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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변장공주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1.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잉글랜드의 에반젤린 공주가 자신이 늙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소녀로 변장해 모험에 나선다. 자신을 스코틀랜드의 왕자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려는 아버지 마이클 왕의 명을 거역하고 공주의 신분을 버릴 각오로 모험에 나선 에반젤린 공주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도둑맞은 란슬롯
작성일 : 18-03-25 08:00     조회 : 66     추천 : 1     분량 : 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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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때였다.

 

  "오라버니께서 방금 잉글랜드 국왕이 보낸 기사를 접견하셨다 들었는데, 지난번에 접견하셨던 리처드 경은 오지 않았나요?"

 

  로버트 왕자의 누이동생 샬롯 공주가 기척도 하지 않고 불쑥 들어온 것이다.

 

  기척도 하지 않고 오라버니의 처소에 들어온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지만, 로버트 왕자는 누이동생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았다.

 

  "샬롯, 리처드 경을 만난 적이 있느냐?"

 

  로버트 왕자가 묻자 샬롯 공주는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오라버니께 리처드 경을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달라 부탁드리러 왔는데, 제가 만난 적이 있겠어요? 리처드 경의 이야기는 시녀들에게 들었어요."

 

  "아쉽게도 리처드 경은 이번에는 오지 않았구나. 리처드 경이 동의한다면, 네가 리처드 경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마."

 

  로버트 왕자는 리처드 역시 자신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반젤린 공주에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을 것 같아 이 정도로 말한 것이다.

 

  "리처드 경이 오지 않았다니, 참 아쉽군요. 전, 리처드 경이 동의하리라 믿어요. 그럼, 오라버니께서 다음 기회에 리처드 경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실 것으로 믿고 가보겠습니다."

 

  황금관을 쓴 것처럼 빛나는 황금빛 금발,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인형처럼 오똑한 코, 앵두처럼 붉은 입술.

 

  로버트 왕자를 판박이로 닮은 샬롯 공주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에 리처드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샬롯 공주가 떠나자 로버트 왕자는 국경이 있는 남쪽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전능하신 신이시여! 로렌스 경이 에반젤린 공주를 스코틀랜드로 모셔올 때까지 아무 탈없도록 보호해주소서!'

 

 

  아침 일찍 일어난 에반젤린 공주는 위니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집을 나와 국경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다.

 

  밤사이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일곱째 날, 여덟째 날, 아홉째 날, 열째 날, 열한째 날, 열둘째 날, 열셋째 날, 열넷째 날."

 

  열손가락으로 14일의 날짜를 하나하나 세어본 에반젤린 공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늘로 벌써 이주일 째가 되었군. 이제 빵도 내가 감춰둔 것을 빼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늦어도 내일까지는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이 와야하는데......"

 

  에반젤린 공주는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이 늦어질 것에 대비해 하루에 한끼는 빵을 먹지 않고 감춰두었는데, 그래봤자 둘이서 먹으면 하루 남짓 먹을 수 있는 양이라 끼니가 걱정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에반젤린 공주를 보자 짐이 경례를 붙였다.

 

  "충성! 정말 죄송하지만, 아직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레이디께 실망을 끼쳐 죄송할 따름입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괜찮은 척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벌써 이주일 째 기다렸는데, 며칠 더 기다린다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에반젤린 공주는 낙관하고 있었지만, 짐은 낙관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실은 제가 레이디께서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국경 울타리 문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있어 스코틀랜드 기사들이 다른 곳으로 벌써 잉글랜드를 다녀갔을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에반젤린 공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머! 어째서 여지껏 그걸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지요?"

 

  짐은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국경 울타리 문이 수십 개나 되는데, 레이디께 말씀드린들 걱정만 끼칠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니, 용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짐이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자 에반젤린 공주는 그럴 필요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용서라니요, 당치 않아요. 국경 울타리 문이 수십 개나 된다면, 설령 말씀해 주셨다고 하더라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고는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이 없었던 것일까? 스코틀랜드 기사들이 벌써 잉글랜드를 다녀간 것일까?"

 

  짐은 뭔가 작정한 듯 말했다.

 

  "레이디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며칠 이내에 스코틀랜드 기사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에든버러로 가서 스코틀랜드 왕자께 레이디의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자칫 잉글랜드 국경을 허락없이 넘고,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깝지 않았다.

 

  2주일 전에 여관 주인에게 손거울을 빼앗겨 도움을 청했을 때 짐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 에반젤린 공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짐, 절대 안돼요. 병사님들은 왕명이나 전령없이는 국경에서 한발짝도 이동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만약 며칠 이내에 스코틀랜드 기사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제가 직접 에든버러로 가서 스코틀랜드 왕자께 공주님의 소식을 전하겠어요."

 

  짐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국경 근처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도둑이나 건달들이 있어 레이디 혼자 이곳에서 에든버러까지 가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여인이 배우자나 보호자 없이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한 법도, 결국에는 여인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법이지요."

 

  에반젤린 공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혼자 에든버러로 갈 수 없다면, 여기서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군요."

 

  짐이 골똘히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며칠 이내에 스코틀랜드 기사들이 오지 않는다면, 결국 제가 레이디를 모시고 에든버러로 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안돼요. 제가 짐에게 폐를 끼치면 공주님께서 틀림없이 언짢아하실 거예요."

 

  짐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님을 언짢아하시게 만들 수는 없겠군요."

 

  에반젤린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공주님을 언짢아하시게 만들 수는 없지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한 달이 되든, 두 달이 되든,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짐은 자신이 도울 방법이 없는 것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들도 백방으로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리처드와 함께 올 걸 그랬어."

 

  난생 처음 혼자 런던을 떠나 온갖 고생을 한 에반젤린 공주는 리처드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내 혼자 오지 않았다면 위니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에 말을 바꾸었다.

 

  "아니야, 나 혼자 오기를 잘했어. 나 혼자 오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위니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

 

  위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더라도 위니와 함께라면 자신의 인생이 행복한 일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위니를 생각하니 큰 위안이 된 에반젤린 공주는 기분이 좋아져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 소중한 친구 위니와 함께 있으면 한 달을 기다리던, 두 달을 기다리던, 문제 없을 거야."

 

  바로 이때 에반젤린 공주의 뇌리에 리처드가 떠올랐다.

 

  "리처드가 로버트 왕자가 보낸 스코틀랜드 기사들을 만나 내 소식을 전해준다면 좋을 텐데......"

 

  에반젤린 공주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리처드와는 이별했지만, 대신 짐이 있잖아.'

 

  짐을 생각하자 에반젤린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리처드에 못지 않게 충성스러운 짐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어."

 

  에반젤린 공주는 입으로는 '리처드에 못지 않게 충성스러운 짐'이라 중얼거렸지만, 속으로는 '리처드에 못지 않게 잘생긴 짐'이란 생각을 했다.

 

  에반젤린 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마음이 사로잡혔던 로버트 왕자나 리처드와는 달리 추녀로 변장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짐에게 은근히 끌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빵이 거의 다 떨어질 텐데, 어쩌지?'

 

  에반젤린 공주는 별안간 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라 허리까지 내려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팔 것이라곤 내 머리카락 뿐이니, 내일까지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소식이 없다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야하지 않을까?"

 

  바로 이때였다.

 

  "말도둑이예요! 말도둑을 잡아주세요!"

 

  위니의 집 쪽에서 위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깜짝 놀란 에반젤린 공주는 위니와 란슬롯이 걱정되어 위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사력을 다해 달려가며 외쳤다.

 

  "위니! 란슬롯!"

 

  바로 이때 어디선가 말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힝 거리는 말 울음 소리는 위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이 아닌 다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위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리던 에반젤린 공주는 말 울음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사력을 다해 달리며 중얼거렸다.

 

  "란슬롯의 소리가 틀림없어!"

 

  멀리서 위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발 도와주세요! 말도둑을 잡아주세요!"

 

  어느 쪽으로 달려야 할지 몰라 멈춘 에반젤린 공주는 위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한 번, 히히힝 거리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한 번,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위니!"

 

  "란슬롯!"

 

  에반젤린 공주가 외친 소리를 듣고 위니가 외쳤다.

 

  "아가씨!"

 

  이와 거의 동시에 히히힝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힝!"

 

  위니가 외치는 소리와 히히힝 거리는 소리는 정반대편에서 계속 들려왔다.

 

  "아가씨!"

 

  "히히힝!"

 

  위니가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에 히히힝 거리는 소리는 점점 멀어져 에반젤린 공주는 위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만 외쳤다.

 

  "위니!"

 

  "아가씨!"

 

  히히힝 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에반젤린 공주는 초초해졌지만, 일단은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위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위니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자 에반젤린 공주가 위니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위니!"

 

  위니는 에반젤린 공주 앞에서 멈춰 숨을 헐떡거리는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먹였다.

 

  "아가씨! 란슬롯을 도둑맞았어요!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에반젤린 공주는 숨을 헐떡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위니를 꼭 안았다.

 

  "용서라뇨, 잊었나요? 란슬롯은 제가 위니에게 선물했잖아요."

 

  위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가씨와 란슬롯은 보통 관계가 아니잖아요. 어떻게 제가 란슬롯을 받을 수 있겠어요? 란슬롯을 도둑맞아 정말 죄송해요. 아가씨께 면목이 없네요."

 

  눈물을 흘리는 위니를 보자 가슴이 아파온 에반젤린 공주는 란슬롯을 구해야된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저한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위니이니, 제발 그만 우세요. 위니가 이렇게 울면 제 마음이 아프잖아요. 란슬롯은 짐과 병사님들께 도움을 청하면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에반젤린 공주는 란슬롯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위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말도둑이 란슬롯을 어디로 끌고 갔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짐과 병사들이 나선다 해도 란슬롯을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에반젤린 공주의 말에 귀가 번뜩 뜨인 위니가 다급히 말했다.

 

  "아가씨 말씀대로 병사님들이 나선다면, 머독 아저씨만 찾으면 란슬롯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에반젤린 공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머, 머독 아저씨가 란슬롯을 훔쳐갔나요?"

 

  위니는 추측이라는 듯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제 추측이지만, 오늘 아가씨께서 떠나신 후 머독 아저씨가 아침 일찍부터 노크하셨는데, 제가 잠자는 척 응답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노크하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더니, 평생 먹고 살 돈을 주시겠다며 란슬롯을 팔라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수상쩍었어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란슬롯을 훔쳐간 도둑은 복면을 한 이인조 도둑이었지만, 보나마나 머독 아저씨와 연관이 있을 거예요."

 

  머독이 란슬롯을 훔친 말도둑과 연관이 있을 거라 확신한 에반젤린 공주는 배신감에 손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난 머독 아저씨를 믿고 내 머리끈을 다른 곳에 알아보지도 않고 팔았는데, 어쩜 그러실 수가 있을까!"

 

  그러고는 국경 울타리 쪽을 가리켰다.

 

  "위니, 제가 짐에게 도움을 청하려는데, 함께 가요!"

 

  "좋아요!"

 

  에반젤린 공주가 위니의 손을 잡았다.

 

  "국경까지 달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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