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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만이 널 가질 수 있다
작가 : Lido
작품등록일 : 2017.11.6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앞으로 나의 운명은?

 
5화
작성일 : 17-11-08 18:09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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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문상을 하는 동안 강 여운의 인기를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상주에게 인사를 하는 강 여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환자께 잘해줬길래 상갓집에 들어서자 아드님이고 며느님이고 다들 강 여운 주위로 몰려든다. 다정하게 그들과 안부인사를 주고 받는 강 여운을 보며 평소 그의 성격과 맞지 않는 행동에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강 선생님이랑 공 선생님. 두 분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

 

 

 딸이라고 하는, 하지만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그 분은 내 손을 잡고 우리 둘을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았을 것이 뻔한 그녀의 눈가는 여전히 촉촉했다. 그래도 손님이랍시고 상까지 안내해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냥 가려던 내 발걸음은 그녀덕분에 다른 길로 새어버렸다.

 

 

 "저는 뭐 한 것이 없습니다만.. 힘내세요."

 

 

 안타까워하는 말투.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에게도 저런 따듯한 말이 나오다니. 아니 그럴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는가. 신기했다. 하지만 내 손에 그녀의 온기가 전해지자 나 또한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한마디 건넸다.

 

 

 "힘내세요."

 

 "네, 선생님."

 

 

 그녀의 수척해진 얼굴과 말라 갈라져버린 손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의 상주라면 이런 모습이 당연한 것일까. 나는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던 차였기에 그녀의 행동에 더욱 눈이 갔다. 오늘만해도 할아버지를 보낼 때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내 자신이 또 얼마나 싫던지.

 

 

 "많이 드시고 가세요."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치고 그녀는 다시 상주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와 강 여운은 마주앉은 상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멀뚱히 쳐다보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나 혼자 그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이 먼저 편육을 한 점 집어 들고 먹었다. 여전히 물만 마시며 속을 달래는 나를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안먹어?"

 

 "나 가볼려고. 시간도 늦고 그러네."

 

 "그래 가봐 그럼."

 

 

 먼저 가는게 미안할 따름이지만 같이 자리하고 싶지는 않다. 먹다보면 시간이 늦어질테고 녀석을 데려다주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더욱 싫었다. 오는 동안에도 힘들어 마음만 불편해 자꾸 딴 생각만 가졌던 참이다.

 

 내가 자리를 일어선 뒤 한명씩 강 여운의 자리로 가 술잔을 따라주는걸 보았다. 빼지도 않고 담담히 받아 먹는 그는 내 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항상 나를 쳐다보던 시선이 사라진 이 느낌은. 좋아해야하는데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상한 괴리감.

 

 

 "내일 점심때 내 방에 와. 환자 정해야지."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전한 녀석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녀석은 나를 그저 직장동료로, 친구로 대하고 있었다. 가끔 왜곡해서 들리는 말만 제외하고는 나를 괴롭히는 어느 무엇도 행하고 있지 않았다. 나 혼자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도저도 아닌 이 어중간한 마음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착잡한 마음이 심장을 자꾸 무겁게 했다.

 

 나는 가끔가다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감정을 느낀다. 그때를 회자 할때마다 지금 느끼는 행복이 수천배 이상 만족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암흑같이 어두웠던 그 기억은 동시에 우울증도 동반되었다.

 

 내게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내니 겨우 다섯 손가락 안에 들까말까다. 어렸을 때부터 불우했던 가정환경이나 가난은 내게 걸림돌일 뿐이었다. 폭력성이 다분했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였고, 모두가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휘둘리는 폭력을 맞으며 한 지붕 아래에서 십 몇 년을 같이 지냈다. 물론 이 사실을 동네사람들도 알았지만 나를 지켜주는 이는 없었다. 엄마조차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원망하고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초라해서 눈물이 한 두 방울은 흘렸지만 그것마저 나는 허용치 않았다. 울면 지는거다라는 하나의 문구는 내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곳에 벗어나 주겠다라고. 그때가 내 나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는 간경화라는 병을 진단받았고 투박했던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져갔다. 간혹 통증이 올 때마다 그는 방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식은땀을 한바가지 쏟아냈지만 여전히 술병을 손에 놓지 않았다. 미련한 사람이었다. 수전증까지 달고 살게 된 그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기도 전에 운명을 다했다. 2학년인 내 남동생도 두고. 하지만 나는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이도 몇 명 없다 들었다.

 

 그래서일까. 상주의 자리에 있던 그들에게 자꾸 눈인 간 이유는? 내가 눈물이 메마른 이유는?

 

 

 "누나."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에, 그냥."

 

 "집에 들어왔으면 먼저 씻어. 이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뜨듯한 방바닥이 좋아 누워있던 나는 꼼지락거리며 늦장 부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느껴지는 포근함에 온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얼른 씻으라는 동생 녀석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누나는 피곤해."

 

 "뭐가 피곤해? 내가 더 피곤하다."

 

 

 몸을 축 늘어뜨리며 우는 표정을 짓자 녀석이 부엌에 들어서며 괜히 퉁명스레 대답했다. 까칠한 녀석, 그러면서도 밥 차려준다고 부엌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역시 동생이긴 한가보다. 나 생각해주는 이가 너 말고 누가 있겠니.

 

 

 "지헌아 저녁 안먹을래 나."

 

 "밥 먹고 왔어?"

 

 "밥맛이 없네."

 

 "좀 먹고 살아라."

 

 

 나를 다그치는 동생 녀석을 쳐다보며 김 태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살갑게 대해주진 못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보살폈다. 벌써 보고싶은건가. 좀 더 자리를 지키고 올 걸이란 생각이 들던 찰나에 동생 녀석이 내 옆구리를 발로 쿡쿡 눌렀다.

 

 

 "씻어 좀."

 

 "알겠어."

 

 

 칭얼거리자 더욱 거칠게 내 배를 발로 지그시 눌러준다. 한 살 터울인 녀석은 내게 오빠나 다름없다. 다들 주위에서 연년생이면 말 놓고 대들지 않냐 물어보지만 전혀 그런 것 따윈 없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이유일까. 동생은 어렸을적부터 애교도 투정조차도 부리지 않았다.

 

 

 "누나."

 

 "응?"

 

 "...나 그 자식 봤어."

 

 

 동생 녀석이 한참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머뭇거렸다. 씻으라고 다그칠때는 언제고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사건이 터진 것처럼 동생녀석의 얼굴이 매우 일그러진 표정. 좋지 않은 말투와 녀석의 어두운 표정에 내 모든 신경들이 동생에게 갔다.

 

 

 "그 자식?"

 

 "..."

 

 

 막상 본론에 들어가려하니 다시 입을 다문다. 동생 지헌이는 시계를 쳐다보며 시선을 회피했다. 괜한 말을 꺼낸 사람처럼 한숨도 내쉰다. 도대체 뭐야. 뭐길래 내 눈치를 살피는거야.

 

 

 "아니다. 누나 쉬어."

 

 "뭔데 그래. 그 자식이 도대체 누군데. 응?"

 

 

 나와 지헌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그 자식이라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곰곰이 인물을 끄집어내면서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심적 불안증세를 느끼는 사람마냥 안달나 있었다.

 

 

 "그냥 내말 넘어가."

 

 

 사람 궁금하게 화젯거리를 던져놓고선 자리를 피하려한다. 쌩해 보이는 말투가 꼭 나 건드리지 말라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럴 시간을 두지 않는다.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내려 끌었다.

 

 

 "뭔데, 말해."

 

 "그게... 아씨. 내 입이 방정이지."

 

 "뭔데?"

 

 "나 그 개자식 만났어, 이 동네에서."

 

 "개자식이라니."

 

 "그게 말이야.."

 

 

 또 뜸을 들인다. 이제 네 얘기 들으려고 기다리는 것도 지겹다. 더러워서 피한다는 얘기처럼 동생 녀석의 시덥잖은 이야기에 신경 끌 찰나 동생 녀석이 내 눈을 직시하며 쳐다보았다. 그 순간 녀석의 입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차 명환. 그 개새끼 만났어."

 

 

 아, 이럴 수가. 요즘 내 인생이 꼬이려나보다. 강 여운도 모자라 차 명환이라니.

 

 

 "우리 동네에서? 언제."

 

 "꽤 됐어. 일주일 더 됐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왜 알려 주는건데. 말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는지 동생 녀석의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혼자 끙끙대며 말도 못하고 숨긴거야. 홀로 마음고생 했을 동생 녀석이 안쓰러워보였다. 네가 왜 걱정해. 나랑 관련된 애일뿐인데.

 

 

 

 "널 봤어?"

 

 "그 새낀 내 얼굴 몰라."

 

 

 찢어진 동생의 눈매가 더욱 살벌했다.

 

 

 "근데 왜 그걸 지금 말하는데..?"

 

 

 이유 없이 말할 녀석이 아니다. 차 명환이라면 수십 번을 생각하고 또 고민해서 꺼낸 말이겠지.

 

 

 "어제도 보았으니깐."

 

 

 쿵-

 

 

 "볼일이 있었겠지."

 

 "이 동네에서?"

 

 

 그냥 넘어가려하는데 걸고넘어지는 눈치 없는 동생 놈이다. 점점 더 날 불안하게 하지마. 내 낯빛이 좋지 않은 걸 어렴풋이 느꼈는지 지헌이는 입을 다물었다. 뭐지. 왜 이 동네에 있지? 재개발 때문에 유명한 음식점도, 상가도 아무 것도 없는 빈 집만이 즐비한 이곳에 과연 볼일이 있었을까. 열심히 돈을 마련하고 모으고 있는 상태였다. 별 볼일 없는 구닥다리 동네에서 사람 살만한 동네로 옮기려고 노력중이었다.

 

 지헌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도 안다.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마주칠까봐 그러는 거겠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차 명환의 이름을 들어봤자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뭐, 괜찮아. 나 강 여운도 만났는걸."

 

 "뭐?!'"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사색을 띠우며 놀랜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의 암묵적인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등학교와 관련된 그 모든 단어들과 이름들은. 괴롭힘을 당한 6개월이 6년 같았거든.

 

 

 "강 여운이랑 만났다고."

 

 "이런 씨, 대체 어디서?!"

 

 

 씩씩 거리는 녀석의 숨이 매우 고르지 못하다. 괜찮아. 그렇게까지 막 되먹은 애가 아닌걸 뭐. 신경 쓰지 않는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어디긴. 하여튼. 근데 달라졌더라.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도대체 어디서 만난거야? 그 새끼가 누나보고 뭐래. 또 누나 건드린거 아니지!"

 

 "안 건드렸어. 어떻게 날 건들이겠어.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래도!"

 

 

 이를 갈듯이 으르렁댄다. 걱정은 되나보다. 나이 30살 먹고 동생한테 보살핌을 받는 격이라니. 나대신 화를 토해내며 내 마음을 달래 주려하는 녀석의 모습이 겹쳐보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괜한 얘기를 꺼낸 건가 싶어서.

 

 

 "걱정 마.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으니깐. 길거리에서 한번 부딪쳤을 뿐이야. 연락처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정말이지?"

 

 "어, 동생. 사실이야."

 

 

 고개를 수십 번 끄덕여서야 믿는 눈치다. 거짓말로 속였다고 양심에 찔리진 않는다. 다른 이야기면 몰라도 이런 이야기라서 그런가.

 

 

 "다음번에 만나면 전화 해. 꼭."

 

 "응. 물론."

 

 "진짜다. 혼자서 해결하지 말고."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이 동생에게는 과연 어떻게 다가갔을까. 나는 졸업을 하고난 뒤에서야 동생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만이 피해자가 아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동생 또한 피해자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주눅들지 않고 친구에게 덤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놓였던지. 넌 고등학교 어떻게 지냈어? 그 말은 암묵적인 금기어였다 그것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될까봐.

 

 

 "정말이야, 누나. 말해야 된다."

 

 "알겠다니 깐."

 

 

 웃지만 웃는 게 아닌 기분. 나는 절대 동생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비출 수 없었다. 강 여운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 들어왔다는 얘기는 절대 내 입으로 못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아니 동생에게 걸리기 전까지 말이다.

 

 

 

 **

 

 

 

 

 오후 1시 30분. 점심은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끝내고 5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강 여운과 만나기로 했던 참이어서 몸과 마음이 정신없었다. 엘리베이터서부터 녀석의 방까지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오갔는지 모른다. 어제 지헌에게 들은 차 명환의 이야기가 자꾸 신경 쓰였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강 여운과 서로 연락이 닿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자꾸 긴장이 됐다. 먼저 얘기를 꺼내봐야 하나. 겨우 문을 열고 녀석을 대면하자 차 명환의 이야기는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상자가 쌓여있던 녀석의 개인 공간이 말끔했다. 다 정리했는지 이제야 집무실 같다.

 

 

 "뭐야?"

 

 "..응?"

 

 "왜 멍 때려."

 

 

 멍 때리고 있었나. 강 여운의 뒤편에 있던 간이침대와 벽을 쳐다보다가 정신을 팔았나보다. 괜히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아닌 척 했다. 하지만 벽에 걸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자꾸 눈이 갔다. 차 명환. 차 명환. 그 녀석은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할까. 차라리 그 녀석은 접어둘까.

 

 

 "정신 차리고 봐봐. 누구로 정할지 아직 결정도 못했잖아."

 

 "응."

 

 

 그가 보여준 서류철에는 각 환자의 프로파일이 적혀있었다.

 

 

 "네가 담당하는 환자에서 골라봐."

 

 "그래도 될까?"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재활치료의 중점은 네 분야가 더 가까우니깐."

 

 

 흐음. 슬며시 프로파일을 집어 들며 이 환자 저 환자 살펴보았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가 총 30명은 되니, 그 중에서 누굴 뽑는 것이 가장 나을까 싶었다. 제대로 성과를 내고 싶은 만큼 고민은 커졌다. 어떤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안성맞춤일까 고르고 있는데 녀석이 조언해준다.

 

 

 "웬만하면 집에서 통원 치료받는 환자 빼고 병원치료 받는 환자에서 고르는 게 낫겠어."

 

 "그런가?"

 

 

 강 여운과의 이런 대화를 나눌 날이 올 것이란 생각을 했겠는가. 나쁘지만은 아닌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분 또한 아니었다. 겨우 이런 걸로 녀석의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꾸 녀석에게 기대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라졌을 거란 그 막연한 기대감이 자꾸 날 약하게 만들었다.

 

 

 "얼른 고르지. 시간 잡아먹겠어."

 

 "으응."

 

 

 당당히 맞서고자 해도 아직 주눅이 든다. 재촉하는 듯 녀석의 말투에 손놀림이 빨라졌다. 기라면 기었고 하라면 했던 그 옛날의 나는 이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건 아니었나보다. 매일 하루를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나는 녀석의 말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그는 내가 얼마나 재밌을까. 지금도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짓는 녀석을 보니 섬뜩섬뜩했다.

 

 

 "재밌다 너."

 

 "응?"

 

 "그대로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세 살 버릇 못 고친다는 게 사실이었나. 녀석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더니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턱을 괴고 서류를 넘기는 그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는지 두 눈이 마주쳤다.

 

 

 "뭐..뭐가."

 

 

 또 재발하고 만다. 이 빌어먹을 소심함은. 눈 마주쳤다고 고개를 푹 숙이는 나를 낄낄 거리며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강 여운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웃음소리보다 먼저 다가온 건 녀석의 손이였다. 고개를 숙인 내 눈 앞으로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얼굴 들어."

 

 

 녀석의 나지막한 소리에 다시 번쩍 고개를 든다. 내 모습이 우습겠지. 별 희한한 자학이 빛의 속도로 내 맘속에 오고갔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자꾸 몸은 녀석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계속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는지 녀석의 시선이 아직도 내게 머물러 있었다.

 

 어쩌다 마주친 강 여운과 부딪친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 계속 서로를 바라보니 느낌이 기이하고도 괴상했다. 뭐지. 별거 아니잖아.

 

 괴롭힘을 당할 적에는 얼굴을 부딪치지 못했다. 가끔 용기를 가지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지만 뒷감당이 두려워 고개를 수그렸다. 아니면 긴 앞머리로 눈을 가려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도록 했다. 그게 내가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그나마 심적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니. 하지만 1초가 1분 같고 10초가 한 시간인 것 같다.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눈싸움을 나눈 것 같은 이 기묘한 상황을 무마하려 말을 꺼냈다.

 

 

 "누굴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분 어때."

 

 

 한 템포 느린 박자. 그가 밀어준 서류를 살피니 내가 맡고 있는 단기 기억장애 환자였다.

 

 

 "어때서?"

 

 "일단, 병원에서 지내시고, 꾸준히 성과를 보인 환자잖아. 이런 환자의 경우 치료 가능성이 훨씬 높지."

 

 "그래도 요즘은 더뎌."

 

 "침체기일 수 있지. 뇌장애로 일어난 기억상실이라. 흥미로워."

 

 "그런가?"

 

 

 관심이 있다고 의사표시를 한다. 어차피 어영부영하고 있던 참 녀석이 원하는 환자를 고르는 게 더 낫다 싶었다.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나 또한 그 환자로 정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최근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 내가 흡족해하는 결과를 끌어낸 장본인이었다.

 

 

 "아니면 말고."

 

 "아니야! 괜찮을 것 같아. 좋아."

 

 "그럼 이 분으로 정하지 그럼."

 

 

 강 여운과의 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고등학교 이야기는 물론 내 사생활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대해준다고 할까나.

 

 

 "그런데 있잖아..."

 

 "...?"

 

 

 말할 생각은 있었지만 입이 떼어지지 않아 못했던 걸 밝히려했다. 책상 위에 어질러 놓았던 서류를 정리하던 강 여운의 손이 멈췄다. 차 명환 이야기를 꺼내볼까 싶었다. 강 여운도 이런 모습인데 차 명환이라고 안 달라질 이유가 있나. 녀석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해야할까. 하지만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뭐야?"

 

 

 불러놓고 입을 다물자 먼저 물어본다. 얘기할 수가 없어, 막상. 차 명환이란 이름을 꺼내드는 순간 일으킬 파장이 작지만은 아닐 것 같아서. 고등학교의 기억을 녀석에게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게 처절하고 힘들었던 기억이거든.

 

 

 "아니야."

 

 "싱겁긴."

 

 

 이야기를 가슴속에, 깊숙한 곳에 집어넣는다. 다시 서류를 정리하는 녀석의 손길이 바빴다. 끔뻑끔뻑.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차 명환. 강 여운은 과연 그와 연락할까. 연락한다 해도 차 명환이 우리 동네에 돌아다니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나와 관련될 거란 생각은 나 혼자만의 피해망상일 뿐인가. 10년이 지난 지금 무슨 일이 생기겠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흘렀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설마... 설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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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2017 / 11 / 6 262 0 5405   
2 2화 2017 / 11 / 6 259 0 7151   
1 1화 2017 / 11 / 6 425 0 6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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