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22화
작성일 : 19-11-02 18:56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422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들린 한 마디였다. 그녀의 머릿속이 뒤틀렸다. 시간은 눈앞에 떠오를 듯 말듯한 기억들을 떠올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흘러갔다. 봄이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권총을 뽑아 겨눴다.

 

  그녀가 바라보는 터널 속은 습기가 차서인지 공기가 메말라 있었다. 또한 그녀의 회중전등은 아직까지도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몸 주위를 둘러싼 무엇인가가 그녀의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있었다. 어둠에 묻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봄이는 이 맑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 느꼈던 극심한 두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봄이의 머릿속에서 흩어졌던 기억들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녀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어둠의 안개 속에서 조그만 소년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제 그녀는 그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낯이 익은 소년이 봄이의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예전에 그 소년의 얼굴을 봤을 때는 기분이 나빴을지는 몰라도 이 정도까지는 분명 아니었다.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에게서 떨어지려 뒷걸음쳤다. 하지만 그 후들거리며 움직이던 다리도 얼마 가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오랜만이야, 봄이 누나.”

 

  소년의 굳게 닫힌 입꼬리가 작게 벌어졌다. 그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이 들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봄이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서로 얽혀 지나갔다. 그 수많은 감정 중에서 그녀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던 감정은 바로 공포였다.

 

  그것은 소년에 대한 공포였다.

 

  그런데, 왜 자신은 소년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니 대단하네. 혼자서는 이렇게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도대체 넌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봄이가 용기를 내어 이를 악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소년은 동공 하나 움직이지 않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누구냐니, 벌써 잊어버렸어? 나야. 보아하니 건강해 보이는데. 지난번에는 내가 좀 심했던 것 같아. 앞뒤 안 가리고 누나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나쁜 뜻은 없었어. 그저 끝없이 같은 자리만을 돌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고장난 물레방아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누나에게 하나 가르쳐 주고 싶었을 뿐이야. 스스로 덮어쓴 환상에 가려 진정한 자신을 잊어버리고 마는 일은 꽤 흔하니까.”

 

  봄이는 소년의 말이 단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봄이의 판단대로라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은 환각이거나 그런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은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그녀가 처한 뜬금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터널 끝에서 들린 목소리..... 그건 도대체 뭐였어? 그것도 네가 한 짓이지, 그렇지?”

 

  소년은 잠시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가 봄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비슷하지만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곳에 자기 자신이 끝도 없는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자책하고 있어. 그리고 그 나락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고 판단하는 그 순간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그게 실현되는 건 간단해. 자신이 가장 행복했었던 순간, 가장 사랑받았던 순간이 떠오를 때 그것이 자신의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형체로 구현되는 거지. 하지만 그건 꼭 형체가 아닐 수도 있어. 환각일 수도 있고, 환청일 수도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보이는 누군가일 수도 있지. 아마도 그것도 그 중 하나일 거야.”

 

  “......개소리,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봄이는 다리에 이어 잇몸마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소년의 말한 것들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속에서 딱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어렴풋이 들렸던 자신을 부르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다 나락에 빠진 그녀의 무의식이 구현해낸 허상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라기엔 그녀에게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녀를 홀리게 해서 그녀 자신도 모르게 터널 구석으로 이끌려 갈 만큼 감미로웠고, 또 온화하고 따뜻했다. 봄이는 소년에게서 들은 그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자신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봄이는 권총을 들어 소년을 겨눴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봄이의 눈앞에 보이는 소년 역시 그녀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 잘 생각했어. 전부 없애버려. 눈앞에서 전부 불태워버려. 마음 속에서 끝없이 불어나는 악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깨끗이 지워버려. 이미 지나쳐버린 잊혀진 추억 따위는 쓸데없이 쌓여 있는 응어리일 뿐이고, 그런 불필요한 감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만 될 뿐이잖아, 그렇지?”

 

  봄이에게는 소년이 말한 마지막 문장이 어딘가 낯익게 들렸다. 누가 했었던 말이었지?

 

  “씨발....... 그럼 이것도, 그 목소리도, 내 눈앞에 또렷하게 보이는 너도...... 전부 다 아무 의미도 없는 텅 빈 허상이라는 뜻이야?”

 

  봄이는 절규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봄이는 총성이 들릴 때마다 그녀를 방해하는 장해물들이 모두 깨끗이 정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허구의 소년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이 껍데기와도 같은 허상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를 괴롭히면서 길게 이어져오던 트라우마 역시 사라질 것이다. 봄이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리볼버의 공이가 움직였다. 실린더가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봄이가 들고 있던 회중전등이 다시 켜졌다.

 

  “봄아, 그만둬!”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봄이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다른 차원으로 느껴졌다. 절망감에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는 원래대로 돌아왔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떨리던 팔과 다리는 그랬던 적이 없다는 듯 떨림을 멈추었다.

 

  순간 봄이는 자신의 턱을 세게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의 힘에 의해 어느새 봄이는 선로 바닥에 밀쳐져 넘어졌고, 그녀를 덮친 상훈이 봄이의 권총을 쥔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진정해! 나야.”

 

  상훈이 봄이의 위에 올라타 뺨을 때렸다. 그때서야 봄이의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방금 전, 상훈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동안 봄이는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상훈을 밀쳐냈다. 상훈은 아직도 총에 겨누어진 후유증이 잊혀지지 않는지 봄이와 떨어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놀란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봄이는 힘겹게 일어섰다. 자신의 얼얼한 뺨을 붙잡고는 말했다.

 

  “.........저, 미안해요.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도대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상훈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목젖 떨리는 소리가 봄이에게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기라도 한 게 다행일 테지. 어서 일어나. 더 이상 여기 있다간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아.”

 

  봄이는 말없이 수긍했다. 그들은 출구를 향해 달렸다. 이윽고 끝이 없는 것 같았던 깊고 깊은 터널을 비추는 지평선의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빛을 향해 달려나갔다.

 

  터널을 달려 나오는 동안 봄이는 그 어떠한 감정의 동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방금 막 터널을 빠져나와 가쁜 숨을 고르고 있던 봄이는 단 몇 초 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모두 다른 차원에서 벌어졌던 일처럼 느껴졌다. 봄이는 평행세계라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 봄이가 밟고 서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또 다른 자신을 그대로 지켜보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마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봄이의 머릿속을 고통스럽게 조이는 계기가 되었던 그 사건 이후 잘 기억나지 않던 기억들이 소년을 보고 나서야 가물가물하게나마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봄이에게는 터널 속의 그 소년이 자신의 자아가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 망각의 조각이었는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냉혹하고 무자비한 현실의 일부분이었는지는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45 45화 2019 / 11 / 3 15 0 4380   
44 44화 2019 / 11 / 3 13 0 6227   
43 43화 2019 / 11 / 3 15 0 6086   
42 42화 2019 / 11 / 3 9 0 5921   
41 41화 2019 / 11 / 3 22 0 6323   
40 40화 2019 / 11 / 3 19 0 6295   
39 6.기회 2019 / 11 / 3 14 0 5776   
38 38화 2019 / 11 / 2 9 0 5430   
37 37화 2019 / 11 / 2 10 0 7786   
36 36화 2019 / 11 / 2 14 0 7270   
35 35화 2019 / 11 / 2 18 0 7086   
34 34화 2019 / 11 / 2 13 0 3804   
33 33화 2019 / 11 / 2 14 0 4747   
32 32화 2019 / 11 / 2 16 0 8655   
31 5.운명의 길 2019 / 11 / 2 12 0 3763   
30 30화 2019 / 11 / 2 12 0 3959   
29 29화 2019 / 11 / 2 17 0 6780   
28 28화 2019 / 11 / 2 17 0 5454   
27 27화 2019 / 11 / 2 18 0 5514   
26 26화 2019 / 11 / 2 11 0 8282   
25 25화 2019 / 11 / 2 9 0 4085   
24 24화 2019 / 11 / 2 10 0 4192   
23 4.뒤틀린 희망 2019 / 11 / 2 12 0 2929   
22 22화 2019 / 11 / 2 18 0 4228   
21 21화 2019 / 11 / 2 19 0 7601   
20 20화 2019 / 11 / 2 12 0 5300   
19 19화 2019 / 11 / 2 18 0 4850   
18 3.유령 도시 2019 / 11 / 2 12 0 5166   
17 17화 2019 / 10 / 27 17 0 2669   
16 16화 2019 / 10 / 26 14 0 7842   
 1  2  3  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