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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45화
작성일 : 19-11-03 23:01     조회 : 14     추천 : 0     분량 : 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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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는 통제소가 눈보라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상훈이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리를 다친 그가 영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그는 다리를 절면서도 생각보다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봄이는 노인이 말했던 큰 차도가 뻗어 있는 도로변으로 먼저 걸어갔다.

 

  큰길 차도에는 자동차 바퀴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반쯤 녹은 눈길에 선명하게 새겨진 그 바퀴자국은 눈이 덮인 채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자국이 그들이 이틀 전에 남겼던 흔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봄이는 울퉁불퉁하게 이어진 바퀴자국을 보고 아직은 자동차가 어마어마하게 쌓인 눈더미 속에 파묻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봄이는 노인이 말한 가장자리 자동차를 찾으려고 주차된 차량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차량들의 종류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짐칸에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트럭도 있었고, 기름 주입구가 열린 채로 속이 텅 비어있는 SUV도 있었다. 그렇게 늘어서 있는 차량들 가운데 봄이는 어딘가 눈에 익숙한 차량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봄이는 낯익은 차량 앞으로 걸어가서 눈으로 덮힌 범퍼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앞유리창에 쌓여있는 눈들도 쓸어내리자 운전석 백미러에 매달려 있던 곰인형 모양 악세사리가 보였다. 틀림없이 그 자동차였다. 봄이가 손에 쥐고 있던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누르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뒷면의 백라이트가 환하게 깜빡였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 봄이는 뒤돌아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예요.”

 

  상훈은 자동차 문에 손을 짚은 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봄이도 차량의 등 뒤로 돌아가 조수석에 앉았다. 봄이는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뒷좌석으로 몸을 뻗어 가방부터 챙겼다.

 

  “젠장, 연료가 얼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벨트부터 매라. 출발할 거야.”

 

  상훈은 그렇게 말하고서 안전벨트를 채우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다행히도 시동은 쉽게 걸렸다. 시동과 함께 켜진 라디오에서는 지지직대는 잡음만이 들려왔다. 다리 사이에서 히터가 뿜어져 나왔지만 상훈은 연료가 아깝다며 곧바로 히터를 꺼버렸다. 봄이는 그 사실에 불만을 품었지만 그 사실을 몸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상훈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젖히고 엑셀을 밟자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동차는 곧바로 뻗은 도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 * *

 

 타이어는 무릎께까지 올라오는 눈높이에도 불구하고 기압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폭발한다거나 하지 않고 잘 굴러갔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차량의 꽁무니 뒤편에서는 진흙이 섞인 새하얀 안개가 마구 솟구쳤다.

 

  봄이는 덜컹거리는 자동차 시트에 등을 기대고 조수석 옆유리에 맺힌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 물방울들이 완전히 갈라져 없어지자 봄이는 생각에 잠겼다. 커다란 한숨이 폐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머릿속이 마치 팽이처럼 빙빙 돌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봄이는 결국 원래 존재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 세상은 봄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한 번만 더 무엇인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기라도 하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봄이가 아무리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맞선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운명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녀가 다시 일어날 때마다 몇 번이고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킬 뿐이었다.

 

  점점 봄이의 어깨에서 자신감이 빠져나갔다. 그녀가 품었던 작은 소망은 끝없이 몰아치는 매서운 눈보라에 파묻혀 사라져버렸다.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전부 어디론가로 흩어졌다. 봄이는 자신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도 언젠가는 자신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힐 때가 오리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가슴이 텅 빈 공허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되새기자 가슴이 쓰라렸다. 그 사실을 전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더욱 더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질주하던 차량의 타이어가 얼음에 부딪히자 차량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봄이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쌌다. 생각하기 쉬웠던 근본적인 질문들이 봄이의 뇌리에 날아와 꽂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은 영락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또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곳에서도 손을 벌릴 수 없었고, 누구도 그들을 환영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봄이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와도 같은 사투에 그만 질려버렸다. 더 이상 목숨을 담보로 내건 위험한 도박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일까? ‘목숨’을 걸면서까지 ‘생존’ 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젯밤까지만 해도 봄이에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전부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남아있는 것은 후회뿐이었다. 더 이상 봄이에게는 아무런 의지도, 의혹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저씨,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봄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녀는 앞유리에 쌓이는 눈더미들을 정신없이 밀어내는 와이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상훈이 봄이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생각 중이야. 이 쪽 근방은 솔직히 나도 길을 잘 몰라. 우선 당장은 눈더미가 높지 않은 길을 따라가고 있긴 한데 아직까지는 모르는 길이야. 조금 더 가봐야겠어.”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다시 운전대로 돌렸다. 봄이가 대답하지 않자 차량 내부는 다시 엔진 소리만으로 가득 차버렸다. 고개를 숙인 봄이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 그녀의 눈가를 완전히 가렸다. 상훈은 그런 봄이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음, 봄아.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일은 정말 유감이구나.”

 

  봄이는 그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곧 거의 풀린 눈으로 말했다.

 

  “아저씨가 왜 사과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봄이가 딱잘라 말하자 상훈이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만약 담아두고 있으면 다 잊어버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뇨.”

 

  상훈이 말을 미처 마무리짓기도 전에 봄이가 끼어들었다. 상훈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 이제 그만 끝내려구요.”

 

  그 말을 들은 상훈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봄이는 타고 있던 차량의 속도가 약간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끝내다니, 뭘 끝내겠다는 거야?”

 

  상훈은 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차마 운전대에서 눈을 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봄이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저 꺼내놓았다.

 

  “내가 하고 있는 거 말이에요. 시시하고 부질없는 가족 찾는 거.”

 

  상훈의 눈동자가 커졌다. 봄이를 저지하고 싶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끝내겠다니. 네 하나뿐인 가족이잖아. 절대로 포기해선 안 돼. 안부가 걱정되지도 않아? 그 쪽은 분명히 온 나라를 뒤지면서 널 찾아다니고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봄이는 해탈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뇨. 이제 그만할래요. 나는 가족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솔직히 잘 몰라요. 그렇지만 가족 같은 건..... 저에게 있어선 그저 소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하나쯤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건 대부분 존재하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소망’ 일 뿐이니까.”

 

  상훈은 봄이의 말뜻을 이해한 것 같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봄이는 말을 계속 이었다.

 

 “....이제 지쳤어요. 난 이제 더 이상 가족이니 뭐니 하는 어설픈 소망에 목숨 걸지 않을 거예요. 굳이 이렇게까지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까지 찾아야 하나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요? 도대체 가족이란 게 뭔데요? 찾는 사람 속은 다 뒤집어 놓고 정작 자기들은 어딘가에 처박혀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사람들인가요? 이젠 지긋지긋해요. 솔직히 말해서 회의감마저 들어요. 지금까지 내가 뭐 때문에 이 고생을 했나 싶기도 하고요.”

 

  상훈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운전대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봄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죠?”

 

  상훈은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봄이가 다음에 꺼낼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저한테는 볼 일 없으시겠네요.”

 

  상훈이 고개를 돌려 봄이를 쳐다보았다.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요. 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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