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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9화
작성일 : 19-11-02 18:52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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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거대한 건물의 양쪽 가장자리가 앞쪽으로 말려 있어 건물의 중앙 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 고급스럽고 세련된 건축미를 자아내고 있던 백화점은 주위에 큰 건물이 많았던 사거리에선 다른 얼음 건물들과 크게 비견될 만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건물 자체적인 높이만으로 보아서는 족히 10층은 되어 보였다.

 

  대공황 이전에는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아 최근 나온 신상 제품을 떵떵하게 광고했었을 백화점 중앙의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그저 고요한 정적 아래에서 새카만 암흑만을 송출하고 있었다. 조명이 덕지덕지 달린 채 기울어져 빨간 전선의 피복만을 훤히 드러낸 전광판은 옅은 한 줄기 스펙트럼조차 비추지 못했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아름답게 지어진 이 건축물의 최상층은 검은 새들의 휴식처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이따금씩 날갯짓을 하던 검은 새들이 벌떼처럼 줄줄이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하늘 아래 내려앉은 거대한 검은 둥지처럼 보였다.

 

  그들은 굳게 닫힌 백화점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면까지 내려와 있던 셔터의 왼편에는 수없이 많은 쇼핑 카트들이 그것들을 전부 다 둘러싸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방수 포대에 덮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백화점은 셔터가 내려와 있기는 했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지는 않았다. 벌써 누군가가 왔다 간 것 같았다. 상훈이 옆에 쇠 파이프와 함께 굴러다니던 빠루로 파손된 셔터를 힘껏 당겨 올리자 철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셔터가 말려 올라갔다.

 

  백화점은 이중 잠금 구조가 아니었다. 셔터가 열리자 김이 하얗게 서린 유리 자동문이 드러났다. 지금은 자동문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문틀을 수동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의 반대편에서 무엇인가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막아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들어가려면 문을 깨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상훈은 빠루로 시원하게 유리문을 내리쳐 깨뜨렸다.

 

  상훈이 먼저 백화점 내부로 처음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상훈의 발에 밟혀 까드득 소리를 냈다. 그가 회중전등으로 빛을 비추자 칠흑 같던 매장 내부가 어렴풋이 보였다. 회중전등을 이리저리 흔들어 비춘 다음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바깥에 서 있는 봄이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이거 카트는 못 끌고 들어오겠군. 아쉬운데.”

 

  “조금만 사면 되죠, 뭐.”

 

  봄이도 가방에서 회중전등을 꺼내들었다. 창문이 없어서인지 빛을 비추는 곳을 제외하고는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입을 벌린 거대한 괴수의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적은 사거리에 발을 딛을 때부터 찾아볼 수 없었지만 봄이는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봄이의 이런 무의식 속 공포가 그녀의 몸을 꽁꽁 묶어버리기라도 한 듯 좀처럼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상훈이 우물쭈물하는 봄이를 앞질러 걸어 나갔다. 사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봄이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봄이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어 그의 뒤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매장 내부는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물건들은 대부분 없어져 있었다. 경제 파탄으로 가게 문을 닫으면서 남아 있던 물건들을 창고로 수거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보다 한 발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모조리 가져간 것일까?

 

  봄이가 계산대 옆의 청색 트롤리를 비추자 구석에 모인 채로 웅크리고 있던 쥐들이 빠르게 흩어져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어렴풋이 보이는 식재료 코너임을 알리는 안내판 뒤편에서는 무언가 썩는 듯한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를 맡은 봄이는 밀봉 포장되지 않은 음식을 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썩고 있는 게 음식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멈추어 있었다. 그들은 삐걱거리는 발판을 밟으며 양쪽에 달려있는 핸드레일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조금은 봄이의 예상대로, 의류 매장이었던 2층에도 크게 쓸 만한 물건은 없었다. 신상 옷들은 전부 창고로 돌아가버렸고, 진열대에는 재고로도 쓰지 못한 것 같은 헌 옷들만 굴러다녔다. 사실 지금 그들에게는 반짝반짝 광이 나는 신상 옷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다. 상훈은 얼마 남아있지 않은 헌 옷들을 가방 속으로 주워담기 시작했다.

 

  “옷가지들은 왜 챙기는 거죠?”

 

  “몰라서 물어? 불 피우는 데에 쓸만하거든. 너도 조금은 챙겨놓는 게 좋을 거야. 이왕이면 면으로 된 걸로.”

 

  봄이는 지금까지 불을 피우는 데에는 휘발유나 장작만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봄이의 어리숙한 착각일 뿐이었다. 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훈을 따라 옷가지를 가방 속으로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겨 넣고 있는데 봄이는 자신의 뇌리에서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삼촌이랑 같이 백화점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 무슨 일로.”

 

  사람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기 힘들어진 지금 상훈은 봄이가 의미 없이 걸어오는 말들을 환영하는 듯했다. 봄이도 그와 대화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서로 무언가 말이라도 꺼내지 않는다면 잔인하게 얼어붙은 바깥 세상에 파묻혀 들려오지 않는 사람 목소리를 영영 듣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였을까?

 

  봄이는 상훈이 자신이 꺼낸 말에 흥미를 보이자 계속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에 가야 했는데 삼촌이랑 같이 살던 천안에는 그 때 당시에 중학교가 없었어요. 모두 문을 닫아버렸죠.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경기 불황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살던 곳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랑은 거리가 좀 멀었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서울로 내려와야 했는데, 삼촌이 마지막으로 중학교 입학 선물을 사준다면서 반강제로 데리고 왔어요.”

 

  “좋았겠네. 무슨 선물을 사주셨는데?”

 

  상훈이 여전히 시선을 헌 옷가지들에 고정시킨 채로 대답했다. 봄이는 옷가지들을 담던 손을 잠깐 멈추고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삼촌은 그때 뭘 그렇게 선물을 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돈이라도 많다면 모를까 당장 생계유지도 어려웠을 만큼 진짜 가난했는데. 삼촌이 당시에 하려고 했던 일이 잘 안 됐었거든요. 제가 괜찮다고 마다했는데도 기어코 백화점으로 끌고 갔었죠.”

 

  “뭘 사주셨는데 그래?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데.”

 

  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대단한 걸 사 주셨겠어요? 그냥 몇 만원 하는 싸구려 잠바였어요. 분홍색에 모자가 달린 촌티 나는 잠바요.”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거?”

 

  봄이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답답하다는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요즘 누가 이런 걸 입어요. 촌스러운 분홍색에다, 돈도 없으면서 뭘 굳이.......”

 

  그러나 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녀의 눈을 따갑게 비췄다. 봄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집(‘자신의’ 집은 아니었지만-) 문 앞에서 당했던 갑작스런 습격이 떠올랐다. 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생긴 단 한순간의 현기증에 의해 봄이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들은 놀라 눈을 반쯤 가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불빛은 한 개가 아니었다. 족히 세 개는 되어 보이는 노란 회중전등 불빛이 봄이의 몸을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봄이가 오른손을 반사적으로 치마폭으로 옮기자 상훈이 그녀의 팔을 가로막았다.

 

  곧 낯선 남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허한 매장 내부를 울렸다.

 

  “너희들은 뭐야, 어디에서 들어온 거야?”

 

  봄이는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눈부신 빛 때문에 그의 눈을 쳐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눈을 찡그린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엔 아까의 목소리하고는 사뭇 다른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것 좀 봐, 여자애도 있어.”

 

  “아까 깨지는 소리는 저 놈들 짓이었어!”

 

  동시에 다른 남성의 목소리도 울렸다. 봄이가 욕이라도 한 번 해주려는 순간 상훈이 그녀를 가로막고 나서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우린 그저 떠돌던 장사꾼일 뿐이다. 당신들에게 피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상훈의 말에 낯선 남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장사꾼이라고? 뭘 파는 거지? 그 여자애라도 파는 건가?”

 

  “그 주둥아리 안 닥쳐?”

 

  봄이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화를 쏟아냈다.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놈들 중 하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건방진 년이.......”

 

  잘 보이지 않던 남성이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오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귀를 울릴 만큼의 큰 목소리와는 달리 체구가 작았다. 손에는 빠루를 들고 있었고, 손질하지 못한 머리는 눈을 가릴 정도로 길었다. 그의 짧은 다리가 봄이에게로 몇 발자국 다가오자 상훈이 다시 말했다.

 

  “진정해. 우린 그저 물자를 구하러 왔을 뿐이다. 필요한 만큼만 챙겨서 금방 나갈 테니 괜히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무슨 헛소리야? 여기는 우리 영역이야. 죽여버리기 전에 지금 당장 짐 다 내려놓고 썩 꺼져버려.”

 

  “참, 이왕 이렇게 만난 김에 길 좀 물어보지.”

 

  “형씨,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봄이가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세 놈이 저마다 제각각의 무기를 손에 든 채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봄이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이번 마찰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시작될 것처럼 그들을 죄어오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서 감돌았다. 봄이는 치마폭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눈치를 보던 도중 체구가 작은 말라깽이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이봐, 장사꾼이라면 노예 거래도 하겠군? 섭섭지 않게 쳐줄 테니까 그 꼬마를 우리 쪽으로 넘기는 건 어때?”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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