 모노클의 유리는 아까보다 광택이 났다.

 

 “ 집사인줄 생각도 못했어요.”

 

 그는 의아하게 바라보며 옅은 탄성을 냈다. 잭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인지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벌써 사십년이 넘었어. 덕분에 옛날 보다 풍족하게 잘 살고 있고 말이야.”

 

 “ 그래서 줄리아도 한다 했어요.”

 

 에반은 잠시 줄리아를 떠올렸다. 그 큰 키에 안 맞는 앞치마를 입는 상상을 하니 저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입대를 하지 하녀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어디가시는 거 에요?”

 

 에반은 말이 끝나면 어색해 지는 것 같아 입을 열었다.

 

 “ 일터로 돌아가는 거지. 가는 김에 심부름도 하고.”

 

 잭은 갈색의 가죽가방을 바라보았다.

 

 “심부름이요?”

 

 “도련님이 어떤 가게에서 꽃다발을 사 달라 하셨더라고. 도련님 층에는 없던 꽃 이여서. “

 

 “꽃이구나..”

 

 ‘“그런 꽃인데 냄새를 배게 할 순 없지.”

 

 잭은 그러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냄새가 빠졌지만 연기는 아직 남았었다. 코 부분이 마비된 듯 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아빠는 피우지 않았는데 아마 냄새가 이유이지 않을까.

 

 “그러셨구나.”

 

 “그럼 너는 어디로 가는 거니?”

 

 “저는..”

 

 잭이 묻자 에반은 잠시 답을 망설였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거였다. 주위에 카드 넘기는 소리가 커져만 갈 때 그는 결국 대답을 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걸 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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