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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만이 널 가질 수 있다
작가 : Lido
작품등록일 : 2017.11.6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앞으로 나의 운명은?

 
17화
작성일 : 17-11-20 22:26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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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7.

 

 

 

 

 맑은 햇빛이 창을 지나쳐 테이블 위를 덮는다. 영롱한 햇살이 따사롭다. 해가 지면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마냥 쌀쌀하다 못해 손발이 시릴 정도인데 역시 가을 날씨는 매력적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한 폭의 그림같았다. 창가 너머로 새어나오는 빛줄기를 따라 하늘을 본다. 어쩜 구름이 저렇게 예쁘게 떠 있을까.

 

 

 “다 했어요.”

 

 

 은정이가 연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손가락이 살짝 마비가 왔는지 반대편 손으로 오른손을 주무른다. 난 그녀에게 tactail(감각)볼을 손에 쥐어주며 그녀가 종이에 써내려간 글씨를 읽었다.

 

 

 “그래. 한번 볼까? 잘했어.”

 

 

 칭찬을 하며 잘했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예쁜나이의 고등학생은 내 환자 중 한명이었다.

 

 

 “오늘 선생님 회식한다면서요?”

 

 “어? 어떻게 알았어?”

 

 “성혁 쌤이 말해줬어요~ 제 물리치료 쌤이잖아요.”

 

 

 그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다. 마치 고백을 하는 소녀마냥. 어쩐지 평소 은정이의 입에서 성혁 쌤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고보면 장 성혁 선생님과 담당환자 중 겹치는 분이 많았다.

 

 은정이는 일주일에 2번 오는 외래환자였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에서 학교마치고 돌아왔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온 뒤부터였다. 쓰러지자마자 곧장 병원에 왔으면 attack(공격)이 약하게 왔겠지만 맞벌이 부모였던지라 늦게 발견한 케이스였다. 학교를 병행해야 했기에 불가피하게 외래환자로 다녔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그렇게 쓰러지고 결국 헤미(hemiplegia반신마비)환자가 되버렸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녀는 왼쪽 뇌에 Attack(공격)이 와 오른쪽이 전부 마비가 되었다. 다행히 신경이 살아있지만 pain(통증)과 proprioception(고유감각)이 꽤 무디다. 결국 그림을 손에서 내려놔야할 상황이 왔지만 포기가 안되는지 매일 치료에 매진했다.

 

 

 “학교에 가서도 항상 글씨 쓰고, 책 넘길때도 꼭 오른손 쓰고, 불편하다고 왼손으로 다하면 안돼. 알겠지?”

 

 “알겠어요. 쌤~ 쌤 오늘 회식가면 성혁 쌤이랑 밥먹는거에요?”

 

 “응 그렇겠지 뭐. 오늘 오신다면.”

 

 은정이는 이미 장 선생님의 생각으로 푹 빠졌는지 몇 가지 일러두는 내 말은 흘려듣는다.

 

 그렇게 좋을까. 그녀와 얘기하다보면 나도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되어간다. 아직도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맑은 아이다.

 

 저 나이 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저 당시의 난 저렇게 헤맑지 못했다. 앞으로 남들과 생활이 구분되어질 은정이는 자신의 상황 속에서 어쩜 이렇게 예쁘고 포기하지 않는 생각을 할까. 의외로 마음이 굳세다.

 

 아니나 다를까 장 선생님 말대로 치료실 전체 회식이 되버렸다. 그 쪽 팀도 금요일 말고는 할 시간이 없었겠지. 일년에 4번정도는 종종 같이 했던 터라 이번 회식도 함께 할 줄 알았다.

 

 

 “쌤~ 근데 저 병원에서 잘생긴 의사쌤도 봤어요. 새로 오셨나봐요.”

 

 

 은정이는 수줍다는 듯 머리를 매만지며 치료실 문을 쳐다본다. 그녀가 머리를 만진다는 건 부끄러울때마다 해왔던 그녀의 버릇이었다. 단번에 은정이가 누굴 말하는지 알아챘다.

 

 

 “오신지 그래도 한달 가까이 되가는데?”

 

 

 그러고 보니 정말 요 일주일간 녀석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정말 이대로 앞으로 안볼 수 있는걸까. 일주일 안봤다고 녀석의 얼굴생김새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알게 모르게 그가 내 안에 깊이 잠식되었는지 치료하다말고 문득 떠오르곤 했다. 정말 웃긴게 그가 전담으로 맡은 병동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 걸어 들어간 적도 있다. 미쳤다며 서둘러 치료실로 내려오려했지만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자꾸 시선이 병동의 데스크에 머물렀다.

 

 

 “그래요? 전 오늘 처음 봤는데... 진짜 존잘이던데요. 연예인인줄 알았다니깐요. 어디 촬영하는지 알고.”

 

 “그 정도야?”

 

 

 잘난 건 알았지만 은정이가 이렇게 대놓고 찬사를 할 줄이야.

 

 

 “네네! 저 새로 데뷔하는 신인배우인가 싶었다니깐요. 쌍꺼풀 진 것도 아닌데 눈도 크고.. 무엇보다 진짜 하얗고요... 저 성혁 쌤한테서 갈아타야하나 싶었는데......”

 

 “진짜?”

 

 “네. 근데....”

 

 

 잠시 은정이는 하던 말을 멈췄다. 검지로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말을 하다말고 왜 갑자기 생각에 잠기는거니. 궁금하게끔.

 

 

 “이런 말 쌤한테 해도 되나 싶은데..”

 

 “뭔데? 말해봐.”

 

 

 나도 모르게 은정이에게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과연 제 3의 눈으로 녀석을 본다면 어떤 이미지일까. 분명 좋은 소리가 아니니 저렇게 망설이는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성격이 별로 같아보여서 못 갈아 타겠더라구요.”

 

 “왜 무슨일 있었어?”

 

 “아뇨. 전화하는거 들었는데. 여친이랑 전화하는 것 같은데 완전 까칠하더라구요.”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한다. 역시나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은가보다. 한사람만 빼고. 하지만 저렇게 대해도 좋은거 보니 상관 없다만.

 

 난 팀장님 방을 넌지시 쳐다봤다.

 

 

 “쌤, 근데 그 쌤 여친 이름이 소라인가봐요. 오늘 데이트 약속 잡는 것 같던데.”

 

 “어, 그래?”

 

 

 모르는 척 이야기를 듣는데 이상하다. 분명 정 재희 팀장님과 만나는걸로 알았는데 소라라니. 저번 주에도 날 팀장실에 불러 내 앞에서 녀석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고 털어놓았다. 요 일주일간 팀장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건 아닌지. 설마 팀장님을 두고 딴 여자랑...

 

 그러고보니 최근 낯빛이 어두운 팀장님의 모습에 다들 수군덕거린게 여러번 된다.

 

 거기다 녀석은 자주 치료실에 내려와 팀장실을 방문 하곤했다. 하지만 최근 나와 마찰을 빚은 이후 뜸해진 줄 알았다. 그건 나의 착오였던가. 아무래도 내 탓이 아닌가보다. 둘의 연애전선에 오류가 생겼나.

 

 난 은정이와의 정해진 치료시간을 끝내고 데스크에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하루 끝마쳐야할 차트를 정리하려고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키는데 치료실 밖에서 달칵- 소리가 들린다. 분명 계단 비상문 소리인데.. 어느새 내 눈은 치료실 자동문을 향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선생님 담당 환자로 50대 여자분 김 미정님이시다. 치료실에서 내노라하는 떠벌이로 소문난 환자로 성격이 무대포라 다들 그녀를 어려워했다. 치료실에선 쉬쉬하며 그녀의 예민한 성격을 맞추곤 했다.

 

 순간 강 여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항상 계단 비상문으로 자주 왔다갔다하곤 했으니깐. 그나저나 미친 거 아니야? 엮이지 말자고 회피할때는 언제고 녀석을 찾고 있다니.

 

 

 “공 슬혜 선생님, 누구 기다리셨어요? 실망한 표정 같은데요?”

 

 

 오 선생님 환자인 김 미정님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떠벌린다. 그녀는 치료실 떠나가도록 목청을 높여 물었다. 그녀의 큰 목소리 때문에 치료하고 있던 선생님들이 일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바람에 긴장 되어 말을 더듬어버렸다.

 

 

 “아..아니에요.”

 

 “뭐야, 슬혜 쌤 누구오기로 했어요?”

 

 

 2미터 정도 떨어진 매트 위에서 치료하고 있던 수민 쌤이 기회를 포착했는지 웃으며 장난을 쳤다.

 

 

 “안 그래도 오늘 선생님 치료실 문 자주 보더만.”

 

 

 오 선생님도 합세해서 수민 선생님의 말을 거든다.

 

 

 “혹시, 애인이 꽃을 보낸다든가 그런거 아니에요?”

 

 

 항상 조용하던 아영 쌤까지 놀려댔다. 정말 내가 오늘 치료실 문을 그렇게 많이 쳐다봤나. 괜히 부끄러워진다. 정말 제대로 미쳤나보다. 대체 왜그래. 눈앞에서 사라져달라고 애원하더니 머리와는 다르게 왜 자꾸 녀석의 모습을 찾는건데.

 

 

 “애인인가보다! 얼굴이 빨개졌는데?”

 

 

 오 선생님께서 얼굴이 붉어졌다며 나를 가리키며 바득 우긴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난 재빨리 양 손으로 두 뺨을 가렸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 자리를 벗어나자!

 

 

 “아니에요. 저 애인 없어요. 누굴 기다려요. 아무도 안기다렸-”

 

 

 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물을 따라 마시러 컵을 든채 치료실을 빠져나가려했다. 도망치는게 상책이니깐. 바깥에 구비해놓은 정수기로 물을 따르려고 의자에 일어나 게걸음으로 뒷걸음쳤다.

 

 

 “아앗! 죄송합니다.”

 

 

 치료실 문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누군가와 부딪쳐버렸다.

 

 

 “누구 기다리셨나봐요.”

 

 

 부딪친 대상에게 대충 사과의 말을 전하고 도망가려 했는데 하얀 옷자락에 순간 얼어붙었다. 닥터가 치료실 회진하러 오셨나보다. 실수를 저질렀구나 싶어 아차 했는데,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가 번쩍 올라갔다. 강 여운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아..아니요.”

 “애인이 있으신가봐요. 누굴 기다리시나...”

 

 

 녀석이 긴 상체를 유연하게 뒤로 젖히며 치료실 밖 복도를 살핀다. 아무래도 밖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은 모양이다.

 

 

 “아니에요!”

 

 

 설마 내가 널 기다렸다고 오해하진 않겠지? 괜히 마음이 찔리니 녀석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런 내 앞에서 녀석이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 보던 녀석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그 웃음이다.

 

 

 “감기 걸리셨어요?”

 

 

 녀석의 감미로운 목소리다. 제대로 걸렸다. 된통 당하려나보다.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람마냥 녀석이 내게 물었다.

 

 심장이 펌프질을 하는지 기관차마냥 폭주하듯 두근거렸다.

 

 

 “....”

 

 “얼굴이 빨개서요.”

 

 

 강 여운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료 선생님부터 야유를 시작하더니 환자까지 박장대소하며 웃기 시작했다. 멋몰라 보이는 닥터마저 장난에 끼어드니 치료실 사람들이 더 재밌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원래 사람들에게 매우 호감을 주는 편이니깐.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미안했는지 장난이었다며 말을 철회한다. 물론 평소같았음 나도 재밌었겠지만, 꼭 내 마음을 녀석에게 들킨거마냥 민망스러웠을 뿐이다.

 

 나 또한 괜찮다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그냥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후우...미쳤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시켰다. 녀석의 웃는 모습에 분명 잠깐 떨렸다. 아니 진짜... 미쳤나. 성혁 선생님을 볼때마다도 떨리는 것도 모자라 정말.. 하지만 다른 떨림이다. 난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치료실 안을 몰래 쳐다봤다.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곧이어 물을 마시고 돌아온 내게 수민 선생님이 강 여운이 회식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

 

 

 회식자리는 나름 즐거웠다. 강 여운이 참석 한다해서 불편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난 물리치료실 선생님과 한 테이블에 앉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강 여운과 정 재희 팀장님, 물리치료실 팀장님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거기다 재활과 닥터 이 선생님까지 참석했으니 그들 나름대로 상부들만의 잔치였다.

 

 

 “슬혜 선생님 더 드세요.”

 

 “잘 먹을게요. 성혁 선생님도 드세요.”

 

 

 장 선생님이 내 앞 접시에 갈비 한 점을 올려주셨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그의 성의를 거절하기 미안해 어쩔 수 없이 받아먹었다. 날 챙겨주면서 행복해하는 그를 두고 싫다 거부하기에는 내 마음이 그렇게 매몰차지 않았다.

 

 

 “공 슬혜 선생님, 장 선생님 좀 이상하죠?”

 

 

 물리치료실 이 장우 선생님이 고기를 집어먹으며 의심스럽다는 식으로 말한다. 순간 나와 장 성혁 선생님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챘을까 싶어 장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는 미세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빠르게 이 장우 선생님에게 눈길을 돌렸다. 선생님을 바라보니 더욱 심장이 쪼그라들었지만 모르는 척하며 되물었다.

 

 

 “뭐가요?”

 

 “요새 작업치료실에 갈 이유가 있음 다 자기가 간다고 자처하더라구요. 작업치료실에서 못느끼셨어요?”

 

 “하하..”

 

 “이유 좀 아시게 되면 좀 알려주세요.”

 

 

 난처한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만 날릴 수밖에 없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인지 내게 스파이를 권한다. 그의 제안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성혁 선생님을 쳐다보는데 그는 이 장우 선생님의 놀림이 창피한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고 있었다.

 

 

 “요번에 새로온 강 여운 선생님이 그렇게 실력이 좋다고 병동에 소문이 났대.”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 장우 선생님은 병원에서 떠도는 소문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래요?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괜히 성혁 선생님은 못마땅하듯 대꾸하며 갈비 한 점을 집어들었다.

 

 

 “아니래. 거기다 인기가 엄청 많나보던데 뭘. 집안이 빵빵하다는 소문이 들리더라.”

 

 

 그건 맞을거에요. 난 그의 말에 동조해주고 싶었지만 생전 처음듣는 사람마냥 놀란 표정으로 일관했다.

 

 

 “저,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강 여운이 소주 한 병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왔다.

 

 

 “앉아요, 앉아.”

 

 

 금세 우리만의 찌라시는 접고 말았다.

 

 의사치고 뻣뻣할 줄 알았던 그의 깍듯한 몸짓에 다들 반기며 어서 앉으라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덕분에 또 내 앞에 마주앉은 꼴이다.

 

 

 “한 잔씩 받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치료실 전체의 첫 회식에 참석하며 제대로 된 인사를 하려던 모양이었나보다. 다들 그를 반기며 그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오고갔다. 아, 물론 장 선생님만 빼고.

 

 녀석은 자신의 편을 만드는 법을 잘 알았다. 어떻게 행동하면 자신이 호감이 되는지 약삭빨랐다. 그렇게 테이블에 같이 합석을 한 녀석은 15분이 지나도 일어설 생각을 안한다. 안되겠다싶어 내가 먼저 화장실을 간다며 잠깐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달아오른 듯이 몸이 뜨겁고 손이 아려왔다. 뜨거워진 몸을 식히고자 바깥에 나와 근처를 맴돌며 걸었다. 겉옷을 안에 놓고 나왔지만 추울 줄만 알았던 공기가 시원했다.

 

 오늘 일부러 차를 안가지고 왔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좁은 골목사이로 빽빽이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보니 머리가 정신 사나웠다.

 

 

 “강 여운 선생님!”

 

 

 근처 보이는 공원이 보여 걸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정 재희 팀장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순간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자동차 앞쪽으로 몸을 피했다. 뒤돌아보니 2m 사이로 강 여운과 정 팀장님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네. 팀장님.”

 

 

 그는 누굴 찾는지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부름에 대충 얼버무리는 눈치다.

 

 

 “저... 저한테 마음 있으신 거 아니셨어요?”

 

 “네? 죄송하지만 없어요.”

 

 

 뭐지? 내가 지금 무슨 광경을 쳐다보는거야. 마치 보면 안 될 장면을 보는 사람마냥 등딱지에서 서늘함이 몰려왔다. 도망가기에도 앞뒤가 빽빽이 자동차에 막혀 피할 수도 없고, 그냥 그 자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밖에..

 

 

 “어째서죠? 요번에 다른 분과 선을 보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아..”

 

 “제가 부족한가요?”

 

 “그건 아니에요.”

 

 

 암, 물론. 우리 대학병원도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다. 거기 병원장 딸이라면, 분명 녀석에게 과하진 않아도 부족할 스펙은 아니었다.

 

 

 “제가 오해를 줬다면 미안해요.”

 

 

 그가 자상한 말투로 딱 부러지게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의사표시를 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간결하고 단호하여 듣는 나조차 마음이 쓰려왔다.

 

 미련하나 남아보이질 않았다.

 

 

 “선생님!”

 

 

 그녀의 하이톤이 몰래 듣고 있던 날 다시 떨리게 한다. 그가 자리를 피하려했는지 정 팀장님이 다시 녀석을 불러세웠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차 뒤에 쪼그린채 숨어 눈을 막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하이톤은 내 귀에 내리 꽂혔다.

 

 

 "혹시, 공 선생님 좋아하세요?“

 

 

 뭐라고?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연속으로 찾아왔다. 내 이름 석자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예상 밖 질문에 두 손을 가슴에 꼭 쥐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좋아해서가 아니라 절 괴롭히기 위해서 저런다는 걸. 우리의 악연이 언제부터 시작됐는데... 그런 바보같은 질문은 뭐에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되질 않는다.

 

 우연히 마주치는 척 하며 이 상황을 깨버릴까?

 

 순간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발걸음을 떼려했다. 하지만 나의 각오도 금방 무너져버렸다.

 

 

 “맞아요. 좋아합니다.”

 

 

 쿵-

 

 한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미칠 것만 같다. 심장박동 주기가 빨라진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더욱 몸을 웅크렸다. 제발...제발...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하지만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며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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