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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만이 널 가질 수 있다
작가 : Lido
작품등록일 : 2017.11.6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앞으로 나의 운명은?

 
8화
작성일 : 17-11-11 02:24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8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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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믿음을 쌓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해만 풀린다면 반감에서 호감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그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내 심장은 천천히 녹고 있는데 머리는 자꾸 아니라고 한다. 몸과 머리가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그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소모만 심했다. 그래도 직장에서는 인산인해로 붐비는 치료실에서 환자에게만 매진하려고 노력했다.

 

 

 "자, 진 자옥씨 아까 보여준 카드를 골라보세요."

 

 

 방금 전 보였던 자동차 그림카드를 뒤에 숨기고 물었다. 나이 42세, 여. 교통사고로 인하여 뇌손상을 입은 환자. 단기 기억 상실증. 그녀는 강 여운이 관심을 가지던 환자였다. 오늘은 그가 치료를 봐주는 날로, 녀석이 직접 치료실로 내려오기로 했다. 하지만 바쁜지 몇분이 지났는데도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얼른 와야할텐데.

 

 이 환자를 맡은지도 5개월이 다되간다. 그녀의 사생활을 자세히 알지 않지만 그동안 보호자와 나눈 이야기로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두 아들의 어머니였고, 그 아들은 겨우 18살과 15살. 오늘은 토요일이랍시고 방과 후 바로 병원에 들린 첫째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치료실에 왔다. 3층 병동에 계시고, 사지멀쩡한 그녀였지만 혼자서 반지하 1층 치료실에 오는 것은 무리였다.

 

 

 "이...이거?"

 

 "네, 맞았어요."

 

 

 싱긋 웃어주며 카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12피스인 퍼즐을 꺼내놓았다.

 

 

 "아까 보여준 자동차 그림 있죠? 이거요. 잘 보시고 기억하세요."

 

 

 환자 앞에 자동차 그림카드를 보여준 뒤 그것을 뒤편 책상에 올려놓았다. 환자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놓은 뒤 나는 스톱워치를 켰다. 1분이 다와가자 퍼즐을 흩뜨리고 그것을 환자의 앞에 놓였다.

 

 

 "아까 보여준 자동차 그림있죠? 퍼즐로 완성해보세요."

 

 

 환자의 손이 느릿하다. 하지만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말대로 환자였으며, 뇌손상을 입은 사람이다. 사고회로가 정상인과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가만히 지켜보며 그녀가 성취할 수 있도록 보조 역할을 했다.

 

 

 "잘 하고 계시네요."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찾아올 사람이 누구겠는가. 녀석은 약속시간보다 늦었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오늘은 어떤 일인지 깔끔하게 앞머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보호자인 큰 아들이 의사 가운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강 여운의 묵묵부답. 진 자옥씨의 아들인줄 모르는 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내가 중계역할자로 나섰다.

 

 

 "진 자옥씨 아드님입니다."

 

 "미안해요 몰라봤군요. 안녕하세요."

 

 

 강 여운이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분명 그녀의 담당의사가 강 여운에게 돌아갔을텐데 아직 아드님과는 서로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나 보다. 그래도 진 자옥씨의 남편분과 함께 셋이서 자리한 적은 있었다.

 

 

 "아드님이 계셨군요, 진 자옥씨."

 

 

 강 여운은 그녀의 손등을 쓸며 눈을 마주쳤다. 초점이 흐린 그녀의 손길이 여전히 느리다. 그의 대답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저 진행하세요. 뒤에서 지켜보겠습니다."

 

 "선생님 전 휴게실에 있다가 끝날 때쯤에 올게요."

 

 "응, 그래."

 

 

 강 여운이 와서 불편했는지 첫째 아들이 자리를 피했다. 치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저렇게 밝은 아이가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주말에 공부하기도, 놀기도 바쁠만한데 하교마치면 꾸준히 병원에 와서는 엄마를 돌보는 모습에 모두들 어른들보다 낫다 하며 그를 칭찬하기 바빴다. 그런 아이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엄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가끔씩 생각했다. 그 좌절감... 자신의 무기력함.. 불현듯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은 모두 다 바보같은 생각일 뿐이다.

 

 

 "어려보이네, 나이가 어떻게 돼?"

 

 "올해 18살."

 

 

 공간이 튼 치료실이라 주변에 몇 십개의 눈이 있는데도 녀석은 존대를 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열 몇 명을 수용한 치료실이고 북적거려서인가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말을 놓았다. 선생님들은 다들 자기가 맡은 환자를 돌보기에 바빴고 마침 내 옆에 매트에는 자리가 비었다. 녀석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보호자와 친하게 지내내."

 

 "응. 그래야 환자에 대해서도 잘 알고."

 

 

 내 대답이 이상했나. 그림을 까먹었는지 조각만 들고있는 환자 때문에 책상에 놓은 카드를 다시 가져가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다 부딪친 녀석의 몸에 고개를 올려 쳐다보았다. 미안이라고 짧게 사과를 내뱉으려는 찰나 녀석의 눈 주위에 갈라진 실핏줄이 보였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였다.

 

 

 "신기하네."

 

 

 신기하다고? 녀석이 낮게 중얼거렸다. 녀석의 붉은 실핏줄과 대조적인 새까만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꼭 그것이 내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된 녀석의 동작에 눈길이 갔다.

 

 

 "뭐가...?"

 

 

 조심스레 물었다. 녀석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다시 환자에게 돌렸다. 녀석의 입에서 무슨말이 나올지 궁금했지만 아닌척 했다.

 

 

 "네가 남들에게 관심가지는거."

 

 

 흔들림 없이 자신있는 말투. 관심이라. 그러고보니 중,고등학교 다닐 당시 친구들에게 무수히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너 되게 친구한테 무관심한 것 같애.'

 

 

 나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변할 생각은 없었다. 친한 친구더라도 그 친구에 대해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지 않았다. 더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친구가 나의 사생활을 깊게 파고들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의 부모님, 나의 가정형편, 내 모든 것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대학교 가서도 변치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연락하는 친구가 누가 있고, 여가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지인이 몇 명이 되는가. 한명도 없다. 이런 현실에 씁쓸함이 감돌고 지난날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이런 내 성격이 180도 바뀔 수는 없었다. 아등바등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그에 반면 환자는 달랐다.

 

 

 "...배신할 리가 없거든."

 

 

 배신이라. 스스로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었나. 그래도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보내기 전에는 스스럼없이 잘 지냈던 것 같다. 오히려 고등학교 졸업 후 급격히 사람을 피하고 다녔지. 배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의 외면과 강 여운의 따돌림. 나를 이렇게 피폐하게 만든 이가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다시 올려다보니 녀석의 곧은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해 내려다본다. 나는 녀석에 대한 믿음이 새싹만큼 돋은 상태였고, 반감으로 가득 찬 마음이 반은 아니지만 미세하게나마 줄어든 상태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옳았다.

 

 

 "환자는 당연히 배신하지 않겠지."

 

 

 자조적인 말투. 숨이 턱 막혔다. 앞뒤 다 자르고 말한 걸 해석한 녀석이 내 모든 걸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강 여운이여서 더 무참하게 다가오는걸까. 순식간에 내 감정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스스로 내가 너무 못나보였다. 환자밖에 믿을 수 밖에 없는 쓰잘데기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응...그렇지. 진 자옥씨, 가장자리 쪽은 이렇게 반듯한 걸 놓으시는 거 아시죠?"

 

 

 화제를 돌려야만했다. 녀석에게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매일 쓴물을 삼키면서 다짐하지 않았던가. 먼 훗날 길거리에서 고등학교 동기와 마주치게 된다면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절대 꿀리지 않도록 멋진 여자가 돼 있을 거라고. 거듭된 노력으로 이만큼 개과천선했다.

 

 그들 중에서도 유독 강 여운에게만큼은, 그 녀석에게만큼은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다. 난 환자의 손에 반듯하게 각진 조각을 만지게 도와주며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짐짓 끄덕이더니 그녀는 조심스레 맞추기 시작했다.

 

 25분간의 치료시간이 끝났다. 겨우 그녀가 한 것은 보여준 그림카드를 다시 고르는 것과 퍼즐 맞추기였지만 나름 꽤 성과가 있었다. 20분 내내 퍼즐 하나 맞추지 못했던 적이 허구한 날이었으니깐. 난 어린 아들의 손에 부축되어 가는 환자를 보며 책상위에 어지럽힌 나머지 카드와 퍼즐을 정리했다.

 

 

 "예상보다 좋아 보이네."

 

 "그래?"

 

 "계속 이렇게 치료하면 좋겠고, 일주일에 몇 번 받지?"

 

 "3번."

 

 "괜찮네. 일주일에 한번쯤은 대화를 나누는 걸로 시작하는게 좋겠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기억을 유추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깐."

 

 "응. 알겠어."

 

 

 눈을 못 마주치겠다. 나는 녀석에게 등을 돌렸다. 그렇게 환자에 대해 몇 가지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받았다. 난 다음 환자를 받아야했기에 준비를 해야했고, 녀석 또한 한가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냉정하게 발걸음을 돌려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난 아직도 혼란 속에 갇혀있었다.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공 선생님, 저 분이 요번에 새로 스카웃 됐다던 그 선생님이세요?"

 

 

 매트 위를 정리하는데 동료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말을 서로 많이 나누지도 않았던 선생이여서 의외였다. 나는 담요를 개며 무덤덤하게 대답해주었다.

 

 

 "네."

 

 "아, 어쩐지 외모가 듣던 중인데요? 병원장님 딸이랑 만나는 그 분 맞죠?"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담요를 개던 내 손이 멈췄다. 듣도 보지 못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았다.

 

 

 "아닌가? 소문이 파다한데, 들으신 거 없으세요? 병원장님이 눈독 들인다고 하던데요."

 

 

 아.. 물론 그 얘기는 직접 그 자리에 들어서 안다. 그 회식자리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쯤이니. 하지만 벌써 그런 이야기가 오갔나. 빠른 입소문에 혀를 내둘렀다. 벌써 만나는 사이가 된건가? 회식자리 이후 만나도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다. 사적으로 만난 적도 없으며, 핸드폰 전화번호조차 아직 교환하지 않았다.

 

 녀석이 내게 말해줄 리가 없지. 내가 뭐라고.

 

 

 "뭐, 능력, 재력 다 갖췄다면서?"

 

 

 오 선생님이 환자를 보낸 후, 내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오 선생님마저 강 여운을 알다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동료 선생님의 반의 시선이 모두 내게 맞춰있었다. 못 느꼈던 이목이 내게 집중된 기분이었다. 모두들 강 여운을 알고 있는 눈치다. 그들은 매트를, 도구들을 정리하면서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분이 묘했다.

 

 우리 팀은 위층 병동과 자주 왕래하지 않았기에 녀석의 이름만이라도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로웠다. 강 여운은 어디가서도 눈길을 끄는가. 녀석은 뭘 하든 빛이 나는 존재인가.

 

 

 "그런 것 같더라구요."

 

 

 수긍했다. 사실이었기에. 하지만 수긍하는 내 목소리가 탁했다. 녀석에 대한 칭찬을 말로 인정했던 것이 언제적이더라.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선 오 선생님이 부러운 눈치를 보이며 대꾸했다.

 

 

 "좋겠네 공 선생, 저런 친분도 쌓고."

 

 

 오 선생님은 한마디 던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괴리감을 느꼈다. 어떻게 지금 내가 녀석을 대변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거지. 나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오 선생님의 푸근한 미소를 보면서 더욱 내가 초라해졌다. 지금껏 남 칭찬이라고는 몇 번 했던 적이 있던가. 어릴적부터 가진 열등감 때문인가.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자란 그들이 제일 부러웠다. 하지만 차마 부럽다고 말은 못했다.

 

 강 여운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복한 가정, 친구들, 성적, 외모. 모든 것이 풍요로웠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부러웠지만 차마 부럽다고 말하지 않는 치졸함은 나를 속 좁은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나 못났다.

 

 

 "근데 정말 사실이에요? 병원장님 딸이랑 만난다는 거."

 

 

 수민 쌤은 집요하게 물으며 웃었다. 꽤 관심 있어 보이는 눈치다. 나도 그것에 대해 잘 아는게 아니라 그런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저번에 듣긴 했는데..."

 

 "친한가 봐요?"

 

 "아니에요, 몇 번 이야기 나누는 정도니깐요."

 

 

 이런 시선 부담스럽다. 나는 녀석과 뭣도 아닌 관계인데 내게 기대하는게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것이 더 나은데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 눈치다.

 

 

 "그래도 부러워요. 나도 정 팀장님한테 부탁할걸 그랬나?"

 

 "뭘요, 다들 일 안하세요?"

 

 "팀장님 뜨셨다."

 

 "뭐라구욧?"

 

 

 정 팀장의 앙칼진 목소리가 치료실에 방방 울렸다. 그녀는 총총 걸어와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모두들 그녀의 눈치를 보며 다들 허둥지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히려 저 모습이 더 당차보이고 귀엽다. 곧바로 눈웃음치며 헤헤 웃는 그녈 보면서 모두들 같이 웃었다.

 

 

 "근데 무슨 얘기 하시고 계셨어요?

 

 "프로젝트 팀 얘기 물어보는 거였어요."

 

 "그러셨구나."

 

 "거기에 잘생긴 의사 선생님 계시잖아요. 공 슬혜 선생님이랑 같이 일해서 부럽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힛."

 

 

 도망가던 선생님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털어놓았다.

 

 

 "아.. 강 여운 선생님?"

 

 

 정 팀장님이 그녀의 얘기를 듣더니 강 여운의 이름을 거론한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다운됐을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강 여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꺼냈다. 역시 팀장자리는 아무나 앉는 건 아닌가보다. 순식간에 사로잡는 저 리더쉽에 나는 벙찐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보니 나도 처음 프로젝트 팀의 정보를 얻었던 사람이 정 재희 팀장님이다. 역시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강 여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어떻게 병원에 들어왔는지까지. 난 주절주절 늘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뒤편에 보이는 입구를 쳐다보았다.

 

 녀석의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아직도 향기가 내 곁에 머무른 느낌이다. 보기 싫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나는 녀석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

 

 

 

 

 

 

 

 밖의 날씨가 풀렸다. 점심시간 막간을 이용해 병원에서 따로 편성된 공원으로 나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벤치에 앉은 뒤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환자부터 시작해 간호사, 의사, 보호자들 여러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미치겠다."

 

 

 커피를 홀짝 마시며 스스로 타박했다. 내 눈이 자꾸 녀석을 쫓는다. 녀석의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녀석을 처음 만난 뒤 일주일동안은 고역이었다. 숨도 막히고 시선은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회식자리에서 나의 비밀을 감춰준 녀석이 고마운 이후 나는 녀석에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랐다.

 

 미운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녀석이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되자 녀석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어정쩡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싫은 건 어느 순간 녀석의 흔적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이다.

 

 그러고보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당시에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나를 괴롭히면서도 주변을 알짱거리는 녀석에게 유독 눈이 갔다. 차 명환은 더러워서 피한거였고, 안 오면 감사했다. 하지만 강 여운은 달랐다.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인간이여서 볼 때마다 우울한 감정이 들었지만 내 눈은 항상 녀석을 쫓았다. 동경, 열망, 부러움.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에,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보네요."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마시던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 일어서 인사를 받았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낯익은 사람이 많이 지나간다. 내게 인사를 건넨 그녀는 예전에 맡았던 환자의 보호자 중 한분.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 기억이 난다. 현재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 못 만나지만 이렇게라도 마주치니 기분이 좋았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가는지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가 눈에 띄었다.

 

 

 "그럼요, 어머님께서 선생님 많이 찾는데."

 

 "언제 찾아뵙는다고 전해주세요."

 

 

 상쾌하다. 바람도, 사람도. 잠시 고통에서 벗어나 숨을 한껏 들이켰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은 거라고 새삼 느끼던 때 내 몸은 다시 경직되어버렸다.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눈동자로 보도블럭 길을 쳐다보았다. 겨우 잠시 눈이 팔린 것뿐인데. 한번 돌아봤을 뿐인데.

 

 

 "선생님?"

 

 

 그때와 똑같다. 강 여운을 처음 보았을 때 반응했던 몸처럼 나는 정신이 나갔다.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도보 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저 일이 생겨서 이만 들어갈게요! 죄송합니다. 다음번에 찾아뵙는다고 꼭 전해주세요!"

 

 "네 그러세요, 선생님."

 

 

 다급했다. 몸이 얼른 도망가라고 머리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겨우 이성을 차리고 몸을 돌릴 때는 늦었다. 내 쪽을 향해 정면으로 쳐다보는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그의 고개에 혹시나 했다. 날 못 본건가? 분명 봤으면 이쪽으로 다가올게 뻔한 그가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난 반대방향으로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일이 뒤죽박죽 엉키는거야.

 

 차 명환이였다. 그렇게 동생이 우려했던 차 명환이..... 우리 병원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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