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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만이 널 가질 수 있다
작가 : Lido
작품등록일 : 2017.11.6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앞으로 나의 운명은?

 
3화
작성일 : 17-11-06 22:53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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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3

 

 "너, 미쳤냐? 오늘 1교시라며."

 

 

 차 명환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것이 사전이라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았다. 강 여운의 책상 위에는 가방과 교과서뿐이 놓여있을 뿐이다. 커다란 낡은 내 사전이 보이지 않자,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사전이 쓰레기통에 주워온 것 같긴 했지? 킥"

 

 

 조롱 섞인 차 명환의 말에 강 여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을 바라봤다. 사전이 얼마나 중요데. 그 것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순간 몸이 먼저 나갔다. 녀석에게 달려갔다.

 

 

 "뭐야!"

 

 

 이건 아니잖아. 그래도 강 여운 저 녀석은 내 물건을 함부로 버린 적은 없었다. 이럴수가. 뒷통수 맞은 기분이다. 반 아이들은 버럭 소리 지른 나를 일제히 쳐다보았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할게 뻔했다. 또 괴롭힘 당하나보지 라고. 사춘기 소녀도 아니었고, 이미 받을대로 받아본 시선이잖아. 나는 아직도 창문 밖으로 뻗은 녀석의 손을 잡았다. 없다. 없었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3층 건물에서 떨어진 그 사전은 진흙탕에 떨어져있었다. 어젯밤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고인 물에 처참히 뭉게져있는 사전이 보였다.

 

 

 "네가 뭔데 왜 떨어뜨려!"

 

 "왜. 더럽잖아."

 

 

 이 녀석은 도덕이라고는 모르는건가. 일말의 양심이라곤 없는 인간인가. 천천히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녀석의 말투에는 감정하나 실려있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맑은 눈동자로 내 눈을 직시했다. 교감. 눈빛으로 나는 녀석과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러워? 나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사전이라고. 곧장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몸을 돌렸다. 1교시 수업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대로 진흙탕에 놨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 여운은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건지 내 손목을 붙들었다.

 

 

 "뭘 가져가. 내꺼 줄게."

 

 "뭐?"

 

 "내꺼 준다고. 저거 냄새 나."

 

 

 냄새? 그건 10년이나 오랫동안 써서 묵은 세월의 냄새라고. 너 같은 자식은 저런 걸 느낄리 없겠지. 부잣집 도련님이 뭘 알겠어. 뭐든 새책이라면 안달나게 갖고 싶겠지.

 

 무시했다. 녀석을 쓰레기 취급하듯 내 팔을 붙잡은 손을 차갑게 뿌리쳤다.

 

 

 "필요 없어."

 

 "준다고 내가!"

 

 

 순식간이었다. 녀석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고 벽에 밀어붙인 건. 방심하고 있던 내 등이 그대로 사물함 열쇠 꼭지에 찍혔지만 아픔보다도 공포가 먼저 다가왔다. 웃는 얼굴이 꽤 귀여운 상이였지만 화가 났을 땐 소스라치게 서늘한 얼굴이었다. 실핏줄이 보이는 그의 눈동자 주위가 빨개지면서 녀석의 코끝이 붉어졌다. 화가 난건가. 몇 번 부딪히다보니 녀석의 기분을 얼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 이러지마. 넌 이럴 자격 없어."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시선은 피했다. 말을 쉽게 내뱉었지만 마음 깊이에서 주워 담을만한 책임은 회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게 쏘아붙일 그 눈빛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맞아. 너 같은 애는 저런 게 잘 어울리겠지."

 

 

 녀석이 창문을 힐긋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 대답할 필요도 없어 녀석을 밀치고 그대로 복도로 나섰다. 아래층까지 내려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비가 많이 오긴 했는지 시멘트가 깔려지지 않은 이곳은 질퍽질퍽한 진흙투성이였다. 여기저기 웅덩이에, 애들이 휴지통에 버리기 귀찮다고 창문 밖으로 버린 떡볶이 컵들과 우유 곽, 빵 포장지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씨."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진흙투성이인 웅덩이에 빠진 슬리퍼 때문에 양말이 젖어들었고, 겨우 꺼낸 사전을 들어보니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일단 그 것을 들고 화장실에서 닦아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손등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비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실비같은 가느다란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이 비는 다시 올려나보다. 눈은 저절로 3층 우리 반 창가로 갔다. 창가에 붙어서 구경하는 우리 반 아이들. 창가에 비스듬히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강 여운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뭐가 재미난 구경인지. 얼른 비를 피할 겸 그것을 들고 화장실로 곧장 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로 울만큼 내면이 약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를 보며 자란거에 비해선 작은 일과에 불구했다. 왕따? 따돌림? 구타만 하지 않는다면 참을만 했다. 하지만 떠나간 내 주위 친구들을 볼때만큼은 심적으로 힘들긴 했다.

 

 

 "키킥."

 

 "사전 좀 봐. 저걸 또 닦아가지고 왔나봐."

 

 "거지 거지 상거지인가 보다."

 

 "처절하다."

 

 

 반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업은 이미 시작했는지 영어선생님이 교단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물기가 떨어지는 사전에 시선이 멈췄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가난으로 시작한 내 열등감은 중학교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상처받고 있잖아.

 

 

 "쯧쯧.. 왜 이렇게 늦었어. 됐다. 앉아."

 

 "죄송합니다."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혼쭐 내려던 선생은 주변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선 입을 다물었다. 그도 어렴풋이 눈치챘겠지. 이 위화감을.

 

 

 "사전 가져오라고 했지? 꺼내봐."

 

 "네!!"

 

 

 영어선생이 꺼내라고 하자 하나둘씩 책상에서,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난 물끄러미 젖은 사전을 쳐다봤다. 젖은 사전을 어떻게 써야하나. 화장실에서 돌돌 말아온 휴지를 하나씩 뜯어 사전 사이에 하나씩 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배려해준건지 영어선생님은 몇 번 쓰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날이 문제였다.

 

 비가 그친 다음날이면 항상 꺼림칙한 일이 생겼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야자가 끝난 이 시각 9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한기가 서리며 등골이 오싹했다. 이유모를 일이였지만 그동안 깨우치고 단련되어버린 나의 초감각이 발휘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열, 너 짱이다? 너 무슨 동물감각있냐?"

 

 

 오늘 학교에서부터 내내 괴롭히던 녀석이다. 차 명환. 내 가방을 빼앗고 강 여운에게 받친 녀석이다. 그가 선봉으로 나오더니 그 뒤에 길쭉한 얼굴이였던 친구녀석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무섭다 얘."

 

 

 너네가 더 무서운거야. 누가 이런 밤중에 남의 뒤를 쫓아와.

 

 

 "무슨 일인데."

 

 

 두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 밤중까지 내 뒤를 쫓니.

 

 

 "너 그거 안 답답하냐?"

 

 "뭐가?"

 

 

 이번엔 뭘 태클 걸려고.

 

 

 "네 그 답답한 머리 말이야. 눈까지 푹 가린."

 

 

 비열하게 웃던 차 명환이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길쭉한 얼굴의 녀석이 그 뒤를 따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잘라주고 싶어서 말이지."

 

 

 사각- 소리가 들린다. 히죽거리며 웃는 녀석이 가위를 빼들어 보였다. 도대체 뭔 짓을 하려고.

 

 

 "싹둑싹둑 말이지?"

 

 

 길쭉한 녀석이 차 명환의 말을 받아쳤다. 일단 뒷걸음질을 치며 녀석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것이 막막해지자 스스로 이곳에 벗어날 궁리했다. 하지만 남자 2명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야! 도망치지마. 좋은 일 해주는거야. 얼마나 답답해 보이는 줄 알아? 머리라도 자름 몰라? 우리가 널 덜 괴롭힐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 니네들이 그런 걸로 멈출 애야? 하지만 나는 한방에 그 녀석들에게 훅 가버렸다. 길쭉한 얼굴의 녀석이 내 두 손목을 붙잡았다. 발버둥치기도 이미 끝났다. 햇빛에 마르지 않은 젖은 자갈길에 내 몸통이 그대로 자빠졌다. 히죽거리던 명환이 내 몸위에 올라탔다. 마치 손에 쥔 장난감처럼 흥미로운 시선으로 내 앞머리를 만졌다.

 

 

 "하지마, 하지말라고!"

 

 

 폐허에 문 닫은 가게는 이미 여럿. 흉흉한 소리 때문인지 내가 발악한 소리 때문인지 불 켜있던 주택마저 전등을 껐다.

 

 

 "어쩌냐. 네 편은 아무도 없어."

 

 

 번뜩이는 눈으로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듯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내 눈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가위를 보니 마음이 술렁거렸지만 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쁘게 잘라줄게."

 

 

 녀석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내 머리카락을 한 웅큼 잡았다. 녀석의 오른편에서 지켜보던 길쭉한 녀석도 헤헤거리며 구경했다.

 

 

 "하지말라고, 대체 왜그래."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헤냈다. 이런 식의 수모를 당할 줄이야. 밤길에 쫓아온 것도 모자라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강한 모습을 보이고자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

 

 

 '싹둑-'

 

 

 한순간이었다. 그대로 그것들이 잘려나가 바람에 휘날리는 시간은.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잘려나가 허무하게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잔해들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눈물 때문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간지러운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충격을 위로하기에 내 두 손은 차 명환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니네들 뭐야?!"

 

 

 낯선이의 호탕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내가 누운 자갈길 왼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빛은 내 정신을 말끔히 차리게 해줬다.

 

 

 "아 씨발. 뭐야. 어서 튀어!"

 

 "어..어..."

 

 

 당황한 차 명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길쭉한 친구녀석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들은 포박하고 있던 나의 손을 풀고선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모습에 겨우 안정을 찾았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자동차를 대충 주차하고 온 건지 여전히 밝은 헤드라이트가 내 쪽을 향해 쏘이고 있었다. 눈이 부셔.

 

 하지만 나는 그 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한 검은 형체를 보았다. 눈가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차 쪽에서 40대는 훨씬 넘어 보이는 차 주인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다른 곳에 자꾸 시선이 갔다. 차의 라이트가 당도하지 않는 뒤편에서 쪼그리고 앉아 이곳을 쳐다보는 사람.

 

 

 "학생 괜찮아?"

 

 

 귀에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나간건지 나는 이성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도와준 차주인은 내 곁까지 와서 내 팔을 붙들어줬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나며 안까움에 혀끝을 차며 위로의 말을 하나씩 건네지만 하나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차의 뒤편을 살피며 검은 형체를 주시했다. 차 주인이 헤드라이트를 껐는지 그 빛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깜빡이고 꺼지자 나는 볼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쪼그려 앉아 나를 쳐다보는 강 여운을.

 

 뭐야 너. 즐기고 있었던 거야? 어쩐지 차 명환이 독단적으로 행한다는 것부터 신기하다 생각했어. 저 녀석은 단독으로 뭘 하지 못하는 애거든. 빽만 믿고 설치는 애지. 괘씸해서... 분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녀석을 발견한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천천히 웅크리고 있던 몸을 폈다.

 

 

 "학생! 정신이 나간거야? 왜 그래!"

 

 

 아저씨가 내 몸을 흔든다. 머리아파요, 아저씨. 나 안그래도 기분이 더러워서 두통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만 흔들어요. 하지만 목구멍에서 맴맴 돌뿐 공기 중으로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멍해진 내 눈동자는 뒤돌아 유유히 동네를 떠나는 녀석의 뒷모습에 향하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어. 뭘 잘못했길래 이딴 식으로 구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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