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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3.유령 도시
작성일 : 19-11-02 18:41     조회 : 12     추천 : 0     분량 : 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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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령 도시

 

  이미 시각은 오후 세 시를 웃돌고 있었다. 예전 세계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큰 축을 담당했었던 시간은 지금 세계에서는 그다지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때 먼 훗날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지능도 아니고, 더 진보한 과학기술과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도 아닌 그들 자신들의 시대적 통념과도 같은 고작해야 납덩어리 한 가닥의 시곗바늘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지구 멸망을 예언했던 마야인들의 종말론처럼, 더 이상 인류가 시간에 지배당한다는 출처 없는 루머는 잊혀져버렸다. 그들이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계나 보며 가만히 앉아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누구보다 빠르게 최정상에 걸린 사과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어쩌면 그 마야인들의 종말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봄이는 찌그러진 블랙박스가 달린 차량의 깨진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창문 조각에 목이 닿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대로 얌전히 있네요.”

 

  “늑장 부리지 말고 빨리 챙겨. 벌써 경찰이 우릴 쫓고 있을지도 몰라.”

 

  팔이 짧은 봄이가 유리조각에 겨드랑이가 베이지 않도록 낑낑대며 가방끈을 잡아끌었다. 가죽 긁히는 소리가 몇 번 난 후 봄이는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치맛폭에 다시 집어넣었다. 상훈이 봄이가 짐을 챙긴 걸 확인하고 나서 떠나려고 하는데 봄이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도로에 버려진 차들을 몰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안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난생 처음 동물들을 본 어린애처럼 깨지고 찌그러져서 흉한 차량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봄이에게 상훈이 대충 대꾸했다. 그러자 봄이는 귀찮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차에게 보내던 흥미로운 눈길을 그에게로 돌렸다.

 

  “아저씨는 그거 못해요? 있잖아요, 영화에서 나오는 막 열쇠 없이도 시동 거는.”

 

  봄이가 두 손가락을 서로 이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 영화잖아.”

 

  “못 한다는 거네요.”

 

  상훈이 열려 있는 자동차의 경유 주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이지? 벌써 안에 있는 기름은 모조리 싹 가져갔다는 뜻이야. 가솔린 같은 소중한 자원을 이런 세상에서 누가 가만히 놔두겠어? 가솔린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하면서도 구하기 쉬운 자원이지. 물론 지금은 이 근처 차들은 빠짐없이 싸그리 털린 것 같지만. 아니면 몽땅 얼어붙어 버렸을지도 모르고. 기름도 없는 빈 껍데기에다 시동은 걸어서 뭐 해?”

 

  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래서 아저씨 집에 기름이 그렇게 많았군요?”

 

  “너 때문에 반이나 날아갔지만 말이야.”

 

  낮게 공기를 뱉어내는 봄이의 입술을 본 상훈은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는 뒤에서 야유의 시선을 보내는 봄이를 무시한 채로 가방에서 도시 안내 지도 한 장을 꺼내 뒤집어 펼쳤다.

 

  “여기서 큰길을 따라서 3킬로미터 정도 가다보면 사거리가 하나 나올 거야. 거긴 오래 전에는 번화가였어. 거기에 도착하면 쓸 만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거긴 지하철역도 있으니까 일단 거기에 도착하고 나서 다음 목적지를 생각해 보자고. 지하철이 아직까지 굴러다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화가였다구요? 그럼 백화점도 있겠네요.”

 

  “장난감 가게도 있을 거야.”

 

  봄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덜 녹은 빙판길을 계속 걸어나갔다. 번화가에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봄이는 마음속으로는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잠자코 상훈을 따라 큰길을 건너갔다.

 

  도로 블록마다 나란히 세워져 있는 눈 쌓인 이정표들이 보였다. 그 이정표들은 묘하게도 전부 하나같이 봄이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 마치 이정표들이 봄이더러 이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봄이는 이 사실을 상훈에게 말해주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또다시 그의 귀찮음 섞인 빈정거림을 받아내야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들은 그저 예전에 누군가가 남긴 유품일지도 모르는 조그만 지도 쪼가리에 의지한 채로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던 봄이는 기나긴 정적에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먼저 말을 꺼낸 건 봄이였다. 하지만 이번에 꺼낸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달랐다. 무엇인가에 깊게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혹시......... 대공황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상훈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아시잖아요. 대공황 말이에요. 단 몇 년 만에 우리나라를 완전히 망쳐버린 경제 사태요. 아저씨라면 어딘가 알 것 같은데요.”

 

  상훈은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곱씹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목을 감쌌다.

 

  그러고는 봄이가 들으라는 것처럼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도 잘 몰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다발적인 폭력시위가 일어났었다는 것밖에는.”

 

  “거짓말. 더 알고 있죠? 말해 봐요.”

 

  “정말 모른다니까.”

 

  봄이는 멍하게 얼버무리는 상훈을 몇 번 다그쳤지만 상훈은 계속해서 모른다고만 일관할 뿐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던 아이처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봄이는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 * *

 

  봄이는 헤드라이트 높이까지 눈에 파묻혀 있는 갖가지 색상의 차량들을 지나쳐갔다. 마치 순백색의 설탕 더미에 휩쓸려 있는 것 같았다. 대공황 이전에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자유롭게 도심을 마음껏 질주했을 이 주인 잃은 차량들은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대단한 발명품 중 하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그저 잔혹하리만큼 고요한 백색의 대지에 쓸쓸하게 잠들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자욱한 공장의 매연 같던 구름이 태양과 함께 깨끗하게 걷혔다. 그러자 눈동자를 태워버릴 것 같은 눈부신 자외선이 어두컴컴하게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던 텅 빈 사거리를 강렬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봄이의 치마폭에 박힌 스테인리스 개머리도 눈부시게 광을 냈다. 인공적인 빛이 단 한 줄기도 들지 않던 황량한 사거리에 거대한 자연의 빛이 드리우자 보잘것없는 눈송이들이 값비싸고 화려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들은 주차금지 고깔이 일렬로 죽 늘어선 큰 도로변을 따라 20분쯤 더 걸어갔다. 발꿈치가 저릴 정도로 걷기만 하는 게 지루해진 봄이가 자신의 앞에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는 상훈을 불러 세웠다.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거 맞죠?”

 

  그러나 상훈은 대답이 없었다. 봄이 자신도 소리없이 묵음으로 대답하는 것을 나름 즐겼지만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봄이는 눈부신 태양을 똑바로 마주한 채로 말없이 걸어가는 상훈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다시 소리 질렀다.

 

  “거기 아저씨, 귀 먹었어요?”

 

  봄이의 외침과 동시에 상훈은 그의 앞에 장대하게 지어져 있는 큰 고층 건물 앞에 멈춰섰다. 짜증을 내던 봄이도 그의 발걸음이 멈추자 그의 바로 뒤까지 따라와서 멈추고는 서리가 여기저기 낀 거대한 얼음과도 같았던 고층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수수께끼의 고층 건물은 백화점이었다. 사거리에 도착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전에 봄이가 잠시 신세를 졌던 암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크고 많은 가게들이 있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이상하리만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가게들은 텅 비어 있었고, 모든 건물마다 셔터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엿볼 수조차 없게 되어 있었다. 배수가 되지 않아 넘쳐흐른 하수도를 옮겨 다녀서인지 축축하게 젖은 더러운 시궁쥐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던 검은 도둑고양이들뿐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꺾인 계단 왼편에는 지하 주차장과 이어진 야외 승강기가 얼어붙어 버린 승강기 입구를 끝내 좁히지 못한 채 벌어져 있었다. 옆에는 은행이 있었지만,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은행 입구에는 누렇게 변색된 신문지 조각과 녹색 종이들이 함께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상훈은 은행 입구에 너저분하게 깔린 축축한 종이 상자들을 밟고 몇 걸음 더 걸어갔다.

 

  “저 녹색 종이들이 필요 없어지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은 봄이는 얼음 건물에서 시선을 치우고 한두 장씩 휘날리는 녹색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봄이는 녹색 종이들을 보자 무언가 할 말이 떠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여기 좀 봐. 설마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어. 예전에는 50만 명이 여기 살았는데, 지금은 그림자 한 조각 없는 유령 도시가 되어버렸군. 이런 곳은 처음 봐. 대충 통제소나 보호기관으로 삶을 찾아 떠나갔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그야말로 이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아.”

 

  사람 한 명 없는 쓸쓸한 도시를 바라보는 상훈의 눈빛은 어딘가 울적해 보였다. 봄이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가로등 전선에 검은 새 몇 마리가 날아와 앉는 것을 보았다. 봄이는 자신을 위해 따라나선 상훈이 기죽어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전에 이 사거리에 가끔 왔었어. 낮에는 근처 아주머니들이 나한테 학원 전단지를 건네기도 하고,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든 학생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게 흔한 광경이었어. 근처 카페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가끔 난 여길 지날 때마다 항상 어떤 푸드트럭에 들러서 츄러스 몇 줄을 사 가곤 했지. 설탕을 묻힌 뜨거운 츄러스가 그땐 정말 맛있었는데.”

 

  봄이는 생각에 잠긴 그에게 무언가 위로가 될 만한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우리 둘만 있는 게 어때서요? 전 좋은데요. 조용하고, 평화롭고,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고.”

 

  정신이 돌아온 상훈이 봄이를 돌아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사실 나도 그래.”

 

  상훈이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흔들며 백화점으로 걸어갔다.

 

  “그럼 방해할 녀석들도 없겠다,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쇼핑이나 한 번 해볼까?”

 

  봄이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이 유령 도시의 쓰디쓴 찬바람을 한 번 들이쉰 후, 고요하면서도 쓸쓸한 도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나서 상훈을 따라 텅 빈 백화점 입구로 향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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