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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30화
작성일 : 19-11-02 19:03     조회 : 11     추천 : 0     분량 : 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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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할 일을 마친 정씨가 절뚝거리며 그들에게로 돌아왔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버렸고, 상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씨가 다가와 둘의 반응을 살피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얼굴인데....... 그 여자는 이미 눈이 뒤집혔었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눈빛이었지. 그대로 놔뒀으면 나는 물론이고 당신들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단 말이오. 저 아기도 마찬가지요. 이미 그 녀석은 살아있는 병균이나 다름없었소. 괜히 살려뒀다가 까마귀나 들개한테 병을 옮기기라도 하면, 그리고 녀석들이 세상을 활개치고 다니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우리란 말이오. 막을 수 있는 사태는 예방하는 게 이치이고 도리지. 그러니까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시오.”

 

  정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리려다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다시 되돌아왔다.

 

  “그렇지, 참.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그가 상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둘의 간격이 너무나도 가까워서, 봄이는 그들이 포옹이라도 하려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어째서 저렇게 상훈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까?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봄이가 외쳤다.

 

  “아저씨, 저 사람한테서 떨어져요!”

 

 * * *

 

  봄이의 간절한 외침은 허공에 있던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봄이가 상훈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정씨는 칼로 상훈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미친 사람처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상훈의 팔다리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난자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고, 하얀 눈밭에는 붉고 깨끗한 핏방울이 스며들었다.

 

  상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가까스로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피묻은 칼을 마주 잡고 안간힘을 쓰던 그들이 휘청거렸다. 이윽고 상훈의 등은 근처 담벼락에 몰려 부딪혀버렸다.

 

  그 믿기지 않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쳐다보고 있던 봄이의 심장이 바깥으로 터져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지금껏 자신의 충고를 흘려듣고,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기까지 했던 상훈에 대한 미움마저 모두 잊은 채로 봄이는 재빠르게 권총을 빼들고 소리쳤다.

 

  “그에게서 떨어져!”

 

  권총을 뽑아들기는 했지만 봄이는 선뜻 방아쇠를 당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봄이의 손과 두 다리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무서울 정도로 그녀의 머릿속을 조여들었다. 하지만 주저하는 이유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총의 가늠쇠는 목표와 겹쳐지기 힘들 만큼 어긋나 있었다. 동시에 이 정도의 혼란감에 짓눌린 채로 사격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숨이 가빠졌다. 이마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손가락은 더 이상 그녀의 통제를 거부하기라도 하듯 움직이지 않았다. 미칠 듯이 머릿속을 무겁게 짓누르는 혼란 속에서도 매정한 공기의 흐름은 단 1초의 시간조차도 멈춰 주지 않았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에 이끌린 것이었을까? 봄이는 권총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먹잇감의 운명을 서서히 옥죄고 있던 맹수를 향해 온 몸으로 달려들었다. 봄이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온 몸의 체중을 실어 뛰어들자 둘은 함께 눈길 한복판에 꼴사납게 엎어져 굴렀다. 맹수의 손아귀에서 피묻은 칼이 떨어져나갔고, 튕겨져나간 칼은 훨씬 먼 곳에 쇳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봄이는 온 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중심을 잃고 넘어진 맹수의 위에 올라타 그의 얼굴을 힘껏 주먹으로 후려쳤다.

 

  봄이의 고사리 같은 주먹이 한 번 더 치켜올려졌을 때, 봄이는 아래에서 뻗어나온 팔에 의해 멱살째로 잡혀 머리 위로 넘겨졌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봄이는 흙탕물이 흥건한 바닥에서 몇 번이고 굴렀다. 속옷 속에까지 미칠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스며들어왔다. 혈관 마디 속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정씨가 일어나 쓰러진 봄이에게 다가왔다. 봄이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 그가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봄이의 얼굴을 가차없이 발로 걷어찼다. 뇌속까지 전해져오는 엄청난 충격에 봄이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는 힘없이 나동그라진 봄이에게서 시선을 치우고 하수구 옆에 떨어져 있던 피묻은 칼을 주워들었다. 그가 상훈에게로 눈을 돌렸을 때는 이미 상훈이 그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당신, 움직이지 마.”

 

  그는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손에 든 피묻은 칼을 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훈은 칼에 찔려 피가 흐르는 허벅지와 팔을 움켜잡고 신음을 흘렸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어딘가 안타깝다는 듯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

 

  “........꼭 이런 방법밖에는 없었던 건가?”

 

  “이런 방법이라니? 가당치도 않군. 당신은 그 아기와 접촉했고, 이미 감염되었을 그 여자하고도 지금껏 늘 붙어다녔지 않소. 이미 당신 몸속에는 흑사병이 자라고 있을 거요. 이제 그 몸뚱아리가 얼마나 갈 것 같소? 일주일? 하루? 한 시간?”

 

  “꼭 이렇게 해야만 했냐고 묻고 있잖아!”

 

  그렇게 소리치는 상훈의 눈동자는 확고했다. 정씨는 그의 눈빛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간이란 참 짓궂은 동물이오. 그렇지 않소?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뭉치고, 뭉친 이유인 그 같은 목표 때문에 배신하지요. 이제는 당신도 깨닫지 않았소?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배신은 고작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오. 어서 쏘시오. 뭘 망설이시오? 당신 몸은 흑사병이 반쯤 집어삼켰소. 아직까지는 걸을 수 있는 것 같다만, 그게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동물과 같은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말이오. 지금 세상에서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집어삼키며 살아가는 것처럼, 당신의 생존을 위해 내 머리를 쏴버리란 말이오. 생태계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껏 늘 그래왔듯이.......”

 

  “그 주둥아리 닥치고 빨리 그 칼 내려놔!”

 

  “난 이미 죽은 사람이오. 아끼던 모든 것을, 지켜야 했던 모든 것을 잃고 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고들 하지. 친구들이 흑사병으로 인해 죽는 끔찍한 고통을 눈앞에서 겪고 난 사람이,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이 더 이상 무엇이 두려울 것 같소? 어서 쏘시오. 내가 제정신으로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지금 날 쏘지 않는다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요.”

 

  상훈은 말없이 총구를 더 세게 치켜들 뿐이었다. 정씨가 말했다.

 

  “당신에게도 죽음의 모래시계는 이미 엎어졌소. 여자와 아기의 피가 묻은 칼로 인해 상처가 났으니 말이오. 더 늦기 전에 어서 통제소를 찾아가시오. 당신이라면....... 지금이라면 치료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감염자는 전부 죽어야만 해.”

 

  그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번개처럼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높이 치켜들어 던지려 했다. 그가 칼을 던지기 위해 팔을 뒤로 젖힘과 함께, 온 도시를 울릴 정도로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 굉음이 건물에 부딪혀 메아리쳐 돌아오자,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정씨가 배를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똑같이 엎어져 발작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상훈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떨어뜨리고 피범벅이 된 팔다리를 감싸쥐고 절규했다. 정신을 차린 봄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몇 분 동안이나 주저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연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죽었다. 상훈은 낙담한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인 봄이는 그것까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정류장으로 향했다.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피범벅이 된 포대를 살피던 그는 갑자기 턱을 움찔거리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의 표정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넋을 놓아버리고 만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두잖아.”

 

 

 

 

  < 뒤틀린 희망 > 마침.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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